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본인으로서 애국자이고 신임할만한 동지를 생각하여 돌아다니며 권유하였는데 제1로 본인의 친형되는 오현관[吳玄觀]이를 대한애국부인회 고문으로 하였으며 東大門病院의 간호부인(성명은 기억치 못함) 한 사람과 貞信女學校 학생중 이성완[李成完], 김정숙[金貞淑], 장선희[張善禧] 외에 數人을 권유하여 회원이 되게 하였사오며 其外에도 암암리에 회합하여 조직케 되었던 것입니다.
답 지방에는 全州에 1인 있는데(성명은 기억 못함) 大邱유계근[劉桂根](여자), 釜山 박보□[朴寶□], 지방부장으로 백신영[白信永]( 慶北 密陽) 서로서로 傳言하여 승낙을 받은 것이 문서는 없습니다.
문 이 사건을 왜경이 알게 된 것이 어찌된 원인인지 아는가.
답 네. 아옵니다. 본인의 남편 강낙원이가 上海로부터 돌아온 후 말하기를 上海방면과 기타 여러 곳에서 조선독립운동을 할 것을 보니 地方熱이 甚하며 국내에서 금전을 모아서 보내도 소위 지도자들이 그것을 分食消費시키는 데까지 지방적으로 말하며 모든 형편이 독립은 아니되겠고 국내의 빈한한 사람에게 경제적으로도 더 고통만 주게 되니 당신( 오현주)도 그런 운동은 정지하라 하며 수차나 권고한 일이 있더니 약 10여일후( 강낙원이가 歸來 후)에는 유근수[劉根守]라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소개하기를 「이 유선생은 자기( 강낙원)」의 유도와 검도선생이며 柳의 부인도 大邱에서 애국부인회 등을 조직 활동하는 여자 독립운동자로서 제1 열렬한 동지이니 같이 손잡고 활동하되 왜놈 밑에서 하나도 傷치 않도록 하며 희생자를 내지 아니하도록 주의하여서 활동하라 하며 柳, 姜 兩人이 異口同聲으로 본인( 오현주)이 관계하는 대한애국부인회를 말하라 하였으나 당시 본인은( 오현주는) 2일간이나 거절하고 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당신은( 강낙원) 배운 선생이라 하지만 나는( 오현주) 초면이므로 대한애국부인회의 이면을 말못하겠소 하고 2일 간이나 부부간에 싸움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2일간이나 우리 집에서 남편과 同宿하며 여러 가지 담화를 하는 것을 보니 별의심이 나지 아니하여서 제3일만에 柳씨를 보고 다시 인사를 한 후 대한애국부인회에 대하여 내용을 상세히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柳씨와 작별한 후 月餘만에 大邱경찰서 형사대가 와서 우리집을 뒤지고 大邱로 가자 하기에 大邱를 가보니 신의경[辛義卿], 김마리아 외 20여명이 잡혀 있기로 본인( 오현주)도 놀랬으며 또 본인은 제3부에서 취조를 받고 내보내기에 나와서 보니 柳씨도 姜의 선생이 아니라 大邱에 있는 형사였으며 내가 여관으로 가고자 하였더니 柳가 자기 집으로 가자 하여서 柳의 집에 가서 며칠 묶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말하기를 김마리아는 내가( 오현주) 고발하여 잡아죽였다 하며, 또 나의 양심에도 고발 아니하였어도 고발한 것같이 되었습니다. 右 본인에게 讀聞시킨 바 相違가 無하다하고 서명, 拇印함. 공술자 오현주 무인 4282년[1949] 3월 28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 신형식[申亨植] ㊞ 입회인 서기 윤영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