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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3일 주일 오후 찬양 예배 설교
2014년 4월 13일 주일 오후 찬양 예배 설교 ppt.pptx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찬양 주를 위한 이 곳에
로마서 1:16-17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 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전혀 능력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리 좋은 것을 주시려고 준비하셔도 그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3:20에는 영접하는 자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복음은 믿는 자들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 믿는 자들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사람이든지 어떠한 인종이든지 그 사람의 신분이 어떠하든지 차별이 없습니다.
앗수르의 멸망
중동 지역의 세계를 지배하던 앗수르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하였습니다. 앗수르의 통치 방식은 혼혈정책입니다. 앗수르는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다른 민족들을 강제로 결혼하게 하여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종교와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을 다른 민족의 것들과 섞어 버렸습니다. 앗수르 제국 내에서 앗수르에 의해서 혼혈이 된 사람들은 독립운동을 하려는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그 때에 북 이스라엘에는 다른 이방인들과 혼혈인 사마리아 사람들이 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다른 이방 민족들의 신앙이 섞인 혼합 종교의 형태를 띤 종교를 가졌습니다. 절대 망하지 않을 것같이 강성하게 보이던 앗수르도 바벨론에 의해서 순식간에 멸망하였습니다. 앗수르가 망하자 유다의 주위에는 유다를 간섭하는 절대 강국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틈을 이용하여서 유다의 요시야 왕은 나라의 영토를 이전의 북 왕국 지역까지 확대하였습니다. 요시야 왕은 믿음대로 사는 왕이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타락시킨 나라의 부패한 종교를 개혁하고 새롭게 변화시켰습니다. 열왕기 하 23:25에는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라고 하면서 요시야의 신앙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유다 민족들은 요시야 왕에 대해서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요시야가 종교를 개혁하고 믿음대로 살았고, 패망한 북 이스라엘의 일부까지 영토를 넓혔습니다. 주변의 강대국들도 사라지고 요시야 왕 때에는 유다가 자주 주권을 가진 나라와 같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요시야가 왕이 되어서 나라를 다스렸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것 같아 보였고 그 당시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대로 살면 되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앗수르가 망한 후에 애굽이 이스라엘 지역을 지배하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막으려고 요시야 왕이 전쟁에 나갔는데 요시야 왕이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가장 의로운 왕이었던 요시야 왕이 어이없게도 전쟁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믿는 백성들을 도우시는 분이라면 요시야 왕이 전쟁에서 이긴다고 백성들이 생각하였는데 그만 요시야 왕이 전쟁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요시야 왕이 죽자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슬퍼하였고 예레미야는 요시야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습니다. 그 이후에 유다를 다스린 왕은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 왕입니다. 이들은 요시야 와는 정반대로 하나님을 잘 믿지 않는 왕이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세력을 넓히려던 애굽도 바벨론과의 갈그미스 전쟁에서 지고 맙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요시야가 죽자 하나님의 공의가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유다의 왕도 악하고 유다를 지배하려는 세력들도 악하고 모두가 다 악한 사람들만 남은 것 같이 보였습니다. 앗수르가 있을 당시에는 유다는 나라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제 바벨론이 커지자 유다 나라 자체가 없어지게 생겼습니다. 이제 유다 땅에는 하나님의 통치가 사라진 것 같아 보였습니다.
하박국 2:4
보라 그의 마음이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하였던 바벨론 제국
요시야 왕이 없는 유다는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 때에 하박국 선지자가 예언을 하였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예레미야와 비슷한 시대의 예언자로 바벨론이 쳐들어 올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하박국은 바벨론 제국이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하다고 예언하였습니다. 하박국은 바벨론의 정복자들은 잔인한 정복자일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제 유다에는 믿음으로 살던 요시야 왕도 없었고, 요시야의 아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바벨론이 쳐들어 온다니 믿음의 성도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공의가 다 사라진 것 같이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왕인 요시야 왕이 승승장구를 해도 시원치 않은 판에, 온 세상이 바벨론에 의해서 점령을 당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대일지라도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하박국 선지자는 전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부 흑암의 세력들이 장악한 것 같이 보여도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라도 그런 세상 속에서도 남은 자는 신앙을 지키는 것입니다. 세상이 이상하게 바뀌어도 남은 자인 오직 그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문제제기
기독교의 교리는 기독교와 전혀 상관이 없는 성경 밖의 증거들에 의해서도 바뀔 수 있을까요? 아니면 기독교의 교리는 절대 바뀌지 않을까요?
폴란드의 천문학자였던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이단으로 정죄 되었습니다.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감옥에 갔습니다. 그런데 과학이 발달하여서 지동설을 입증하는 증거들이 많아지자 천주교에서 절대 불변의 진리라고 믿던 천동설은 과학적인 증거들에 의해서 포기됩니다. 이렇게 성경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 때문에도 기독교의 교리는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과학이 발달하여도 절대로 바뀔 수가 없는 교리들이 있습니다. 그런 교리들은 우리의 구원과 관련이 된 교리들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도 사람이 구원받는 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을 하고, 사람들의 지식이 많아지고,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고, 세상의 권력들이 바뀌어도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 원리”는 바뀌지 않습니다.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도 예수님 앞에서 나와서 죄 용서함을 받으면 전혀 죄가 없는 사람 같이 된다는 원리도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의 구원관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3:10-18[1]에보면 유대인들은 율법을 잘 지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외형적으로 보이는 할례를 행하고 안식일을 지키고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정신은 외면한 채로 율법의 외형만 지키기에 급급하였습니다. 그래도 유대인들은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할례 없는 이방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였으며 이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면서 이방인들이 짓는 죄를 짖지 아니하면 의롭게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여기서 유대인들이 생각한 이방인들이 짓는 죄는 할례가 없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금하신 부정한 음식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정신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율법의 겉 모양만 지키기에 급급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유대인들은 택한 백성들이니까 당연히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받는 구원
타락한 중세의 천주교에서는 믿음 만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성도들에게 믿음보다 행위를 요구하였습니다. 천주교 신부였던 마르틴 루터는 로마에 가서 성지 순례를 하면서 빌라도의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오르면 죄 사함을 받는다고 배웠습니다. 죄와 구원의 문제로 고민하던 루터는 성지 순례의 기회가 오자 기쁜 마음으로 로마 성지 순례를 합니다. 루터는 빌라도의 계단을 기어 오를 때마다 라틴어로 주기도문을 암송하면서 계단에 입을 맞추면서 고행의 순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루터의 마음은 전혀 죄 용서함을 받는 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루터는 고행이나 성지 순례가 죄 용서함을 받는 수단이 아님을 알았었습니다.
그 후 루터는 로마서 1:17을 읽으면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말씀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던 중 루터는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에게 죄가 있지만 죄가 없다고 취급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더욱 깊이 연구한 루터는 종교개혁을 이룰 수 있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이론’을 발견하였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어떤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까?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성도는 어떤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까? 많은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에게 맞는 메시아를 찾았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보고도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맞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외면하면서 자신들의 기호에 맞는 하나님을 찾는 유대인들의 믿음으로 살면 안됩니다. 우리의 믿음에는 반드시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야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이 됩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 청년은 예수님을 만나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는지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청년에게 계명을 알고 지켰는지 물었습니다. 이 청년은 대답하기를 이 청년은 어려서부터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에게 한 가지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하셨습니다. 이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매우 근심하였습니다. 그 나중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은 일단은 이렇게 근심하는 단계를 지나야 합니다. 이런 단계를 지나고 나서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는 믿음의 단계에 이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 그 맹인을 불러서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맹인은 보기를 원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 앞에 나오면 우리의 인생의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알고 예수님께 나아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대인들 같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도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믿음에 대한 심각한 갈등을 하는 부자 청년과 같은 단계를 지나야 합니다. 그 고민의 단계를 지나고 승리하지 못하면 진정한 믿음의 단계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온전한 믿음은 예수님께 나아가면 눈도 뜨고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예수님께 나아간 맹인과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눈을 뜨고도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맹인은 눈을 감고도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눈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결단찬양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1] 로마서 3: 10-18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첫댓글 말씀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