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ngeles] 미주 중앙일보 입력 2022.12.22 19:08 수정 2022.12.22 20:08
이곳에서는 진작부터 만 나이를 썼기에, 12월의 내 생일이 지나자 한 살을 먹고 내년 5월 남편의 생일까지는 연상녀로 살게 된다. 같은 학번이나 남편이 5개월 늦다. 그 때 까지 누님답게 가르치며 너그러이 봐주면서 살아보겠다.
젊어 보이는 어떠한 인위적인 방법도 거부하는 나는( 실은 무섭다. 주사도 성형도 ), '생긴 대로 살자' 주의이다. 나이 들면 주름은 당연한 것이며, 나이만큼 늙어 보여야 인간적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나 큰 병으로 병원신세를 오래 지고 나서는 모두들 내 나이보다 더 보는 경향이 있다. 미간에 병고의 흔적인 세로 두 줄의 주름이 결정적으로 늙어보이게 한다.
퇴원 당시엔 항암치료에 이식 수술을 마친 후여서 머리가 거의 백발이었다. 초췌한 노파가 되어 휠체어에 앉아있고 남편이 뒤에서 미는 중이었다. 대기실의 어떤 분이 우리 내외를 유심히 보다가, 내게 "착한 아드님을 두셨네요." 이러는 게 아닌가? 옆에 앉아 도와주던 올케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고 남편은 "안 사람입니다." 했다. 그분이 민망할까 봐 괜찮다며 웃었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집에 오는 그 길로 미용실에 들러 흑발로 염색했다. 염색약이 독성이 있다며 주치의는 하지 말라 했어도 안 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남편에겐 앞으로 염색하지 말고 흰머리로 살 것을 명령했다.
작년 한국 방문시 기도회 참석차 최 목사님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다. 택시기사분이 갈림길에서 남편에게 “할아버지, 터널위로 가요? 아래로 가요?” 묻는다. 내 눈엔 남편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기사가 남편을 “할아버지”하고 부르니 언짢았다. 송도에서도 택시기사분이 “할아버지가 카카오 택시 부르셨어요?” 해서 당황한 기억도 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언어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흔히 쓰는 호칭 ‘손님, 어르신, 선생님’을 다 놔두고 할아버지라니. 욕도 아니고 비하의 단어도 아니건만 기분이 별로였다. 남편은 “아들에게 아이 생기면 할아버지인데 뭘” 하며 호칭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남편은 염색을 다시 시작했다.
나는 이제 백발인 채로 산다. 백두혈통이라며 농담하며. 누군가가 그레이 색 머리칼이 잘 어울린다 한 이후 그걸 믿고 그냥 두고 있었다. 며칠전 클래식 음악 동아리의 송년회가 있었다. 내게 “아직 80은 안되셨죠?” 묻는 회원이 있었다. 자리를 박차고 집에 오고 싶었다.
곧 2023 새해가 되면 먹고 싶지 않은 한 살을 또 먹게 된다. 연초 한동안은 나이가 화제에 오를 것이다. 세월을 어디에라도 붙들어 매고 싶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이정아 / 수필가 # 이 아침에 # 역전 # 염색 # 염색 역전 # 할아버지 #주사도 성형도
첫댓글 Merry Christmas! 이정아 수필가 님, 2023년에도 건강 건필 행복하시고, 더욱 문운이 빛나소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