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세월의 빠름을 느끼게 하는 한 해의 끝자락입니다. 어쩌면 그만큼 바삐 달려왔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달랑 끝장만 남은 달력을 보면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드는 마음은 인정상정이 아닐까요.
편의를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날짜에 대해 왜 이리 민감해지는 걸까요. 세밑이라는 단어에 왜 이리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까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희망을 품기 위함일까요.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2009년 반상 세상을 정리하는 페이지를 마련했습니다. 그 첫 번째로 국제바둑계를 둘러봅니다. 외국이 주최한 기전의 자국예선전을 뺀 한국기원 공식대국수는 1263국에 달했는데요, 그 속에서 누가 이름을 높였으며 또 우리 한국기사들은 어떤 활약을 펼쳤을까요.
모든 기전의 일정이 연초에 시작되어 연말에 끝나는 것이 아니므로 전년도에 본선 대국의 일부를 치렀더라도 결승전이 2009년에 열린 기전까지를 망라했습니다. 덧붙여 통계는 단체전을 제외한 수치임을 밝힙니다.
○●… 9차례 결승전 러시 속 한국 3회 우승에 그쳐 2009년은 세계대회 21년 역사상 가장 많은 결승전이 열린 한 해였다. 결승전 시행 횟수는 단체전을 빼고도 9차례나 됐다. 이는 세계대회가 러시를 이뤘던 2008년에 출발한 대회가 해를 넘겨 결승전을 벌였기 때문이기도 하다(2008년엔 여자대회 포함 5차례의 결승전이 치러졌다).
결승전 구도는 한-중 5회, 한-한 2회, 중-중 2회. 그 속에서 한국이 3회, 중국이 6회 우승컵을 가져갔다. 2008년 한국 4회, 중국 1회였던 것이 180도 바뀐 결과로 나타났다. 한국의 3회 우승은 2회가 형제결승전이었으며, 한중전에선 한 번 이기고 4번 졌다. 100번째 세계대회인 삼성화재배를 중국에 내준 것도 아쉬운 기억으로 남게 됐다.
국가대항전에선 남자단체전 농심신라면배는 한국, 여자단체전 정관장배는 중국이 패권을 차지했다. 공히 전년도의 패배를 설욕한 우승이었다.
●○… 중국, 구리 3회 및 콩지에 2회 우승으로 주도 '황사바람'의 진원지는 구리였다. 신년벽두 도요타덴소배 우승을 필두로 2월의 LG배, 5월의 비씨카드배를 접수했다. 3회 우승은 2009년도 최다기록이며, 이미 보유 중이던 후지쯔배ㆍ춘란배와 더불어 한때 5관왕에 자리하기도 했다. 더욱이 세계대회 결승전 6연속 전승 행진도 이어갔다.
그 가공할 힘은 하반기에 수그러드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결승 진출도 없었으며 4강조차 삼섬화재배 한 번뿐이었다. 하지만 중국엔 구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어느새 콩지에가 구리의 빈자리에 들어앉았다.
콩지에는 6월 TV바둑아시아선수권을 생애 최초의 세계타이틀로 장식하더니 연말엔 삼성화재배를 손에 넣었다. TV바둑아시아에선 당시 한국랭킹 '빅3'를 이루고 있던 강동윤ㆍ이창호ㆍ이세돌을 연파했으며, 삼성화재배 우승으로 100번째 세계챔프에 이름을 새겼다. 이 밖에도 창하오가 춘란배를 우승했다.
○●… 한국, 신규 타이틀홀더 등장으로 체면 살려 중국의 강세 속에 한국은 1월의 삼성화재배, 4월의 응씨배, 7월의 후지쯔배에서 웃었다. 전년도에서 넘어온 삼성화재배는 이세돌이 콩지에를 완파했으며, 응씨배와 후지쯔배에선 각각 최철한과 강동윤이 형제결승전 끝에 이창호를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다.
이세돌에겐 12번째 세계타이틀, 최철한과 강동윤에겐 첫 메이저 타이틀로 기록됐다. '메이저 클럽'에 신규 가입한 최철한ㆍ강동윤의 '큰 것 한방'이 없었다면 한국바둑은 더 짙은 그림자 속에 갇혔을지 모른다.
●○… 이세돌, 4관에서 무관으로 전락 2008년 말만 해도 한국은 5개의 세계타이틀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 중심엔 삼성화재배ㆍLG배ㆍ도요타덴소배ㆍTV바둑아시아선수권전을 양손에 움켜쥐고 있던 이세돌의 절대적인 힘이 작용했다. 그 이세돌은 2009년 들어 1월의 13회 삼성화재배를 획득한 이후 우승 전선에서 멀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휴직으로 말미암아 8월에 시작된 14회 삼성화재배엔 출전도 못했다. 해를 넘겼던 예년과 달리 삼성화재배 결승전이 12월로 앞당겨졌고 콩지에가 새 챔프로 등극함에 따라 이세돌은 급기야 무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2009년 말 현재 세계타이틀 점유는 한국 2개, 중국 5개. 1년 전의 한국 5개, 중국 3개였던 것이 반대의 결과로 역전됐다.
○●… 준우승 3회 이창호 '꾸준한 페이스(?)' 이창호는 올해도 세계타이틀을 획득하는 데 실패했다. 결승 진출 4회로 전체 기사 중 가장 많았으나 화룡점정하지 못했다. 응씨배에선 최철한, 춘란배에선 창하오, 후지쯔배에선 강동윤에게 왕관을 내주었다(나머지 하나인 14회 LG배 결승전은 내년 2월에 열린다).
세계대회 준우승 횟수는 13회로 늘어났다(이 부문 2위는 유창혁의 8회이다). 세계대회 21회 우승자 이창호는 2005년 춘란배 우승 이후 메이저 대회 7연속 준우승을 기록 중이다(2007년 여름에 우승한 중환배는 중국기사가 불참한 마이너 기전).
●○… 이창호, 4강 및 8강 진출 횟수에선 최다 우승을 추가하지 못했지만 이창호는 가장 안정적인 페이스를 걸었다. 9차례 대회 중 4강 진출 횟수가 7회로 으뜸이다. 8강 진출에서도 8회로 최고치를 나타냈다. 하반기 한국바둑의 얼굴을 세운 선수는 단연 이창호였다.
이창호를 뒤따라 이세돌, 콩지에, 구리가 차례로 자리했다. 그에 비해 최철한과 강동윤은 우승 실적을 뒷받쳐 주는 후속타가 미약했다. 우승한 기전를 제외하곤 4강에 든 적이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 나라별 4강 횟수는 한-중 '막상막하' 나라별 4강 진출 횟수에선 한국이 중국과 대등한 성적을 냈다. 각각 19회와 20회. 8강 횟수 또한 32회와 38회로 큰 차이가 없었다.
반면 일본선수의 4강은 지난해 8월에 결정됐던 도요타덴소배에서의 장쉬가 유일하다. 힌국과 중국의 높은 파고에 휩쓸려 거듭 좌초한 일본은 8강 횟수도 9회에 불과하다. 8강은 대개 본선에서 2승을 거두면 오를 수 있다.
●○… 조훈현 최연장, 저우뤼양 최연소 한 번이라도 4강에 오른 기사의 수는 18명. 한국 7명, 중국 10명, 일본 1명으로 집계됐다. 그 가운데 최연장자는 56세의 조훈현(비씨카드배 4강), 최연소자는 18세의 저우뤼양이었다. 연장자 2위엔 34세의 이창호, 연소자 2위엔 20세의 강동윤이 차지했다.
○●… 한-중 맞대결은 중국 우세 중국에 밀린 성적표는 양국 간의 맞대결 성적에서도 드러난다. 각종 세계대회의 통합예선 및 본선에서 한국과 중국 기사가 마주한 횟수는 총 382회. 그중 한국 기사가 거둔 승수는 132승에 그쳤다. 승률로 따지면 35%가 채 못 된다.
프로라면 출전에 제한 없는 통합예선을 갖는 3개 대회 모두 한국 주최이고,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참가하는 한국이 정예멤버로 구성된 중국에 열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본선무대 이상으로 압축해서 산정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거기서도 한국은 49승을 거둬 70승의 중국에 뒤졌다. 격차가 줄어들었어도 승률은 41% 남짓이다.
●○… 다승 구리, 승률 콩지에, 최다대국 이창호 최다관왕 구리는 간발의 차이로 다승왕(18승)에도 올랐다. 2위 이창호와는 2승 차이. 승률 부문에선 하반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콩지에가 79%로 최고점을 찍었다. 특히 콩지에는 현재 9연승을 비롯 5월 이후 15승 1패를 거뒀다. 이창호는 26국을 두어 최다대국자로 기록됐다.
○●… 여자대회는 정관장배만 명맥 유지 여류바둑계는 대회 자체가 거의 없어 조망해 볼 기회를 갖기 어려운 형편이다. 2009년에 시행된 여류세계대회는 한국 주최의 단체전인 정관장배가 유일했으며 전력 분석을 하기엔 자료가 빈약하다.
또 하나, 여자조를 따로 시행 중인 삼성화재배 통합예선에선 한국 32명, 중국 9명, 일본 8명 등 총 49명이 참가한 결과 한국의 김미리와 중국의 루지아가 본선 무대를 밟았다. 2010년엔 개인전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첫댓글 이창호 9단이 연장자 2위라니.. 세월이 참 빠르네요. 이창호 사범님이 40~50대에도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