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리포구[倉里浦口]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에 있는 포구.
개설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창리 일대는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왜현리(倭懸里)였으며 왜구의 침입이 잦아서 조선 태종 때 도비산에서 강무(講武)[왕의 친림 하에 실시하는 군사 훈련]를 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수군의 배를 매어 두던 주사창이 있어서 주사창리라 불렸던 곳으로 300년의 전통을 자랑하며 음력 정월 초사흘에 행해지는 풍어굿인 ‘창리 영신제’가 전승되고 있는 마을이다. 창리 포구는 1995년 서산AB지구방조제가 완공되기 전까지 간월도로 가는 유일한 포구였다.
변천
2005년부터 2006년 말까지 총 10억 원을 투자하여 포구 주변을 친환경적으로 복원하여 생태 환경을 조성하였으며 2005년 12월에 해양수산부가 45개 전국 연안 정비 사업 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평가에서 가장 우수한 사업 지구로 선정되었다.
구성
2010년 12월 현재 비지정 소규모 어항으로 어선 78척에 총 톤수는 135.77톤이고 평균 톤수는 1.58톤이며, 계류 시설로 108m의 선착장이 있다.
현황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약 50억 원을 들여 지역민들의 소득 증대와 해양 산업 발전을 위해 창리 포구와 간월도 일대에 1016.2㏊ 규모의 ‘체험·관광형 연안 바다 목장’을 조성할 예정이다. 해역에는 인공 어초와 바다 숲 등을 만들어 숭어, 우럭, 바지락, 굴 등의 어패류를 풀어 자연 상태에 가까운 해양 생태계를 조성하고, 바다 목장에는 테마 파크인 해상공원, 휴양 시설인 수상 펜션, 지역 어민이 주도하는 생태 체험장 등을 운영할 예정이다. 주요 어종은 대하, 전어, 꽃게 등이다.
참고문헌
「창리 포구 해안 정비 ‘전국 최고’」(『대전일보』, 2005. 12. 28)
「천수만에 체험·관광형 바다 목장 조성」(『아시아경제』, 2011. 4. 15)
「내부 자료」(서산시청 수산과 담당, 2011. 8. 26)
서산시청(http://www.seosan.go.kr/)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간월도[看月島]
간월암 낙조와 어리굴젓 그리고 철새들의 조화
간월도 개요
간월도는 충남 서산시 부석면에 속한 섬으로 면적 0.88km2, 해안선 길이 11km, 최고지점 70m이며, 71가구, 350명이 거주한다. 천수만(淺水灣) 안에 위치한 작은 섬이었으나 1984년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인해 지금은 바다가 아닌 육지로 변한 곳이다. 간월도에서 오른쪽으로 멀리 보이는 섬이 황도이며 그 뒤로 안면도의 기다란 모습도 운치 있다. 간월도 왼쪽에는 충남의 홍성 해안이, 정면에는 천수만의 마지막 섬인 죽도의 모습이 아련히 눈에 들어온다. 섬의 북쪽은 거대한 간척지로 담수호수와 농경지가 펼쳐진다.
간월도 거대한 제방 공사
천수만은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안면도와 충남 홍성 땅 사이에 자리잡은 만이다. 본래는 호수 같은 거대한 바다인데, 국토 확장과 식량 안보 차원에서 뭍으로 변하게 된 곳이다. 바다를 어디서부터 막아야 될지 몰랐는데 마치 운명처럼 양쪽 바다 중간에 위치한 곳이 바로 간월도였다. 천수만에 방조제가 건설되기 전에는 서산의 창리 포구에서 도선을 타고 간월도에 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제방 공사로 생긴 둑길을 따라서 육지와 이어졌다. 이곳 간척지를 서산AB지구라고 하는데 서산시 부석면과 태안군 남면 사이를 잇는 제방공사가 완료되면서 46백만평에 이르는 거대한 농경지와 담수호가 조성된 것이다. 매년 260여 종, 50여만 마리의 각종 철새들이 모여 들어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로 명성을 얻고 있다. 매년 가을이면 철새기행전이 이곳에서 개최되어 조수애호가 및 관광객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최종물막이공사 VLCC 제방을 잇는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남은 구간이 260m가 되었을 때에는 10톤이 넘는 바위도 밀려나가는 초속 8.2m의 유속이 나타났다. 이때 고안된 공법이 세계토목사상 유래가 없는 VLCC 유조선공법이다. 이것은 방조제 사이를 유조선으로 가로막고 유조선탱크로 바닷물을 넣어 바닥에 가라앉힌 다음 조수의 유입을 차단하여 방조제를 잇는 공법이다. 정주영회장이 고안한 공법이라 일명 정주영공법이라고도 한다. 이 공사 덕분에 오지였던 서산과 태안 지역이 새롭게 변신을 하게 되었다. 이 공사의 성공은 소위 서해안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기념할 만한 것이었다.
간월도 둘러보기
방조제에서 간월도 쪽으로 200m 정도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마을이 있다. 간월도의 자연 마을은 큰마을, 벗말, 달발굴(딱빠굴), 무당리 등 4개이다. 1982년 10월 26일 간월도 물막이 공사가 이루어지면서 그 동안 황도와 마찬가지로 서산의 창리 선착장으로 다니던 나룻배는 끊겼다. 육지로 편입된 결과다. 간월도 입구에 들어서면 큰 기념탑이 눈에 들어온다. '어리굴젓기념탑'이다. 이 탑은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세워진 음식물을 주제로 한 기념탑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매년 음력 1월 15일 '굴 부르기제'가 열린다고 한다. 굴 풍작과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300여 년째 전승되고 있는 민속 행사다. 기념탑에서 다시 안으로 들어가면 주차장과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이 공원 너머로 더 가면 내리막길이 있다. 그 앞으로 작은 섬이 보인다. 드넓은 바다와 갯벌이 어우러진 간월도는 해가 넘어가는 장면이 장관이다. 그래서 사철 간월도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일몰의 장관, 간월도 간월암
간월도에 가면 물위에 떠있는 신비하고도 아름다운 암자를 하나 만날 수 있다. 원래 간월도는 작은 섬이었다.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해도 섬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간월도에는 새끼 섬이 하나 있다. 이 새끼 섬은 하루 두 번씩 밀물과 썰물 때 30m 정도의 모래톱 길이 열려 섬과 육지가 된다. 손바닥만 한 이 섬에 조막만한 '간월암(看月庵)'이 들어앉아 있다. 바다 위의 작은 섬 간월도와 그 안에 있는 작은 절 간월암은 밀물과 썰물 때 섬과 육지로 변화되는 보기 드문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 간월암 너머로 간월도의 명품인 일몰의 경관이 펼쳐지고, 가을이 되면 군무를 통해 새들의 천국을 이룬다.
▲간월암
간월도는 '달빛을 본다'는 뜻으로, 조선시대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달빛을 보고 득도했다 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무학대사는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어머니 등에 업혀 이 섬으로 들어오게 된 어린 무학대사가 이곳 토굴에서 달빛으로 공부를 하다가 천수만에 내리는 달빛을 보고 깨우침을 받았다고 한다. 나옹스님은 득도한 그에게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하여 법명을 무학(無學)이라고 지어 주었다고 전한다. 깨달음을 얻어 그 후 이 절은 간월암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섬 이름도 간월도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임현담의 '우리 사찰'중에서 나온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간월암은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덕숭총림 수덕사의 암자로, 고려 말 무학대사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무학대사가 출가 후에 이곳 암자에서 정진 중 달을 보고 오도했다 해서 간월암이라 칭하며,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기도 정진으로 가피를 입고 조선을 세웠다는 유서 깊은 서해의 수행성지이다. 이후 근대 한국선의 중흥조인 만공선사께서 간월암에 주석하시면서 수행정진하셨고, 또한 벽초스님, 서해스님, 진암스님 등이 수행정진하시던 곳이다. 그리고 수덕사의 방장이신 원담스님께서도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주석하시면서 1,000일 기도(2차대전 중 인류의 재앙을 그치게 하려는 염원으로)를 봉행하셨고, 기도 회향 3일 만에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이하게 된 일도 있었던 역사 깊은 암자이다. 간월암은 다른 암자와는 달리 간조 시에는 육지와 연결되고 만조 시는 섬이 되는 신비로운 암자로, 만조 시에는 물위에 떠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간월암은 원효대사가 세운 5대 사찰 중의 하나였다는 풍문도 있다. 무학대사는 이 지방 출신이다. 간월암에서 멀지 않은 충남 서산군 인지면 모월리가 고향이다. 고향에서 멀지 않은, 인적이 끊긴 섬인 간월암에서 수행하다가 깨달음을 얻었다. 후에 이 태조가 이 일대를 국사인 무학대사에게 드린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선시대의 배불정책으로 피폐되더니 결국 안동 김씨 소유로 남게 된다. 1941년 당시 수덕사에 주석하시던 만공스님이 천일기도와 우여곡절 끝에 되찾아 간월암을 다시 일으킨다. 이 후 이름만으로 정신이 번쩍 드는 경봉, 춘성, 효봉, 금오, 성철스님 등이 간월암에 수행의 족적을 남긴다. 간월암은 500년이 넘는 고찰이지만 그 연륜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서 많이 아쉽기도 하다. 이런 사연을 대강 알고 나서 간월암을 찾으면 한층 더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만조 시 물이 차 암자가 물 위에 떠 있는 듯 신비로운 경관
간월암은 커다란 바위 전체에 아담한 암자가 자리하고 있어 만조 시 물이 차면 마치 암자가 물 위에 떠 있는 듯 신비로운 경관을 만들어내는데 일몰 풍경이 특히 아름다워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다. 섬의 남쪽 바위 위에 암자가 있다. 북쪽으로는 나무들이 있어 전각들을 보호하고 있다. 모래톱을 지나서 오르막길 끝의 조그만 절 대문으로 들어서면 정자모양의 2m 정도 되는 종각에 종이 하나 있다. 해탈문을 거쳐 간월암 마당으로 들자 250년생 사철나무가 푸른 빛을 자랑한다. 대웅전, 지장전, 요사채, 용왕단, 종각, 산신각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촛불을 밝히고 소망을 빌면서 진리를 찾는다. 간월암은 이후 조선왕조의 억불정책으로 폐사된 것을 1941년 만공선사가 중창해 오늘에 이른다.
분주한 간월도 물양장
간월항은 간월도의 남쪽 지점에 위치한 어항으로 큰 배들도 많고 물양장도 상당히 넓은 편이다. 왼쪽으로 길게 이어진 방파제가 있다. 이 방파제를 따라 계속 가면 방파제 끝이고, 오른쪽으로 길게 이어진 실처럼 가늘게 이어지는 방조제가 서산B지구 방조제이다.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맞은편이 안면도이고 그 앞에 황도가 보인다. 이곳 방파제는 직각이지만 반대편의 방파제는 경사제다. 이 앞 계류장 해역은 상당히 넓은 편이다. 이곳에서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면서 생선회를 먹을 수 있다. 노을이 지는 저녁이면 그만이다. 회를 먹다가 저녁 노을빛에 밥맛을 잃어버려 일몰이 멋진 날이면 거래상이 줄기에 상인들의 불만의 대상이 될 정도라고 한다. 물양장으로 나오면 주변에 빈 소라껍데기를 그물에 이은 것들이 많이 쌓여 있다. 쭈꾸미를 잡기 위한 어구라고 한다. 쭈꾸미가 빈 소라껍데기를 집으로 생각하고 들어간 것을 잡는 방식이다. 물양장은 매축한 것인지 상당히 넓은 편이다. 주변에는 각종 횟집들이 들어서 있다. 선착장에서 나오면 바로 해안이다. 이곳에도 제법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해변이 나타난다. 방조제까지 이어지는 반원형의 해변이다. 이어 조금 더 나오면 입구다. 바로 기념탑이 있는 곳이다. 여기서부터 길은 갈라진다. 아마도 섬의 곶 지점에 해당할 것 같은데 올 때 들어왔던 그 길이다. 여기서 길이 남북으로 갈리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해서 나가면 '간월교차로'로 이어지고 왼쪽으로 난 길을 가면 '간월영농교차로'로 연결된다. 간월교차로로 이어지는 길 이름은 '간월도2길'이고 영농교차로로 이어지는 해안길은 '간월도1길'이다.
여기서 해안도로를 타고 계속 간다. 섬의 서쪽 지점에 해당한다. 조금 더 가면 오른쪽에 버스정류소가 있다. 그 옆으로는 또 다른 길이 이어지는데 남북으로 갈리는 길이다. 이 길로 해서 나가면 왼쪽은 농경지, 오른쪽은 언덕이다. 언덕 위에는 '간월도맛동산'이라는 건물이 들어서 있다. 왼쪽 나대지에는 잡초들과 함께 모형으로 된 백마 몇 마리가 있다. 이 지역 역시 매립을 통해 이루어진 나대지인 듯싶다. 해안도로를 따라 계속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골목길이 있는데 학교로 이어지는 길이다. 밭을 낀 골목길을 계속 오르면 앞에 학교가 보인다. 학교 담장에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예술꽃 씨앗학교 공모'에 선정되었다는 안내현수막이다. 주변에는 학교환경 위생정화 안내문이 걸려 있다. 부석초등학교 간월분교장이다. 서산 부석초등학교는 1922년에 개교한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진 학교다. 간월분교는 원래 황도초등학교 분교장에서 1984년 부석초등학교로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단층 교사 주변에는 운동장과 축구골대 등이 있을 뿐 특별한 조형물은 없었다. 학교 앞에서 길은 갈린다. 삼거리로 오른쪽은 또 다른 마을이 있는 길로 넘어가는 길이고, 왼쪽은 교회로 이어지는 길로 '간월달밭길'이다. 여기서 이 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큰 교회건물이 보이는데 구세군교회다. '구세군간월도영문'이라고 되어 있다. 이 앞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나오면 다시 해안길. 간월도1길이다.
간월도 어리굴젓
간월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자연산 굴이다. 어리굴젓 앞에 간월도가 붙어야 명품다울 수 있을 정도이다. 아주 가난하던 옛날부터 간월도 주민들을 풍성하게 한 것은 굴이고, 지금도 이곳을 찾아오는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 것도 역시 굴이다. 개펄 속에서 장기간 성장한 굴이니 그 맛이야 얼마나 좋으랴. 오죽했으면 그 수많은 축제 중 간월도 굴축제가 있겠는가. 이 축제는 '굴부르기'란 축제인데 정월대보름날 갯벌에서 나오는 굴의 풍년을 기원하면서 아낙네들이 펼친 '굴부르기 놀이'가 오늘날까지 전통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굴이 성한 만큼이나 각종 물고기, 철새 그리고 늘 사람들로 북적대는 섬이다. 조선시대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렸던 진상품으로, 서산 굴은 색깔이 거무스레하고 알이 작은 편이다. 다른 지역 굴과 달리 몸에 물날개(미세한 털)이 많이 돋아 있어 양념이 고르게 배이기 때문에 발효가 잘 되어 맛이 뛰어나다. 강장식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서산 어리굴젓은, 임금님이 드시던 그 맛 그대로 서해안 갯벌에서 채취한 자연산 굴과 천일염 등 신선한 재료에 정성을 더하여 만든다. 그래서 이곳 간월도 어리굴젓은 간월암을 찾는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기에 안성맞춤이다. '간월도 어리굴젓'이 서산의 특산물이라고 상표가 붙을 정도이다. 물양장의 노점에서는 어리굴젓과 새우젓 등 각종 젓갈을 만들어서 병에 넣어 팔고 있다.
간월도에서의 젓갈의 역사는 확실하지 않지만 약 600년 정도의 오랜 역사를 가졌다는 설이 있다. 지금은 간척 공사 때문에 절반 정도로 갯벌 면적이 줄었다. 그래도 아직 주위에 있는 91ha의 굴양식장에서는 다른 지역 농어촌의 평균보다 그 이상의 소득을 올린다. 이곳 간월도의 어리굴젓이 널리 알려진 것은 해미의 가야산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서해의 갯벌에서 만나 굴이 성장하기에 안성맞춤인 환경을 갖추고 있는데다 물날개가 많은 굴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굴을 따는 시기는 보통 11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약 6개월 정도이며, 물이 빠지는 시간에 맞추어 개펄에 나간다. 굴은 대부분 여자들이 갯벌에 나가 채취하는데 한 달에 약 20일 정도 작업을 한다.
바닷물이 빠지는 오전에 어촌계원들은 갯벌에서 하루 6~7시간 정도 일을 한다. 1인당 하루 채취량은 약 10킬로그램 내외이다. 시세가 늘 다르지만 어촌계에서는 이 굴을 1킬로에 만원 정도를 주면서 전량 수매를 한다. 일반인이 매장에서 이런 굴을 사려면 1킬로에 보통 1만 3,000원을 줘야 한다. 사실 갯벌에서 굴을 따는 작업은 굉장히 힘이 든다. 차갑게 불어오는 서해의 칼바람을 어디에도 의지하지 못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푹푹 빠진 갯벌에서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이곳 아주머니들은 허리가 아플 때가 많다. 갯벌에서 벌어지는 작업이니 식사를 하기에도 어렵고 생리적 문제도 해결하기 곤란하다. 그래도 갯벌이란 농토에서 이만한 수입을 올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육지에서 농사를 짓는 것보다 훨씬 수입이 좋아서 이런 추위쯤이야 하면서 굴을 건져 올린다. 물때에 따라서 다르지만 오전 8-9시에 작업을 시작하면 오후 2-3시에 밀려들어오는 바닷물에 쫓겨 그때야 끝이 난다. 육지에서 농사는 저녁이 되면 끝이 나지만, 바다는 물때에 따라서 일을 마친다. 이 일은 누구나 참여할 수 없고, 반드시 어촌계원이 되어야 한다. 어촌계원 자격은 예부터 간월도에서 살아온 사람에 한해 부여한다. 외지인이 들어오려면 10년 이상 거주해야 어촌계원이 될 수 있다. 제1종 공동 어장은 500ha, 바지락 양식장은 30ha, 가두리 양식장은 2ha이다. 이중 어촌계에서 관리하는 어장은 굴양식장이다. 천수만의 대규모 간척 사업으로 굴밭 9ha가 졸지에 사라졌다. 전성기 때는 연 100톤 정도로 전국 생산량 80%를 차지하던 간월도 어리굴젓이 이제 많이 줄어든 셈이다.
그런데 4년 정도 천수만 간척 사업장에서 품을 팔면서 어렵게 살아오던 주민들에게 다시 새롭게 변한 천수만의 생태계에서 굴이 생겨난 것은 85년도 중반쯤이다. 간월도 남서쪽 갯벌에서 간혹 굴이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86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굴 생산이 시작되었다. 종패를 뿌리지 않고 저절로 갯벌이란 농토에서 자라나는 것이니 주민들에게 더한 선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죽었다가 다시 만난 자식처럼 자연은 또 다른 방법으로 간월도 사람들에게 축복을 주었다. 간월도 어촌계 앞마당에는 굴 수매작업을 위해 저울과 깡통이 놓였다. 어촌계원들의 수확은 보통 10-12킬로 정도이다. 자기가 가져온 양을 확인한 아주머니들은 마을 골목길을 따라서 자기 집으로 걸어간다. 이 굴을 가공공장에서 바닷물에 잘 씻어서 깐 다음, 10% 정도의 천일염을 섞어서 약 20°C 정도의 온도에서 2주일 정도 발효시킨다. 간월도 어리굴젓은 씹을 때 매콤하면서도 톡 쏘는 뒷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또 은행, 호두, 대추 등을 넣어 많든 영양굴밥도 좋다. 굴밥에 어리굴젓을 얹어 먹는 맛도 그만이다.
철새들의 고향 간월도 천수만
간월도는 신비한 섬으로 간월암의 풍광과 어리굴젓의 맛을 찾아 사람들이 모인다.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라 천수만이 기다란 방조제에 가로막혀 있기에 물고기들이 알을 낳으려 모여들고, 이제는 철새들까지 대규모로 몰려들고 있다. 천수만(서산 AB지구)은 1984년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생긴 담수호이고, 이로 인해 주변에는 과거에 갯벌이던 곳이 대단위 농경지(6,400ha)가 되었다. 바로 이곳이 월동조류의 새로운 서식지로 부상하게 되었지만, 이로 인해 과거 갯벌에 살던 수많은 낙지와 게 등 자생생물은 급감하고 산란지가 파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대신 철새의 이동 장소로, 수많은 철새를 탐조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특히 대규모 논농사로 인한 낙곡과 담수호의 식물과 어류, 갈대 숲 등이 생겨났고 거기를 새들이 즐겨 찾아오고 있다.
▲간월도를 찾은 철새들
천수만(여의도 면적 17배)은 해마다 가창오리, 큰기러기, 말똥가리, 알락꼬리마도요, 노랑부리저어새, 황새, 장다리, 물떼새, 호사도요, 흑두루미, 큰고니, 가창오리 등 40-50만 마리 철새들이 모여드는 세계적인 철새의 고향이다. 특히 30km 정도인 간월호 제방 주위는 철새들의 낙원이며 삶의 터전이다. 천수만에서는 해마다 펼쳐지는 철새탐조가 매우 감동적이다. 곳곳에 설치된 조망대에서 편한 마음으로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다. 허공을 가르는 철새들의 날갯짓과 새의 울음소리는 멀리 시베리아 벌판에서 무사히 날아온 것을 자축이라도 하듯이 힘차다. 큰기러기떼의 날아가는 모습은 어디로 갈지 모를 정도로 무질서하지만, 서로 몸뚱이를 부딪치는 일없이 능수능란하게 날아간다. 천수만의 대표적인 철새는 가창오리이다. 이 오리는 기러기목 오리과의 조류로, 몸길이가 약 40cm, 날개길이는 약 21cm이다. 가창오리는 러시아의 시베리아에서 겨울이 되면 먹이를 찾아서 천수만까지 날아온다. 천수만에서 11월 중순까지 지내다가 다시 남쪽으로 이동해서 금강 하구와 해남 고천암호에서 한겨울을 지낸다.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추어 간월호의 가창오리떼가 무리를 지어서 먹이를 찾아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를 때면 4~5km 정도의 대열을 지은 채 거대한 군무를 펼친다. 무리지어서 펼쳐지는 가창오리의 군무는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화려하고 가슴 벅차다.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그 어떤 문명이나 예술 작품보다 감동적이다. 약 40분 정도의 화려한 군무를 연출한 가창 오리떼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 어디에서 돈을 주고도 볼 수 없는,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공연은 막을 내린다.
▲천수만 일몰
이 가창오리의 수컷은 얼굴 앞쪽 절반이 노란색이고, 중앙의 검은 띠를 경계로 하여 뒤쪽 절반은 녹색으로 윤이 난다. 부리는 검고, 홍채는 갈색이며, 다리는 회색이 도는 노란색이다. 암컷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갈색이며 배를 제외한 몸 전체에 붉은 갈색의 얼룩무늬가 나 있다. 뺨과 멱, 눈 뒤쪽은 노란색이고 검은 무늬가 있으며 배는 흰색이다. 부리가 시작되는 부위에 흰 점이 뚜렷하다. 4~7월에 6~9개의 알을 낳는데, 알을 품는 기간은 약 26일이다. 시베리아 동부에서 번식하고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서 겨울을 난다. 세계적인 희귀조로서 '멸종위기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에 수록되어 전세계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작은 섬 간월도는 고사찰과 전통문화, 세계적인 철새도래지 그리고 갯벌 등 우수한 관광자원이 있는 곳이다.
출처:(한국의 섬 - 충청남도)
2024-05-11 작성자 청해명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