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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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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해설 종 계 변 주 록(宗 系 辨 奏 錄)
문 무 추천 1 조회 371 12.07.15 00:25 댓글 1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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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7.15 01:12

    첫댓글 명나라에서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조선과의 외교에서 약점을 잡아둠으로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함이었지요. 그리고 만력제 때에 왜구들과의 싸움으로 국력이 쇠하여 할수없이 조선과 관계를 개선하려고 요구를 들어준 것이었지요.

  • 작성자 12.07.15 14:22

    역사공부를 하면서 늘 생각하는 것이, 지금 내가 구상하고 있는 내용이 당시의 사회상과 얼마나 근접하고 있을까입니다. 당시의 사상이나 사회상을 무시한 역사해설은 판타지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당시 사회를 좌지우지하던 사상을 빼고, 역사를 말할 순 없습니다. 봉건 왕조 시절의 백성은 양 날의 칼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고려 5백년 "왕"씨 왕조를 하루아침에 "이씨" 왕조로 바꿨다는 것은 "혁명적 사건"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민심을 얻으려 했다면, 전 왕조의 패륜적 행위를 부각시키고, 하늘이 "왕씨" 왕조를 버렸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이해시켜야만 했었을 것입니다. 또한 승자의 서술이란 점도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 작성자 12.07.15 14:30

    태조 이성계가 여진계 몽골인, 또는 몽골계 여진인, 몽골에 잠시 의탁했었던 고려인 등등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이 모두는 "조선"에 포함된 것입니다. 망국자는 하늘이 그를 버리는 것이고, 개국자는 하늘이 낸다는 것이 봉건왕조의 철학입니다. 태조 이성계를 비평할 수는 있으나, 비난이나 비방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당시의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 논평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어찌됐든 하늘의 선택으로(인간이 만든 사건이지만) 그는 조선을 개국했으며, 그 왕조는 오백년을 이었다는 것은 지구사에서 몇 안되는 왕조 중의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의 선대 국가였다는 것이 더더욱 중요합니다.

  • 12.07.15 22:49

    주관(主 觀)이나 선입감(先入感)은 버려야 한다ㆍ
    제가 문무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근현대사를 인식함에 있어 주관(主 觀)이나 선입감(先入感)은 버려야 한다.
    문무께선 과거가 보이시겠지만 저는 현재가 보입니다. 더 길게 이야기하면 또 종북으로 몰리겠지요. 종북을 하자는게아니라 지북을하자는거지요. 주적이라고 하면서 적을 알려고 하는데 막는다는건 그만큼 자신이 없다는 소리며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반증이겠지요. 조용히 눈팅만 할려다가 너무도 코믹해서 한 말씀 올렸 습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 12.07.16 00:09

    고뇌에 찬 세월을 세월을 한 글을 읽고 코믹이라고 몇 줄 써 내려간 글로 한 사람의 인생을 논하는건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연륜이 어지 되는지는 모르지만 결코 흠 잡힐 분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몇자 적습니다.
    화치님은 조금 더 카페를 보신 후에 슬을 쓰셔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 12.07.16 02:47

    문무님의 역사를 연구하는 자세나 결과물에 대해선 존경하고 많은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 현명하시고 논리적이신 분들이 대한민국의 현ㆍ대사에 대해선 메트릭스에 갖혀계신게 웃기다는것이지요. 대한민국이 미제식민지 입니까? 아닙니까?
    연륜을 말씀하셨는데 저는 연륜이 있으신분들을 모두 미제식민지 주구의 공범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후대에겐 모두 죄인이지요.감사합니다.

  • 12.07.16 05:14

    쿠빌라이인 고려 원종을 원나라와 고려라는 두 개의 나라로 나누어논 데칼코마니 기법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 기술의 고전적인 수법인 카피를 해서 그대로 옮겨다 붙이는 방법도 있지만, 하나의 인물과 하나의 나라를 둘로 쪼개 놓는 조작도 흔히 행해지는 수법입니다. 고려의 조정이 원(元)에 있다가 명(明)으로 바뀌어 온 것이지, 고려(朝鮮)이라는 나라 자체가 새로 세워지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왕건이라는 이름자체도 왕(王)이라는 성자체가 있었다기보다는 금(金=king)이라는 뜻의 다른 발음일 뿐입니다. 왕금(王金),왕건(王建),왕기옌,완완, 모두가 고려의 왕(king=金)이 있는 피라미드를 나타낸 말일 것입니다.

  • 12.07.16 05:25

    왕들을 왕(王)씨나 김(金)씨가 계속 헤쳐먹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왕의 일반적인 호칭이 왕건,왕금,왕기옌,완완부였다는 거지요. 왕이 사는 궐에서 행헤지는 정치 자체가 왕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려의 실질적인 왕을 지낸 성씨는 조씨일 것입니다. 사림인 조광조가 누명을 쓰고 죽은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 죽은 땅도 대륙의 개봉부 인근이겠고요.

    이성계가 개봉부(카이펑)에 있던 원(元)을 북원으로 쫒아내고, 한양(장안)에 천도하여 명(明)고려라 이름 지웠다가, 왕자의 난으로 함길도 함흥(사마르칸트)으로 간 것이 티무르 제국과 대명(大明)인 동.서 고려로 나뉜 것으로 보입니다.

  • 12.07.17 14:14

    역성 혁명이니 뭐니 할 것도 없이, 고려는 원래가 군벌들이 정치를 했는데, 처음에 조씨들이 전횡을 하다가, 정씨나 윤씨,최씨,길씨(쿠빌라이 계열)로 집권층이 바뀌다가 오이라트 출신의 이씨 군벌이 집권한 것인 것 뿐입니다.
    얼어죽을 역성혁명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쫑궈에 그 많은 왕씨가 왕족인 왕건의 후손 같습니까? 비단장수 왕서방은 고려인이 아니라 라(羅)땅인 인도나 동남아 계통입니다.

    앵무새처럼 조선사 편수회의 소설을 복명복창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입니다. 이성계가 군벌이 된 것은 왜구를 토벌하러 사방을 휘젓고 다니었기 때문입니다. 고려를 멸하려는 잔나비 유태인인 왜구들을 상대한 것이죠.

  • 12.07.16 05:45

    티무르 제국의 서방,남방 원정이 모두 왜구토벌이며, 동명(東明)에서도 장강이남의 왜구들을 처단하려고 발진한 것이 훗날의 정화의 함대일 것입니다. 왜구들이 바다건너 인도네시아와 호주, 인도와 아프리카까지 튀자 뿌리를 뽑으로 끝까지 쫓아간 것이죠.쫑궈에서는 정화를 페르시아의 이슬람교도인 마씨라고 구라를 칩니다. 고려의 영역이 동서 아시아에 뻗어있어, 페르시아와 장강을 모두 통치하고 있었지만, 정씨가 마씨가 되는 것은 고려인을 대머리 유태인이라고 속이는 행위입니다. 이성계를 유태인이라고 의심하는 스탈린과 왜구들의 날조 선전을 퍼트리는 유태인의 압잡이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약한 가야인들일...

  • 12.07.16 12:42

    이안사는 다루가치가 되면서 이씨 집안은 고려가 원에 굴복하는데 어떤방식이든 보탭이 되었을 것이고 이자춘이 고려에 귀하하면서 이성계는 고려를 업어버린다. 고려의 망신창은 이씨 집안을 어떻게 보아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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