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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신추 추억마당 원문보기 글쓴이: 조 창덕
둘째날.
호텔에서 5분거리에 있는 하롱베이를 찾았다. 하롱은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라는 뜻으로 여기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내려 온다. 오랜 옛날 바다건너에 살던 침략자가 쳐들어왔는데 이곳에 살던 용이 분노하여 입에서 보석과 구슬을 내뿜자, 그 보석과 구슬들이 바다로 떨어지면서 갖가지 모양의 기암이 되어 침략자를 물리쳤다고 한다. 석회암의 구릉지대가 오랜 세월에 걸쳐 바닷물이나 비바람에 침식되어 생긴 3천여개나 되는 섬과, 기암이, 에메랄드 바다위로 솟아 있다. 날카롭게 깎아지른 바위, 절벽을 이루고 있는 작은 섬들, 환상적인 동굴이 태양 빛의 조화에 따라, 그 모습과 빛깔을 미묘하게 바꾸며 절경을 이룬다. 영화 인도 차이나 촬영지로 더욱 유명한 하롱베이는, 현재 세계유산 목록 가운데 자연공원으로 등재되었으며, 베트남 제1의 명승지로 알려져있다.
하롱베이를 관광하기 위한 선착장이다. 이곳엔 크고 작은 수백척의 배가 정박중이다. 주로 사진 속의 배를 이용하는데 식사를 겸하여 노래방 시설까지 편리하게 갖추어 있단다.
눈앞에 펼쳐진 하롱베이의 아름다운 모습``````, 그저 말없이 오래도록 바라 볼 뿐이다.
키스바위를 찾아서. 연인과 함께 이곳에서 키스를 하면 사랑이 이루어 진다고 하였다던가 뭐 그런~~
"에구,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렇게 아름다운 섬을 제주도인근에 턱하니 내려 놓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다면 저 놈을 보러 이 먼곳까지 찾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뿐아니라 저 많은 관광객들이 모두 제주도로 몰려온다면``````,"
그랬다. 함께한 일행의 푸념에서처럼 하롱베이는 말로서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간직하고있다. 그런 이유로 한해에 1백만이라는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세계유수의 항공사 촬영지로 사랑받았으며 대한항공 또한, 이곳을 배경으로 광고촬영을 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곳 역시 제주도처럼 삼무가 있다고 하는데, 첫째는 섬이 모두 깎아지를 듯한, 석회암으로 이루어졌기에 바다이면서도 갈매기가 살지않는다는 것. 두번째는 습도가 높아 비린내가 나지않는 다는 것, 세번째는 수많은 섬들이 방파제역활을 하는 바람에 파도가 치지않는다는 점이다. 그때문인지 일행을 태운배는 규모가 크지않음에도 흔들림이 적어 사진을 찍기에 더없이 좋았다. 또한 섬사이를 항해하는 중에 어린 아이를 태운 배들이 다가와 과일을 흥정하는 모습은 이채로우면서도 위험천만해보였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는 동안, 일행을 태운 배는 어느듯 횟감을 구하러 선상에 도착했다. 우리배에는 바닷고기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제주도 토백이분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물고기의 상태가 좋지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가이드역시 이점을 인정하며 뱃머리를 돌린다. 두번째 들린곳은 언뜻 보아도 규모가 상당히 커보였다. 제주도분들이 직접나서서 횟감을 고르는데 무척이나 싱싱해보었다. 오래지나지않아 중식을 겸하여 해산물과 횟감이 한상가득이 차려졌다.
브라보를 외치며 술잔이 오고가는가싶더니 대전에서 오신 여행객을 필두로 때아닌 노래자랑이 시작되었다. 서울사는 멋쟁이 아줌마 일행은 얼마나 가창력이 좋은지 앵콜송을 두 번이나 받았다. 인천에서 함께온 일행은 적지않은 나이임에도 동화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기도 하였다. 또한 멀리 광주에서 날아온 일행은 걸죽한 사투리로 맛갈나게 사회를 보아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아내는 이날따라 천상재회라는 곡목을 선택하였다. 마이크를 잡는 순간, 천년이 지난후에 다시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한다며 얼마나 열창을 하는지 노래가 끝났음에도 배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어이, 남편분 잠시 일어서봐."
나는 정적을 깨고 들려오는 사회자의 호통소리에 영문도 모른체 뻘줌히 일어서야 했다.
"당신들 혹시 불륜사이나 그런건 아니죠?" "아, 아닌데요." "그러면 혹시 살아오면서 아내한테 마음아프게 한적이 있는거 아녀?" "그, 그런적 없습니다." "에구, 노래를 들어보니 분명 말 못할 사연이 있구만. 지금 이자리서 솔직히 자수혀."
나는 지은 죄가 없음에도 일행의 추궁에 얼굴이 붉어지며 말까지 더듬거렸다. 일행은 이제 모든 잘못은 내게 있는 것처럼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라며 성화를부린다. 곁에서 웃고만 있던 아내가 더이상 놀리면 안돼겠다 싶었는지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다.
"에구, 누가 닭살부부 아니랄까봐``````,"
사회자의 한마디에 선상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아내와 나는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구미양반이라는 호칭을 대신하여 닭살부부라 불리워진다.
하롱베이 선상여행을 즐기다보면 열대과일을 가득 실은 배를 자주 만나게 된다. 어떤 때는 어린 아이들이 과일을 팔기위해 달리는 배위로 뛰어오른다. 그 아이들이 언제쯤 마음놓고 공부를 할 수 있을지 마음이 아팠다.
언젠가 방송에서 투구게를 보았다. 보호종으로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팔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
가이드가 알려준 다금바리 사촌, 그러나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대부분 이것이 진짜 다금바리로 알고 있다는데 그래도 제주도분들 덕분에 상당히 싱싱한 회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아내랑 함께 하롱베이를 기념삼아 ~~~
배는 어느듯, 하롱베이 최고의 절경이라 불리우는 티톱섬에 도착하였다. 선착장에는 작은 모래사장이 앙증맞은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섬의 높이는 대략 50m정도, 급경사로 이루어진 계단을 따라 정상을 오르니 작은 전망대가 우리를 반긴다. 섬의 지명이된 티톱은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이름으로 알려진다. 티톱은 2차 우주 비행에 성공한 사람으로 베트남의 영웅인 호치민이 소련에서 공부할때 절친한 사이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후에 호치민이 베트남의 대통령이 되어 티톱을 초대하는데, 이 섬을 둘러보고 풍경에 반한 티톱은 자신에게 줄수없냐고 졸랐다고 한다. 하지만, 호치민은 모래한알도 인민의 것이기에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이섬의 이름을 그대의 이름으로 바꾸어, 많은 사람들이 그대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것이 어떻냐고 제안하자, 티톱은 이를 흔괘히 받아들였다고 전해진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티톱섬을 끝으로 하롱베이의 일정을 모두 마쳤다. 호텔로 귀환하기 이전에 일정에 포함되어 있는 마시지샵을 찾았다. 이곳의 안마는 누워서 받는 것이 아니라 쇼파에 엎드려서 하는 것이 독특했다. 이유인즉, 누워서 받는 것은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에선 불법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적발시 엄한 처벌이 따른다고 하였다. 간편한 옷차림으로 맛사지를 받는 중에, 한국어로 코리안 최고를 외치던 베트남 아가씨의 모습이 인상깊었다.
티놉섬에 내려서~~이곳을 찾는 관광객중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다.
티톱 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 대한항공 촬영지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하롱베이를 떠나며 ~~~ 햇살이 보이면 더욱 좋았을텐데 셋째날.
짐을 챙겨들고 호텔을 나서는데 아침부터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문득, 베트남을 여행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햇살을 본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관광농원에 도착하였다. 한국의 인삼이라 불리울 정도로 효능이 뛰어나다는 노니재배지를 비롯하여, 사람 몸통만큼 커다랗고 1~2백년이나 자랐다는 자연산 상황버섯 판매장이다. 하지만, 사전에 강매를 않기로 약속 하였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관광을 즐길 수 있었다.
"여러분 중에 혹시 화산 이씨성을 가진 분 계십니까?"
하롱베이서 하노이까지 버스로 곧장 달려도 3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다. 하물며 패키지에 포함된 지역까지``````, 시간은 자꾸만 지체되었다. 그때마다 가이드는 여행중에 일어난 애피소드나 베트남 이야기를 들려주어 장시간 이동으로 지친 여행객을 달래주려 애쓰는 모습이다.
"베트남의 역사 자료에 의하면 11세기 초에 일어난 이왕조는 13세기 초 9대216년 만에 멸망하게 됩니다. 이때 이용상 왕자는 친족과 부하를 이끌고 정처없는 피난길에 올라 고려까지 흘러오게 됩니다. 지금의 황해도 웅진지역이구요. 이곳에 자리잡은 이용상은 당시 북방 오랑캐의 침입에 대비하여 주민과 함께 성을 쌓고 방어를 튼튼히 하였습니다. 1253년, 이용상 왕자는 때마침 고려를 침입하기 위해 물밑듯 쳐들어오는 오랑캐를 맞아, 5개월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여 적을 격퇴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일을 알게된 조정에서는 이용상의 공을 높이 평가하여 화산군에 봉작하였고 그는 이때부터 우리나라 최초로 화산이씨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1975년 당시 미군이 주둔하던 사이공을 함락함으로 완전한 통일을 이룬 베트남은, 1992년 적대국가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과 수교를 맺게 됩니다. 이때 정부를 대신하여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이 화신이씨라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전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은 베트남에서 경제대통령이라 불리울정도로 파워가 막강했으며, 한국을 알리는데 일조를 하였습니다. 대우에서 생산한 마티즈는 베트남에서 가장 인기있는 택시가되어 곳곳을 누비고 다닙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버스는 하노이에 도착했다. 그때까지 점식을 먹지못한 일행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배고파죽겠다며 아우성이다. 하지만, 버스는 매정하게도 혼잡한 도로에서 불법유턴을 일삼더니 급기야 고급음식점이 즐비한 시내를 벗어나, 우리나라 뒷골목쯤 되는 허름한 주택가에 차를 세웠다. 가이드의 설명인즉, 이집 만두국이 일품이라 일부러 찾아왔단다. 하지만, 내생각엔 오히려 하노이에서의 턱없이 비싼 음식값이 문제인것 같았다.
따듯한 만두국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일행은 정해진 코스에따라 하노이 시내를 일주하는 씨클로 관광에 나섰다. 요금은 1인 1달러. 자전거앞에 손수레가 달려있는 형태라 가만히 앉아 시내정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롱베이서 하노이로 귀한 중, 한국의 인삼처럼 귀한 대접을 받는 나노 재배농원을 찾아. 베트남을 여행하다 보면 의외로 국산차를 비롯하여 한국어를 많이 접할 수 있다.
씨클로를 타고 하노이 시내를 둘러보는 중에~~
베트남에서 남아있는 프랑스 2대 건축물 중 하나로 알려진 오페라 하우스
"코리안, 넘버원."
마르고 왜소한 체형의 자전거운전사가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나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으며 베트남 넘버원을 외쳤다. 그가 소매를 걷어보인다. 작은 십자가 문신이 눈에 들어온다. 자신은 기독교인이며 사무엘이라 불렀다. 이내 뒤따라오는 아내를 가르키며 한국어로 미인이라 칭찬하며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나도, 아내도, 그를 따라 한참을 웃었다. 그는 이후에도 프랑스성당을 비롯하여 삼성, 대우 건물이며, 이왕조의 동상까지, 어눌한 한국어를 비롯하여, 한 두마디의 영어와, 그도 안되면 만국 공용어인 손짓 발짓까지 섞어가며 설명한다. 그와 나는 어느새 언어가 통하지 않음에도, 나이가 몇인지, 몇명의 자녀를 두었는지 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여행으로서는 마지막 일정인 수상인형극을 관람하기 위해 버스는 이동을 계속한다. 어두워진 하노이거리는 퇴근시간에 맞추어 쏟아져 나온 오토바이의 행렬에 몸살을 앓는다. 베트남은 자동차를 위한 도로가 아닌, 오토바이를 위한 도로로 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수상 인형극은 1천년의 역사를 가진 베트남 전통공연으로 알려져있다. 물위에서 펼쳐지는 세계유일의 수상극으로 무대뒤 물속에서 대나무와 밧줄 등을 이용하여 인형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추수가 끝나고 농부들이 들판에 물을 채워 놀던 것에서 발전 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연을 관람하다보니 수상극에 참 뜻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늦은 시간에 저녁식사를 위해 들린 식당은 가이드의 자랑처럼 시설이 뛰어났다. 뷔페식으로 차려진 수십가지의 진귀한 요리가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 뿐만 아니라 중앙의 무대에서는 아오자이를 곱게 차려입은 어여뿐 베트남 소녀들이 전통악기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다. 어딘지 귀에 익어 가만히 들어보니 구창모가 불러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희나리다. 뿐인가. 연달아 부르는 노래들이 전부다 한국노래이다. 머나먼 이국땅 베트남에서 우리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도 기쁜일인줄 몰랐다. 한국의 힘, 한국의 경제력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베트남과 한국 가요를 불러주는데 얼마나 가창력이 좋은지. 호텔급식당이라 시설도 훌륭했으며 음식맛도 괜찮았다.
아래 사진속, 베트남 여행중에 많은 도움을 주신 현지 가이드인 서성수 부장님.
이로써 베트남에서의 3박 5일 여행일정은 무사히 끝마쳤다. 다만 한국에서의 폭설로 비행기가 자정을 넘은 시각에 베트남을 출발,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여행 후기를 읽어보면 가이드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계약에 없던 요구를 하는 바람에 가장 즐거워야 할 여행이 불편했다는 의견이 종종 올라오곤 한다. 모든 패키지여행이 그렇 듯,언어가 통하지 않는 낮선 곳의 여행엔 가이드의 역활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는 우리 일행은 이번 여행을 참으로 보람있게 보냈다. 가이드인 서성수 부장을 통하여 여행지인 베트남 뿐만 아니라 인접국인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까지 다음 여행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날이 자신의 생일이라 아내분이 멀리 태국에서 찾아왔음에도, 공항까지 따라와 자신의 일을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소요경비:여행사 2인 140만, 공항에서 2인 20만, 현지에서 가이드 팁 포함 패키지상품까지 36만, 김천서 인천까지 18만, 기타 16만 합계:230만 <참고:성수기인 학생들이 방학하는 때를 피하면 40만원 정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베트남 국민의 가슴속에 호치민 정신이 살아 있는한, 베트남의 미래는 영원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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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베트남 여행을 하는 것처럼 잘 소개하는 조작가님 덕에 즐거웠네요. 나도 갔으면 많은 사진을 촬영했을건데 언제 한번 가봐야 겠네요...
전 다음 여행지로 태국 파타야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12년 초쯤에요.
부럽기만 합니다. ㅎㅎㅎ
글도 잘 읽었지만 사진까지 곁들이니 마치 우리가 여행을 한 기분이 듭니다.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