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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 벽화로 배우는 부처님의 지혜 >
제3회/팔상성도:제5설산수도상~제8쌍림열반상
* 본 회에서는 『팔상성도로 본 부처님 일대기』는 분량이 많은 관계로 2회차에 나누어 게재하겠습니다. 이번에는 5 ~ 8( 설산수도상 ~ 쌍림열반상 )까지 올립니다.
5. 설산수도상 雪山修道相
싯다르타의 소식은 이내 왕궁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정반왕은 아들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신하들로 하여금 싯다르타를 뒤쫓게 하였습니다. 맨발의 싯다르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배고픔을 이겨내며 꾸시나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싯다르타는 그를 뒤쫓던 부왕의 신하들에게 따라 잡히고 말았습니다.
"태자님, 이게 무슨 고생이십니까. 저희랑 같이 궁으로 돌아가세요. 태자님은 천하를 다스릴 왕이 되실 분입니다."
"나의 수행은 세상의 권세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자께서 진리를 구하려는 마음은 익히 저희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가 반드시 깊은 숲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가?"
"저는 천상에 태어나고자 공덕을 쌓는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상에 태어나는 것도 결국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고 죽는 고통에서 자유로운 길을 찾아 집을 나선 것 입니다. 부왕의 뜻을 어기며, 사랑하는 가족을 버리고 출가한 것은 진정으로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최상의 진리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결국 어떠한 설득으로도 싯다르타의 굳은 결심을 꺾을 수 없었던 신하들은 그냥 왕궁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신하들 가운데 싯다르타 혼자만 보낼 수 없었던 교진여(憍陳如, 꼰단냐 Kondanna)등 다섯 명이 싯다르타와 함께 수행하기로 하고 그의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
싯다르타가 처음 만난 스승은 박가바Bhaggava라고 불리는 선인이었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물과 불, 해와 달등 여러 정령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나뭇가지나 풀만 먹는 사람, 쇠똥만 먹는 사람, 나체로 다니는 사람, 가시덤불 위에 누워있는 사람, 머리카락을 뽑는 사람등 다양한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행자였습니다.
"참으로 흉내 내기도 힘든 수행을 하고 있군요. 이런 고행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육체는 속박의 그릇입니다. 육체를 학대하고 괴롭혀 고통에서 자유롭게 된다면, 그 보상으로 우리는 천상에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오로지 천상에 태어나고자 수행하는 것은 참된 수행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그저 고통의 연속일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싯다르타가 찾아 간 사람은 베살리Vesali 근처에 있는 알라라깔라마Alarakalama라는 선인이었습니다. 그 역시 사람들에게 명성이 자자했던 존경받는 수행자였습니다.
"고따마여. 생사의 근본을 끊고자 한다면, 먼저 계행을 지키고 인욕하면서 선정을 닦아야 합니다." 싯다르타는 알라라깔라마에게 선정으로 삼매에 드는 법을 배웠고, 스승과 같은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을 터득하였습니다. 그는 싯다르타의 경지에 탄복하며, 자신과 동등한 스승으로 대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싯다르타는 이제 스승의 경기를 뛰어넘어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무소유처정'은 육체에 일어나는 모든 욕망과 속박을 벗어난 경지이고, '비상비비상처정'은 몸과 함께 마음마저 일체의 욕심과 번뇌가 완전히 사라진 경지입니다.
구인사 대조사전大祖師殿 대한불교 천태종을 중창하신 상월원각 대조사上月圓覺大祖師를 모신 佛殿이다
비로소 싯다르타는 몸과 마음의 모든 번뇌에서 자유로운 경지에 다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요히 앉아 선정에 들어 있는 순간만의 해탈일 뿐, 참선에서 깨어난 후 실제로 생사의 근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수행은 완전한 가르침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싯다르타는 다시 스승을 찾아 마가다국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마가다국을 이끄는 빔비사라왕은 수행자들에게 상당히 우호적인 분이었습니다. 때문에 마가다국에는 수 많은 수행자와 사상가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산자야San̄jaya, 니간타 나따뿟따 Nigantha nataputta, 웃다까라마뿟다Uddaka ramaputta등 그곳에는 대중들에게 존경받는 스승들이 즐비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가르침도 대부분 고행을 닦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서도 수행을 배웠고 또한 머지않아 여러 스승들의 가르침을 모두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뛰어난 선인들을 모두 만나 보았으나, 어떠한 가르침에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다. 이제 세상의 어떠한 스승에게서도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나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스승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싯다르타는 올바른 고행을 통해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고행자들이 머무는 우루벨라Uruvela의 숲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싯다르타는 극도의 고행으로 거의 죽음의 문턱에 이를 만큼 힘든 수행을 이어갔습니다. 수행을 함께 하던 다섯 수행자들도 이런 싯다르타의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결기에 큰 용기를 받아 더욱 열심히 정진하였습니다.
싯다르타는 음식을 아주 조금씩만 먹어 뼈만 앙상하게 남았습니다. 하루을 대추 한 알로도 보냈으며, 하루에 한 끼, 사흘에 한 끼, 이윽고 보름에 한 끼를 먹었습니다. 또 숨이 귀와 피부를 뚫고 나올 만큼 호흡을 참기도 했습니다. 마음을 한 곳에 모아 호흡을 참자, 몸에 열이 가득차고, 귀에서는 대장간의 풀무소리처럼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황혼이 밀려오며 춥고 어두운 밤이 되어도 그 곳을 떠나지 않고, 먹고 자는 것도 잊는 고행으로 6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행을 통해서도 깨달음은 이룰 수 없었습니다.
'육신을 괴롭혀 마음의 욕망을 끊고자 하는 것은 진리를 깨닫기 위한 참된 해결책이 아니구나. 해탈은 켜녕 진리의 실마리조차 얻지 못했다. 깨달음을 위한 다른 길이 있음이 분명하다.' 극심한 고행은 그에 상응하는 더 큰 고통만을 남길 뿐이었습니다. 그 순간 예전 농경제에서 처음으로 선정에 들었을 때의 경험이 떠 올랐습니다.
'그 나무아래에서 나는 애욕과 선하지 못한 것들을 떠나 깊은 사색에 잠겼었다. 바르고 차분하게 사유하며 애욕을 떠났을 때, 고요함과 기쁨이 나를 찾아왔다. 그 당시의 즐거움은 지금까지 수행하며 얻은 그 무엇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싯다르타는 바른 육신에 바른 정신이 깃든다고 생각하고, 몸을 추스르기로 하였습니다. 마침 우루벨라 마을의 어느 장자의 딸인 수자따Sujātā 라는 여인이 우유죽을 들고 가다가 싯다르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수행자에게 공양 올려 복을 쌓겠다는 생각으로 싯다르타에게 우유죽을 바쳤습니다. 싯다르타는 네란자라(neranjara, 尼連禪河니련선하) 강변에 앉아 수자따가 바친 우유죽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러자 이 모습을 지켜 본 다섯 수행자는 싯다르타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행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더니, 최고의 지혜를 얻기는 커녕 결국 고따마는 미치고 말았구나. 이제 여인이 주는 음식이나 받아먹고, 그는 고행을 버렸다. 그는 타락했다. 더 이상 그의 곁을 머물 필요가 없다." 그들은 싯다르타를 손가락질하며 북쪽으로 떠나 버렸습니다. 수자따의 우유죽으로 기운을 차린 싯다르타는 네라자라 강에 온 몸을 깨끗이 씻으며 심신을 정갈히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수행할 자리를 찾아 다시 숲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삡팔라(Pipphala, 보리수) 나무가 큰 그늘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앉을 자리를 찾던 중 마침 길 한쪽에서 풀을 베는 사내를 만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소띠야(Sotthiya, 吉祥 길상)라고 했습니다.
싯다르타는 그 사내로 부터 여덟 다발의 향기로운 풀[길상 초]을 얻어 삡팔라 나무 아래 바르게 펴고는, 동쪽을 바라보며 앉았습니다.
"설령 뼈와 살이 없어지고, 내 몸이 말라버려도 좋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이 자리에서 죽어도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싯다르타는 이렇게 굳은 맹세를 하며 선정에 들었습니다.
* 참고: 불교의 세계관 우주론: 삼계三界(Trayo-dhātavah)
불교의 세계관에서 중생이 생사유전(生死流轉)한다는 3단계의 미망(迷妄)의 세계를 말하며 여기에는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세 가지이다. 욕계는 맨 아래에 있으며 오관(五官)의 욕망이 존재하는 세계로 지옥·아귀(餓鬼)·축생(畜生)·아수라(阿修羅)·인간(人間) 등 5가지와 사왕천(四王天)·도리천·야마천(夜摩天)·도솔천(兜率天)·화락천(化樂天)·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등 육욕천(六欲天)이 여기에 속한다. 여기에서는 보시(布施)·지계(持戒) 등을 욕계의 선(禪)이라고 한다.
색계는 욕계 위에 있으며 색계사선(色界四禪:初禪·二禪·三禪·四禪)이 행해지는 세계로, 여기에는 물질적인 것(色)은 있어도 감관의 욕망을 떠난 청정(淸淨)의 세계이다.
무색계는 물질적인 것도 없어진 순수한 정신만의 세계인데, 무념 무상의 정(定:三昧)으로서 사무색정(四無色定:空無邊處定·識無邊處定·無所有處定·非想非非想處定)을 닦은 자가 태어나는 곳이다. 무색계는 색계 위에 있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방처(方處), 즉 공간의 개념을 초월한 것이다.
삼계는 세간(世間)이라고도 하는, 중생이 육도(六道)에 생사유전하는 범부계(凡夫界)를 말한다. 이에 반해 출세간(出世間)은 생사 윤회(輪廻)를 초월한 성자(聖子)의 무루계(無漏界)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삼계와 출세간이 구별되었지만, 대승불교에서는 무루계도 삼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고 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 삼계[三界]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불교의 우주관 三界
6. 수하항마상 樹下降魔相
삡팔라 나무 아래에서 깊은 선정에 들었을 때, 수행을 방해하려고 마왕 파순魔王 波旬이 다가 와 속삭였습니다.
"그렇게 바싹 마른 몸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니, 곧 죽을 때가 다 되었습니다. 당신이 죽지 않고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그만 두십시오. 손쉬운 방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방법을 알려드릴까요?"
수행자의 마음을 흩트려 나약하게 만들기 위해, 파순은 온갖 감언이설을 속삭이며 싯다르타를 현혹하는 말들을 끊임없이 내 놓았습니다.
"마왕이며, 당신은 헛된 일에 애쓰고 있습니다. 나의 결심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당신 앞에 무릎 꿇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마왕은 이대로는 싯다르타를 굴복시킬 수 없겠다고 생각하고서, 자신의 세 딸들에게 수행자를 유혹하도록 시켰습니다.
"저 삡팔라 나무 아래 한 수행자가 선정에 들어있다. 그의 신념과 정진, 그리고 지혜라면 반드시 최고의 깨달음을 성취할 것만 같구나. 만약 그가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게 된다면, 우리 마군들은 온전하기가 어렵겠구나."
"아버지, 저희에게 맡기세요. 저희 땅하(Tanha, 渴愛 갈애), 아라띠(Arati, 嫌惡 혐오), 라가(Raga, 貪欲 탐욕) 세 자매라면 그깟 수행자 한 명 타락시키지 못하겠어요?"
마왕의 딸들은 가무를 펼치고, 온갖 애교와 아양으로 수행자를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싯다르타의 마음은 마치 수미산과 같았습니다. 조금의 요동조차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왕의 딸들에게 거울을 보라고 했습니다. 거울 속에는 세 딸의 빼어난 외모는 사라지고, 백발에 이가 다 빠지고 앞도 잘 보지 못해 지팡이에 겨우 의지해 서 있는 노파의 모습이 비추었습니다. 그녀들은 통곡하며 마왕의 궁으로 돌아갔습니다.
분노가 극에 달한 파순은 무력으로 싯다르타를 굴복시키려 결심했습니다. 파순은 온갖 독사, 불을 뿜는 괴물등 무서운 악귀들과 칼과 창으로 무장한 강한 마군을 이끌고 다시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거센 비바람과 큰 불을 일으키는 등 여러 술수를 부려 수행자를 겁박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어떤 적의도 품지 않고 오히려 큰 자비심을 내었습니다. 그러자 마왕의 부하들이 싯다르타를 공격하려는 어떠한 행동도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거센 바람은 싯다르타의 옷자락도 흔들지 못했고, 폭풍우로도 물방울 하나 적시지 못했습니다. 화살을 퍼부어도 모두 꽃송이로 변해 버렸고, 칼과 창은 모두 꽃잎이 되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싯다르타가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자, 대지가 사방으로 크게 진동하더니 연꽃을 담은 화병을 들고 땅의 신[地神지신]이 솟아 올랐습니다.
당황하는 마군들 앞에 싯다르타는 지신이 갖고 있던 물병을 세워 놓고, 만약 물병을 움직일 수 있다면, 마왕의 뜻에 따라 수행을 포기하겠다고 했습니다. 대신 물병을 움직이지 못하면 즉시 물러가 더 이상 수행을 방해하지 말라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깟 물병 하나쯤이야 생각한 마군들이 서로 달려들어 움직이려 해 보았지만 물병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마군들이 모조리 합심하여 밧줄을 걸고 일제히 물병을 잡아 당겼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물병은 요동조차 없었습니다.
"마왕 파순이여, 그대의 군대는 욕망이며, 두 번째 군대는 혐오며, 세 번째 군대는 기갈이며, 네 번째 군대는 집착이다. 다섯 번째 군대는 나태이며, 여섯 번째 군대는 공포며, 일곱 번째 군대는 의혹이며, 여덟 번째 군대는 위선과 고집이다. 그대가 가진 무기라고는 그저 남을 경멸하는 오만함뿐이구나.
악마여, 사람들과 저 신들마저도 그대의 군대를 격파할 수 없지만, 나는 지혜의 힘으로 그대의 군대를 쳐부수리라."
그러자 지신이 말했습니다.
"가장 큰 대장부시여! 우리들이 당신을 증명하며, 당신의 굳은 결심을 지켜 주겠습니다. 당신은 인간세계는 물론 천상에서도 가장 높으신 분입니다. 오랜 세월 목숨을 다해 중생들을 보호하셨으니, 이제 그 과보로 가장 높고 가장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왕 파순, 네 이놈. 너는 이 수행자의 털끝하나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지신이 증명을 하자, 다시 한 번 삼천대천세계의 국토가 크게 진동하였습니다.
"우리는 칠 년 동안이나 그를 따라 다니며 수행을 방해하였다. 그러나 언제나 단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고, 수행하는 그에게 뛰어들 틈이 없었다. 우리는 이제 지쳤으니, 저 싯다르타에게서 떠나야겠다.'
싯다르타는 이렇게 깊은 수행과 굳센 의지로 마군의 군대와 싸워 이겼습니다. 이제 수행의 장애가 온전히 사라졌으니 깨달음을 향해 더욱 가까이 다가선 것입니다.
나무 아래 고요히 선정에 든 싯다르타는 곧 선정의 네 번째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삶의 모든 고통과 즐거움에는 다 원인이 있으니, 과거의 삶이 어떠했는지 살펴보시는 선정 속에서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숙명통宿命通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삶에는 또한 결과가 있으니, 중생들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깊은 선정 가운데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중생계의 나고 죽는 모습을 낱낱이 알게 되는 천안통天眼通을 터득하였습니다. 이로써 고통스러운 생사의 굴레를 끝없이 윤회하는 것은 번뇌임을 알아차리고, 번뇌의 생성과 소멸하는 과정을 바르게 알아차린 연기법緣起法을 깨우쳤습니다. 그렇게 모든 번민과 고통은 사라졌습니다. 그에게 더 이상 번뇌는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모든 번뇌와 망상이 완전히 끊어져 모든 것을 다 알게 되는 누진통漏盡通을 얻었습니다. 선정에서 눈을 뜨니 동녁 하늘에 샛별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無上正等正覺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하였다."
수행자 싯다르타는 이제 부처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가 앉아 수행했던 삡팔라 나무를 '보리(菩提Bodhi, 즉 깨달음을 얻게 한 나무)'라 하여 보리수菩提樹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석가족釋迦族의 성자라는 뜻으로 석가모니(釋迦牟尼, 사까무니 Sakyamuni) 부처님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7. 녹원전법상 鹿苑轉法相
보리수 아래, 정각을 이룬 부처님은 그 곳에서 49일간 진리의 기쁨을 맛보았지만, 마지막 순간 잠시 주저하고 계셨습니다. 과연 누가 이 진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던 것입니다. '어렵게 도달한 이 법은 완벽하며, 최고의 진리이다. 그러나 이 진리는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가 어렵다. 오직 지혜를 갖춘 이라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중생의 근기가 낮으니 과연 누가 알아차릴 수 있을까.'
세상에 진리를 알려준다 한 들, 잘못된 견해에 사로잡혀 있는 중생들은 오히려 진리의 세계를 이해하기는 커녕 나아가 부처님의 법을 비방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 때 하늘의 범천이 부처님 앞으로 나서서 인연있는 중생마저 저버리지 말아달라고 간청을 드렸습니다.
범천이 간곡하게 부탁을 올리자, 자비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한 번 살펴 보셨습니다. 그리고 중생의 근기가 각기 다르니 마치 더러운 연못에서도 연꽃이 피어나듯, 분명 진리을 이해하는 이가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중생을 위해 가르침을 펴기로 결심을 하셨습니다.
'연못에는 여러 종류의 연꽃이 있어 아직 물 속에 잠겨 있는 것도 있고 간신히 수면에 고개를 내 놓고 있는 것도 있다. 또 어떤 것은 수면으로 부터 훨씬 올라와 꽃을 피웠으니, 진흙탕 속에 살면서도 더러움에 불들지 않는구나.'
우선 부처님은 진리를 알아 들을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거 함께 수행했던 다섯 명의 수행자가 떠 올라 천안으로 살펴보니, 그들은 바라나시Varanasi에 있는 '선인들이 머무는 사슴동산, 녹야원(migadāya, 鹿野苑)'에서 여전히 수행 중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이들을 찾아 녹야원으로 떠났습니다.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바라나시의 녹야원으로 가는 여정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밤낮을 쉬지 않고 걸어도 족히 20여 일은 걸리는 먼 거리입니다. 그 길은 인도의 뜨거운 태양 아래, 가뜩이나 수행으로 쇠약해진 몸으로, 오로지 제자를 찾아 맨 발로 떠나신 고단하고 긴 여정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고따마가 부처님이 되셨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다섯 수행자는 고따마가 자신들을 향해 오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저기 타락한 수행자 고따마가 오고 있다."
"그는 고행을 버리고 여인에게 맛있는 음식이나 받아 먹었다. 그런 자에게 우리가 뭘 기대하겠는가?"
"고따마가 다가와도 우린 그냥 본척 만척 하세나."
다섯 수행자는 서로 그렇게 합의를 보았는데, 멀리서 부터 다가오는 부처님을 가만히 보니 이미 예전에 그들이 알고 있던 고따마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부처님을 바라봤을 때, 온화한 얼굴과 몸에서 뿜어 나오는 광채에 도무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한 명은 부처님의 발우을 받아 들고, 한 명은 부처님께서 앉으실 자리를 준비했고, 또 다른 이는 발 씻는 물을 떠 왔습니다.
"고따마여, 어서 오십시오. 먼 긴을 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자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그대들은 여래如來를 고따마라 부리지 말라. 완전히 깨달은 부처님을 예전의 벗처럼 대해서도 안 된다."
그들은 보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나는 너희 생각처럼 타락한 적도 없었고,선정을 잃어버린 적도 없다. 나는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었으며, 죽지 않고 영원히 변함없는 진리를 성취했노라."
그리고 그들에게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드디어 세상을 향해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수행자들이여, 두 가지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가 있다. 그것은 눈을 밝게 하고, 지혜를 증장시키며, 번뇌를 떠나 고요함에 머물게 한다. 신통을 이루며, 평등한 깨달음을 얻어 미묘한 열반에 이르게 한다. 수행자들이여, 중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지혜롭고 성스러운 팔정도八正道가 그것이다."
이어서 사성제 四聖諦, 연기법緣起法등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몇 날 몇 밤에 걸쳐 말씀해 주셨습니다. 부처님의 법을 듣고 맨 처음으로 깨닫는 이는 교진여였습니다.
"교진여는 깨달았다. 교진여는 깨달았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세존께 출가하여 계를 받고자 하나이다."
"오라. 비구여!"
이렇게 하여 다섯 수행자가 최초로 비구스님이 되었고, 모두 아라한阿羅漢의 경지를 성취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시고, 오비구五比丘가 법을 들어 깨달음을 이룬 것이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입니다.
녹원은 '녹야원鹿野苑'의 준말이며, 법을 전했다는 의미에서 전법轉法입니다. 법을 전하는 것이 마치 어딘가을 갈 때 수레바퀴 달린 마차를 타고 이동하듯,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 진리를 보게 되므로, 이것을 '진리의 수레바퀴 [法輪법륜]를 굴린다'고 말합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은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려 수 많은 중생을 교화하셨고, 다섯 비구에서 시작한 교단은 셀 수 없을 만큼 출가자와 재가자들이 귀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도 전역을 넘어 전 세계로 전파되었으며, 이제 부처님은 모든 중생의 가장 큰 스승으로 섬겨지게 되었습니다.
8. 쌍림열반상 雙林涅槃相
보리수 아래,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시고 어언 45년이 지났습니다. 부처님의 연세도 여든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열반에 들 날도 멀지 않았구나. 나의 가르침 가운데 의심스러운 부분이 남아있는 사람은 미루지 말고 물어라."
갑작스런 말씀에 대중들 사이에는 고요한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새하얀 연꽃을 대중들에게 말없이 들어 보였습니다. 제자들은 어리둥절하며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무슨 연유인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때 여러 제자 가운데 오직 한 사람, 가섭(迦葉, 마하깟사빠 산스크리트어: Mahākāśyapa)존자만이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법을 가섭에게 부촉하니, 그대는 잘 보호하며 널리 전하여 끊어지지 않도록 하라."
"아난아, 발우와 가사를 들어라. 베살리로 갈 것이다."
부처님은 늙으신 몸을 이끌고 왕사성의 영축산을 뒤로 하고 북쪽으로 길을 정해 강가 강을 건너 밧지족의 수도 베살리에 이르렀습니다. 그해 베살리에는 심한 기근이 찾아 왔었습니다. 때문에 많은 비구들이 한꺼번에 탁발을 다니기가 어려웠습니다.
"비구들이여! 베살리 근처에서 흩어져 지내도록 하라. 뜻이 맞는 가까운 사람들끼리 어울려 이 우기를 이겨내라. 나는 벨루와Beluva마을에 머물며 안거할 것이다."
비구들을 떠나 보낸 뒤 부처님께서는 무더위로 몸이 허약해져 심한 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병의 고통을 정진의 힘으로 견뎌냈습니다. 어느 날 병세가 조금 회복되자 거처에서 나오신 부처님은 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를 펴고 쉬고 계셨습니다. 아난은 이런 부처님의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로워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부처님의 병환을 지켜보면서 두려움에 앞이 캄캄했습니다. 앞으로 저희들이 어떻게 해야 된다는 말씀도 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걱정했습니다."
"어난아, 나는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진리를 다 가르쳤다. 진리를 가르치는 일에 인색해 본 적도 없다. 아난아, 내 나이 여든이다. 이제 내 삶도 다하고 있구나."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계시지 않으면 저희는 누구를 믿고, 무엇에 의지해야 합니까?"
"아난아, 너 자신을 등불로 삼고, 너 자신에게 의지하여라. 법을 등불로 삼고, 법에 의지하여라. 법을 떠나 다른 것에 매달리지 말라."
그리고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베살라에 흩어져 있는 제자들을 불러 한 곳에 모이도록 하여라."
며칠 후 흩어져 있던 제자들이 다시 부처님 계신 곳으로 모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음을 닦는 네 가지 수행법인 사념처四念處, 수행에 필요한 다섯 가지 힘인 오력五力,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필요한 일곱가지 분별법인 칠각지七覺支 그리고 깨달음을 향하는 여덟 가지 바른 방법인 팔정도八正道등 '37조도품'이라고 불리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방법을 하나 하나 상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여래의 가르침을 잘 기억하고 잘 헤아리고 잘 분별하여, 그에 맞게 부지런히 수행해야 한다. 세상은 덧없고 무상한 것이다. 나도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대들 스스로 잘 닦아 나아가도록 하라."
제자들은 땅에 쓰러져 통곡하며 울부짖었고, 하늘과 땅이 뒤집힐 듯 대지가 진동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입멸할 때가 가까워온 것입니다. 부처님은 베살리를 떠나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장장이 춘다Cunda의 땅에 도착했습니다. 춘다는 부처님 일행을 초대하여 공양을 올렸습니다. 특별히 전단나무에서 나는 귀한 버섯으로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부처님은 그 음식을 보시고, "이 버섯요리는 다른 비구들에게 주지 말고, 나머지는 모두 땅에 묻어 버리세요."라고 하셨습니다. 버섯요리가 상한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춘다의 성의를 생각하여 받으신 공양은 혼자 다 드셨습니다. 그리고는 춘다에게 법문을 설해 주셨습니다.
공양과 설법을 마치고 부처님은 춘다의 집을 나섰지만, 몇 걸음을 채 옮기기도 전에 심한 복통이 찾아왔습니다. 고통을 참으며 길을 재촉했지만, 마을을 벗어난 곳에서 자리를 깔고 누우셔야 했습니다.
"아난아, 등이 아프구나. 잠시 쉬어가자."
부처님께서는 행여 이 일로 자책하고 있을 춘다을 염려하여, 아난을 돌려보내 이렇게 말을 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춘다여,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셨을 때 최초로 올린 공양과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 마지막으로 올린 공양은 그 공덕이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대는 여래에게 마지막으로 공양을 올렸기에 큰 이익을 얻어, 수명이 늘어나고 건강할 것입니다. 그리고 명예와 재물이 늘어나고, 죽어서는 하늘에 태어날 것입니다."
춘다에게 보냈던 아난이 돌아오자, 잠시 휴식을 취하시던 부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꾸시나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무렵 말라족의 땅사라나무 숲에 당도하였습니다. 사라나무 숲에는 때 아닌 꽃들이 만발하였고, 여러 꽃들의 향기가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아난아, 저 두 그루 사라나무 사이에 자리를 펴다오."
부처님은 북쪽으로 머리를 두신 채 오른 쪽 옆구리를 바닥에 붙이고 두 발을 포개어 누우셨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삼매에 드셨습니다. 두 그루의 사라나무에서는 어느 순간 꽃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찌 이 궁핍하고 황량한 벌판에서 열반에 드시려 하십니까? 멸도하시더라도 왕사성이나 베살리 같이 큰 도시에서, 부처님을 기다리는 수 많은 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시옵소서."
"아난아, 이 곳을 작고 궁핍한 숲이라고 말하지 말라. 비록 미천한 집일지라도 법의 왕이 한 번 머물면 또한 영광스럽지 아니하겠느냐?"
"...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다면 장례는 어떻게 치러야 합니까?"
"너희 비구들은 걱정하지 말라. 나의 장례는 재가불자 우바새와 우바이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아난아, 말라족에게 가서 전하라. 오늘 밤 여래가 사라나무 숲에서 열반에 들것이라고."
아난존자는 흐느끼며 마을로 갔습니다.
"여래께서 열반에 들려 하시며, 여러분이 부처님을 뵙는 것도 오늘 밤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이고, 부처님 ... 흑흑흑"
"부처님은 무엇이 그리 급하시어 벌써 멸도에 드시는 것입니까 ..."
말라족 사람들은 커다란 슬픔에 피를 토하며 통곡하였습니다.
"여러분, 슬퍼하지 마십시오. 생겨 난 모든 것은 사라지는 법이라고 부처님께서 늘 말씀해 주셨습니다. 인연을 얽매여 붙잡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만나면 헤어지고, 태어나면 받드시 죽는다고 늘 말씀하셨던 것을 잊으셨습니까?"
그렇지만,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아난도 울음을 참을 수는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누워계신 처소에는 수 많은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그날 밤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가 된 수밧다가 가르침과 구족계를 받아 지녔습니다. 그리고 수밧다가 물러가자, 부처님께서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잠시 후 힘겹게 눈을 뜨시더니 아난을 찾았습니다.
"아난아, 눈물을 거두어라. 오랫동안 너는 나를 위해 애써왔다. 이 세상 누구도 너처럼 여래를 잘 섬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라. 머지않아 너도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침묵을 이어가던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는, 내가 가르친 법과 율이 너희를 보호하리라. 오늘부터 소소한 계율은 버려도 좋다. 서로가 화합하여 예의와 법도를 잘 따르도록 하라. 비구들아, 모든 것은 변하고 무너진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나는 게으름 없이 열심히 수행했으므로 바른 깨달음을 얻었느니라."
부처님께서는 마지막 유훈을 남긴 후, 선정에 든 채 열반에 드셨습니다. 대지가 크게 진동하고, 깜깜한 어둠이 대낮처럼 밝아왔습니다.
날이 밝아오자 소식을 듣고 사라나무 숲으로 달려온 사람들은 하루 종일 향과 꽃을 바치고, 흰 천으로 몇 겹의 천막을 만들면서 분주히 그 날을 보냈습니다. 이튿날 '부처님의 유해를 오늘 바로 장례를 치르는 것은 때에 맞지 않다. 하루만 더 준비를 하자'며 전날과 마찬가지로 음악과 춤, 꽃, 향등을 바치며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하루만 하루만 하더니 벌써 6일이나 지나갔습니다.
7일 째가 되어서야 부처님의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그런데, 다비식을 시작하려고 준비된 장작에 불을 붙이려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나무에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나서서 불을 붙여 보았지만, 마치 물에 젖은 나무인 것 마냥 이내 불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그즈음, 부처님의 장례가 준비되고 있을 무렵, 부처님의 법을 물려받은 가섭존자와 오백 명의 비구들은 인도의 다른 지역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윽고 부처님께서 멸도에 드시고 장례를 치른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슬픔에 잠긴 채 부랴 부랴 사라나무 숲으로 달려오던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무에 불이 붙지 않아 우왕좌왕하던 사이, 뒤늦게 가섭존자와 5백 명의 비구가 도착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존자를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아난이여, 부처님을 직접 뵙고 싶습니다."
"안 됩니다. 이미 다비식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입니다."
"아난이여, 부처님께 마지막 예를 갖출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가섭존자님, 곤란합니다 ..."
그 때였습니다. 부처님을 모셨던 황금 관에서 갑자기 부처님께서 두 발을 불쑥 밖으로 내미셨습니다. 가섭은 조용히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조아리고 오른 쪽으로 세 번 돌았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두 발을 다시 관 안으로 거두셨습니다.
그 순간 장작더미에는 저절로 불길이 솟았습니다. 커다란 불길을 뒤로하고 가섭을 비롯한 장로 비구들은 대중을 향해 부처님께 들었던 가르침을 설법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불길이 사그라지자 말라족은 부처님의 사리를 잘 수습하였습니다.
얼마 후 인도 전역의 각 국에서 사신들이 당도했습니다. 그들은 실질적으로 인도를 지배하는 7대 대국을 대표하여 부처님의 열반을 애도하려고 모인 사절단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우리 모두의 위대한 스승이십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가 탑을 세우고 공양을 올리고 싶습니다."
그러자 장례를 주관했던 말라족은 거절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곳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 곳에 탑을 세워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야 마땅합니다. 그러니 사리를 나눠 드릴 수 없습니다."
급기야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모두가 군사를 동원해 힘으로 빼앗아 가겠다며 난리였습니다. 그러자 아사세왕(阿闍世王, 아자따삿뚜 Ajatasattu)의 사신으로 온 도나Dona는 공평하게 여덟 등분으로 나누어, 온 세상에 부처님의 사리탑을 세우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리하면 모든 사람이 부처님을 가까이에서 뵐 수 있다고 설득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도나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사리는 모두 여덟 등분으로 나뉘어 졌습니다. 그리고 사리를 분배할 때 사용한 용기들은 도나가 한 곳에 모아 탑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각 국의 사신들과 말라족이 떠났고, 뒤늦게 몰리야족이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모든 사리의 분배가 긑난 터라 사리를 얻지 못하게 되자, 다비 후 남아있는 재들을 긁어 모아서 갖고 돌아가 탑을 세웠습니다. 이로써 모두 열 개의 탑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 룸비니에서 꾸시나라까지 >
세상의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하늘 나라 도솔천에서 내려와, 룸비니에서 꾸시나라에 이르기까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여든의 평생을 오로지 중생을 제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탄신일, 출가일, 성도일, 열반일, 이 날을 불교의 4대 명절이라고 부릅니다. 팔상성도에서도 탄신에 해당하는 비람강생상, 출가의 유성출가상, 성도의 수하항마상, 열반에 해당되는 쌍림열반상으로 4대 명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팔상성도는 우리가 아는 부처님의 일대기에서 주요한 내용을 뽑아내어 불자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그려 낸 그림입니다.
그러나 경전에는 부처님의 수명은 상주불멸常住不滅, 즉 항상 머물러 있으며 사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룸비니에서 태어나시고, 꾸시나라의 사라나무 숲에서 멸도에 드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마지막 순간 제자들은 부처님의 급작스런 열반을 맞아 통곡하며 부처님께 간청했습니다.
"여래께서는 무엇이 그리 급하시어 벌써 멸도에 드시려는 것입니까. 부디 저희만 두고 이렇게 가지 마옵소서..."
부처님은 만나면 헤어지는 법이고,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 것이 이치라고 말씀하셨지만, 『법화경』을 통해 보면 사실은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내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멸도하지 않으면서도, 방편으로 '마땅히 멸도를 취取하리라'고 말하느니라. 만약 부처님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무른다면, 덕이 옅은 사람들은 선근을 심지 않아 빈궁하고 하천下賤한 신분이 되더라도 오욕을 탐착하여 갖가지 부질없는 생각들과 그릇된 소견에 빠질 것이다.
또 만약 부처님이 항상 머물러 있어 멸하지 않음을 보게 되면, 교만한 생각을 일으키고, 싫증내고 게으른 마음을 품어 부처님을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과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유훈에서처럼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부처님은 항상 머물러 계신다는 것을 보게되면, 자칫 중생들은 너무 안일하고 편안한 생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중생들은 아쉬움이 없기에 힘들게 수행하려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만나 뵙기 어렵고, 부처님 가르침을 배울 기회 얻기는 더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매 순간 노력하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비로소 부처님을 만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오로지 중생을 바르게 제도하기 위한 방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2,600여 년 전 사라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는 모습을 보이셨지만, 부처님의 광명은 지금껏 우리 곁에서 중생을 향해 무한한 대자비를 베풀며 항상 함께 머물러 계십니다.
< 상월원각대조사 법어 上月圓覺大祖師 法語 >
실상(實相)은 무상(無相)이고
묘법(妙法)은 무생(無生)이며
연화(蓮華)는 무염(無染)이다.
무상(無相)으로 체(體)를 삼고
무생(無生)에 안주(安住)하여
무염(無染)으로 생활하면
그것이 곧 무상보리(無上菩提)요
무애해탈(無碍解脫)이며
무한생명(無限生命)의 자체구현(自體具現)이다.
일심(一心)이 상(常) 청정(淸淨)하면
처처(處處)에 연화(蓮華) 개(開)니라.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출처] < 사찰 벽화로 배우는 부처님의 지혜 > 제3회|작성자 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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