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복음 사가는 그리스도의 유년 시대 복음을 기술하면서 세례자 요한과 짝지어 전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분의 출생 예고에서 그 탄생하는 광경을 역사적 시대 배경에 넣는 것이 요한과 구세주 예수와는 다르다는 것을 비교로써 드러내고 있다. 요한의 탄생예고와 그 탄생광경은 어디까지나 구약정신의 마무리 입장에서 적고 있다. 요한의 탄생예고는『헤로데가 유다의 왕이었을 때에 제관 한 사람이 있었는데…』로 시작하여『이웃과 친척들이…기뻐하였다』로 되어 있다.
그리고 요한이 탄생한 직후 먼저 한 일은 그의 할례식이었다. 다시 말하면 요한의 탄생은 이스라엘 민족의 생활 테두리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구세주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느님의 원대한 경륜에서 그 탄생이 예고되었고 온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 줄 분으로 시대배경을 그리고 있다. 먼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엄청난 소식을 동정녀 마리아는 주님의 천사의 입에서 전해 들으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뚜스가 온 천하를 다스릴 때 태어났다고 루가는 힘주어 말한다.
황제 아우구스뚜스는 이름은 옥따비아누스 율리우스시저의 조카손자로서 경쟁자 안또니우스가 절세의 미녀 클레파트라와 놀아나는 동안 그를 쳐 이기고 할아버지의황제위를 이어받은 사람이다.
그의 쳐 이기고 할아버지의 황제위를 이어받은 사람이다. 그는 남으로는 파르티아(소아시아 일대)에서 북으로는 오늘날의 영국에 이르기까지 세상 끝에서 끝까지 평정하여 그의 제국은 그야말로「온 세상의 제국」으로 불리었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소위「로마의 평화」(빠스 로마나)를 이룩한 인물이었다. 그의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여 로마 원로원은 그에게 「아우구스뚜스」(존엄하신 분)란 칭호를 주었다.
이 어마어마한 때에 그야말로 존엄하신 분, 위대하신 분 하느님의 아들이 태어났고(루가1장32)…그가 다스릴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가1장33). 아우구스뚜스가 힘으로 평정한 세계에 갓 태어날 예수는 사랑으로 세계에 평화를 이룩할 것이다.
하느님의 깊고 넓은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다. 아우구스뚜스는 온 세상에 호구조사령을 내렸고 예수는 이 호구조사에 출생신고가 되었다. 아우구스뚜스는 기원전 27년부터 기원후 14년까지 다스렸으니 예수의 출생은 이 기간일 것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기원연대는 예수 그리스로의 탄생년을 원년으로 하여 기산한 연대이지만 이 연대는 525년에 수도자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우스가 제창하여 쓰기 시작한 연대인데 그 기산은 계산착오가 있었다.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께서 헤로데왕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나셨다(2장1)고 하였다.
이 헤로데는 헤로데대왕으로 기원전 4년에 죽었고 구세주의 탄생소식을 듣고 두 살 이하의 아기들을 학살한 자이다. 그러니 예수의 탄생은 적어도 그가 죽기 전 2년, 그러니까 기원전 6년경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그런데 학자들을 당황케 만드는 것은 루가의 호구조사령보고에서 아우구스뚜스가 내린 첫 번째 호구조사 때의 시리아의 총독은 귀리노라고 한 점이다.
역사에 귀리노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은 것은 기원 6~9년 사이이고 예수의 탄생연도로 추정되는 기원전 6년경에는 시리아총독으로 귀리노라는 사람이 기록에 없다.
그래서「첫 번째 호구조사는 귀리노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가 아니고 그가「시리아의 총독으로 있기 전」에 라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호구조사는 로마통치하에 있는 모든 지방의 인구, 재산 상태를 조사하고 세금을 물리기 위한 것이었고 이 조사에는 가구단위로 본적지에서 해야만 되었다. 그러니 예수의 일가도 본적지「베들레헴」으로 가야만 했다. 예수께서는 법을 지키면서 예언서의 말씀을 이루고 있었다.
구세주 예수는「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으로 예언자 미가는 말했다(5장2절). 율법학자들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마태2장5~6). 그리고 일반 사람들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요한7장42). 베들레헴은「빵의 집」이란 뜻이다.
생명의 빵이신 그리스도께서「빵의 집」에서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관에는 그들이 머물 방이 없었다.
그들은 여관에서 방을 구하지 못하고 말구유로 간 것이 아니다. 여기서 여관이란 말은「손님방」이란 뜻이고 이 손님방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습관대로 동굴에 기대어 만든 방을 말한다. 그래서 손님방을 구하지 못하면 동굴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고 거기에는 가축들이 있다. 마리아는 때가 차서 첫 아들을 낳았다. 루가는 1장~2장에서 이「때가 차서」라는 말을 여덟 번이나 쓰고 있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그때가 드디어 왔다는 것을 강력하게 나타내려는 것이다. 「첫 아들」은 반드시 둘째 아들을 전제하지 않는다. 구약성서사상은 첫아들은 법통을 이어 받고 유산을 이어받는 상속자라는 뜻으로 귀한개념이다.
첫 아들은 둘째 아들을 전제할 수도 있고 독자 일 수도 있다. 첫 번째로 아들을 낳으면 그들은 이를 첫 아들이라고 했다(창세27장, 출애4장22, 로마8장29). 어머니가 아기를 낳으면 젖을 물리는 것이 먼저 하는 의무이다. 루가는 여기에 신경을 쏟지 않고 의사답게 마리아가 예수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혔다고 하였다.
아기를 포대기에 싸는 것은 아기가 건강하게 그리고 다리가 굽지 않고 곳곳하게 자라도록 하는 조치였다. 이렇게 예수는 세속권력의 법에 복종하며 특별한 대우를 받지 않으며 가난한 보통사람이하는 대로 시세에 밀려서 주님의 듯을 따르며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