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파는 사람
셀러(seller) 홍성태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셀러유형 크로스오버 프로페서(Crossover Professor)
대표상품 현대백화점 브랜딩 ‘Life Stylist’
최신상품 도서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
크로스오버 프로페서의 셀링 포인트
1) 응축이란 단순히 줄이는 게 아니라 핵심을 찾는 것이다.
2) 다양한 전문가 친구들을 두어 그들의 관점을 배워라.
3) 바꿔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을 구분하라.
▲ 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차장 |
온화하게 웃는다. 척 보기에도 예사 교수는 아니다. 일단 패션 감각이 장난 아니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너무 화려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셔츠와 재킷.(평소에는 청바지도 즐겨 입는다.) 심지어 50대 남자가 배도 안 나왔다. 오지랖은 또 얼마나 넓은가. 사진, 인테리어, 영화, 디자인, 음식, 여행 모르는 게 없다. 친하게 지내는 CEO들이 “홍 교수, 요새 뭐 재미있는 거 없어?”라고 하도 물어봐서 아예 트렌드를 공부하는 CEO과정을 만들 정도다. CEO들과 가로수길, 홍익대 앞, 삼청동을 돌며 트렌디한 음식과 문화에 대해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기업에서 알아주는 최고의 브랜딩 컨설턴트이자, 마케팅학회 학술지 편집장을 할 만큼 현장과 학계 모두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보기 드문 브랜드 전문가. 그가 바로 홍성태(57)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다.
교수 같은 교수보다 훨씬 어려운 게 교수 같지 않은 교수다. 전자는 정답이 있지만 후자는 알아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그 어떤 교수보다 트렌드에 예민하다. 새로 나온 영화, 음악, CF는 빼놓지 않고 섭렵한다. 마케팅이야말로 살아서 펄떡이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매일 부지런하게 세상을 관찰하지 않으면 케이스 스터디조차 불가능하다. 몇 달 전 외국 경제지에서 봤던 멀쩡한 기업의 사례를 들어 얘기하면 현장에서 바로 받아친다.
“교수님, 그 회사 지난달에 망했어요.”
교과서에 나온 기업 사례는 이미 3년이 지난 얘기인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 바로 이 바닥이다. 때문에 그는 흐름을 앞서가거나 최소한 같이 호흡하기 위해 남들이 안 하는 노력을 한다.
“트렌드를 타는 것은 수영하고 비슷해요. 제가 오랫동안 수영을 했는데 수영도 결국 물을 타는 거거든요. 그런데 한번 흐름을 놓치면 다시 타는 게 쉽지 않아요. TV 광고를 보면서 ‘저게 왜 뜨냐?’고 물으면 이미 끝난 거예요.”
게다가 국내 기업들의 마케팅 실력도 이미 장난이 아니다. 그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왔던 1990년대에는 마케팅의 기본이론만 얘기해줘도 임원들이 신기해 하면서 받아 적었다. 그런데 요즘에 그런 얘길 하면 ‘누굴 바보로 아느냐?’는 얼굴로 쳐다본다. 한국은 시장 자체가 작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살아남으려면 마케팅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해외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일본 같은 나라는 국내 시장에서만 먹고살아도 충분하니까 해외로 나갈 생각을 안 하지만 우리는 죽기 살기로 나가야 한다. 삼성이 세계를 제패하는 데는 기술력뿐 아니라 마케팅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의 마케팅 실력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수준급이다. 그런 기업들을 상대로 브랜드 컨설팅을 하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응축이란 짧게 줄이는 게 아니라 핵심 찾아내는 것
본질 찾는 것은 재능이 아닌 몰입의 영역
‘라이프 스타일리스트(Life Stylist).’ 현대백화점 하면 떠오르는 문구다. 홍 교수가 브랜딩에 직접 참여해 만든 기업 아이덴티티다. 이전까지 현대백화점의 정체성은 비슷비슷한 백화점과 차별성이 없었다. 압구정, 미아, 천호 등 백화점 지점마다 고객도 천차만별이라서 하나로 묶을 만한 콘셉트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새로운 생활을 제안하는 라이프 스타일리스트’라는 아이덴티티로 관점을 바꾸자 새로운 마케팅 아이디어들이 샘솟았다. 이로 인해 현대백화점은 불리한 입지조건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패션잡화 브랜드인 루이까또즈의 아이덴티티, ‘이지적 우아함(Intellectual Elegance)’도 그의 작품이다. 비슷비슷한 패션 브랜드 속에서 차별화를 고민하고 있을 때 그가 던진 승부수다. 주요 고객층의 이미지가 중고등학교 여교사들이라는 점에 착안해 이지적 우아함을 콘셉트로 내세운 것이다. 이는 루이까또즈를 구매하는 고객들의 자긍심을 높여 경쟁 브랜드를 많이 따라잡았다.
브랜드 콘셉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응축’을 제대로 해야 한다. 정보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숙성시켜 핵심적인 ‘한 줄’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포도를 따서 으깨고 즙을 숙성시켜 몇 년이 지나 거르고 걸러서 포도주가 되는 것처럼, 한 방울의 맛있는 포도주가 될 때까지 응축시켜야 한다.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본질을 찾는 것은 재능이 아닌 철저한 몰입의 영역이다. 이외수 선생의 한 줄 명언이 우리들의 가슴을 치는 것은 그 안에 1000개의 관찰과 1000개의 사색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2005년 LG생활건강에 새롭게 온 차석용 사장은 P&G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마케팅계의 베테랑이었죠. 그는 부임하자마자 두 달 동안 브랜드 매니저들이 잡아온 콘셉트를 다 반려시켰어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자체가 밤낮으로 끊임없이 브랜드 콘셉트에 대해서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라는 훈련이었습니다. 핵심을 파악하는 것은 그 정도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전문가 뒤에서 그들의 관점과 지식 훔쳐보기
얕은 호기심 아닌, 본질 파고드는 호기심이 중요
브랜딩에서 콘셉트 응축은 1단계에 불과하다. 이를 어떻게 소비자들에게 ‘창의적으로 전달하느냐’라는 커다란 산이 기다리고 있다. 콘셉트를 전달하는 수단과 방법은 너무나 여러 가지다. 홍 교수에 의하면 마케팅 1.0 시대에는 사람들을 이성적으로 설득시키려 했다. 마케팅 2.0 시대에는 감성을 움직여 행동을 유발하려고 했다. 그러나 마케팅 3.0 시대에는 ‘영혼의 교감’이 있어야 한다. 마케팅의 대부인 필립 코틀러 교수는 “마케팅 과잉 시대에 기업이 생존하려면 단순히 소비자의 감성에 다가가는 수준이 아니라 영혼에까지 도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리도 아니고 감성도 아니고 영혼을 흔든다는 것은 웬만한 크리에이티브로는 어림도 없다. 홍 교수는 핵심을 360도 자유자재로 변형하는 창의성의 기본은 많은 정보와 지식이라고 말한다. 일단 음악, 미술, 무용, 디자인, 사진 등 콘셉트를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에 대해 완전히 전문가는 아니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가 자주 쓰는 방법이 있다. ‘전문가 뒤에서 관찰하기’다. 그는 평소에 친한 예술가나 인문학자들과 함께 여행 떠나기를 즐긴다. 일부러 남들이 잘 안 가는 발칸반도의 오지, 메소포타미아의 돌덩이를 보러 간다. 그곳에서 각자의 전문가들은 자신들만의 통찰을 그들의 언어로 들려준다. 사진작가, 디자이너, 미술가, 역사학자 등 직업에 따라 각각의 해석도 천차만별이다.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인문학적 지식을 압축적으로 쌓는다. 더불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사물을 놓고 다양한 관점에서 보는 눈도 키우는 것이다. 그는 평소에도 스스로를 ‘호기심 천국’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여기서의 호기심은 얇은 호기심이 아니라 집요하게 ‘본질을 파고드는’ 호기심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생각의 뿌리를 깊게 내릴 줄 알아야 크리에이티브라는 꽃이 제대로 필 수 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멋진 광고나 제품 디자인, 히트 친 모델은 사람들의 눈을 끄는 아름다운 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꽃이 아름답다고 흉내 내서 만들면 그건 죽은 조화에 불과하죠. 현대카드가 디자인이란 이슈를 들고나오자 많은 기업이 디자인경영이란 이름으로 많이 모방하려 했어요. 그러나 왜 카드를 알파벳, 숫자, 컬러로 나눴을까에 대한 고민 없이 크리에이티브만 모방하는 기업들을 보면 안타깝죠.”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마케팅에서의 크리에이티브는 반드시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은 “우리가 원하는 창의성이란 엉뚱함이 아닌 수학적 논리”라고 말했다. 논리가 뒷받침되어야 산만함으로 튀지 않고 현대카드에 필요한 정제된 크리에이티브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마케팅의 본질을 꿰뚫는 말이라고 본다. 마케팅은 예술이면서 동시에 과학이다. 둘 사이의 교차점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사람의 영혼을 움직이는 예술은 그 자체의 영역으로 존재하지만 이것이 자본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학이 필요하다. 아무리 고객이 원하는 그 무엇이라도 정밀하게 과학적으로 쓰지 않으면 헛돈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한두 명이 아니라 수천, 수만 명이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주는 것, 그럼으로써 팔리는 제품이 될 확률을 최대한 높여주는 모든 일이 바로 마케팅이다.
콘셉트가 조금 시원찮아도 끈기 있게 밀고 나가야
포르쉐의 명품 철학 “바꿔라, 그러면서 바꾸지 마라”
한번 브랜드 콘셉트가 정해졌다면 그 다음에는 ‘지속성’이 문제다. 이를 얼마나 뚝심 있게 밀어붙이느냐에 따라 브랜딩의 성패가 좌우된다. 볼보를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사람들조차 볼보를 가장 안전한 자동차로 꼽는 이유는 지난 40년간 안전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광고해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10여년 전에 ‘넥스’라는 맥주가 있었다. 당시 OB가 하이트의 대항마로 출시했던 맥주였는데 한두 달마다 콘셉트를 계속 바꿨다. ‘깨끗한 맛’을 내세웠다가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니 ‘젊은 맥주’로 바꿨다가, 이것도 반응이 없자 ‘좋은 보리’ 등으로 왔다갔다하다 결국 어마어마한 돈만 쓴 채 접고 말았다. 홍성태 교수는 “조금 시원찮은 콘셉트나 디자인이라도 우왕좌왕하기보다는 끈기 있게 밀고 나가는 편이 훨씬 낫다”고 조언한다.
다만 한 가지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바꿔야 할 것과 바꾸지 말아야 할 것을 잘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명품차 포르쉐의 디자인 철학은 ‘바꿔라, 그러면서 바꾸지 마라(Change it, but do not change it)’이다. 세태에 맞는 변신은 계속하되 근본이 되는 원형은 바꾸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늘 새로운 디자인을 추구하면서도 ‘포르쉐다움’이라는 차별성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이는 그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는 ‘교수 같지 않은 교수’라는 콘셉트로 자신을 브랜딩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가장 ‘교수다운 교수’를 지향한다.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실시간 사회와 소통하지만 이 때문에 수업을 소홀히 하는 경우는 없다. 자신의 본질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20권에 가까운 책과 국내·해외 논문 등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았기에 일선 교수들에게 인정받는 마케팅학회 회장에도 선출되었다. 이렇게 본질을 지키면서 상아탑 밖의 세상과 자유롭게 크로스오버했기에 홍성태 교수의 브랜드 가치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져왔던 것이다.
기업이나 제품이 가진 핵심을 하나로 응축하고 이를 가장 창의적으로 보여주고 지속적으로 키워가는 과정은 마치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이를 성장시켜 가는 모습과 다를 게 없다. 이처럼 브랜딩은 콘셉트를 단정적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명사가 아닌 동명사로 표현한 것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자식 키우기나 비슷하다. 우리 애는 어떤 아이인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고, 아이가 가진 독창성이 뭔가도 찾아줘야 하고, 이것이 제대로 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보살펴줘야 한다. 깊은 애정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에 그가 자문하고 있는 회사의 사장은 친구에게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홍 교수를 내가 좋아하는 건 말이야, 자기가 회사 사장이라도 된 것처럼 심각하게 고민도 하고, 우리 입장에서 같이 걱정을 하고 그래요!(웃음)”
이 말은 그가 들은 최고의 칭찬이었다. 광고 회사나 컨설팅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자칫, 말과 논리로만 멋진 광고나 컨설팅을 하기 십상이다. 자기가 책임을 지고 제품 하나라도 팔아보았다면 못할 얘기들을 너무 쉽게 뱉는다. 그러나 그는 목숨을 건 경영자의 입장에서 고심한다. 보통 컨설턴트들이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면 승리에 도취돼서 잠을 잘 잔다는데 그는 거꾸로다. 그의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순간부터 결과가 어찌될까 걱정돼서 웅크리고 잔다는 것이다.
내가 그를 만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그가 스스로를 브랜딩하는 방식이다. 세상에 브랜드를 강의하고 컨설팅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고객을 브랜딩하기 이전에 나부터 제대로 브랜딩하는 사람은 실제로 많지 않다. 반면 그는 ‘교수 같지 않은 교수’라는 콘셉트로 자신을 매력적으로 브랜딩하고 있었다. 약간 15도 삐딱하면서 세상만사 모든 것과 크로스오버하는 자유로움. 그리고 결과물을 보면 분명히 무척이나 바쁠 텐데 막상 만나면 한시도 잃지 않는 따뜻함과 여유까지. 자신을 멋지게 브랜딩할 줄 아는 사람만이 브랜딩을 말할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