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연초부터 늦봄까지 우리나라는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았다. 미세먼지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올해는 유난히 심해 미세먼지 ‘나쁨’은 물론 ‘매우 나쁨’인 날도 많았다. 여름과 가을에는 숨통이 좀 트였지만 겨울이 시작되는 연말이 되자 다시 미세먼지 ‘나쁨’인 날이 잦아지고 있다.
이처럼 미세먼지에 신경이 곤두서서 그렇게 보이는 건지는 몰라도 2017년에는 미세먼지에 대한 연구결과도 많이 나온 것 같다. 물론 대다수는 별로 좋지 않은 내용인데 특히 건강과 관련해서는 걱정스러운 결과가 많았다.
미세먼지가 치매도 일으켜
먼저 의학저널 ‘랜싯’ 2월 18일자에는 국소적인 대기오염과 치매의 관련성을 밝힌 대규모 역학조사 결과가 실렸다. 캐나다 공중보건온타리오의 홍 첸 박사팀 등 공동연구자들은 온타리오주에 살고 있는 성인 대다수에 해당하는 66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장기적인 역학조사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거주지가 차가 많이 다니는 주도로에서 50m 미만 거리일 경우 200m 이상인 경우에 비해 치매에 걸릴 위험성이 12%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캐나다에서 진행된 대규모 역학조사에 따르면 큰 도로에서 50m 이내에 사는 사람들은 200m 이상 떨어져 사는 사람들에 비해 치매에 걸릴 위험성이 12% 더 높다. 대기오염이 치매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 연합뉴스
대기오염원 가운데 미세먼지와 오존이 이런 증상을 일으키는 주원인으로 보인다. 특히 지름이 0.2㎛(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 미만인 극미세입자가 문제다. 참고로 입자크기가 10㎛ 미만인 경우는 미세먼지(PM10)라고 부르고 2.5㎛ 미만인 경우는 초미세먼지(PM2.5)라고 부른다. 극미세입자는 초미세입자 가운데서도 작은 입자다.
이런 입자들은 숨을 쉴 때 폐 깊숙이 들어가 세포에 침투한 뒤 다른 세포로 확산돼 사이토카인 분비를 비롯한 염증반응을 일으킨다. 혈관을 따라 뇌까지 들어온 사이토카인이 뇌에도 비슷한 작용을 하면서 치매를 일으킬 수 있다. 미국 몬타나대의 신경과학자 릴리안 칼데론-가르시두에뇰라스 박사는 대기오염이 극심한 멕시코시티에서 사고로 죽은 어린이와 젊은이의 뇌를 조사해 과도한 염증과 알츠하이머 치매의 지표인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이 엉킨 덩어리를 확인했다.
사우스캘리포니아대의 역학자 지우치우안 첸 박사는 최근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전 세계 치매 환자 발생의 21%가 대기오염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2014년 세계보건기구는 흡연이 알츠하이머병 발생원인의 14%를 차지한다고 발표한바 있다. 흡연을 통해 무수한 미세입자가 우리 몸으로 들어간다. 따라서 둘을 합치면 미세입자가 치매 발병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셈이다.
지구촌 사망자 13명 가운데 한 명은 초미세먼지가 원인!
석 달 뒤인 5월 13일자 ‘랜싯’에는 1990년부터 2015년까지 25년 동안 대기오염이 사람들의 건강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논문이 실렸는데 내용이 가히 충격적이다. 즉 대기 중 초미세먼지는 고혈압, 흡연, 당뇨, 비만에 이어 다섯 번째 사망위험인자로 2015년 한 해 동안 지구촌에서 초미세먼지 때문에 조기사망한 사람이 무려 420만 명에 이르러 전체 사망자의 7.6%를 차지했다. 이들의 평균 수명은 전체 평균 수명보다 무려 28년이나 짧다. 한편 1990년 초미세먼지로 조기사망한 사람은 350만 명이었다.
지구촌의 평균 ‘인구 가중 초미세먼지 농도’는 1990년 39.7㎍/㎥에서 2015년 44.2로 11.2% 높아졌다. 인구 가중 초미세먼지 농도란 실제로 사람들이 체감하는 값이다. 예를 들어 지구 평균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20㎍/㎥이더라도 사람이 몰려있는 좁은 땅은 50, 드문드문 사는 넓은 땅은 10이라면 실제 사람들이 느끼는 평균 농도는 40이라는 얘기다.
초미세먼지로 조기사망하는 사람의 절반이 중국과 인도에서 나오는데, 각각 110만 명 내외다. 중국의 경우 초미세먼지가 첫 번째 사망위험인자이고 인도에서는 두 번째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데이터는 못 찾았는데 지도를 보면 전체 사망자의 5.6~6.7%인 색깔로 칠해져 있어 2만 명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일본은 6만 명이다.
전체 사망자 가운데 초미세먼지로 사망한 사람의 비율을 나라별로 나타낸 지도다. 우리나라는 5.6~6.7%로 중국(8.6% 이상)보다는 낮지만 일본(4.1~4.4%)보다는 높다. ⓒ 랜싯
배기가스 기준 강화되자 효과 나타나
미세먼지와 관련해 다소 희망적인 내용을 담은 연구결과도 있다. 예를 들어 학술지 ‘네이처’ 5월 25일자에는 디젤자동차 시장 규모 상위 11개 나라(유럽연합(EU)을 한 나라로 간주)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에 관한 경향을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11개 나라의 디젤차량 배기가스 배출량은 대형차의 경우 세계의 3분의 1에 가깝고 소형차의 경우 절반이 넘는다.
연구자들은 2015년 독일 자동차회사인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 즉 디젤차량 배기가스 조작 사건을 계기로 디젤차량에서 나온 실제 배출량과 규제에 따른 이론적인 배출량의 차이를 산출했다. 분석 결과 2015년 한 해 동안 460만 톤이 추가로 배출됐고 이에 따라 3만8000여 명이 추가 배출가스에서 비롯된 초미세먼지나 오존으로 인해 조기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디젤차량 배기가스에 포함된 질소산화물은 초미세먼지나 오존의 재료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디젤차량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차량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경우 유로 4(2005년)나 유로 5(2009년)의 규제를 받을 때 생산된 버스의 경우 실제 배출량이 규제 기준보다 4~4.5배 더 많았다. 반면 더 엄격한 유로 6(2014년)의 규제를 받을 때 생산된 버스는 실제 배출량이 규제 기준의 1.5배 불과해 버스 한 대당 배출량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연구자들은 앞으로 유로 6보다 더 강력한 규제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고 이게 잘 지켜질 경우 2040년에는 디젤차량의 질소산화물로 인한 초미세먼지와 오존 관련 사망자수를 17만4000여 명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미세먼지 농도 평가, WHO 기준으로 바꿔야
TV나 신문에 나오는 미세먼지 농도 는 한국환경공단이 제시한 기준으로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보다 훨씬 느슨하다. 예를 들어 미세먼지 ‘보통’은 우리나라가 31~80㎍/㎥이고 WHO가 16~50이다. 미세먼지가 51~80인 날을 ‘보통’에서 ‘나쁨’으로 바꾼다면 겨울과 봄엔 보통인 날보다 나쁨인 날이 더 많을 것이다.
‘네이처’ 11월 16일자에는 독일 막스플랑크화학연구소의 대기화학자 요스 렐리벨드와 울리히 푓슐의 기고문이 실렸다. 필자들은 이 글에서 WHO의 기준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현재 WHO의 초미세먼지 가이드라인은 연평균 10㎍/㎥인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안심할 수 있는 기준선이 기존의 5.8~8.8에서 2.4~5.9로 확 낮아졌기 때문이다. 지구촌 사람들의 90% 이상이 현재 가이드라인인 연평균 10보다 높은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는 걸 감안하면 가혹한 수치다.
이런 상황임에도 우리나라는 WHO 기준보다 훨씬 느슨한 기준을 유지해왔다. 해가 갈수록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지는 걸 중국 탓만 할 수 없는 이유다. 지금이라도 WHO 기준으로 강화해 설사 겨울과 봄에 하루가 멀다 하고 ‘나쁨’이나 ‘매우 나쁨’이 되더라도 미세먼지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