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길고양이 밥준다는 이야기 했잖아. 반응이 크게 둘인데 하나는 줄 수 있으면 주라는 것, 다른 하나는 자연에서 스스로 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어느 분의 답글이 딱 한 줄 '惻隱之心', 이 넉자를 보고 그냥 내 힘 닿는대로 밥주자고 마음 정했다.
지난 달 고향집에 장기간 머물 땐 아침저녁으로 밥 먹으러 왔다. 밥 달라고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곤 했다. 부산 집으로 가는 바람에 며칠 고향집을 비웠다. 밥 먹으러 왔다가 하염없이 기다리다 갔을 거다. 혹시나 하여 또 오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포기했을 거다. '이 인간 못 믿을 집사네' 했겠다.
다시 고향집에 내려와 밥 주려고 고양이를 기다렸는데 이틀이 지나도록 보이지 않다가 사흘째 나타나 밥 달라는 자세로 앉아 있었다. 이제부터는 종전처럼 아침저녁으로 찾아오리라 생각했는데 순전히 내 생각이었다. 이 고양이 지 오고 싶을 때 오는 거다. ㅎ 이 인간 못 믿는다는 거지.
간헐적으로 고향집에 내려와 텃밭 농사짓는 간헐적 농부가 멀쩡한 길고양이를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간헐적 길고양이로 변하게 했다.
전에는 밥을 주면 다 먹고는 어디론지 사라졌는데 요즘은 다 먹고도 가지 않고 밥 더 달라는 자세로 앉아 있다. 조금 더 주면 그것까지 먹고 사라진다. 저 인간 있을 때 많이 먹어두자는 건지 ㅎ 고양이 생각을 알 수가 없다.
이런 일이 있었다. 기다리다 밥그릇에 밥을 담아 주고 내 볼일 보러 갔다왔는데 먹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이틀인가 뒤에 나타나 밥 달라는 자세로 앉아 있었다. 밥그릇을 보니 이틀 전에 준 밥이 그대로 있어 헌밥 위에 새밥을 조금 언져주었다. 밥 그릇 가까이 가더니 먹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있는 거다. 이상하다 싶어 가까이 가보니 잔잔한 개미들이 고양이 밥에 붙어 있었다. 버리고 밥그릇을 깨끗이 하여 다시 주니 그 때서야 먹고 갔다. 헌밥이 상해서 안 먹었을까 혹은 개미 때문이었을까. 궁금하다.
오해할라. 고양이 밥은 우리가 먹는 밥이 아니라 원기소 같이 생긴 고양이 전용 사료다. 냄새도 원기소처럼 구수하다.
요즘은 고양이와 눈맞추기도 가끔 한다. 제법 긴 시간을 서로 바라본다. 날 경계하는 건가? "밥 줄께. 이리 와" 하는 말은 알아 듣는 것 같기도 하다.
아직도 거리는 유지한다. 내 손이 닿을 만한 거리까지는 접근 안 한다. 이 인간 아직 못 믿는다는 거지.
며칠 아니 더 이상 집을 비울지 모르는데 다시 만나면 더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길고양이가 될지 모르겠다.
20대 초반 돈 없을 때 작은 참치캔 하나 따서 김치볶음하면 막걸리 서너 통 안주가 되었는데 그 참치캔 하나 따주고 가야겠다. 추석선물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