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스물 다섯인가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젊은 나이인데 부모님두분다 6개월 사이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군에 있는 관계로 두분다 임종을 지켜보지못했다. 3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안타깝고 죄스러운마음 금할길 없고
한이 맺혀있다. 부친은 우리 형수 얘기가 밭에가서 일을 하다가도 내가 그렇게 보고싶다고 했었더란다
몸이 편찮다는 소리를 듣고도 약 한첩 못해드리고 효도한번 못한것이 .. 눈물로 두분을 보내고 부대로 왔으나
몸은 매일 죽을 지경이였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진용이와 선태는 교회에 나가지않았으나 나는 초등학교때 부터 꾸준히 예수님을 믿었다. 물론 군에서도 교회에 다녔는데 윗상사분들이 대부분 예수를 믿어서 많이 가까워졌다.
26사단 사령부에 근무할때는 내가 소위였는데 사단장이(소장 배정도장군) 교회에다니셔서 사단장님숙소에 매주가서 예배도드리고 하면서 높은분들과 자주 대면하는 기회가 많아서 그분들이 날 잘봐주라는 얘기를 하곤 했다.
그러나 현재 나는 삼각파도에 부딪혀 죽게되어 있었다
내 심장은 빨리 수술 하지 않으면 의사가 죽는다고 했고 매일 가슴이 터질것같은 증세가 있어서 부대근무가 되질않았다
그래서 어차피 죽을몸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눈물로 기도를 드렸다.
당시 순복음중앙교회 조용기 목사님이 병고치는 은사가 있어서 서울 순복음중앙교회에 갔다오고 순복음 금식기도원에 3일 금식기도를 하기로 마음먹고 기도원에 들어가 그야말로 물만먹고 1,2일차 기도를 드렸다
3일째되는날 아침기도를 드리고 도저히 견딜수 없어 죽한그릇을 사먹고 정신을 차리고 있는데
하나님의 계시가 오는데 "너는 이동산을 내려가면 낫는다" 라는 음성이 들리는듯 했다
부대에 와서 근무를 하는데 정말로 예전처럼 죽을 거 같고 어지럽고 등등의 증세가 없어져서 부대근무를 잘할수있었다.
얼마후 대위로 진급했고 부대를 22사(강원도속초)로 전속되어 근무중에 어느날 보안사(현 기무사)에서 보안사근무예비인원으로 발탁되었으니 논문시험을 보러오라고 했다
서울 보안사령부에서 시험을 쳤는데 5:1 의 경쟁률을 뚫고 오게되었다
이때 시험치러 서울 왔다 갔다 하다 지금의 처를 만났고 6개월간 보안사에서 교육받는관계로 자연스럽게
짐을 처가집으로 옮기면서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첫 발령지는 전라도 광주에서 보안반장을 하게 되었다.
이때가 나의 전성기의 시작이다 물론보안반장에게는 전용지프차가 나오고 감시하는 업무를 하니
모든 군인들은 나를 무서워했다.
광주사태가 얼마지나지 않아 보안사요원들은 모든 극장이나 야구장들 무료입장이 가능했고
경찰에도 들어가 내말 한마디면 잡혀있는사람도 빼내올수있을 정도 였으니...
또한 고향 사람들도 많이 청탁을 했다. 풍기서 먼 전라도 광주까지 떡을 싸들고 찾아오곤했으니깐
이때 우리 옆집 김선대모친이 와서 선택인지 선익인지 모르겠으나 그일때문에 와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셨는데
최근 별세하셨다니 고인의 명복을 빌어 봅니다.
광주근무가 끝나고 서울로 오게되어 송파에서 5년을 살았는데
이때도 행복한 시절 이였다.
주말에 처가집에 두남매 데리고 가면 장인장모와 어울려 노는것을 보면서 내 부모는 손자손녀 안아보지도 못하고 일찍 돌아가셨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
소령진급과 동시에 육군대학을 갔는데 옛날 증세가 가끔있어서 처 한테 얘기했더니
심장이 그런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살수있냐면서 병원에 가봐도 이상없다고 했다
그러나 밤새워 공부해야 되는 상황인데 몸이 말을 안듣고 기억력이 현저히 감소해 교육을 받으면 항상 앞서 갔던 내가
매일 뒤처지기 시작했다.
졸업을 하고나니 육군본부에서 오라는것이다.
군인이라면 육군본부에 한번 근부하는것이 꿈인데 우째나에게 이런행운이 왔는지
나는 항시 겁이없었다 부친이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그러지를 않아 나는 항시 내가 생각해서 결정을 해왔기 때문에 군에서도 겁없이 모든일을 해서 윗분들이 놀라는 모습을 본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한번은 참모총장님이 컴퓨터 보안 문제로 우리 정보참모부장(소장)한테 지시가 떨어진것을 내가 직접 들어가 설명을 한적도 있었다
그러나 또진급을 하려니 나는 너무 고급부대에서 근무해서 진급이 안된다는것이다
말단이나 최전방 근무자에게 진급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산에서 레이더대장으로 와서 울산에 부산 다대포까지
12개기지를 담당하는 일을 했다
당시 중국밀입국자 가 많아 야간에 무리하게 근무했더니 옛날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때까지도 내심장은 괜찮은 줄 알았다.
어느날 도저히 못견뎌 응급차로 동아대병원에 가서 정밀 심장검사를 했더니 검사하는 사람이 어떻게 살았냐면서 빨리 수술을 해야된다는것이다.
당시 심장수술은 가슴중앙 뼈를 절개해서 수술을 하는데 이상한 것은 우리교회교인들이 그날 새벽 기도 한 덕분인지 수술실에 들어가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수가 없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심장수술은 잘못하면 사망할수가 있기 때문에
두려워 하는데 이상하다는 거다.
아무튼 8시간동안 수술을 하는데 우리누님은 밖에서 모친이 너무늦게잘못낳아서 그렇다면서 울었다는 것이다 .
수술은 잘되었는데 그동안 내가 왜이리 무심했던가 서울에 5년동안 근무할때 큰병원에가서 수술할수있었는데 등 지나간 세월은 되돌릴수 없잔은가
심장수술로 진급신체검사에서 불합격하여 더이상 진급을 못하고 전역해서 부산해운대엣 살고있는데
지금도 이땅에 살고있다는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하게 살고있다
첫댓글 선배님...참으로 장하십니다~ 가슴 뭉클하고~ 그동안 선배님의 힘든역경~행복 사랑을 함께하시었네요~ 선배님~ 늘 건강하세요~
건강을 기원해 주어서 고맙소이다 방랑객 께서 해운대 한번들리시면 연락하세요
친구가 살아온 인생사를 차례로 읽어보니 뭐라고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메어오네...고생했구나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군에서는 인정을 받는 군인이 되어있고...같이 중.고등학교를 다녔어도 기억이 별로 없이 이름만 선명할뿐이다..언제 얼굴 한번 보여라...이젠 괜찮다니 참 다행이다...늘 건강하그래이...
학교 다닐때는 조용 햇으니까,,,,,,,,,,,,,,가까운시일에 볼날이 잇겟지 글 읽어주어서 고마우이,,,,,이여사 쓴 글 잘보고잇네 건강ㅎ하시게나,,
시상에...을매나 힘들었을꼬.. 하나님께서 지켜주심에 감사하네....부산 어느교회 다니는데? 언제 영라이랑 같이 보자...
황후마마도 교회 다니는가보네 더더욱 반가우이 오늘우연히보아서 이제 답장을해서 미안하오 교회는 해운대 벡스코 옆 우이동교회에 다니고잇슴 언젠가 글을올렷는데 마마의 글솜씨는 대단하오 고맙다는말 다시한번하네 처가가 서울이라 볼날이 잇겟지 건강하소서 또 옆지기님의 좋은창작품의 성공을 기원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