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5-10-23)
< 9급 공무원 >
- 文霞 鄭永仁 -
9급 공무원은 한국의 공무원의 사회에서는 최하위 직급이다. 행정고시에 합격을 하면 5급을 준다. 또한 사법고시에 합격한 일부 사람들이 공무원으로 되면 5급 정도 대우해 주나 보다.
지금은 직장을 갖고자하는 젊은이들의 선망적인 직업이 되고 있다. 경쟁이 그렇게 치열할 수 없다. 대학 졸업 후 공무원 시험 학원에서 머리 싸매고 공부해도 하늘에 별 따기다.
정년이 60세까지 보장되고,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할 수 있으며 시쳇말로 저녁 있는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철밥통’이라는 말이 지금도 회자(膾炙)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적, 경제개발로 호황이었던 시절에는 취직을 하다하다 못해 맨 나중에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 “공무원이나 해 먹을까?”, “선생이나 할까?” 했던 직업군이다. 오죽했으면 ‘~나’가 붙었을까!
내가 교대 졸업 후, 시골로 교사 발령을 받고나서 몇 번 선을 보았다. 그 당시는 교사는 참으로 인기가 없던 하위 직업군이었다. 어느 날 나는 고졸 아가씨와 다방에서 선을 보았다.
“교사이시라면서요?”
상대 아가씨는 시큰둥하고 탐탁하지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네, 그런데요.”
“그럼 고등학교 교사이셔요?”
“아니오, 초등학교 교사인데요.”
“그래요?”
그 아가씨는 실망과 경멸에 찬 눈초리를 깔더니 그냥 헤어지고 말았다.
그러던 교사직이 지금은 희망 직업군 최상위 층으로 변하고 있다.
내남적없이 어려웠던 시골뜨기 시절, 부모님의 바램은 철도학교, 체신학교, 사범학교를 진학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는 깡촌에서 중고등학교를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행운이었다. 결국 나는 그런저런 이유 때문에 교사가 되었고, 40여년을 초등 교사를 하였다. 그렇다고 뚜렷한 교육관을 가지고 입학한 것이 아니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가르치다 보니 보람을 갖게 되고, 나 나름대로의 열정을 가지고 가르쳤다고 자부한다.
지금은 똑똑하다는 고등학생이 교대나 사범대를 갈 수 있으니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이젠 한국에서 최고의 서울대 출신이 9급 공무원이 되고, 교사가 될 수 있는 방향으로 편입하기도 한다.
9급 공무원의 초봉이 한 달에 150만원 정도라고 한다. 대기업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또 하나의 유혹은은 연금에 있지 않나 한다.
한편 걱정이 되는 것은 제법 똑똑하다는 젊은이들이 의대·법대·공무원대·교대에 몰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그런 곳으로 몰린다면 다 의사, 법관, 교사가 될 수 없을 진대…. 이런 직업군은 전문을 요하지만 도전이나 변화나 창의성과는 거리가 좀 먼 것 같다.
사실, 속 좁은 나의 늙은 생각은 우리는 너무나 잘 먹고, 잘 입고, 잘자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 아버지는 중학교 입학 신체검사 때, 팬티를 입지 못해 보자기로 가리고서 받았다는 나의 아버지 세대나 꿀꿀이죽도 제대로 못 먹던 우리 세대의 노파심인지 모르겠다.
한국의 기업인들이 어록(語錄) 중에서 1위가 현대그룹 총수였던 故 정주영회장이 말한 “그거, 해봤어?” 라고 한다. 불확실성 시대에 안정적인 직업군인 의사, 법관 , 공무원, 교사에 초등학교 때부터 매달리는 현상을 보면 정주영 회장이 말한 도전의식이나 어느 고등학교 벽에 붙은 ‘Challenge, Change, Creation’ 이 무색해진다.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자본주의 돈 위주의 사회라지만…. 꿈은 날개를 단다고 하던데.
어떤 이는 말한다. 가장 행복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과 지금 하고 있는 일’ 이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인류의 발전은 늘 도전하는 자(者)의 몫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이 나이에 나는 무엇을 도전할 것인가? 아마 틀림없이 나에게도 도전할 것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