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로 보여 주는 인생의 고비 고비
임병식 rbs1144@hanmail.net
나는 길을 가다 노거수를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다. 반드시 멈춰서서 한참을 우러러 본다.그러한 건 나무가 단지 오래되었다거나 멋있어서가 아니다. 그만한 연륜이라면 어딘가 모르게 쌓인 세월의 흔적을 간직되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이다. 아니나 다를까 노거수를 보면 반드시 어딘가에 연륜의 흔적이 베어있다. 가지가 찍어져서 절단이 되거나 몸피가 튀어 나와서 굳은 옹이가 박혀 있는 것이다.
더러는 뿌리가 솟아오르거나 밑동이 구새가 먹은 자국도 발견된다. 그런 걸 보면서 자연스레 인생에 견주어 보게 된다. 사람이라고 해서 어찌 다를까. 사람도 나이 80을 넘겨 90을 넘어서면 얼굴에 깊은 인생훈장이 새겨진다. 이마와 볼은 주름이 골짝을 이루고 눈꼬리가 쳐지면서 입술은 탄력을 잃는다.
뿐인가. 흑단의 머리는 희어져서 성겨지고 허리는 굽어서 발밑을 향한다. 그런 노인을 보노라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인생역정이 그려진다. 개개인의 남다른 사연도 있겠지만 그 인생사를 역사와 대비해 보면 간단치 않는 한 생애가 가늠이 된다. 일제강점기를 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해방이 되어 6.25를 겪고 보릿고개를 넘기며 살아온 삶이 그려진다.
그렇게 살아온 삶 중에는 돌이켜 보아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인생도 있을 것이고, 실패 했다고 한탄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달라서 부의 크기나 부피로 평가할 수도 있겠고, 자손을 잘 두었는가 여부로 성공을 가리는 사람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 스스로 인생을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장수의 기준으로 보면 오래살고 있으니 성공한 인생일지도 모른다. 흔히 오복을 말하면서 장수를 가장 앞세우지 않던가.
사람은 살면서 온갖 일을 다 겪는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병들어 죽기도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교통사고와 안전사고로 죽어가기도 한다. 그런 것을 피하여 장수를 하는 것만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 그것 말고 인생의 보람이라든가, 성취 여부로 따진다면 그것은 각자의 노력여하에도 갈리지만 운수도 그만큼 따라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얼마 전에 평창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7일째 경기 남자 쇼트스랙 1,000m 경기를 시청했다. 한국선수가 나서는 조1에는 한국선수가 3명이 포진 되었다. 임효준. 서이라. 황대헌 선수였다. 임효준 선수는 전일에 열린 1,500m에서 이미 금메달을 딴 선수로서, 무려 여섯 번의 부상을 당하고 여섯 번의 수술을 받은 선수라고 소개됐다.
그리고 서이라 선수는 한국의 에이스이며 황대헌선수는 고교생으로 출전한 이 종목의 선수권자라 했다. 한 조에서는 두 명만 진출하게 되는 준결승 경기. 선수들이 긴장한 모습으로 출발선에 섰다. 한국선수들은 처음에는 후미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가 나머지 세 바퀴를 남기고 임효준이 치고 나갔고, 그 뒤를 황대헌이 바짝 따라붙었다. 이때까지도 서이라는 뒤에 쳐져서 기회를 엿보았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고 있을 때였다. 서이라가 무서운 속도로 내더니 외곽으로 치고 나갔고 임효준과 함께 준결승에 가뿐히 진출했다. 황대헌과는 스케이트날 하나의 간발의 차이였다.
이어서 벌어진 결승전 경기. 아나운서는 두 명의 선수 중 한명이 금메달을 따지 않을까 전망했다. 한데 이럴 수가 있는가. 출발부터 선두권에 나서지 못하고 머뭇거린 한국 선수 두명은 트랙을 돌다가 그만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서이라가 먼저 넘어지면서 앞서가던 임효준의 발을 건드리고 만 것이었다.
앞서 이들은 호시탐탐 치고나갈 기회를 엿보았다. 임효준은 자기의 장기대로 인코스를 노리고 서이라는 따라붙으려 애를 썼다. 그런데 상대 선수도 만만치 않았다. 좀처럼 추월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서이라가 조급한 나머지 무리를 하게 된 것이었다. 네티즌들이 흥분하여 질타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이미 물 건너 간 일인데. 안타깝지만 문제 삼을 일은 아니지 않는가 한다. 고의로 한 것도 아니고 피차 경쟁하다 운이 없이 벌어진 일이 아닌가. 행운이 예비 되어 있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걸 보면서 나는 또 다른 인생역정을 목격하는 기분이었다. 톱파 보면 우리네 삶이라는 것도 무비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일이 잘 되려면 무엇이든지 순조롭게 풀리지만 안 되는 일은 꼭 가탈이 붙지 않던가. 우리 선수가 승리할 운이었다면 넘어지지도 않았겠지만 같은 한국선수의 스케이트도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경기를 구경하자니 마치 한 인생이 걸어온 고비 고비, 그 압축된 파란만장의 삶을 보는 듯 했다. (2018)
첫댓글 저도 52년 전 군대 생활 할 때 친구가 월남파병을 지원해 나는 그를 위하여
“야 ○○아! 너 죽으려고 환장 하냐?” 고 말하니 친구의 말인즉
“야, 죽을 팔자면 접시 물에도 빠져 죽고 오래 살 운명이라면 월남 가서도 살고 여러 혜택도 있으니 다녀오마.”
해서 설마 했는데 월남을 무사히 다녀오고 지금은 유공자라고 나에게 자랑을 하던 친구가 생각납니다.
인생살이는 팔자소관대로 살다가는 삶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쇼트트랙 남자 1000미터 경기를 보면서 노력도 필요하지만 운수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살이도 노력과 행운이 반반씩 작용하지 않는가 생각하니다.
노거수와 인생, 쇼트트랙과 인생...수백 년 세월의 노거수와 망구 망백의 삶의 대비는 언제나 우리를 숙연하게 합니다 그러나 노거수의 세월을 읽어내기란 그리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잠시 잠깐동안에 펼쳐지는 쇼트트랙 경기에서는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회를 놓친 인생은 무리를 하다가 오히려 실패하기 십상인 듯합니다 노거수의 삶의 압축판이 쇼트트랙 경기이지 싶습니다 기나긴 인생에도 때로는 순간적인 판단과 선택이 필요하다 여겨지네요 잘해보려다 실수했다는 변명의 씁쓸함에 대해 생각게하는 작품이네요
쇼트트렉 경기를 보면서 문득 이것이 인생의 축소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한번사는 일회성의 삶에서 삐끗하고 말면 인새은 그리치고 마니 잘 살아여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국문학인 2018. 여름호 발표
인생을 보통 운동경기에 많이 빗대어 얘기를 하곤히지요. 평창올림픽을 한지 벌써 2년 반이나 지났네요. 재밌고 감동있게 봤었는데..
그때 저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역시 쇼트트랙이 박진감이 넘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