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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 읽기 41강 (59장)
(1) 제59장 원문
治人事天莫若嗇. 夫唯嗇是以早服, 早服謂之重積德. 重積德則無不克, 無不克則莫知其極, 莫知其極可以有國, 有國之母可以長久. 是謂深根固柢, 長生久視之道
치인사천막약색. 부유색시이조복, 조복위지중적덕. 중적덕즉무불극, 무불극즉막지기극, 막지기극가이유국, 유국지모가이장구. 시위심근고저, 장생구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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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治) : 다스리다. 관리하다. 평정하다.
사(事) : 일 일삼다. 전념하다. 섬기다. 부리다. 다스리다.
색(嗇) : 아낄. 아끼다. 인색하다. 츱츱하다.
복(服) : 옷. 의복. 입다. 좇다. 따르다. 두려워하다. 항복하다. 기다. 포복하다.
중(重) : 무겁다. 거듭하다. 많다.
적(積) : 쌓다. 쌓이다. 모으다. 모이다.
극(克) : 이길. 이기다. 능하다. 능히. 극복하다.
유(有) : 있을. 있다. 보유하다. 가지다. 소유하다.
근(根) : 뿌리. 뿌리박다.
저(柢) : 뿌리. 근본. 바탕. 뿌리를 내리다. 바탕으로 삼아 생겨남.
시(視) : 보다. 자세히 살피다. 주관하다. 맡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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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번역
사람(남)을 다스리고 하늘(자연)을 섬기는(대하는) 일에 있어서 ‘아낌’만한 것이 없다. 여기서의 아낌은 빨리(즉시) 상대(남과 자연)에게 따름이다. ‘빨리(즉시) 상대(남과 자연)에게 따름’을 일러 덕을 거듭 쌓는다고 한다. 덕을 거듭 쌓으면 극복하지 못(억지로 따라야)할 일이 없게 된다.(자신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극복하지 못할 일이 없게 되면 그(자신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게 되는 능력)의 끝을 알 수 없다. 그(능력) 끝을 알 수 없게 되면 나라를(까지) 소유할 수 있게 된다. 나라의 어미(아낌의 원리)를 소유하면 (그 나라는) 오래 갈 수 있다. 이것을 일러 뿌리는 깊고 바탕이 단단하다고 한다. (이것이 어떠한 인간들의 조직이나 인간이 사는 자연 환경이라도 그것을) 오랫동안 살아남게 하고 주관할 수 있는 도리이다.
(3) 해설
노자는 남을 다스리거나(治人) 자연을 대하는데(事天) 있어서 ‘아낌’만한 것이 없다(莫若嗇)고 하면서 아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아낌’을 잘못 해석할 것이 염려되어, 자신이 말한 아낌은 빨리(즉시) 상대(남과 자연)에게 따르는 것(夫唯嗇是以早服)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즉시 상대에게 따른다는 것은 상대를 만나자마자 내 의견을 접어두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말이다. 내 의견을 접어두는 행위를 노자는 59장에서 아낌(嗇)이라고 표현했다. 노자는 자신의 의견을 아껴두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해서 따르면 결과적으로는 상대가 나에게 따르게 된다는 이치를 말하고 있다. 이것을 58장에서는 자신(통치자)이 민민(憫憫)하면 상대(백성)는 순순(淳淳)이 따른다고 표현했다. 동일한 원리가 58장에서는 인간 세상에만 적용되어 있고, 59장에서는 자연 환경에까지 확대 적용되어 있다.
자연으로부터 우리들은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그리고 자연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에 대해서 우리 나름대로 진단하고 그 진단한 생각대로 거리낌 없이 대하(다스리)고 있다. 즉 자연을 존중하지 않고 그의 말에 겸허히 귀 기우리지 않고 우리가 판단한대로 개발(開發)이라는 미명(美名)하에 지배(통치)하고 있다. 그 결과 자연은 파괴되어가고 복원력을 잃어가고 있다. 복원력을 잃은 자연은 여러 가지 재앙으로 우리의 지배(통치)에 반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의견에 따라 자연을 지배할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 그래서 자연복원력을 회복하고 그 자연에 순응해서 살 때 자연도 우리를 따르면서 오랫동안 유지된다.
상대의 의견을 존중해서 따르면 결과적으로는 상대가 나에게 따르게 된다는 이치는 자연에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세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노자는 말한다. 상대에게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상대를 높이 평가하면서 상대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즉 자신이 상대보다 더 높다고(혹은 자신이 바르고 상대가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의견대로 상대를 지배하려고 한다면 상대는 떠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상대를 높이 평가하면서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면 그 사람은 인정(認定)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오히려 인정한 사람을 따르게 된다.
상대를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자신을 낮추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가장 높다고 여기므로 자신보다 낮은 남을 따를 수 없다. 남을 따를 수 없는 사람은 독불장군(獨不將軍)이 된다. 독불장군이 되면 남들도 이 사람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외롭게 된다. 그리고 따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서로 협동해야 하는 조직생활이 어렵고 더욱이 그 조직을 이끌어 갈 장(長)은 되기 어렵다. 그러므로 조직의 장은 자신을 낮출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을 낮추지 않아도 집안의 배경이 좋거나 뛰어난 재능이 있어 일시적으로 장(長)이 될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조직이 오래가지 못하거나, 최소한 그 사람은 그 자리에 오래 있을 수 없다는 점이 이번 장에서 강조되고 있다.
노자는 상대를 만났을 때 즉시 자신을 낮추고 상대에게 따를 때 덕이 거듭 쌓인다(早服謂之重積德)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때마다 그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는 일이 거듭되어 주변에 자신의 일을 진심으로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양적으로 많아지고, 질적으로 깊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덕 쌓는 일을 거듭하면 극복(克服)하지 못할 일이 없다(重積德則無不克)고 노자는 말한다. ‘기쁨은 나누면 배(倍)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半)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덕이 쌓이면 어려운 일도 함께 잘 처리해 나가니 큰일도 쉽게 극복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큰일까지 극복하는 사람이 될지 모르지만,(無不克則莫知其極) 아마 가장 큰 조직인 나라까지 소유하게 될 것(莫知其極可以有國)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아낌의 원리를 안다면 국가를 소유할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有國之母可以長久) 왜냐하면 이 아낌의 원리는 국가(모든 조직) 통치의 근원인 어미로서, 국가의 뿌리를 깊게 하고 바탕을 견고하게 하기(是謂深根固柢) 때문이다. 이것이 모든 조직을 오래가게 할 수 있고, 통치자가 오랫동안 주관할 수 있는 도리이다.(長生久視之道)
아랫사람이 말을 잘 듣지 않거나 사고를 내어 주변에 피해를 입혔을 때, 그 조직의 책임자가 저의 ‘부덕(不德)의 소치(所致)입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만약에 조직의 책임자가 이 말을 진심으로 했다면,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도덕경 59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부덕의 소치’는 내가 장(長)으로서 덕이 부족했기 때문에 부하가 말을 듣지 않거나 사고 등의 잘못이 발생되었음을 인정한다는 말이다. 59장에 따르면 덕이 부족했다는 것은 부하들을 대할 때 그들을 무시하여 그들의 의견에 즉시 따르지(早服)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에 따르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을 존중하지 않고 아끼지(嗇) 않았다는 것이다. 조직의 장(長)이 부하들을 아낀다면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뿐만 아니라 부하의 허물을 감싼다. 그러면 부하들은 신이 나서 일을 자발적으로 열심히 한다. 그래서 조직은 커지고 오래간다. 이것이 인사(人事)에 적용되는 아낌의 원리이다.
아낌의 원리는 당연히 경제의 원리로도 쓰인다. 외부에서 들어오는(來) 수입을 모아두고(回) 지출하지 않으면(嗇) 당연히 돈은 쌓이게(積) 된다. 그런데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면 쌓이는 것이 없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노자는 작은 지출에도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이 부자라(知足者富)라고 말한다. 그 이상의 지출에 대해서는 먹고 남은 밥(餘食)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사람은 그 지출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사람은 없으면서도 있어보이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다. 이것이 바로 ‘아낌’과 반대되는 ‘소모’의 마음이다. 아낌의 원리를 알고 실천하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할 때도 실력을 100% 발휘하지 않는다. 아껴두고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상대가 자신의 실력의 끝이 어느 정도인지 헤아릴 수 없도록 한다. 자신의 실력을 쉽게 드러내면서 자랑하는 사람은 소모하는 사람이다. 아끼는 사람은 있으면서도 없는 듯이 살아간다.
노자는 왕이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위치에 오르기까지 덕을 쌓았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자의 눈으로 보면 재벌들이나 권력자들이 그런 위치에 있기까지 누구보다도 더 자신을 낮추면서 상대에게 따랐다(早服했다)는 점이 보인다. 오늘날 우리들은 메이커 제품을 선호한다. 이것은 대기업이 그만큼 소비자의 요구조건에 맞추어 따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력자들도 그가 속한 조직의 상하(上下) 상대에게 그리고 국민들의 요구조건에 맞추어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노자의 사상은 현실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긍정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출세지향적인 처세술로만 노자를 보는 것은 편견(偏見)이다.
(4) 문제 제기
1. ‘여자는 남자를 따르면서 따르게 한다’는 말이 있는데 노자의 입장과 같은가. 같다면 이때 남자가 잘못되고 수준 낮은 판단을 할 때도 따라야 할 것인가?
2. 59장(아낌의 원리)대로 실천하면 결국 큰 조직을 오랫동안 소유하게 된다는 말인데, 왜 노자 는 큰 조직을 소유하지 못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