0. 재회
[책만보는바보]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반갑다.
우선 <미쳐야 미친다>란 책을 통해 맨처음 알게 된 이덕무.
그리고 그 외에 인물들도 간간히 나왔다.
그때는 한사람 한사람을 소개하거나
두명의 인연을 소개했기 때문에
그들이 이런 친분관계가 있는줄은 몰랐다.
작년여름에 읽은 김탁환의 소설[열녀문의 비밀]에서
그들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백탑파.
서자출신 위주로 백탑주변에 살면서
친분관계로 유지하며 멋있게 살던 그들.
그들을 이책에서 다시 만났다.
반갑다.
서정적이고 시적인 그들의 삶을 본받고 싶다.
일에 쫓기고 일에 치이면서 사는 나의 삶은
그들에 비해 너무 초라하다.
1. 적자 vs 서자
왕과 같은 성씨지만 아무것도 할수 없었던 이덕무.
그는 서자의 위치를 사회체계의 문제라 생각하면서
그것을 바꿀 수 없는 한낱 양반아닌 양반이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던 서자.
그들은 보통 양반처럼 정계에 진출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상민들처럼 상업에 종사하지도 못했다.
그러다니보니 늘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도 책은 멀리 할 수 없었던 그들.
서자.
한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서자의 신분은 되물림 받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이덕무 또한 서자의 되물림이었고,
아들에게 또 그것을 되물릴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
그나마 이덕무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었으나,
박제가나 유득공은 아버지를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첫 서자였던 것이다.
그런 삶이 박제가의 얼굴에는 늘 외로움이 깃들어 있었고,
유득공은 역설적으로 호탕함이 배어 있었다.
다행이 그들은 개혁군주 정조의 도움으로
규장각과 지방관리로 등용된다.
2. 간서치
책만보는바보란 뜻이다.
이덕무를 아는 사람은 그를 간서치라고 불렀다.
서자라는 신분때문에 사회적 폭이 좁다보니
책을 읽는 일에만 몰두했겠지만서도
그는 진정한 책벌레였다.
책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글들이 절절하였다.
그래도 가난을 앞에서는 책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보는 독자도 안타까움에 글썽거리게 된다.
맹자 한질을 팔아 끼니를 때운 이덕무는
맹자는 가르침 뿐만 아니라 밥도 주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하지만,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을려나.
책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요.
마음으로도 보고,
귀로도 보고,
손으로도 보고,
코로도 본다.
나도 그처럼 간서치가 되고 싶다면 욕심일까?
3. 그의 벗들
대개 백탑파 벗들이다.
원각사지 십층석탑의 애칭이 백탑이다.
그 백탑 주변에 모여 살던 그의 벗들.
이서구를 제외한 모두가 서자 출신이라서,
가난하고 넉넉하지 못한 삶이지만,
그들의 마음과 정신과 학문은 풍요롭고 넉넉하였다.
그들을 보면서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진정한 부자는 마음이 부자요, 학식이 부자요, 정신이 부자임을
다시 깨달아
돈을 쫓는 나 자신을 반성해본다.
그리고 그들을 스승삼아
책읽기에 매진한다는 다짐을 해본다.
..
<북학의>로 유명한 박제가.
그는 직설적인 발언으로 유명했다.
다른 양반들의 비난도 많았다고 한다.
특히 그가 청나라에 대해 우호적이었다는 점이 더욱 그랬다.
당시 양반들은 청나라는 오랑캐의 나라라 얕보고,
명나라의 정통을 이어온 것은 조선이라는 소중화주의에 늪에 빠져 있던 시절이었다.
박제가는 실용주의 생활의 청나라를 배워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그가 청나라에 우호적인 것이 아니고,
우리 조선의 백성에 대해 우호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전에 <북학의>에서 정조에세 서슴치 않은 직언이 다시 떠오른다.
늘 외로움이 배여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서자출신으로 조선에 대해 불만은 많았을 텐데도
조선백성을 위하는 그의 마음은 이시대 정치인이 배워야 할 것이다.
유득공.
유득공 또한 서자였지만,
늘 밝은 얼굴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오늘날 분위기 메이커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도 학자로서의 명분은 늘 유지하였고,
특히 잊혀진 발해역사에 관심이 많아
<발해고>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백동수.
그의 처남이자 친구이다.
다른 친구와 달리 그는 무예에 관심이 많다.
무과에서는 문과보다는 서자라는 딱지가 걸림돌이 덜했지만,
차별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또한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고, 무예에 전념한 결과
후에 다른 벗들과 마찬가지로 정조의 부름을 받고,
<무예도보통지>라는 책을 통해
한국 무예역사와 무인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이서구.
그는 이덕무와는 나이차이가 상당히 나는 사람이다.
하지만 학문적으로는 벗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서구는 적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양반들처럼 이들을 서자로 보지 않고
인생의 선배로써,
학문의 동료로서 대했기 때문에
벗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4. 그의 스승들
이덕무 뿐만 아니라 그의 벗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후원이 되어주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연암 박지원과 담헌 홍대용이다.
그들은 다른 양반들과 달리
능력위주로 이덕무와 벗들을 대했다.
그들의 기쁨을 같이 기뻐하고,
그들의 안타까움을 같이 안타까워해주는
스승 이상이었다.
박제가는 옳은 이야기는 직설적으로 하는 박지원과 닮았고,
유득공은 음악을 사랑하고 듬직한 홍대용을 닮았다고 한다.
5. 그들에게선
사람냄새가 난다.
이덕무가 책을 통해 공자를 만나고, 맹자를 만났듯이
나도 책을 통해서 이덕무를 만나고,
그의 벗들을 만나고,
그의 스승을 만났다.
이 책을 기점으로 기회가 된다면
또 다른 책들을 통해서 좀더 많은 가르침을 받고 싶다.
깊은 한겨울밤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조그마한 방안에서
책을 읽는 내내
혼자가 아니었다.
그들이 찾아주었다.
그들이 덕담을 해주었다.
그들이 가르침을 주었다.
첫댓글 읽고 싶어지는 책이군요. 도서관에서 빌려 보아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