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푸생처럼 다분히 합리주의의 색채가 짙게 밴 바로크 미술에 끌리기 시작했다. 그런 기질을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베르사유 왕궁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1661년 왕으로등극하여 프랑스에서 전권을 휘두르기 시작한 루이 14세는 유럽 최고의 강대국이었던 프랑스 군주가 소유한 절대 권력을 강화하고 드높이는 장엄한 양식을 만들기 위해 프랑스 고전주의를 의도적으로 활용했다. 그 뒤 탄탄하고 안정된 재정력을 내세우려는 은행가들은 물론 나폴레옹에서 히틀러, 스탈린에 이르기 까지 자신의 권위와 힘을 과시하려는 독재자들은 고전주의 건축양식을 즐겨 써먹었다.
원래 베르사유 궁전은 성왕 루이 13세가 사냥을 나갔을 때 임시로 머무르는 거처이던 곳을 "짐음 곧 국가" 라고 단언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태양왕 루이 14세가 자신의 위세에 걸맞도록 어마어마한 크리고 개축했다. 루이 14세는 "내가 원하는 것은 곧 법이 된다"는 말도 남긴 사람이다. 왕의 초상화는 "그는 가장 위대한 왕은 아니었을지 모르나 어는 누구보다도 위엄있게 자신을 꾸밀 줄 아는 최고의 연기자 였다." 라고 말한 영국 정치가 볼링브로크 자작의 평가가 빈말이 아님을 보여준다.루이 르 보 가 설계하고 쥘아르두앵 망사르가 완공한 이 궁전은 동서를 기본축으로 하고 서쪽으로 넒은 정원이 펼쳐져 있다. 너무 규모가 커서 지상에서 찍은 사진으로는 전체를 담을 수가 없을 정도다. 왕궁은 삼층으로 되어있는데 고전주의즤 기본틀을 충실하게 따랐다. 1층에서 3층 까지 모든 창과 출입문은 균일한 간격으로 가지런히 포개져 있다. 정면으로 약간 돌출한 이오니아식 기둥은 바로크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면서 단조롭고 심심한 의벽에 생기를 불어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