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지난 해 이사를 온 저는 시댁과 멀리 떨어지게 된 이후로 아이를 키워주신 시어머니와 더 가까워졌습니다.
그래서 무슨일 생기면 아들에게 먼저 부르르 전화하시던 어머님께서 집에서 애키우고 쉬고 있는 제게 집안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며 아버님 흉도 보고 그러십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도련님일로 속상하셨는 지 전화를 하셨습니다.평소에 장거리 전화요금이 아깝다고 전화드려도 얼른 끊으라고 하셨던 어머님께서 오랫동안 통화를 했습니다.
올해 서른 셋이 되는 우리 도련님은 대부분의 도련님 친구들이 아이아빠가 되어 있는 나이인데도 아직 총각입니다.
물론 어머님 걱정은 장가가는 것도 포함되어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도련님 건강입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에서 3년 정도 돈을 모아가며 착실하게 살고 있던 도련님에게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꽃가게를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해 왔고 몇 년전 다들 어려워 있던 가게까지 망하는 가운데 구미의 한 여자 중학교 뒷문에다 꽃가게를 차렸습니다.
이름도 정약용 선생이 하신 말씀을 따서 <다물 화원>이라고 지었었지요.
성공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던 도련님은 어머님의 엄청난 만류에도 불구하고 갖고 있던 돈을 모두 화원에 넣었습니다. 그때도 어머님은 좀 말려보라고 형인 남편에게 열두번도 넘게 전화를 하셨었지요.
형이라고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하려는 일까지 말릴수 없다며 실패해도 경험이라고 생각하자고 하며 우리는 잘되기를 빌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시절에 작은 꽃집은 시들어 버리는 꽃이 더 많았고 배달이 엄청 많을 것 같던 예상과는 달리 매달 월세도 제대로 못낼 형편에 이르렀을 즈음 더 큰일이 생겼습니다.
비오는 날 구미 공단 근처의 아파트에 꽃배달을 가던 도련님의 작은 승용차가 공단에서 나오던 엄청난 덤프트럭에 치여서 도련님은 신장을 하나 잃게 되었고 부서진 뼈를 바로잡는 큰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꽤 오랜시간 병원신세를 졌고 그 와중에 꽃집은 친구에 의해 처분되어 정리되었고 도련님이 3년동안 모은 돈은 고스란히 허공중에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신장을 하나 잃어 힘든 일은 피해야 해서 취업은 더 어려웠습니다.
친구를 너무 믿지 말라고 그렇게 어머님이 노래를 하셨는데 결과는 정말 어머님의 말씀처럼 그리되었고 어머님또한 건강과 돈을 모두 잃은 아들때문에 불면증까지 걸리게 되셨답니다.
그랬던 도련님이 최근에 기운을 차려 휴대폰 부품 하청공장에 취업을 하였습니다.
나이도 차서 장가도 가야하는데다 정말 작은 공장월급 더 받으려 잔업에 휴일까지 일해서 건강을 해치는 아들 걱정을 하시는 어머님께 맏며느리가 되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정말 죄송스러웠습니다.
도련님께 보약한재도 못지어주고 서울로 이렇게 불쑥 이사를 와버리고 어머니께 힘이 되지 못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고향가면 도련님과 영양가있는 밥도 한 번 먹어야겠어요.
구미에 있는 우리 성호 도련님 힘내라고 전해주시고요.
빨리 건강도 찾고 이쁜 신부감 만나 결혼해서 어머님 걱정도 들어드리는 효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