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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만남
1979년 겨울 서울에서 짧은생활을 마치고 대구로 내려왔다. 아주 짧은 직장생활에서
몇 개월간의 기아자동차의 현장생활을 했지만 그생활도 생산관리였다
그러나 대구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고 하지만 추운날씨에 혼자 공장으로 찾아갔다
총무과장은 ‘관리자들도 현장을 알아야한다’라고 하면서 방적과에 발령을 내었다.
방적과는 솜에서 가느란 실을 뽑는 곳이었다. 기계는 하루종일 돌아가고 작업자는
온통 160cm남짓한 여성직공들로 가득찼다. 3교대제이다. 문앞에서 50명의 여공들이
또다른 반장이라는 여공앞에서 직업지시를 받고있었다. 곧 교대시간이다. 남자라고는
과장과 과수석 그리고 담당자가 이었고 기계를 수리하는 남자 1~2명이 보였지만 저는
수습겸 담당자역할을 했다.
과수석이 현장에서 전체에 대한 교육을 시킨이후에 역할을 주었다. 한건물안에서
원료를 투입하고 작업을 한후 그 생산물을 대차에 싣고 옆동 관리동으로 옮기는 일이
있었는데 기계관리도 하고 시간이 나면 그일도 도우라고 했다. 각반마다 반장이 있었다.
관리자는 일반직원과 같은 낮근무였다. 그러다보니 반장은 한달에 2/3정도는 만났다.
그러나 한달이면 3교대의 3명의반장을 만나서 그들과 친하게 지낼수가 있었다.
그녀들은 작업이 끝나면 바로 숙소로 돌아가야했는데 여자작업자의 전부는 기숙사생활
을 하였고 기숙사는 공장내에 있었다.
솜에서 실을 뽑는 원리는 실을 기계에 통과시키는데 그 기계에 추를 달아서 통과하는 실을
추에 메달리게 해서 늘어나게 만들어서 돌아가면 가늘게되는 구조이다. 그런데 추는 여러
가지 접시로 구성되어있어서 메달리게 하는 접시의 개수를 조절함으로서 실에 부과되는
장력을 조절하게되었다. 한 여공은 여러대의 기계를 다니면서 기계를 통과하는 실이 끊어지면
기계가 멈춰지는데 그때마다 여공은 가서 실을 이어주고 기계를 재가동하는데 저는 이들이
작업하는 것을 피해다니면서 추의 무게를 조절하곤 하였다.
틈틈이 생산량이 많이 생겨서 대차에 가득차면 그들을 도와서 관리동으로 옮겨기는 일을
했다. 작업동에서 관리동으로 대차를 이동할려면 문을 나와서 공장복도를 지나서 가야했다
가는동안 그동안 궁금한 이야기도 하였다. 그러는 동안 친해지게 되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작업을 중단하고 여공들이 복도를 거쳐서 식당으로 가게된다.
키가 큰 남자가 어설프게 공정라인을 휘젓고 다니기 때문에 모든 직원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들은 식사하러 왔다가면서 저를 만나면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저는 아주 수줍게 인사를 하곤했다. 어느날 한 반장과 친해질 무렵에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근무끝나고 수도원에 가는데요 같이 달 생각이 없어요.’라고 했다
저는 대학다닐적에 몇 달동안 예비자교리도 받고 학교후문에 있는 성당에도 다녔기 떄문에
좋다고 하면서 그를 따라갔다. 그곳에서 수녀님을 만났는데요 어느 한옥에서 외국인들과
같이 생활하고 계셨다. 외부에서 신부님이 오서셔 미사도 드리고 식사도 같이하고
신부님의 반주에 노래도 같이 부르고 헤여졌다. 매달 한번씩 이런일을 한다고 했다.
그때에 그곳에 계시는 한 수녀님이 같은 방적과에서 일하는 것을 알게되었다.
저는 작업동에서 일하고 수녀님은 관리동에 있었기에 자주 만나지도 못했다
그러나 가끔 관리동으로 갈때에 원피스형태로 청치마를 입고 목에는 커다란 십자가를
달고 계셨다. 저는 그이전에 수녀님을 만났기 떄문에 수녀님이 공장에서 일하는 줄도
모르고 작업복을 입고 있기에 유사수녀님인줄 알았다. 반장은 독실한 천주교신자였다
그런 연유로 대구교구 주교좌성당에서 예비자교리를 받고 세레를 받았다.
방적과에는 몇 달 있지 못하고 전산과로 옮기는 바람에 그녀들과는 연이 끊어졌다
그러나 수녀님과 반장은 매달 수도공동체로 가서 모임을 하기 때문에 제가 서울로
올라오기전까지 지속적인 만남은 이루어졌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서
그때의 생각이 잘 나지도 않고 얼굴모습도 잊어져버렸지만 제가 그리스도를 만날수가
있는 계기가 된 것은 틀림없는 일이 되었다.
2022년 1월 30일은 연중 4주일이자 해외원조주일이다
그날 제1독서에는 ‘3년6개월동안 기근이 있을때에 엘리아는 시돈지방 사렙타과부에게만
나타났고 나병환자중에는 시리아사람 나아만에게만 그의 몸을 깨끗하게 했다‘고 기록되어있다.
문득 지난날의 이병호주교님이 수련회중에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이태석신부님에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전쟁중 남수단을 찾아가서 그신부를 세상에 알린
PD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다.
성서형제회는 주님의말씀과 더불어서 아나윔정신을 생활화하자고 했지만 이런일이 도무지
나는 성서형제회 공동체내에서 비춰지지않고 있었다.
남미에는 가난한 원주민들이 하는 공동체가 있었지만 세계주교들이 모인 주교회의나
라틴지역의 주교들이 모임에도 가난한이에 대한 안건이 채택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들 글자로만 아니면 성서형제회헌장에만 들어있던 것인가 하는 실망감에 사로 잡혔지만
10년동안 같이 하면서 저도 그런것에 익숙해져 나갔던 것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여기에는 어떤 조건도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를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을 위해서
필요로 한것이라 여겨집니다. 복음말씀에서 주님은 회장에서 이사야 예언서의두루말이를 펼치며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라고 읽으시며 예수께서는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말씀은 우리에게 듣기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이를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명절을 앞두고 본당수녀님께 무슨 간단한 선물을 할까 고심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주일미사에 만나뵙지 못했다. 미사가 끝나면서 집으로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성당에서 집으로 가는길에는 초등학교가 있기 떄문에 그 앞 분식집이
있었다. 학교앞이라서 그런지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았다. 그때에 요즈음 코로나로 인해
아주머니가 어려울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옆 대형마트에 들어가서 콩두유 한박스를
분식집에 들러서 용기를 주는말과 함께 드렸다. 아주머니는 사양하지만 얼른드리고
총총걸음으로 떠나갔다. 그때에 그 아주머니께 말씀드렸다. ‘제가 이동네 사는데 용기를
네세요..‘라고 했다. 가격은 불과 8천원남짓했던 부끄러운 일이다.
오늘묵상과 더불어서 복음의 기쁨에 대한 어느 신부님의 강의내용을 인용해본다.
복음의 기쁨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
「복음의 기쁨」의 탄생 배경에는 제13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2012년 10월 7일부터 28일까지)가 있다.
주교 시노드(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주제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전수를 위한 새복음화’였다.
시노드를 폐막하면서, 그 결과물로 58개 제안문을 베네딕토 16세 교황에게 올렸다. 교황은 시노드
기간 중인 10월 11일에 ‘신앙의 해’를 개막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 2013년 11월 24일에 새 교황 프란치스코는
신앙의 해를 폐막했는데, 그때에 교황 권고문인 「복음의 기쁨」을 냈다.
교황의 현실 인식
교황은, 이 권고문을 내기 3개월 전에, 예수회 잡지 「가톨릭 문화 생활」(Civiltà Cattolica)과의
인터뷰를 통해, 「복음의 기쁨」의 뼈대가 되는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오늘날의 교회를
이렇게 묘사했다. “저는 오늘날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신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 줄 능력을 신장시켜야 합니다.
그들 가까이 있어야 하고,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전투가 끝난 뒤의 야전병원과 같습니다.
중상을 입은 사람에게 콜레스테롤과 혈당의 높은 수치 여부를 묻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일단 그의 상처를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 뒤에 다른 것들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처부터 치료해야지요. (한 번 더 강조하시며) 상처부터 치료해야지요(…)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신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 교황의 현실
인식이다. 예수님께서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며 죄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들의 마음에
성령의 불길을 불어넣어 주신 것처럼, 교황은 그렇게 하길 원하고 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교황의 생각은 무엇인가? 교황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현실 세계의 죄악과 고통으로
얼룩진 슬픔, 자본주의 사회의 내적 공허와 외로움을 치유시켜 줄 수 있는 것은
구원밖에 없고, 이는 오로지 그분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복음의 기쁨」 1항).
「복음의 기쁨」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교황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체험 없이는 그 누구도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만일 신앙인
가운데 누군가 무미건조하고 타성에 젖은 삶을 살고 있다면, 그분과의 밀도 있는 인격적
만남을 요청하며 기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것은 이 만남으로 시작되고 유지되며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원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분에 대한 신앙을 통해 천국의 삶을
희망할 때에만 가능하다.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통과하고 부활하여,
당신이 진정한 승리자이심을 확인시켜 주신 분이다. 비도덕적이고 부조리하며 까닭 모를
고통과 죽음 앞에 모두들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죄인들의 만행으로 의인이 죽임을 당하고
하느님 어디 계시느냐며 울부짖고 있는 인류에게, 부활하신 그분께서 답을 주셨다. 삶의
궁극적 이유와 목적은 그 죽음 너머에 있음을 밝혀주셨다. 당신이 그 죽음을 이겼다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추종자들에게 이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요구하셨다. 믿는 자는 다시는
삶의 부조리함에 불안해하지 않는다. 초월적 생명을 누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그분의 첫 인사말 “너희에게 평화 있기를!”의 참된 의미가 이것이다. 그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신앙인의 평화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거듭 말한다. 하느님은 의인의 죽음을 불쌍해 하며 하늘을 향해 원망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 그 의인들은 예수그리스도처럼 상급을 받을 것이라는
확증이시다. 이에 대한 믿음만 간직한다면 다시는 몰이해도 없다. 주님께 대한 믿음만
있으면, 이 세상의 어둠은 모두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죄 없는 이들의 죽음, 범죄의
희생자들, 사건과 사고의 피해자들, 전쟁의 사망자들, 이 지상에서 삶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사람들의 비통한 죽음까지도, 그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 하느님께서 보상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의인의 죽음은 역사 안에서 죄인의 죄악성을 드러내 주고, 인류의 회개와 반성을
촉구하며 하느님 나라에 더욱 나아갈 밑거름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짊어지고 이
역사의 여정을 걸어야 할 십자가인 것이다. 이 지상에서의 하느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그분과의 진정한 만남 없이 현실 세계에서의 완전한 기쁨과 평화는 있을 수 없다.
그 만남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든다. 교황은 베네딕토 16세의 회칙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결단이나 위대한 사상에 대한 동조나 실천의 결과가
아니라,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하느님은 사랑이시다」 7항).”
첫댓글 + 아멘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