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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보현행원(부사모)
 
 
 
카페 게시글
선지식의밝은가르침(법문/일화) [법보신문 창간 20주년 초청대법회]조계종립 전 기본선원장 영 진 스님
파랑새 추천 0 조회 106 08.11.01 10:00 댓글 3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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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8.11.01 10:02

    첫댓글 이 법문도 같습니다 수행.... 오로지 수행... 수행이 전부인 우리의 부처님~~!!! 나무마하반야바라밀 _()()()_

  • 08.11.01 10:14

    이런 법문에 속지(?) 마세요! 제가 잘못된 것인지 몰라도, 참 안타깝고 또 안타깝습니다. 말씀은 그럴 듯(?) 하지만, 제가 볼 때 이런 법문은 범부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법문입니다.21 세기 한국 불자님들은, 이제 이런 식의 법문은 뛰어 넘을 때가 되었다고 저는 봅니다. 이곳에 계속 올라오는 광덕큰스님의 법문과 한번 비교해 보세요! 그러면 제 뜻을 아실려나...

  • 08.11.01 10:16

    하심이 힘들까요 신심이 힘들까요? 스님은 신심이 더 힘들다 하셨는데, 그래서 하심이 되면 신심은 저절로 나온다 했는데, 신심이 저절로 나오는 하심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요? 신심과 하심은 다른 것일까요? 그래서 하심을 먼저 닦고 신심을 발하는 것일까요?

  • 08.11.01 10:19

    제가 누차 말씀드리지요? 하심 대신 공경하시라고! 공경이 훨씬 쉽다고...하심은 나를 죽이는 것이기에 말은 좋지만 사람들이 하기가 힘들다는 것.그 반면 공경은 나를 확장 시키는 것이기에 마치 순풍에 돛을 달듯 그 자체가 우리에게 맞다는 것! 또 하심은 그 출발점이 내 잘난 자리에서 시작하기에 하심을 한다고 할수록 내 잘남도 그와 비례해서 커진다는 것! 표면의식은 하심을 할지 모르지만, 잠재의식은 절대로 내 잘남을 떠날 수 없는 게 하심이라는 것! 그러니 '하심' 대신에 일체를 '공경'하라!는 것...^.^

  • 08.11.01 10:21

    그리고 답답하신 스님. 그 참회게가 어디 천수경에 나오는 겁니까? 화엄경 보현행원품 게송에 나오는 걸, 천수경 만드신 조선 중기 해동의 옛스승님들이 인용하신 것이지...보현행원품 일독만 하셨어도 참회게 출처가 행원품인 걸 아실텐데...

  • 08.11.01 11:14

    신심이 진정으로 확고히 서면 상심, 하심, 평등심이 다 생겨요. 모든 생명 본래불이라고 믿으면 자연 공경심., 자비심, 마하반야바라밀이 꿈틀거리지요. 문수행, 보현행, 관음행, 지장행...대자비 서원이 일어납니다. 눈물도 마구 쏟아지고 상심, 하심 그런게 중요한건 아닙니다. 오로지 믿음과 자비서원이 굳건히 서야 모든게 이루어집니다. 바른 믿음, 자비서원 바른믿음. 자비서원....

  • 08.11.01 14:18

    문제는 신심이 그렇게 쉽게 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발심도 믿음에서 온다고 화엄은 말하는데, 그래서 그 때 일으킨 그 마음, 그 초발심이 정각을 이룬다고 하는데, 그런 정각을 일으키는 믿음이 그렇게 쉽게 올까요...쉽게 온다면 깨닫지 못할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문제겠지요...^.^

  • 08.11.01 14:20

    내가 본래불이라는 것을 믿는 것! 그것을 보조스님도 애타도록 저희에게 부탁하셨지만, 어디 못난 중생이 그 말이 쉽게 믿어집니까! 쉽게 믿으면 쉽게 믿지 않게 되겠지요...그러니 개신교의 믿음이 그렇게 추풍낙엽 아니겠습니까...

  • 08.11.01 14:22

    체험이 없으면, 그래서 체험 없이 믿음을 일으키면 그건 맹신이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개신교의 믿음이, 내가 본래불이라는 불교의 믿음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믿음은 체험에서 나오는 것인데, 체험 없이 믿음을 논한다면 맹신이기는 오십보 백보 아닐까요. 체험이 없이 그저 믿는 것! 믿음만 강조하는 것! 그것은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에서도 경계할 일이겠지요...^.^

  • 08.11.02 06:53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만, 저 같은 경우 큰스님의 우리가 본래 부처라는 그 한말씀이 얼마나 시원하던지 그자리에서 믿어버렸지요. 그 믿음이 바탕이 되어서....그게 그렇게 어려울까요? 그리고 그 믿음에 체험이 있다면 바로 사실확인이 되는데 사실 앞에서도 믿는다고하나요? 그럴때는 이미 믿음도 사라져 버립니다. 엄밀히 말하면 믿음은 미확인 사실을 두고 말하지요.

  • 08.11.02 09:31

    하하하하..그건 보살님 근기가 워낙 뛰어나셔서 그러신 겁지요...저희같은 범부들은 그런 근기가 못 됍지요...^.^

  • 08.11.02 09:34

    그리고 근기 뛰어난 분들을 그 자리에서 깨닫게 해 주시는 일은, 선지식의 존재가 대단히 중요하답니다. 아무리 근기가 뛰어나도 선지식을 못 만나면 그냥 그렇게 한 생을 살게 되십지요. 육조 시대에 그렇게 육조의 언하에 대오하신 분들이 많은 것은, 그 분들의 근기도 근기지만 육조라는 뛰어난 선지식이 계셨기에 그런 것입지요. 그러니 큰스님 가르침을 직접 받으실 수 있었던 불광 불자님들은 얼마나 과거생에 좋은 공덕을 지으신 분들인지, 불광불자님들 스스로가 그걸 아시고 또 자부심을 가져도 좋으실 겁니다요...^.^

  • 08.11.02 09:37

    또한 우리가 전법을 할 땐, 항상 듣는 분들의 입장에서 법을 생각해 봐야 할 겁니다. 내 경험을 일반화시키면 필히 우를 범하게 되기 쉽지요. 나는 참선해서 깨달았는데, 나는 염불해서 이런 경지에 왔는데, 나는 사경을 해서 이렇게 되었는데...하며 대다수의 수행자들이 당신 공부에서 못 벗어나는 것을, 그래서 누구에게나 당신 공부법을 강조하시는 것을 우리는 자주 뵈옵지 않습니까?물론 그분들로서는 최선을 다하시는 것이겠지만, 이런 일들이 자기 경험의 보편화 또는 일반화라 하겠지요. 그러다보니 배타적 생각도 생기는 것이고..이런 일을 피하려면 언제든 우리는 듣는이의 입장에서 법을 생각해야 할 겁니다요..^.^

  • 08.11.01 13:29

    나무마하반야바라밀다 !!!!!!!!!!!!! 법당 방문한지 얼마 안돼는데...^^ 바로 하심(?) ^^ 공경이 쉬운것을..........._()_

  • 08.11.01 14:33

    믿음은 어떻게 오는가? '체험'으로 옵니다. 이해하고 체험함으로써 진정한 믿음이 오게 됩지요. 그러니 화엄경에서는 믿음을 설하는 장이 처음에는 나오지 않고 나중에사 나오는 겁니다. 화엄 편찬자들이 그렇게 깊게 생각하시고 경전의 순서를 생각하신 것이지요.

  • 08.11.01 14:34

    화엄은 처음에는 부처님의 찬탄, 부처님 세계의 이해에 대한 말씀들이 펼쳐집니다. 화엄의 핵심 중의 하나가 믿음인데, 그렇게 중요한 믿음을 처음부터 설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범부 중생들이 알아 듣기 쉽지 않고, 공부가 되지 않는 분들에게 믿음을 강조할 때 생길 수 있는 황망함을 고려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화엄은 부처님 공경, 부처님 찬탄, 부처님 공양을 노래한 후, 나중에서 현수품에서 믿음의 중요성을 설하시지요. 그리고 초발심의 중요함도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이야기하고도 몇 단계를 더 지나서야 비로소 말씀을 꺼내시는 겁니다.

  • 08.11.02 07:15

    체험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보현님, 화엄경뿐만 아니라 모든 경전이 본래불이란 믿음을 유발하기위한 전초작업을 했어요. 진리의 세계가 이러하다. 어떻게하면 그 세계를 알 수 있다...이를 이해하면 믿게 되지요. 부처님의 가르침 핵심이 우리모두 본래불이라는데에 있지요. 49년의고구정녕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여기 우리 보현행자들은 이미 그 단계에 와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보현님의 우려를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자기의 이기심을 내세우며 '나는 부처다'라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구요. 그들은 진정한 믿음을 갖고 있진 않아요. 그런데 적어도 불교를 믿는다라고하면 본래불이라는 것을 믿는 단계라고 봅니다.

  • 08.11.02 09:40

    이해를 돕기 위해 말씀을 더 드리면, 본래불이라는 것은 제가 알기로 주로 대승의 가르침입니다.상좌부는 그렇게 안 가르치지요. 물론 이런 상좌부와의 괘리를 메우기 위해 본래불 사상을 수기사상에서 찾는 노력도 대승에서는 합지요. 그런데 그렇게 쉬운(?)본래불을, 우리는 왜 믿지를 못할까요? 보조국사께서도 '믿기만 하면 되는데!'하며 왜 당시 믿지 못하는 중생들을 그렇게 안타까와 하셨을까요?

  • 08.11.02 09:45

    그리고 부처님이 100% 옳다고, 아니 대승이 100%옳다고 우리가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요? 본래불은 위에 말씀드린 것처럼, 주로 대승에서 말하는 가르침이거든요? 대승에서도 비교적 뒤늦게 나오는 가르침이란 말입니다. 과거에는 그렇게 말 안 했다는 것이지요! 상좌부는 아직도 무상, 고, 무아가 최곱(?)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런 후기 가르침을 그냥 믿으면 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기독교의 믿음과 본래불의 믿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우리는 그 분들을 '맹신'이라 말하는데, 본래불을 믿으면 정신이고 피조물이라 믿으면 맹신일까요? 우리는 이런 점을 정말 심각하게 한번 고려해봐야 하리라 저는 생각합니다요...^.^

  • 08.11.02 09:50

    이런 부분은 공부에 있어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야 정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일어나게 되겠지요. 믿음을 결코 쉽게 생각하시면 아니 될 겁니다. 믿음은 공부의 전부거든요? 정말 진실한 믿음이 언제 어디서나 일어난다면 그건 이미 성불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봅니다. 부처님은 100% 믿음이 있는 분이고, 보살은 99% 정도, 저희같은 범부는 거의 0 에 가까운 믿음이겠지요. 그러니 믿음은 그저 믿어라! 하는 정도에서 끝나서는 안 될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 행원성보살님과 말씀을 나누고 있으니, 불자님들은 행여냐 티끌만한 오해도 일으키지 마시기를...^0^_()_

  • 08.11.01 14:35

    믿음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화엄경보현행원품강의'에 실려져 있고, 앞으로도 이곳에 상세히 올라올 것입니다. 우리 카페 불자님들은 올라오는 글을 빠짐없이 읽어주시고, 제 설명에 틀린 것이 있거나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제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불자님들의 글을 보고 부족한 것은 보완하겠습니다...^.^

  • 08.11.02 09:55

    참된 믿음은 '의심 속의 믿음'입지요...그냥 온통 믿음만 있는 건 '맹신'이고요...그러니 간화선 공부에서 '믿음'을 강조하면서도 나중엔 '의심하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어찌 보면 참 이율배반적이지요? 물론 간화선에서 말하는 믿음과 의심은 좀 차원이 다르지만...^.^

  • 08.11.02 10:07

    대승, 소승 없어요. 상좌부는 근기를 키우는 과정이지요. 그리고 부처님은 100%로 믿는 분이라하시지만 이미 믿음이라는 자체을 벗어난 분입니다. 믿음 이전의 진리 자체.즉 실상의 분에서 자신이 깨달으신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일러주신데서 불교라는 것이 탄생했고 믿음이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경전에는 해박하지 못하지만 믿음에서 출발해서 믿음마져 벗겨져야한다고 알고있습니다. 그 자체....바로 그 자체.

  • 08.11.02 10:26

    간화선에서의 믿음과 의정은 다릅니다. 믿음은 본래불을 믿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처의 지혜와 행이 안나옵니다. 반야가 현전하지 못하니까요. 자신의 본래면목을 참구하다가 스승을 만나서는 황당한(?) 한마디를 듣게되면 그것을 물고늘어지게됩니다. 뜻길이나 말길로 따르지말고...소위 자신도 모르게 화두를 들게 됩니다. 물론 그스승을 100% 믿어야만 빠져들게 됩니다. 여기서의 믿음은 정말 중요해요. 스승에대한 신뢰. 그게 없으면 진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중도에서 놓지고 말아요. 앞뒤가 꽉 막히고 더 나아갈 수가 없는 지경에서도 스승의 그 황당한 말씀에 의정을 일으키고 몰두하다보면 어느 순간 팍 터집니다.

  • 08.11.02 11:23

    하하하하 보살님 맞습니다 맞고요 역시 보살님 대단 대단!그런데 약간 제 견해를 추가로 말씀드린다면, 지혜행이 나오지 않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은 아니겠지요.그런데 그런 걸 믿음으로 생각하니 문제가 심각해지는 게 아닐까요? 또 대승 소승은 정말 보는 관점이 많이 다르답니다. 그리고 또 제가 아는(?)말씀을 드리는데(죄송^.^), 화엄은 '신만성불'이라 하여 믿음이 부처를 이루어간다고 하거들랑요? 그러니 믿음이란 게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실체가 있는 게 아니고, 그래서 처음부터 믿음이 있어서 부처가 되는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을 이루어가는 과정으로 보는 것이 좀더 이해가 쉽지 않을까요?

  • 08.11.02 11:27

    그리고 보살님의 간화선에 대한 말씀도 조금 제 생각을 드린다면, 간화선의 믿음이라는 것이 본래불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깨칠 수 있다, 우리도 다른 스승님들처럼 그런 견성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나는 왜 깨닫지 못하는가? 하는 각성을 갖는 것이 분심이고, 그리하여 어떤 풀리지 않는 경계를 불같은 정열로 참구하는 것이 의단일 것이고...그렇게 의단을 갖고 참구하다 보니. 마침내 우리가 본래 부처였다는 것! 본래 부동지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이상은 아직 그런 단계에 가 보지 못한 얼치기 행자의 '한 생각!'이었습니다요...^0^

  • 08.11.02 11:56

    그냥 가려 했지만 아쉬워서 또 한 말씀 드려야겠네요. '상좌부를 근기를 키우는 과정'이라 잘라(?) 말씀하시면요, 그 분들은 매우 섭섭해 하신답니다. 그런 말씀은 대승의 관점이거들랑요? 상좌부 공부하시는 분들은 결코 그렇게 말씀하지지 않고, 또 그런 말슴에 동의하시지도 않습지요! 더 말씀드리고 싶어도 인터넷이란 게 한계가 있고, 특히 댓글은 글자 수 제한이 있어 충분한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지요. 그래서 여기서 그만하겠습니다. 좌우간 믿음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불교 기독교를 떠나서 말입지요..감사합니다~~~.^.^

  • 08.11.02 11:49

    우리 불자님들은 간화선에서의 믿음과 의정에 대해선 smile 보살님의 설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보살님의 설명이 정확하게 말씀하신 것입지요! 제가 그 윗글에서 말씀드린 믿음과 의심은 이런 식으로도 한번 볼 수 있다는 차원의 말씀이고요...그래서 말미에 "물론 간화선에서 말하는 믿음과 의심은 좀 차원이 다르지만..."이라고 토를 달았던 것입지요...^.^

  • 08.11.02 12:15

    깨칠 수 있다. 견성할 수 있다. 의 전제는 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믿음이겠지요.

  • 08.11.02 12:12

    마하반야바라밀...감사합니다. _()()()_

  • 08.11.02 21:20

    좋은 말씀들 감사합니다. _()()()_

  • 08.11.03 11:27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 09.04.25 15:47

    고맙습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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