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흙의 신비
“몇 차나 필요하신가요. 백차, 이백 차?”
초보 농부라 아는 게 없다.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한 탓이 크다. 육묘장에서 사다가 심은 채소가 패잔병처럼 비실거려서 마음이 심란하다. 인근에서는 아파트 터파기 공사가 한창이다. 파낸 생흙을 실어 나르느라 덤프차가 온종일 바쁘다. 이웃에서는 논을 메우거나 대지를 높이는 이가 여럿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바쁘게 움직이던 덤프차가 뜨막해졌다. 공사 현장에 흙더미가 산처럼 쌓여간다. 아마 생흙을 처분할 곳을 찾지 못한 모양이다. 현장소장이 찾아와서 생흙이 필요하냐고 묻는다.
현직에서 물러나며 조그만 농지를 마련했다. 하릴없을 때 편안한 마음으로 찾아가서 농사를 지어볼 심산이었다. 그래서 농원 이름도 구름카페라고 지었다. 생각나는 대로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틈틈이 심은 게 열댓 가지나 된다. 채소는 잡초의 텃세에 고달픈 모양이다. 모든 영양분을 잡초가 가로채서 허기진 모습이다. 게다가 벌레가 잎을 갉아 먹어서 앙상한 줄기만 남고, 가지에는 진딧물이 눈곱처럼 끼어서 보기가 흉하다. 무슨 심사가 불편한지 오이는 배배 꼬였다.
지인들이 오가며 한마디씩이다.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라며 뼈 있는 말을 건넨다. 이웃에서 사는 이까지 거든다. 전주인은 상추 한 가지만 길렀는데 이것저것 잔뜩 심어놓고 어떻게 기를 거냐며 걱정이다. 옛날 같으면 나이 먹었다고 잔치 벌일 나인데 지금은 어딜 가도 노인 대접하는 이 없다. 그렇다고 경로당에 가서 심부름할 작정도 아니고 지인들과 어울려서 매일 놀러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퇴직하고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시작한 일이다.
마음이 늙지 않아서 서운하다. 가슴속에 피고 지는 꽃이 부지기수다. 어차피 시작한 일이라 포기할 수 없다. 때마침 여러 곳에 농작물 시범 포를 두고, 지역 적응시험이나 토양 반응검사를 하는 이가 찾아왔다. 그는 푸석푸석한 흙을 만져보고 작물을 유심히 살피더니 토양이 매너리즘에 빠졌단다.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말이 생경하다. 매너리즘은 틀에 박힌 방식이나 태도 때문에, 신선미와 독창성을 잃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서 토양이 타성에 젖어서 새로운 작물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하긴 예전에 상추만 기르던 땅이라 다른 작물이 낯선 듯하다. 그는 토양에 점토질을 높이어야 다른 채소가 잘 자랄 수 있다며 생흙으로 객토하라는 권고다.
‘친구가 하나 더 있으면 길이 하나 더 생긴다.’라고 하는 중국 속담이 가슴에 와닿는다. 새로운 작물을 심으려면 생흙으로 객토하면 된다. 공교롭게 인근 아파트 공사 현장소장이 들렸다. 선심 쓰듯 이야기다. 얼마 전까지 25톤 한 차에 사만 원씩 받았는데 무료로 실어다 주겠다는 것이다. 사실 서로 좋은 일이다. 그는 터파기한 흙을 처분해서 좋고 나는 객토할 생흙이 생겨서 좋은 일이다. 공짜라는 말이 귀가 솔깃했다. 그에게 부탁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덤프차가 흙을 실어 온다.
길섶에 생 흙더미가 생겼다. 흙을 나르려니 막막하다. 노지 같으면 기계를 불러서 처리하면 될 텐데 비닐하우스 안이라 기계로 할 수 없다. 손수 삽으로 파서 손수레로 실어서 옮겨야 한다. 며칠 퍼 날랐건만 터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무거운 손수레를 끄느라 어깨가 결리고 옆구리가 당긴다. 생흙으로 객토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 아니다. 여기저기 아프고 쑤시기에 한의원에 다니며 뜸을 뜨고 침을 맞으며 겨우 내 했다. 오래된 흙에 생흙을 집어넣는 게, 마치 매너리즘에 빠진 이를 혁신하는 양 어렵고 힘들다.
문득 지난 일이 생각난다. 오랜 송사에 시달렸던 기억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이 때문에 겪은 일이다. 낯선 민원인이 찾아와서 다급하게 조르기에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담당자를 불러서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가관이다. 민원서류가 담당자 캐비넷 속에서 잠자고 있었다. 여러 관련 부서가 검토해야 하는 복합 민원인데 무사태평이다. 조속히 처리하라고 부탁하니 놀라운 답변이다. 그가 한 부서에 오래 근무하여 타성에 젖은 탓이다. 걱정하지 말라며 옛날부터 법정시한을 지켜서 처리 해왔다고 자랑이다. 한두 건이 아니다. 여러 건 속 썩이더니 결국, 민원 처리가 지연되어서 민원인에게 고발당했다. 그이 때문에 법원을 들락거리며 괴로웠던 일이 생생하다.
물도 오래 두면 썩는다. 새 물로 갈아주어야 한다. 뭐든지 처음에는 호기심이 생기나 시간이 지나면서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한번 타성에 젖으면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고 거부하려는 속성이 나타난다. 그래서 오래 묵은 관습이나 방법을 바꾸는 게 쉬운 일 아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흙을 생흙으로 객토하듯 새 직원으로 교체했더라면 무탈했을 텐데.
생흙의 신비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밭에서 생기가 돌고 흙에서 윤기가 난다. 봄 햇볕을 받으며 상추, 고추, 오이 등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채소가 봄볕을 마주하며 춤을 추고 있다. 지난해 잡초에 눌려서 기를 펴지 못했던 채소들이 자리 잡고 포효하는듯하다. 녹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 청상추가 그득하고, 아기 손가락만 한 고추가 촘촘히 매달렸다. 배배 꼬였던 오이는 주렁주렁 탐지 게 달렸다.
지난 일을 모두 잊고 새로운 시작이다. 생흙을 넣어 객토한 땅에서 채소가 무럭무럭 자라니 마음이 뿌듯하다. 내일은 그간 지청구했던 이들을 초대하여 싱싱한 채소 한 보따리씩 선물하고 싶다.
첫댓글 유병덕 수필가님 올려주신 수필 <생흙>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도 시골 살았던 경험아 있어 객토를 잘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