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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정월, 대보름 풍속에 나타난 우리의 농경문화
ysoo 추천 0 조회 80 15.03.05 13:4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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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풍속에 나타난 우리의 농경문화

 

한 해가 시작되는 정월은 가정이나 마을에서 차례를 지내고 놀이를 통해 친목을 다지고 탈춤과 같은 연희가 전개되기에 마음이 넉넉해지고 더불어 즐기는 풍성한 달이다. 새해 아침을 맞이하면 일가친척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고 나면 어른께 세배를 올리고 덕담을 들으며 첫날을 보내는 풍경이 우리의 모습이다.

겨울은 농한기이기에 바쁜 일손에서 벗어나 이웃과 친족이 모여 화목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어린이는 연날리기, 팽이치기, 널뛰기 등을 즐기며 며칠간 흥겨운 시간을 보낸다. 정월 대보름을 맞이하면 마을 사람들이 동제를 지내고 이웃마을과 편을 짜고 줄다리기, 석전, 쥐불놀이 등을 하면서 한 해의 풍흉을 점쳐보기도 한다.

이렇듯 정월은 농경생활을 배경으로 다양한 풍속이 행해지기에 우리 전통문화의 근간이 되는 농경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설날에 빼놓을 수 없는 관습은 차례·떡국·성묘라 할 수 있다. 차례는 조령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난 후에 조상의 묘지를 찾아가 예를 올리는 일이다. 에로부터 정월 차례에는 흰떡을 썰어 꿩고기로 국물로 끓여 만든 떡국으로 차례를 지내고 나서 친족이 모여 함께 떡국을 먹는다. 따라서 설날은 조상과 쌀로 빚은 떡과 깊은 관련이 있다.

조상은 쌀 즉 곡물에도 영(靈)이 잠재해 있는 것으로 여겨왔으니 이를 곡령이라 한다. 곡령은 조상의 영혼인 조령(祖靈)과 동일한 존재로 믿어왔다. 그러기에 추석에는 햇곡식으로 떡을 빚어 차례를 지내는데 일찍이 여문 벼는 조령이 방문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곡물을 수확한 후에는 햇곡식을 ‘성주단지’ 또는 ‘조상단지’에 넣어두었는데, ‘조상단지’로 부르는 것은 조령과 곡령을 동일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설날에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 것으로 여기는 것도 떡에 잠재한 상징적 가치를 인정하는 데서 비롯된 풍속이라 할 수 있다. 설날에 떡국을 먹고 조상제사를 지내는 관행은 쌀에 깃든 곡령신앙에서 비롯된 것으로 벼농사를 주로 하는 도작문화를 배경으로 전승되어온 세시풍속이라 할 수 있다.

현대에도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밥이 보약이다”라고 하거나 “밥을 꼭 챙겨먹으라”고 한 것은 쌀이 영양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보다도 쌀이 갖고 있는 영적인 힘을 얻어 일하라는 의미가 있다.

 

 

 

 

한편 정월 대보름날에는 오곡밥과 나물을 먹는다. 아침에 부럼을 깨물어 먹으면 한 해 동안 건강하다고 한다. 오곡은 기장·피·콩·보리·벼 등을 말하기도 하는데 지방에 따라 조 또는 밀을 꼽기도 한다. 잡곡은 논에서 재배한 농작물이 아니라 산지의 밭에서 재배하는 곡물이다. 나물은 버섯·박나물·콩나물·고사리·무순 등 말리어 저장해 두었던 묵은 나물을 먹는다. 이러한 오곡과 나물은 모두 산에서 재배하거나 채취하여 얻은 것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쥐불놀이나 동화제 등의 불 행사는 산지 화전민의 농경세시와 관련이 깊다고 말할 수 있다.

 

정월 대보름의 대표적인 놀이로 쥐불놀이가 있다. 쥐불놀이는 보름달이 뜬 밤에 아이들이 모여서 미리 만들어 놓은 횃불로 논둑이나 밭둑의 잔디나 잡초에 불을 놓으며 논다. 때로는 이웃마을 아이들과 큰 내의 둑이나 다리를 경계로 쥐불싸움을 하기도 한다. 쥐불놀이는 농작물이나 곡물에 피해를 가져다주는 병충해나 쥐의 피해로부터 방지하기 위한 놀이로 잡초를 태운 재가 봄에 새싹이 날 때에 거름이 되도록 하는 놀이로 알려져 있다.

아이들이 하는 놀이는 대부분 아이들만이 갖고 있는 영력 즉 성장력을 기대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성인은 이미 다 성장하였지만 아이들은 앞으로도 쑥쑥 성장할 수 있는 영력을 갖고 있기에 곡물이 아이처럼 잘 성장하도록 기원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쥐불놀이가 한해의 곡물을 병충해로부터 방지하고 농작물이 성장하기를 기원하는 놀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불을 갖고서 놀아야하는가에 대한 명쾌한 답이 되지는 못한다.

 

충청남도 청양군에는 정월 대보름에 마을사람들이 모여 동화제를 지낸다. 동화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동화대를 만드는데, 산에서 나무를 베어와 4-5m 높이로 논의 한가운데 세워놓고 덩굴나무 줄기와 새끼로 동여 묶어 놓는다. 동화대 주변에는 황토를 뿌린 다음에 짚과 멍석을 깔고 술, 과일, 명태, 밥, 떡 등을 제물로 차려 놓는다. 동화대 꼭대기에 불을 붙이면 점차 불꽃이 나면서 동화대 아래로 타들어 가면 제사를 지낸다.

동화제는 불이 잡귀를 쫓아내는 강한 힘이 있다고 믿음을 바탕으로 한 제의라 한다. 정월 보름날의 불과 관련된 놀
이나 제의를 동아시아의 대보름의 불 행사와 비교한다면 동일한 계통으로 산지 화전민이 산에 불을 놓고 밭으로 농경지를 개간하는데서 유래된 것으로 학계에 알려져 있다. 휴경농법을 하는 화전민은 불로 새로운 농토로 만들기에 불은 갱신력이 있는 것으로 믿어 불과 관련된 행사를 지내고 있다. 따라서 쥐불놀이나 동화제 등의 불 행사는 산지 화전민의 농경세시와 관련이 깊다고 말할 수 있다.

 

 

 

 

정월 대보름은 잡곡밥, 부럼, 불놀이, 가장놀이 등이 주요 행사로 산지 화전이나 밭농사를 하는 농경민의 정월의 세시풍속이었던 특징이 있다.

 

정월 대보름에 가장놀이를 한다. 탈놀음의 가장 오래된 형태로 알려진 안동의 하회탈놀이는 섣달 보름날 제사에 산주가 당에 올라가서 소반에 정화수를 올리고 강신을 빌고 신의를 묻고 나서 시작된다. 이때 소반이 흔들리면 신탁이 내린 것으로 여겨 하산하여 마을 어른에게 알리고 동의를 얻고 별신굿준비를 한다. 섣달그믐부터 보름간 광대를 불러 별신굿과 탈놀이를 한다. 가장놀이로 거북놀이와 소놀음굿이 있다.

경기도와 호남지방에서 정월 보름이나 추석에 멍석이나 수숫대로 거북이나 소의 형태로 가장하여 마을의 각 집을 방문하며 집안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해준다.
거북이나 소는 수신 또는 농신으로 믿어 왔기에 동물형상으로 가장하여 집을 돌며 새해에 축원을 해주는 놀이이다. 중국의 가장놀이는 운남성을 중심으로 산간 농경민이 행하던 놀이가 중국전역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이와 같이 정월 대보름은 잡곡밥, 부럼, 불놀이, 가장놀이 등이 주요 행사로 산지 화전이나 밭농사를 하는 농경민의 정월의 세시풍속이었던 특징이 있다. 정월 첫날 가래떡과 조상제사를 지내는 것은 벼농사민의 행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월의 세시풍속은 도작 농경민과 화전 농경민의 행사로 대비되어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겨울에 맞이하는 정월은 농사의 휴한기에 새해를 맞아 한 해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축제의 장이다. 새해 첫날에는 가족과 친족이 모여서 덕담을 나누며 조상을 모시고 화목을 나누는 자리이다.

보름날에는 이웃과 더불어 삶의 공동체라는 의식을 강화하고 모두가 화합하는 열린마당이 되었다. 정월에 행하는 민속에 우리 선조들이 화전 농경에서 벼농사로 발전하였던 농업사에 관련된 단면이다. 정월의 세시풍속은 점차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지만 가족과 이웃이 모여 화목한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

 

글 임장혁 중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

 

월간 문화재 _____ 2015. 01 __

Korea Cultural Heritage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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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전승놀이

 

 

정월놀이에는 연날리기?널뛰기?다리밝기(踏橋)?횃불싸움?돌싸움?車戰?회회(回回)가 기록에 보인다.


연날리기는 섣달 중순께부터 시작하여 정월 대보름날에는 送厄으로 날려보낸다. 연에다 이름과 생년월일시를 쓰고 연이 높이 올랐을 때에 실을 끊으면 연이 한없이 날아가는데 그 해에 든 액을 모두 싣고 가서 무병태평하라
는 것이다. 연날리기는 엄동에 야외에서 놀기 때문에 추위를 이겨내는 체력과 정신력을 기르는 심신단련의 좋은 운동이 되었다.


널뛰기는 소녀들이 하는 정초의 놀이이다.

운동이 부족한 소녀들에게 다리를 튼튼하게 단련시키는 좋은 운동이기에 주기적으로 권장되었다.

어린아이들은 5색의 종이로 팔랑개비를 만들어 풍향에 따라 돌게 하여 즐겼으니 回回兒(회회아)라 불렀다.

또 실줄 끝에 거위털을 잡아매고 바람에 따라 날리는 놀이가 있었으니 姑姑妹(고고매)라 불렀다

 

청소년들은 돈치기(擲錢)를 즐겼다. 5미터쯤 떨어진 땅바닥에 구멍을 파고 편을 갈라 돈을 그 구멍 속에 던져 넣는 것으로 승부내기를 해서 이긴 사람이 돈을 소유한다.


대보름 초저녁 달이 떠오를 무렵 젊은 남녀들은 달맞이를 하기 위해서 가까운 산이나 언덕 위로 올라간다. 새해 들어 첫 만월이라는데 의미가 있었고 달을 먼저 보면 길하다고 하여, 각자 소원을 달에게 비는 일도 있었다. 학동들은 문장이 늘기를 빌었고, 소녀들은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빌었다. 또 달의 색깔을 보아 일년 신수와 농사의 풍흉을 미리 점치기도 하였다. 야외에 나아가 달맞이하는 즐거운 놀이였다.

 

대보름날 밤에는 다리밟기놀이를 하였다. 나이 수대로 다리밟기를 하면 좋다고 하여 이웃 마을까지 가서 다리를 밟아 수를 채우거나, 같은 다리를 몇번이고 왕래하면서 수를 채우는 일도 있다. 다리밟기를 하면 다리가 튼튼해
져서 병을 앓지 않으며 건강해진다는 데서 세시풍속으로 정착되었다. 서울의 水標橋?廣通橋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혼잡을 이루어 관에서 금지시키는 일도 있었다.

 

서울 3문 밖 사람들과 아현동 사람들이 만리고개(萬里峴)에서 몽둥이를 들고 돌을 던지면서 싸웠으니 石戰이다. 안동지방에서도 정월 16일에 돌싸움을 하였는데 그 승패로 농사의 길흉을 미리 점치기도 했다. 석전은 부상자도 나는 위험한 놀이였으나 젊은이들은 마을의 명예를 걸고 용감하게 싸웠다.

또 대보름밤에 청소년들이 긴 횃대에 불을 붙여 논두렁?밭두렁을 불태우는데 이 때에 이웃 마을 청년들과 마주치면 횃불싸움으로 발전한다. 옷에 불이 붙고 화상을 입는 수가 있지만 용감하게 싸웠다. 심신이 단련되고 진취의 기상을 길렀다.

 

춘천지방에서는 車戰놀이가 있었는데 외바퀴였으며 그 승패로 농사의 풍흉을 미리 점쳤다. 영남지방에서는 칡으로 동아줄을 만들어 줄다리기(索戰)를 하였고 그 승부로써 농작의 풍흉을 점쳤다. 안동지방에서는 밤에 부녀자들에 의해서 놋다리밟기놀이가 행해졌다. 여인들이 골목길에 열을 지어 늘어서고 허리를 굽히면 그 위에 특별히 뽑힌 어린 소녀가 허리 굽힌 사람의 등을 밟고 앞으로 간다.

이 때 ‘놋다리야 놋다리야/이 다기가 뉘 다리고/나라님의 옥다릴세' 라고 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밤 늦도록 논다.
이상은《동국세시기》에 기록된 놀이이다.

이 밖에도 雙六?陞卿圖?投??旗歲拜?木牛戱등이 있었고, 장기?바둑?장치기?고싸움?가마싸움? 서당놀이?팽이치기?공기놀이?제기차기?어름타기 등이 있었을 것이다.

 

 

2월의 놀이로 영남과 제주도에서는 燃燈놀이가 있었다.

연등은 風神으로,하늘에서 초하룻날 내려왔다가 보름날이나 20일에 하늘로 올라가는데 그 사이에 무당을 불러 굿을 한다. 제주도에서는 金寧?歸德등지에서 장대 12개를 세워 놓고 신을 맞이해서 제사를 지냈다.

涯月지방에서는 나무로 말 머리를 만들어 채색비단으로 꾸며서 躍馬戱(약마희)를 했다.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름날까지 하였는데 연등이라 했다.

 

3월의 놀이에는 花煎?花柳?각시놀이가 있다. 화전은 산에 가서 진달래꽃을 따서 찹쌀가루에 반죽을 하여 둥근 떡을 만들고 기름에 지져서 만드는 것이다. 혹은 진달래꽃을 녹두가루에 반죽해서 만들기도 한다. 봄을 맞아 마을 친구끼리 미리 통문해서 화전을 만들어 먹고 봄의 경치를 완상하면서 흥에 젖어 하루를 즐기는 것이 화전놀이이다.

화전을 만들면서 부른 민요로서 화전노래가 많이 전하는데 여성시가문학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서울에서는 산 언덕이나 물 좋은 냇가에 가서 하루를 조촐하게 노는 것이 화류놀이이다. 삼짇날 踏靑하는 데서 유래하며 弼雲臺의 살구꽃, 北岳의 복숭아꽃, 興仁門밖의 버들이 경치가 좋아 사람들이 많이 찾는 화류처였다.
궁사들이 활쏘기대회를 하는 것도 이 때였다. 편을 갈라 활을 쏘아 승부를 내고 음주를 즐겼는데 가을에도 대회를 열었다.

 

소녀들은 푸른 풀을 뜯어 머리채를 만들고 나무를 깎아 머리채를 붙인 다음 붉은 치마를 입혀 인형을 만들고 각시라고 부르는 놀이를 즐겨했다. 소년들은 버들가지를 꺾어 호드기를 만들어 소리를 내며 놀았다.

소박한 음을 내지만 농촌에서 즐기기에는 충분했다. 이것을 柳笙이라 하였다.

 

 

 세시풍속

 

새해의 첫날 설날의 행사는 차례?세배?성묘로 이어지니 조상숭배의식으로부터 시작된다. 각 가정에서는 설빔으로 갈아 입고 사당에 제사지내는 것을 차례라고 하는데 기제사와는 달리 單盞(단잔)으로 4대를 지낸다.

제사가 끝나면 長幼의 서열에 따라 어른께 새해 첫 문안의 절을 하는데 세배라 한다. 세배가 끝나면 음복으로 떡국을 먹고 반주를 한잔 마시니 세주이다. 그런 다음에 일가 어른과 마을 어른을 찾아가서 새해 세배를 드린다. 유교에서는 예의를 으뜸으로 삼았으니 새해의 첫 행위는 의례로부터 시작되고 인간 교양의 기본으로 여겼다.

 

조정에서는 의정대신 이하 모든 관원들은 대궐에 나아가 문안을 드리고 正殿에 나아가 朝賀를 올렸다. 8도리 관찰사?병사?수사?목사도 箋文과 방물을 바치며 주?부?군?현의 호장도 모두 와서 班列에 참례하였다.

 

 

<용호문배도>(세화), 조선 후기, 종이에 채색, 80×144㎝, 에밀레박물관 소장. 호랑이와 용을 한 폭에 그린 세화로, 호랑이의 용맹함과 용의 신령스러움을 빌려 나쁜 기운을 쫓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圖畵署에서는 壽星?선녀?直日神將의 그림을 그려서 임금에게 올리고, 서로 선물하는데 歲畵라고 했다. 대궐 대문에는 세화로 門拜를 하는데 金?甲의 두 장군상을 그려서 붙이고, 붉은 도포와 까만 상모를 쓴 상을 그려 궁궐의 겹대문에 붙였다. 또 鍾?(종규)가 귀신을 잡는 그림을 문에 붙이고 귀신의 머리를 그려 문설주에 붙이기도 하였는데. 모두 액과 나쁜 질병을 물리치고자하는 주술적인 뜻이 있었다.

 

朝官과 命婦로서 나이가 70세 이상 된 사람에게는 새해에 쌀?물고기?소금 등을 내리고, 조관으로 80세가 된 사람과 백성으로 90세가 된 사람은 한 등급을 올려 주었다. 특히 100세가 되면 한 품계를 승진시켜 주어 대접했다.
노인을 우대하는 제도가 있었던 것이다.

 

항간의 백성들 가정에서는 호랑이와 장닭그림을 대문이나 벽에 붙였으니 대궐에서와 마찬가지로 ?邪(벽사)의 뜻이 있었다.

 

남녀간에 三災를 당한 사람은 매 세 마리를 그려 문설주에 붙이면 재액이 없어진다고 해서 성행했다.

삼재란 巳?酉?丑의 해에 태어난 사람은 亥?子?丑이 되는 해에, 申?子?辰이 든 해에 태어난 사람은 寅?卯?辰이 든
해에, 亥?卯?未의 해에 태어난 사람은 巳?午?未가 든 해에, 寅?午?戌의 해에 태어난 사람은 申?酉?戌해에 각각 삼재가 든다는 것이니 재액을 막기 위해서 벽사를 하였다.

삼재는 9년마다 들고 삼재가 든 해에는 무슨 일이고 자중하고 근신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정초에 세배꾼들이 찾아오면 좋은 일이 있도록 덕담을 하고 벽사하는 좋은 말로 축하하고 격려를 했다.

 

설날 아침에 복조리를 사고, 첫번째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일년 있을 길흉을 점치는데 聽讖(청참)이라고 했다.

까치를 吉鳥로 여겼기 때문에 설날 맨 먼저 까치소리를 듣는 것을 대단한 吉兆로 여겼다.

 

옛날에는 남녀 모두 머리털을 자르지 않아서 빗질을 할 때면 머리털이 빠지게 되는데 이것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다가 설날 황혼이 질 무렵에 문 밖에서 태우면 나쁜 질병이 물러간다고 하였는데 燒髮(소발)이라고 했다.
머리카락 하나라도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소중하게 여기는 생각과 벽사사상이 함께 작용한 것이다.

 

설날 밤 하늘에서 夜光鬼란 귀신이 인가에 내려와서 아이들의 신을 신어보고 제 발에 맞는 것이 있으면 신고 간다고 하였다. 신을 잃은 아이는 일년동안 신수가 좋지 않다고 하여 신발을 방안에 들여놔 감추고 잔다.

야광귀를 예방하기 위해서 뜰에 장대를 세우고 꼭대기에 체를 달아매 둔다. 그러면 야광귀가 내려와서 체의 눈(구멍) 수를 헤아리게 되는데 구멍이 너무나 촘촘히있어 한참 세다가 어디까지 세었는지 알 수 없이 되어 처음부터 다시 세게된다.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사이에 날이 새게 되어 미처 신을 가져가지 못하고 하늘로 되돌아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설날 여러 절에서는 승려가 法鼓를 치고 내려와 염불을 하고 방울을 울리면 사람들이 돈을 준다. 또 상좌승이 齋를 올리고 민가에 나아가 동냥을 한다.
光州에서는 경하의 뜻으로 日月辰에게 절을 하고 고사지낸다. 제주도에서는 산?들?돌?나무?냇가?늪?연못?바위?물가 등지에 신의 사당을 짓고 제사한다.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사이에 巫覡인 神纛을 받들고 나례를 행했다.

 

정초의 일진에 따라 여러 행사가 있었다. 정월 7일을 人日이라 하여 임금은 구리로 만든 거울을 閣臣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 인일에 과거를 실시하여 인재를 뽑았으니 人日製라 불렀다. 태학의 출석이 좋은 유생에게 응자격을
주었다. 명절에 선비를 시험하는 것은 인일 외에도 3월 삼짇날?7월 칠석날?9월 중구에도 있었으니 節日製라고 했다.

 

上亥日즉 돼지날 과 上子日즉 쥐날 에 궁중에서 젊고 지위가 낮은 내관들 수백 명이 횃불로 땅을 이리저리 내저으면서 ‘돼지 주둥이 지진다' 고 외치면서 돌아다녔다. 또 곡식의 씨를 태워서 주머니에 넣어 宰臣과 近侍에게 나누어 주었다. 모두가 풍년들기를 비는 뜻을 지니고 있다.

시골에서는 쥐날에 콩을 볶으면서 ‘쥐 주등이 지진다. 쥐 주등이 지진다' 고 주문을 외는데 쥐가 곡식을 해치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충청도지방에서는 논둑?밭둑을 태우기 위해서 횃불을 휘두르면서 청소년들이 다니는데 쥐불놀이라 했다.

 

卯日즉 토끼날 에 새로 뽑은 실을 兎絲(토사)라고 한다. 이 토사를 주머니 끝에 달아매면 재앙을 물리친다는 것이다. 식구가 아닌 남이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는데 특히 여인의 출입을 금기한다.

또 나무로 만든 그릇이 들어오는 것은 막는다. 巳日즉 뱀날 에는 이발을 하지 않는데 뱀이 들어오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上元즉 대보름은 새해 들어 첫 만월의 날이며 여러 가지 행사와 놀이가 있다. 찹쌀을 쪄서 대추?밤?기름?꿀?간장 등을 섞어 찌고 잣을 박은 것을 약밥(藥飯)이라 한다. 약밥으로 제사를 지내니 신라의 옛 풍속이 전한 것이었다. 지금의 오곡밥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농가에서는 禾積(화적)을 세운다. 짚을 묶어서 깃대 모양으로 만드는데 그 속에 벼?기장?피?조의 이삭을 집어 넣고 목화를 장대 위에 매달아 새끼줄로 고정시킨다.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다. 산간 마을에서는 가지를 친 나무를
외양간 옆에 세워 두고 곡식의 이삭과 목화를 걸어 둔다. 아이들이 새벽에 일어나 이 나무를 돌면서 노래를 부르고 빌기도 하는데 해가 뜨면 그쳤다.

 

보름 전날 밤에 당년 羅?直星(나후직성)즉 厄年이 든 사람은 제웅을 만드는데 처용 또는 추영이라 한다. 액을 막기 위해 제웅 머리 속에 동전을 넣어서 길가에 버린다. 아이들이 동전을 얻으려고 제웅을 얻어서 돈을 빼고 길가에 버리는데 打芻戱(타추희)라 했다. 이런 풍속은 신라 헌강왕 때의 處容故事에서 생긴 것이었다.

 

어린 아이들은 청?홍?황의 세 색깔을 칠한 조롱박 세 개를 차고 다니다가 14일 밤에 길가에 버리는데 액을 막기 위해서이다. 또 보름날 새벽에 종각 네거리에 가서 흙을 파다가 자기 집 네 귀퉁이에 뿌리거나 부뚜막에 바르는데 흙으로 인연해서 재산이 불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보름날 새벽에 부럼을 깨문다. 밤?은행?호두?잣 등을 깨물어 먹지 않고 마당에 버리면서 ‘일년 열두 달 동안 무사태평하고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주시오?하고 빈다. 의주지방에서는 사탕을 깨물었으니 齒較라고 했다.

 

대보름날 아침이 술을 데우지 않고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해서 마셨다.
보름날 오곡밥은 이웃간에 서로 나누어 먹는다. 밥은 김이나 배추에 싸서 먹는데 복쌈(福菜)이라 하였다.

 

보름날 아침에 더위팔기(賣暑)를 한다. 친구의 이름을 불러서 무심코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게' 한다.

이렇게 하면 더위를 판 셈이다. 더위를 판 사람은 여름에 더위 먹지 않고 지낼 수 있지만 더위를 산 사람은 두 사람 몫의 더위에 시달리게 된다. 더위에 시달리던 사람들의 지혜있는 놀이로 발전했다.

 

봄철에는 햇볕에 살이 검게 타고 몸이 마르게 된다. 그래서 이를 미리 막으려고 아이들에게 백 집의 밥을 얻어다가 절구에 타고 앉아 개를 마주 보면서 개와 아이가 한 숟갈씩 번갈아 먹도록 하였다. 한편 개에게 밥을 먹이지 않는 풍속도 있었다. 개가 밥을 먹으면 여름에 파리가 많이 꾀고 마르기 때문이다. 속담이 ‘개 보름 쇠듯 한다' 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嫁樹(가수)라 해서 나무 시집보내기가 있다. 과수의 가지친 곳에 돌을 끼워 두열매가 많이 열린다고 해서 특히 대추나무에 흔히 했다. 풍작을 기인하는 것이다.

 

보름날 밤에 방마다 불을 밝혀 두고 밤을 새우는데 마치 守歲때와 같다.
한편 무당이나 장님을 불러 安宅經을 읽으며 밤을 새워 복을 빌고 액을 막으려는 민간신앙이 있었다.

 

정초에는 일년 신수나 농사의 풍흉을 미리 알고자 하여 점을 치는 일이 많았다. 점치는 방법은 보리뿌리가 얼마나 자랐는가로 보리의 작황을 점치는 麥根占(맥근점), 윷놀이로 점괘를 얻어 점치는 윷점, 줄다리기의 승부로 점치는 풍년점, 五行으초 괘를 얻어 점치는 오행점, 보름날 달의 부름(月滋)과 색깔을 보아 점치는 달점(月占), 李土亭의 비결로 일년 신수를 점치는 土亭秘訣, 밤중에 재와 곡식알을 접시에 담아 지붕 위에 올려 놓고 다음날 어느 곡식이 풍년이 들 것인가를 점치는 법, 꼭두새벽에 닭 우는 소리를 들어 몇 번 우는가에 따라 풍흉을 점치는 법 등 다양하다. 황해도?평안도에서는 새벽에 닭이 울기를 기다렸다가 바가지를 가지고 우물에 가서 井華水를 길어오는데 撈龍卵(노용란)이라 한다. 맨 먼저 긷는 사람이 그 해에 농사를 제일 잘 짓는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많은 점이 농사의 풍흉을 미리 알고자 豫兆를 얻으려는 노력으로 나타났다. 농경민족으로서 농사의 풍흉이 생활을 좌우하기 때문에 점복에 매우 심각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立春날에는 대궐에서 입춘문을 써서 붙이는데 春帖子라고 하였다. 사대부와 일반 민가와 상점에서도 모두 春聯을 붙이고 송축을 한다. 이것을 춘축이 라 하였다.

觀象監에서 朱砂로 벽사문을 써서 대궐에 올리면 대궐에서는 문설주에 붙인다. 춘첩문은 對句를 쓰고 여염집에서는 기둥이나 문설주에 두루 對聯을 쓴다. 때로는 單帖도 하고 옛사람의 좋은 글귀를 따다가 쓰기도 한다. 그 내용은 복받고, 가내 평안하고, 자손번창하고 재앙이 없기를 기원하는 경우가 많다.

 

설을 쇠기 위해서 상점들도 문을 닫았다가 새해 들어 문을 다시 여는데 대개 毛?日에 열고 특히 寅日에 여는 일이 많다. 벌레의 털이 있음은 번성을 뜻하며, 호랑이날에 문을 여는 것은 맹수라는 것과 털이 많다는데 번성을 기대한 것이었다.

 

2월 초하루는 中和節이라 해서 나라에서는 中和尺을 만들어 재상과 시종에게 나누어 주었다. 자는 반죽이나 이깔나무로 만들었다.

 

대보름날에 뜰에 세웠던 화적을 헐어서 그 속에 넣었던 곡식의 이삭으로 떡을 만든다. 크게는 손바닥만하게 작게는 계란만하게 만드는데, 콩을 불려서 소를 만들어 넣고 시루 안에 솔잎을 겹겹이 깔고 찐다.

푹 익힌 다음에 꺼내어 물로 닦고 참기름을 바른다. 이것을 송편이라 한다. 송편을 종들에게 나이수대로 먹였기 때문에 머슴날(奴婢日)이라 불렀다. 농사일이 이 때부터 시작되므로 노비에게 먹여 위로하는 것이다.

 

온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종이를 잘라 ‘香娘閣氏千里速去'(향랑각시천리속거)라고 써서 서까래에 붙인다. 이렇게 하면 노래기가 없어진다고 믿었다.

 

영남지방에서는 집집마다 제사를 지냈으니 영등할머니 를 제사한다는 뜻에서 靈登祭(영등제)라 했다. 영등신이 무당에게 내리면 그 무당은 동네를 나들이하는데 사람들이 다투어 불러들여 즐겼다. 영등신은 초하루부터 20일까지 있는데 사람들을 꺼려 만나지 않는다.

 

제주도 풍속에 2월 초하룻날 귀덕?금녕지방에서는 장대 열두 개를 세워 놓고 신을 맞이하여 제사를 지냈다. 애월지방 사람들은 나무로 말 머리 모양을 만들어 채색 비단으로 꾸며서 약마희를 했다. 신을 즐겁게 하는 娛神이니 보름까지 한다. 이것을 연등이라고 한다.

 

 

/ 민속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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