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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가 곧 설교입니다.' 아내가 늘 제게 하는 소리입니다. 복음을 전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면 거기에서 설교 재료가 무궁무진하게 나온다는 거예요. 설교 준비와 말씀 선포에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는 제가 동의하기 쉽지 않은 말입니다만 그렇다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없는 정의(定義)입니다. 그런데 어제는 실제 '전도가 곧 설교'라는 말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이런 날도 있군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며칠 전, 캘리포니아장학회 여창회 회장으로부터 토요일 김천역 앞에서 함께 전도하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전도 열기가 식어 있는 때여서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좋다고 했습니다. 작년까지 정말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습니다. 김천역뿐만이 아니라 역 근처 상가, 병원, 대형 마트, 시 청사 앞에서 전도지와 전도 선물을 나누고 다녔습니다. 학생회 아이들을 데리고 찬양하며 길거리 전도에도 열심을 보였습니다. 그러다 금년 들어 그 열기가 식어 있을 즈음에 노방 전도 전화를 받았으니 쾌히 승낙할 수밖에요.
아내와 하루 전날 밤, 전도지에 고무인을 찍고 전도 선물로 건빵과 사탕을 준비했습니다. 작은 비닐봉투 안에 선물을 넣고 저희 교회를 알리는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토요일(7월 27일) 오전 10시 김천역으로 직행한 것입니다. 토요일은 제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날입니다. 주일 예배 준비한다는 명분이지만 시간을 알차게 보내지 못하면서도 바깥출입을 삼갑니다. 어찌 보면 목회자에게 복잡다단(複雜多端)한 날이 토요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왜 토요일 날 이렇게 부산하게 움직여야 하는지 저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여창회 회장님의 유인하는 힘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를 만난 지는 오래지 않지만 그는 일단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언행이 일치할 뿐 아니라 무겁고 거친 세상일을 다 내려놓고 주님께 붙들려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한 때 조폭 두목 행세를 했던 적도 있는 사람이지만 주님 만나고 나서 그런 구석이라곤 조금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얼굴이 환하게 변했습니다. 사울이 바울로 변한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아니면 신학 체계의 뼈대를 세운 어거스틴의 회심에 비유할까요. 어쨌든 그는 코페르니쿠스적 삶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오늘날 보기 드문 사람입니다.
과거 때 묻은 시절을 반성하는 뜻에서 베푸는 그의 선행(善行)은 보이지 않게 조용히, 그러나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져 소리 소문 나진 않지만 이 사회의 훈훈한 온기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약자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전국에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그런 여 회장이 함께 하자는데 거절할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그는 자기를 희생해서 주위를 살려 주는 믿음의 사람이니까요. 조폭의 생리인 의리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김천역에 도착하니 위아래 옅은 파란색으로 된 개량 한복을 유니폼처럼 입은 일군(一群)의 사람들이 소리 높여 찬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김천 시내 몇 개 교회에서 모인 권사님들이라고 합니다. 악기도 없이 손뼉을 치며 찬송가와 CCM을 부르는 그분들의 모습에서 천사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면 좀 과장된 표현일까요. 그들은 순수하게 자비량으로 전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더운 여름 날씨에 어울리는 냉커피를 타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쌀 과자에 전도지를 붙여 일일이 전달합니다. 그들의 발과 손길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사진설명-김천 지역에 거주하는 몇몇 권사님들이 찬양하며 자비량으로 노방 전도를 하고 있다.
전도지에는 그 흔해 빠진 개 교회나 특정 선교회 등의 이름도 없습니다. 예수 영접하고 구원 받으라는 내용 끝에 댁에서 가까운 교회로 나가시라는 청유형 문장으로 끝을 맺고 있는 전도지가 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흐린 세상 물에 젖어 있는 탓일까요. 한 명이라도 더 자기 교회로 데리고 가려고 혈안이 되어 모든 전도 역량을 여기에 맞추고 있는 교회들에게 그들의 전도 법은 경종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저희 교회에서 준비한 전도지와 선물에 더해서 권사님들의 것들도 함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다녔습니다. 목사님이 함께 하시니 든든하다며 좋아들 하셨습니다.
사진설명-기타로 찬송가와 CCM 을 부르며 복음을 전하고 있는 여창회 캘리포니아 장학회 회장(오른쪽에서 세 번째)와 임은숙 사모님(오른쪽에서 네 번째), 왼쪽 두 사람은 우리 부부이고 오른쪽 두 사람은 전주에서 지원나온 서동훈 성경식 집사님.
그분들은 1시간 정도 찬양으로 복음을 전하다가 끝내고 짐을 싸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습니다. 이어 여창회 회장님과 대전 평안한교회 임은숙 사모님의 찬양이 이어졌습니다. 기타를 치며 부르는 그들의 찬양은 앞서 부른 권사님들 것과는 또 조금 다른 뉘앙스로 다가왔습니다. 그들이 젊은 나이가 아닌데도 좀 현대화한 찬양을 불렀다고나 할까요. 전도지와 선물을 나눠주다가 저도 그들과 함께 무대에 서서 함께 찬양을 했습니다. 아름다운 선율에는 음치도 묻어갈 수 있는 특혜가 있군요. 감사할 일입니다.
어제 노방전도에는 특별한 일꾼들이 합류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니까 가능하지 돈을 준다고 해도 이렇게 멀리까지 오겠어요? 전주 세계로중앙교회 성경식 집사님과 서동훈 집사님이 김천역 전도를 돕기 위해 멀리서 원정 온 것입니다. 이들은 평안한교회 임은숙 사모님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든든한 동역자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신실한 일꾼들이 있는 한 우리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이 두 집사님들은 햇볕 가림용 모자도 쓰지 않고 생소한 땅 김천에 와서 전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쌓여 의의 면류관으로 변화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진설명-노방 전도를 마친 우리는 김천의료원 앞 굴국밥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값은 성당에 나가는 조길수(요셉) 선생이 했다. 음식점 주인은 굴파전과 음료수를 서비스로 내 놓았다.
두 시간 여에 걸친 노방 전도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서 한 음식점을 찾았습니다. 저도 잘 아는 음식점입니다. 김천 의료원 근처에 있는 굴국밥집인데, 제가 가까이 지내는 집사님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모두 일곱 명이 그곳에 들어섰을 때,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를 만나고 싶어 일부러 온 분이라고 합니다. 통성명을 했습니다, 성당에 나가는 조길수 선생인데, 영세명은 요셉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이을 수 있는 이름 요셉, 우리는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바람을 갖고 영세명을 정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이웃 섬김에 대해 많은 대화를 한 뒤 다음 공연을 위해서 자리를 떠야 했습니다. 음식 값을 서로 내겠다고 승강이를 하다가 조길수 선생이 기쁘게 계산했습니다.
추풍령휴게소가 다음의 공연 장소입니다. 이번엔 캘리포니아장학회 장학금 모금 공연입니다. 가는 길 중간에 있는 저희 덕천교회에 들려 잠깐 수박을 들며 정담을 나누었습니다. 이들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게 왜일까요. 작은 농촌 교회의 어려움이며, 주님 안에서 교회가 공생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며, 타 종교와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를 서로 숨김없이 토로했습니다. 조립식으로 건축한 지 20년 가까이 되는 저희 교회 예배당 건축 문제도 대화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생각만 있지 재정이 따라주지 않은 농촌 교회의 현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나누었습니다.
사진설명-추풍령휴게소로 장학금 모금 공연을 가면서 우리 교회에 잠깐 들러 간식(수박)을 들며 담소를 나누었다. 교회 방문 기념으로 마당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것이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분이 점심을 공궤한 조길수(요셉) 선생.
추풍령은 추억의 고개입니다. 조선조 영남 지역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 시험 보러 갈 때 추풍령을 피해 다른 길로 갔다는 이야기는 하나의 전설처럼 귀에 남아 있습니다. 추풍령을 넘어 가는 족족 추풍낙엽처럼 시험에 떨어진다고 해서 다른 샛길을 애용했다는 것입니다. 고속도로가 뚫린 뒤 그런 추풍령에 상하 두개의 휴게소가 생겼습니다. 다른 여느 휴게소보다 이용객이 넘쳐 하루 현금 유통량이 많기로 소문 나 있는 곳입니다. 이런 데는 손님 중심의 운영 원칙이 한 몫 하고 있을 것입니다. 추풍령휴게소(하행)에 캘리포니아장학회가 고정된 무대를 마련해 매 주 금요일과 토요일 두 번 공연을 하며 장학금 모금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설명-추풍령휴게소(하행) 건물 중간 공간이 캘리포니아장학회 모금 공연 장소이다. 휴게소 대표의 배려로 좋은 무대를 마련했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끈기가 필요하고 지속성이 요구됩니다. 당장 결실이 없다고 하더라도 꾸준히 계속하면 하나님도 사람들도 외면하지 않는 법입니다. 임은숙 사모님과 여창회 회장님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이곳에서 동요, 유행가, CCM 등을 하루 일곱 시간을 부른다고 하니 그들의 수고가 얼마나 큰 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고사리 손으로 넣는 일천 원에서부터 만 원짜리 지폐까지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사랑과 정성이 큰 에너지로 화한다고 합니다. 이 성금들을 모아 공부는 하고 싶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한다고 하니 각박한 현실에 청량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잠깐 쉬는 시간에 여 회장이 어디론가 다녀오더니 우리 일행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이사님이 오시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훤칠한 키에 소박하게 보이면서도 어딘지 범접하기가 쉽지 않게 느껴지는 분이 나왔습니다. 캘리포니아장학회에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휴게소 이정수 이사님입니다. 그는 우리 일행에게 시원한 음료를 대접하고 싶다며 커피숍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사라면 휴게소를 대표하는 직함인데,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편안함이 묻어났습니다. 그는 남양주 큰빛교회를 섬기고 있다고 했습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근무하는 직장 탓에 교회 봉사를 하지 못하는 현실을 몹시 안타까워했습니다. 맞벌이 부부로 만나 가정을 꾸린 신혼부부처럼 그는 늘그막 에 주말 부부로 지낸다며 얼굴을 붉혔습니다. 아이스커피를 한 컵씩 받아들고 제가 이정수 이사님과 그의 가정 그리고 섬기는 교회와 사업장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진설명-추풍령휴게소 이정수 이사님(왼쪽 맨 앞엣분)이 귀한 손님들이 오셨다며 우리를 커피숍으로 데리고 가서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대접했다. 그의 수수한 모습에서 믿는 자의 진정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추한 탐욕주의자가 될 수도 있고, 한 없이 아름다운 선인(善人)도 될 수 있습니다. 이정수 이사님은 소외계층에 애정을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조용이 표 나지 않게 지속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돕는 그의 마음은 믿는 자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아가페 사랑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봉계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초대해서 한 달에 한 번 외식의 날을 갖는 것도 3년 째 지속하고 있는데 이 이사님의 아이디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요소요소에 거하면서 이런 따뜻한 일을 동시다발로 수행한다면 사회가 한결 건강하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제 하루는 딴 세상을 살다가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새로 만난 몇 분들도 십 년 이상의 지기(知己)들처럼 살갑게 느껴졌습니다. 주님 안에서 만나니 이런 일도 일어나더군요. '전도가 곧 설교'라는 정의가 옳다는 게 증명된 날이었습니다. 이런 날이 있으니 사는 의미가 있다고 한껏 감성을 부풀려 봅니다. 그래서 저는 어제 하루의 일들을 묶어 '만남, 뭉침, 확산 그리고…'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그리고'에 이어지는 단어는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내심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란 생각을 저는 하고 있습니다만.
첫댓글 인터넷신문 <뉴스앤조이> 2013. 7. 30. '전도가 곧 설교입니다'란 제목으로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