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수학에서 실수는 그 개념이 명확하게 세워져 있지만 실수의 개념이 모호했던 고대나 근대의 수학자들은 막연히 실수의 존재만 확인할 수 있었을 뿐 그 수를 실수라고도 부르지 않았고 또한 실수가 가진 성질을 정확히 제시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실수가 무리수와 유리수의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고대의 사람들은 모든 수가 적당한 정수의 비로 나타낼 수 있었다고 믿었었습니다.
즉 유리수만을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와 관련되어 기원전 5 세기경 피타고라스 학파의 히파수스(Hippasus)는 정사각형의 대각선의 길이가 두 정수의 비로 나타낼 수 없음을 알게되어 이를 알리던 중 죽게되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실수의 탄생을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실수의 탄생이라고 불러야 할 시점은 실수의 개념을 명확하게 제시했던 19 세기 경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당시 데데킨트(Dedekind) 와 코시(Cauchy) 등이 유리수로 부터 실수를 구성해 내었고 이로 인해 실수가 가지는 성질중 중요한 연속성과 완비성(모든 코시 실수열이 실수안에서 수렴한다는 성질)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실수의 탄생 시점을 위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실수의 탄생동기는 실수가 가지는 성질중 연속성과 완비성에 대한 직관적인 해석을 벗어나기 위해서 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바이어슈트라스(Weierstrass) 가 모든 점에서 접선이 존재하지 않는 연속곡선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이후 그 당시의 수학자들은 극한, 연속성, 미분가능성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직관적으로 받아 들였던 실수의 성질을 좀 더 엄밀하게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바이어슈트라스는 먼저 실수 체계를 엄밀하게 전개하고 그 다음에 해석학의 모든 기초적인 개념을 실수 체계로 부터 유도하자는 계획을 주장하였습니다.
이 계획은 해석학의 산술화 라고 불려지게 되었고 그 이후 두가지 방향으로 계획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하나는 실수 자체가 가진 고유한 성질을 생각하여 공리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고 또 다른 방법은 데데킨트나 코시, 칸토르와 머레이(Meray) 등에 의해 유리수로 부터 실수를 구성하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