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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브 강변의 달 |
이 숙 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1830년 14살의 나이로 금강산 유람을 결행한 김금원은 떠나기 전에 여자로서, 가난한 집안의 딸로서 강산을 두루 유람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를 자문한다.
풍광 좋은 산천에서 시를 읊조리며 놀고 싶다는 제자 증점을 부러워한 성인 공자. 당시로선 이미 과년한 김금원이 부모의 허락을 받은 마당에 왜 다시 ‘성인의 허락’이라는 자기 검열을 거쳐야 했을까. 탈규범적인 유희성이라는 여행의 속성이 주는 부담 때문이 아닐까. 부담을 넘어, 성인이 부러워한 유람길을 올해 추석 휴가는 유난히 길어 전후로 며칠씩을 보태 20일간의 유럽 여행에 나섰다. 이미 많은 사람이 내 집 드나들 듯 하는 곳이지만, 김금원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일종의 자기 검열이 필요했다. 우선 학술활동의 연장이 아니라 ‘순수 놀이’를 즐기는 것이 아직은 불편하고, 형제와 친족들이 성묘를 하고 제사를 준비할 시간에 공항에 운집한 1인이 된다는 게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오래전에 기획한 것이고, 가족을 만나러 가는 여행이니만큼 명절의 뜻에도 부합하는 게 아닌가? 항공과 숙박은 비싸지도 않고 싸지도 않은 중간을 택했다.
내 눈에는 담배를 손가락에 끼고 출근하는 세련된 차림의 여성들이 낯설었다. 흡연에 성별 잣대를 들이대는 우리의 문화 관행과는 달리 그녀들은 이 ‘사소한’ 것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였다. 사소한 것이 결코 사소한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자 나혜석이 또 생각났다. “우리가 여긔서는 여자란 나부터도 할 수 없는 약자로만 생각되더니 거기 가서 보니 정치, 경제, 기타 모든 방면에 여자의 세력이 퍽 많습듸다.” 유럽의 시간을 여행하며, 동시대 우리 역사를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 남짓 거리의 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 혁명기의 여성들이 걸어서 8시간 만에 도착한 곳이다. 빵 만들 밀가루를 달라며 루이16세를 만나러 간 대열의 선두에 섰던 당시의 파리 여성들. 그즈음 조선에서는 극심한 가뭄으로 삼남지방 백성들의 생계가 위협받자 나라에서는 진휼(賑恤) 책을 마련했다. 그런데 진휼 문서에 이름이 오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 양반집 부녀들이 문밖을 나오지 않아 구제를 할 수 없다는 안타까운 보고가 올라왔다.(정조 17년 2월 20일) 가난과 굶주림을 대하는 두 여성 집단의 차이가 오늘날 두 사회의 여성 지위와 필연적인 연관이 있을 법도 하다. 본디 하나로되 다 달라, 그 다름에서 성찰을 루체린, 인스부르크, 짤즈부르크, 비엔나, 라이프치히, 프라하 등의 도시에는 근대적 효율성을 비웃기라도 하듯 독자적인 역사적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세계 사람을 유혹하는 상품이기도 하다. 역사 사건이나 인물, 유적들을 스쳐 지나면서 동시대의 우리 역사를 되짚는 버릇은 직업병이리라. 짤즈부르크 근교 시골의 아름다운 숙소에서 베르히스가덴과 쇠나우 호수, 할슈타트 등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알프스를 넘나들며 노니는 맛이란. 여행의 감흥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2세기 전 금강산을 본 소녀 김금원도 그랬다.
그렇다. 인문풍경 자연풍경 다 다르지만 보고 걷고 만나다 보면 또한 사람이고 사람 사는 곳이었다. 10월 3일 개천절은 독일에서도 통일기념의 날로 휴일이었는데, 둘은 내용은 다르지만 개벽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날 우리는 비엔나 인근 다뉴브 강가의 작은 도시 툴른에 여장을 풀고, 보름달이 비추는 다뉴브 강둑을 거닐었다. 달은 같은 달이로되 땅의 문화는 동서양이 달랐던 것인데, 만남이 가속화될수록 그 다름은 새로운 모양을 빚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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