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주님의 세례주일과 함께 주님의 공생애가 시작되며 연중1중일이 됩니다.
지난 금요일, 서방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전례가 있는 교회는 모두 예수 공현일을 지켰습니다. 공현일은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공적으로 나타나신 것을 기념하는 것과 함께 동방박사들에게 나타나심의 때를 통해 공적으로 드러나셨다는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공현일은 교회에서 마땅히 미사가 드려져야 하는 날인데, 부족한 종으로 인해 우리교회에서는 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참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66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수없이 많은 장절로 이루어진 책입니다만 그 모든 성경과 이야기들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들려지지만 요한은 예수님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한 도구임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구약은 예언과 찬양으로 신약은 그분의 행적과 말씀 그리고 사도들이 말하는 예수님과 그분의 뜻 그리고 예언을 통해 장차 오실 예수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오늘 우리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데 그 때의 장면이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 받은 후에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시는 것이 보인 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세례를 통해 입교를 확인하고 또 구원의 반열에 들었음을 선포합니다. 이는 주님의 세례를 통해 공식적으로 하늘로부터 신비한 음서을 통해 공인된 것에 따르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는 다는 것은 나를 죽인다는 것이지요.
물속으로 잠기어 나를 죽이는 행위 후에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중에서도 살아날 것에 대해 기대하면서도 죽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독교에 있어서 하느님 앞에서 죽고자 하지 않으면 살아나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가 요한을 찾아 왔을 때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수많은 사람들이 부름을 받지만 응답하는 사람은 적고 택함을 받는 사람은 더욱 적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하느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물에 잠기는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기를 버리고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자기를 버리는 것이 바로 물에 잠기는 것입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사람들은 강물속으로 잠기면서 "나는 죽고 주님만이 나를 통해 살 것입니다."라며 물에 잠기면서 기도합니다. 이러한 헌신 이후에 주님과 함께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세례를 받음으로 이제 하느님의 뜻 가운데 행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이로써 공생애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례 후에 "회개하라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며 이스라엘을 향해 외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모두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제자는 주님과 함께 그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저는 성공회대구교회에 출석하는 모든 교우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삶과 신앙의 패턴이 바뀌어야 합니다.
습관이 바뀌어야 인생이 바뀌듯 신앙 습관도 바뀌어야 합니다. 그물을 던지던 베드로가 바뀌었습니다. 세리였던 마태도 바뀌었습니다. 변화된 삶이 없이는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주님을 믿는 이들을 핍박했던 바우로도 주님을 만남을 변화되어 주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대구교회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주님께서 대구 한복판에 교회를 세우셨을까요?
제가 대구 전도를 딱 펼쳐놓고 보니 우리교회가 꼭 중앙에 놓여 있습니다.
시청은 대구의 행정의 중심이겠지만 성공회 대구교회는 대구의 선교의 중심입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선교를 위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살리기 위해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며 또한 대구지역에 아직 주님의 이름을 믿지 않는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지 않는 다면 우리교회의 존재 가치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우선 사람을 영적으로 살리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또한 육신의 삶 또한 교회로 말미암아 살아나는 회복이 있어야 합니다.
성서는 언제나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대한 구제를 통해 선교를 해 왔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한 일에 무관하다면 우리교회의 존재 목적은 반감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는 주님의 선교를 위해 존재한다 믿습니다. 또한 우리 교회가 대구의 선교의 중심에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50명되 채 되지 않는 교회가 대구선교의 중심이 된다고 선포하면 남들은 웃을 일이지만 우리는 그 일을 위해 우리 대구교회가 존재한다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저는 교우 여러분에게 제안합니다.
매월 셋째주가 되면 우리가 선교주일을 맞이합니다.
선교주일은 우리가 주님의 선교에 동참하겠다는 다짐과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헌신하는 신자가 되겠다고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대구교회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선교하기 위해 저는 대구교회에 선교차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위원들과 함께 차량을 구입하자는 결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 예산이 부족하여 그 일을 쉽게 진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월 셋째주에 선교를 위해 선교헌금과 차량헌금을 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우리교회는 선교차량을 구입하여 보다 더 활발하게 주님의 선교를 위해 헌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교주일은 우리교회의 선교를 위한 날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차량헌금과 함께 개척교회를 위한 선교헌금을 실시합니다.
한 사람도 빠지면 안됩니다.
어린아이부터 시작하여 한사람도 빠지지 마시고 선교헌금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매월 1000원도 아주 훌륭한 각오입니다. 시작이 중요합니다. 작지만 내가 드린 이 물질이 주님의 선교 사업을 위해 귀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하느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친히 사람이 되시어 하느님의 구원의 도구가 되셨듯 우리는 주님의 선교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선교를 위해 제자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세례 받으심으로 하느님의 선교의 도구가 되셨듯이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선교를 위해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우들이 하느님께 붙잡힌 사람 하느님이 찾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제가 하느님께 붙잡힌 사람, 하느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이길 더 소원합니다.
그래서 제가 온전히 하느님의 도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아직도 깨어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아직도 하느님께 온전히 드려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지난주 저는 저를 깨뜨리기 위해 무지 맞아야 했습니다. 아주 작은 돌 하나가 요로에서 저를 괴롭힌 것이지만 저는 그로 인해 하느님을 다시 만나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돌맹이 하나를 들고 다윗은 골리앗을 앞에 두고 너 자꾸 까불면 죽는다 하고 말합니다. 7척 거구가 그 작은 조약돌을 들고 서 있는 다윗이 우습게 보다가 그만 그 돌에 맞아 죽었다고 성서는 말합니다.
비뇨기과 의사는 뇨관에 박혔있는 그 돌이 크다 말하지만 1센지밖에 되지 않는 그 돌이 뭐 그리 크겠습니까?
저는 다윗이 들고 있던 돌맹이와 제 몸에 박혀있는 돌맹이가 무관치 않아 보였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하느님앞에 세워주는 가시가 있다 말씀하셨듯이 제게도 가시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 제게 작은 돌맹이 하나로 들고 서 계시니 제가 죽는다 소리칩니다.
이제껏 하느님의 방법이 아닌 제 방법으로 하느님의 뜻이 아닌 제 뜻으로 살아온 이 사람이 다윗의 돌맹이보다 훨씬 더 작은 하느님의 돌 앞에 무릎꿇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느님께 무릎꿇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위해 죽는 것은 내가 살아나는 유일한 길입니다. 주님의 선교를 위해 온전히 헌신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