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저 편에 있는 것들에 대한 향수
- 두부콩 갈던 시절
내 철들 무렵의 설은 어머니를 도와 두부콩 맷돌에 가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설날 먹을 만두 빚을 때 넣는 속, 차례 상에 올리는 두부 구이, 설 명절을 전후로 집에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한 반찬 등 여러 가지로 필요했기 때문에 해마다 두부 만드는 일은 한 해도 거를 수가 없는 연례행사였다.
두부콩은 하루 전날 쯤 물에 담그어 불린 후 맷돌에 갈았다.
우리 집에는 할머니 때부터 사용했다는 조그맣고 앙증맞은 맷돌이 하나 있었다.
다른 집 맷돌에 비해 워낙에 작아서 일의 능률은 좀 떨어졌지만, 운반하기에도 쉬웠고 혼자 맷돌질을 하기에도 편했다.
낮에는 다른 설맞이 음식들을 하느라고 바빴기 때문에 대개 두부콩을 가는 맷돌질은 밤에 많이 했다.
우리 집 뿐만 아니라 마을의 거의 모든 집에서 두부 만드는 일을 빼 놓지 않았다.
어쩌다 마을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만날 수 있는, 희미한 호롱불 아래에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맷돌질을 하는 그림자가 문창호지에 비치는 모습은 한 장의 살아있는 사진이었고 예술이었다.
맷돌을 돌리면서 한 사람은 불려 놓은 콩을 맷돌 입구에 퍼 넣어야 하는데, 이것도 기술이 필요했다. 대개 처음에 이 일을 하는 사람은 돌리는 속도에 맞추지 못해서 사방으로 흩거나 아니면 돌리던 맷돌을 멈추고 퍼 넣기도 한다.
초저녁부터 시작한 맷돌질은 팔이 뻐근하고 지겹다는 생각이 슬슬 날 무렵이 되면 끝이 났다.
이렇게 맷돌질이 끝나면 곧 이어서 자루에 짠다.
그 당시에는 주로 광목을 만든 자루를 이용했는데, 눈이 촘촘해서 이걸 짜내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렇게 자루로 짜낸 물을 가마솥에 넣고 약한 불에 슬슬 끓인다.
어느 정도 물이 끓으면 여기에 간수를 친다.
간수는 소금에서 뽑아낸다. 소금을 가마니 같은 데 담아 두면 공기 중에 있는 습기를 만나 아주 천천히 녹아 흐르게 된다. 한 방울씩 두 방울씩 녹아 흐르는 이것이 바로 간수다. 그 무렵 두부 제조용 간수는 시장에 가서 고체 덩어리로 된 걸 사서 쓰기도 했고, 더러는 집에서 받은 액체 간수를 쓰기도 했다.
간수를 가마솥에 집어넣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던 가마솥에는 흡사 맑은 하늘에 구름이 뭉클쿵클 일어나듯이 콩물이 서로 엉긴다. 연둣빛 빛깔을 살짝 띠면서 엉기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참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곤 했다.
끓는 콩물에 간수를 넣어야 서로 엉긴다는 것을 누가 알고 시작했는지.
소탈한 콩과 식물이지만 기름을 싫어해서 기름기가 한 방울이라도 떨어지면 두부는 되지 않았다.
간수를 만나 적당하게 엉겨 가마솥에 둥둥 떠다니는 상태가 순두부다.
이럴 때 어머니는 한 바가지 듬뿍 떠서 양념간장을 뿌려 건네준다.
이 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따끈따끈한 순두부는 고소하기 짝이 없다. 그 맛은 밤이 이슥한 시간까지 작업을 하다가 배가 출출해질 때가 되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두부가 웬만큼 엉기면 이걸 다시 자루에 퍼 넣고 물을 짜낸다.
다음으로 자루를 커다란 함지 같은 데 넣고 물 항아리, 맷돌 같은 무거운 걸 올려놓으면 두부가 단단해 진다.
다음 날 쯤 자루에 있는 두부를 꺼내어 칼로 알맞게 잘라 놓는데, 집에서 만들어 집에서 먹을 것이기 때문에 상품으로 파는 것과는 달리 모양이나 크기가 일정하게 반듯할 필요가 없다. 가장자리에 있던 두부는 자루 모양에 따라 곡선을 그려도 괜찮고, 광목 올 자국이 선명해도 상관없었다.
항아리에 수북하게 담아 놓은 두부모는 보기만 해도 푸짐해서 좋았었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두부는 된장찌개, 김치찌개 같은 반찬의 재료로 한 해 겨울 식단을 푸짐하고 요긴하게 해 주었다.
그 후 언제부터인가 집에서 두부를 직접 만들어 먹지 않고 가게에 가서 사다가 먹었는데, 어머니는 두부를 사 올 때마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이 물렁물렁한 두부에 대해 불만이었다. 양을 늘이기 위해서 일부러 꼭 짜지 않아서 그렇다고.
맷돌에 간 콩물을 자루에 짤 때, 자루에는 찌꺼기가 남게 되고, 우리는 이걸 비지라고 한다. 싼 게 비지떡이란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지는 별 영양가가 없었던 모양이다.
비지는 대개 소나 돼지의 사료로 썼고, 일부는 따뜻한 아랫목에 파묻어 발효를 시킨 후에 비지찌개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나는 발효시켜 끓인 비지찌개도 참 좋아한다.
이제 두부를 일반 가정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콩을 불리는 일에서부터 만드는 과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가끔 두부를 먹다 보면 고향의 어머니를 그리며 쓴 사임당의 시 구절이 생각난다.
산이 겹친 내 고향은 천리이언만
자나 깨나 꿈속에도 돌아가고파
한송정 가에는 외로이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
갈매기는 모래 밭에 흩어졌다 모이고
고깃배는 바다 위로 오고 가리니
언제나 강릉길 다시 밟아 가
색동옷 갈아입고 바느질 할꼬.
그날 그 때처럼 고향 마을로 돌아가 어머니와 마주 앉아 그 앙증스런 맷돌을 돌리면서 두부콩을 갈아보고 싶은데, 나는 더 이상 그런 시절을 가질 수가 없다.
첫댓글 그때 그 시절들 마냥 그립습니다..;;;
세상이 뭔지 잘 모르고 지내던 소박한 시절이었지.
정말 두무 만들어 먹고 싶네요~~ 오빠 이젠 풍기 안 가겠네요~~
그래도 볼일이 있으면 가 봐야지.
음식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이 두부입니다~~그중에서도 국산콩으로 만든 손두부가 최고인데요~~
선배님글을 보니 직접 만들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세하네요~
좋은 글 자주 올려 주시니 감사 합니다~
콩은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영양가가 높대. 글 열심히 잘 읽어 주어서 고마워.
선배님은 야무지게도 재생시켜 주시는군요........국민학교 ...그때 맷돌 없는 집 없었지요
고마워. 잘 읽어 줘서. 우리 자랄 때도 없는 집이 더러 있었어. 그런 사람들은 옆 집에 가서 빌려다가 쓰고......
우리집에선 두부를 많이 만들진 않았지만 가끔 아지매들이랑 함께모여 만드는걸 본적은 있어요.
끝나기를 기다려 따뜻한 두부를 김치랑 먹을땐 사실 맛있다는걸 못느꼈는데....
지금은 집에서 검은콩으로 기계를 이용해 자주 만들어 먹고 있지요
우리 신랑이 머리가 자꾸 빠져서.....ㅎㅎㅎㅎㅎ
후후후.......직접 만들어 먹으면 훨씬 더 맛이 별미야.
엄마가 살아계신 생전에는 늘 두부와 메밀묵을 만들어서 신정때 식구들이 모일때 별식으로 먹었지요. 엄마가 가신지 벌써 햇수로 2년이 됐네요, ,, 가끔씩 전 기계로 검은콩을 이용해서 두부를 만들어 먹고 있으며 비지 찌게는 우리 아이들도 좋아한답니다... 선배님의 글 매번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함을 보냅니다...
어머니 장례식때 풍기로 조문 갔었는데 벌써 2년이 흘렀군요`세월이 넘 빨리 가네요~ 두부를 직접 해서 먹다니 ... 나도 한번 도전해 볼까봐요~
같은 처지. 나도 지난 해 11월에 어머니 가셨어. 지금도 가끔씩 그 생각이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