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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 주 : 원로 문인 지교헌 박사(수필가, 철학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의 ‘독후감’을 인상 깊게 읽었다. 구순(九旬)을 바라보는 연로하신 문인이 평소 구해보고 싶었던 책 - 정구복 著《우리 어머님》- 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시고 정성껏 독후감을 쓰셨다는 점도 놀랍거니와, 몸도 불편하신 가운데 인터넷에 글 올리기도 익숙지 않으신 원로 문인께서 책의 저자를 통해 수정할 부분을 세심하게 살펴달라고 하신 후에 인터넷 카페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에 소개한 점도 감동적이었다. 필자가 평소 존경해 왔던 지교헌 원로 수필가의 독후감 옥고에 댓글 형식으로 감사의 예를 표하고 나서, 이 시대 보기 드문 훌륭한 독후감이라는 생각이 들어 해당 책《우리 어머님》도 ‘재 조명’ 할 겸, 독후감 옥고 전문(全文)을 대전수필문학회 카페, 한국문학시대 카페와 카카오스토리, 필자의 블로그, 페이스북 등에도 소개한다.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정구복 교수가 지은《우리 어머님》을 읽고
지교헌(수필가, 철학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벌써 몇 해 전에 정구복(鄭求福) 교수가 지은《우리 어머님》이 지식산업사에서 출판된 것을 알면서도 서점에 나갈 기회를 갖지 못하다가 뒤늦게나마 최근에 이르러 OO도서관에서 대출해 오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다.
드디어 책을 받아들고 보니 2008년에 나온 초판에 이어 2010년에 나온 제2쇄본이고 그 표지에는 ‘한 가족사에 비낀 현대한국의 사회와 문화’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리고 표지에는 독립기념관에 드높이 솟아 있는 ‘겨레의 탑’을 배경으로 저자가 뒤에서 밀고 있는 휠체어에는 백발이 성성하고 풍채가 좋은 그의 모친이 새하얀 옷차림으로 앉아 계셨다. 평화로운 모친의 모습과 미소를 머금은 저자의 모습이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시선을 끄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 책을 쓰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1. 역사창조의 주인공은 모든 사람이다. 어머니도 역사창조의 주인공이었다. 2.현대사의 중요성, 3.환경의 영향, 4.역사의 실용성, 5.역사의 지속성, 6.부모는 가장 소중한 존재임을 밝히기 위함이었다고 쓰고 있다.
저자의 모친은 조선왕조가 멸망하기 전인 1909년 9월에 출생하여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내고 17세의 나이로 결혼과 동시에 고된 시집살이가 시작되었다. 당시의 농촌사회는 그야말로 전근대사회의 후진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우선 농토가 있어야 하는데 농토는 지주들의 전유물이어서 가난한 사람들은 소작인(小作人)이 되어 신세를 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농지가 어느 정도로 확보되었더라도 흉년이 잦고 비료를 주고 논밭을 가꾸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많은 농민들이 빈곤과 질병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가난한 농민들은 적은 농토나마 열심히 갈고 걸음을 주고 풀을 뽑고 병충해를 방제하고 폭우와 한발(旱魃)과 싸워서 겨우 추수를 하지만 설을 쇠기도 전에 식량이 떨어져서 남에게 식량을 꾸어다가 연명하고 의복도 매우 열악하여 겨울에는 추위에 떨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해마다 겪게 되는 춘궁기(春窮期)의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고난이었다.
저자의 부친(정 윤용; 鄭 允溶 1911~1950)은 아무리 노력하여도 도저히 가난을 극복할 수가 없어서 밖으로 세상 사람들이 살아나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세상을 살아나가는 방법을 깨우치기 위하여 가출하기도 하였지만 그대로 고향에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음을 깨닫고 드디어 일본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것은 흔히 볼 수 없는 남자다운 결단이었다.
가난한 농민들은 농촌의 모든 악조건을 벗어나기 위하여 농촌을 떠나 이리저리 유랑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모험이면서도 일시적인 도피에 지나지 않는 수가 많았다. 당시 식민지 조선(朝鮮)에서는 남자들이 일본의 탄광(炭鑛)으로 가서 막장에서 위험한 노동을 하기도 하고, 여자들은 공장에서 일하면 많은 봉급을 받는다고 유혹하는 이른 바 정신대(挺身隊 ; 종군위안부)로 속아서 끌려가기도 하였으나 일반인들은 간혹 일본의 도시와 농촌에 가서 돈을 벌어 오는 수도 있었던 것이다.
또한 ‘내선일체’(內鮮一體)의 구호가 강력하게 휩쓸고 있는 분위기에서 저자의 부친은 일본의 동경부근에 있는 작은 도시(이바라기현 미쓰가이도마찌; 茨城縣 水海道町)에 정착하여 고물상을 운영함으로써 한국보다는 훨씬 여유 있는 생활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한국에 있는 가족을 이끌고 가게 되었다.
이때 그 부인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하게 되고 자신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일본관헌이 이름을 물었으나 자신의 이름을 대지 못하여 ‘바가야로’(馬鹿野郞; 바보, 멍청이)라는 말을 듣게 되고 남편으로부터 처음으로 “서옥순”(徐玉順)이라는 이름을 들었다고 한다. 당시만 하여도 여자들 가운데는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이름들이 몇 가지 있었고 호적에는 ‘김씨’(金氏)니 ‘박씨’(朴氏)니 하는 이름이 많았다. 한국의 전통사회에서는 남존여비사상(男尊女卑思想)이 일반화하여 남자가 호주가 되고 가장(家長)이 되고 대외적인 활동을 하기 때문에 저절로 그런 현상이 벌어졌다고 할 수 있다.
저자의 부친 정윤용(鄭允鎔)은 일본에서 자리를 잡고 비교적 궁색하지 않게 생활하게 되고 1943년 3월에는 미쓰가이도마찌(水海道町) 2741-2번지에서 셋째 아들 구복(求福)을 낳아 기르고 있는데 미국과 일본의 전쟁은 점점 치열해져 갔다. 그는 그 동안 자신의 부친과 계모를 일본으로 모셔오고 숙부와 두 외숙도 일본으로 안내하여 인근에서 생활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1944년 봄, ‘조선인징용령’(朝鮮人徵用令;國民徵用令)에 따라 이바라기현(茨城縣)에 있는 쓰치우라(土浦)해군비행장 공장에서 강제노역을 치루기도 하였다. 전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막바지에 이르자 불안한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하여 이 해 12월에는 구복의 할아버지 내외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오고 다음 해 1월에는 구복의 가족이 귀국하고 이어서 숙부와 두 외숙이 귀국하였다. 이 무렵을 전후하여 미국의 B29기는 1945년 8월 6일과 8월 9일에 일본 본토의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게 되었고 수 십만의 사상자를 내게 하였다.
이리하여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은 연합국에 대하여 무조건항복을 하게 되고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고 저자의 가족들은 청양군 장평면 갓점을 거쳐 낙지리(忠南靑陽郡長坪面樂只里)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후 우리나라는 미군의 군정(軍政)을 거치게 되고 1948년에는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었으나 북한에서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정부가 수립됨으로써 남한과 북한은 이른 바 분단국(分斷國)이 되었고, 1950년에는 ‘6.25사변’이 발발하여 북조선 인민군은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갔다가 미군을 중심으로 하는 유엔군의 반격으로 다시 압록강까지 후퇴하였으나
‘항미원조’(抗美援朝)를 내세운 중화인민공화국의 군대가 참전하게 되고 1953년 7월 27일에는 정전협정(停戰協定)을 체결하게 되었는데 이에 앞서 저자의 부친은 우연한 질병으로 고생하다가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1950년 9월 9일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향년 40세였다. 이리하여 큰 아들(求世)과 둘째아들(求榮)은 6학년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초등학교를 중퇴하게 되었다.
저자(정구복 박사)의 형들은 열심히 농사를 하여 살림을 돕고, 어머니는 명주와 모시길쌈을 하고, 누나는 무명길쌈을 하여 시장에 내다 팔아서 살림을 꾸려나갔다. 그러나 온 가족이 아무리 힘을 합하여 노력하여도 살기는 매우 힘이 들고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셋째 아들, 구복(求福)도 중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되지 못하여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담임선생님의 권고로 장학금을 운영하는 독지가(篤志家) 서병훈씨가 부친(徐相吉)의 유지를 받들어 운영하는 ‘상길육영회’(相吉育英會)를 찾아가 장학금을 신청하여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매년 학자금을 받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장학금은 고등학교까지 이어졌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서울에서 학생들의 가정교사가 되어 학비를 충당하면서 서울대학교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이어서 다시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에는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복무하게 되었다.
저자는 육군사관학교 교관에서 전역한 후에는 전북대학교역사학과 교수로 근무하다가 충남대학교로 직장을 옮기고, 다시 수년 후에는 한국학연구의 중심기관으로 알려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역사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으며, 한편으로 서강대학교대학원에서는 사학사(史學史)를 연구하여 문학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그 동안 그의 어머니는 어느 덧 회갑이 되어 자녀들이 잔치를 올리게 되고, 다시 칠순(七旬)을 맞이하여서는 수의(壽衣)를 장만하게 되고 불교에 귀의하셨다. 어머니는 아들의 불교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점점 감동을 받았다. 정 구복 교수는 1968년 경부터 불교를 신앙하게 되었는데 성 낙훈(成樂熏)교수에게 원효의《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를 공부한 것이 신앙의 저력이 되었다.
그는 한국의 불교설화를 어머니에게 들려드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많이 노쇠하여 변비증이 심하고 기동이 매우 불편하였으나 자손들이 효성을 다하여 봉양하고 간병한 덕택으로 수명을 연장하고 지탱하다가 2000년 12월 24일에 영면하셨다. 향년 92세였다.
이상과 같이 정 구복 교수의《우리 어머님》은 그 내용이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나라가 얼마나 살기에 힘든 형편이었으며, 그 어려운 환경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와 민족의 문제이었으며 그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기 위하여 모든 국민들이 얼마나 인내하고 노력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 어머님》은 단순한 소설이나 사사로운 기록을 훨씬 넘어서 20세기를 살아온 우리 겨레의 고난과 강인한 의지를 엿 볼 수 있는 귀한 교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주목을 끄는 점은《우리 어머님》이라는 저서는 문학가들이 흔히 활용하는 통속적인 소설작법의 형식이나 기법(技法)을 취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흔히 소설에서 활용하는 발단-전개-절정· 위기· 반전-결말과 같은 일반적인 구성(plot)의 형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허구(虛構; fiction)와 같은 것도 완전히 배제된 순수한 체험과 기록을 근간으로 하여 작자의 학식과 전문적인 역사적 지식을 활용하여 독자로 하여금 이해하기 쉽게 면밀히 서술해 놓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1).어머니 출생의 시대적 배경 2).1919년의 3·1운동 3).혼인풍속–재행(再行)과 근친(覲親) 4).창씨(創氏)개명(改名) 5).해방공간과 건국 6).고향의 전설 7).4·19혁명, 대학입시제도와 국가고시 8).국가발전전략과 민주화, 1964년의 6.3사태, 9).20세기 한국역사의 특성과 역사적 과제 10).가족의 의미 11).부록; 한국인의 역사의식. 12).기타 참고문헌 26권의 활용과 같은 차례에서 잘 알 수 있으며 이밖에도 매우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자료들이 소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세상에 유행하는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논픽션’(non-fiction)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훌륭한 선각자의 회고록과도 같은 값어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 구복 교수는 <<우리 어머님>>의 부록으로 정년 퇴임기념 강연으로 알려진 ‘한국인의 역사의식’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것은 한국고대인의 역사의식, 한국중세인의 역사의식, 한국 근현대인의 역사의식, 한국문화의 중심축, 한국사 연구의 방향과 역사관, 나의 학문 활동과 인생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바 참으로 귀한 글이다.
《우리 어머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님인 동시에 우리에게 지혜와 사랑과 용기를 일깨워주는 어머님이기도 하며, 가족사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의 역사와 나라의 역사와 세계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기초를 제시하는 동시에 저자의 인생관과 윤리관과 국가관과 세계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2020.10.23. 지교헌)
【댓글】윤승원
존경하는 지교헌 수필가님이 쓰신 정구복 교수님의 저서《우리 어머님》에 대한 독후감 옥고를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저도 정 교수님의 본 저서를 밑줄을 그으면서 나름 꼼꼼히 읽은 바 있어, 지교헌 수필가님이 쓰신 독후감이 가슴에 절절히 스며들었습니다.
정 교수님의 저서도 이 시대에 쉽게 접하기 어려운 훌륭한 교양도서로서 큰 가치를 지닌 역저입니다만, 지교헌 수필가님의 정성스러운 독후감도 본 저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자상한 해설을 담고 있어 이 시대 보기 드문 귀한 서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교헌 수필가님은 408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정 교수님 저서를 간결하면서도 중요 대목을 빠짐없이 치밀하게 짚어주셨습니다. 이 책을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꼭 구해 읽어 보고 싶은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한 권의 책에 대해 정성들여 상세하게 분석하고 해설한 독후감은 귀한 학술적 가치가 있으므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꼭 읽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숨어 있는 역사 지식을 습득하고, ‘효행’까지도 배울 수 있는 내용이 가득하여 ‘교과서에 수록’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교헌 수필가님은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셨다고 하는데, 저는 대전에서 사시는 누님한테 이 책을 받았습니다. 누님이 어느 날 정구복 교수님댁 혼사에 가셨다가 받아온 귀한 책이라면서 제게 읽어보라고 주셨습니다.
그 후 대전의 어느 문학 모임에서 원로 문학평론가이자 충남대학교 명예교수이신 송백헌 박사가 제게 이런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정구복 교수는 내가 충남대학교 재직할 때 전북대학교에서 충남대학교로 전입해 와서 절친하게 지낸 사이였습니다. 뒤에 정신문화연구원(지금의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전출을 갔지만, 그 교수의 학구적인 태도나 어머니에 대한 효성은 대단했습니다. 정 교수가 ‘어머니’에 대해 쓴 저서는 참으로 훌륭한 내용입니다. 어머니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깔고 서술한 일대기여서 오래도록 남을 ‘효도 교과서’라고 칭할 만합니다. 윤 선생도 만약 받아보지 못하셨다면 한 권 달라고 해서 읽어보세요. 꼭 읽어야 할 책이니까요. 내가 가지고 있던 책은 대전문학관에 기증하였습니다.”
저는 정 교수님의 이 책에 나오는 고향 <낙지리(樂只里)> 지명에 대한 유래를 청양군에서 발행한 그 어느 책자가 됐든, 시골 동네 입구에 세워진 <낙지리 유래비>에서도 본 바가 없기에 고향 이야기를 담은 저의 졸고 수필에도 한 대목 인용한 바가 있습니다.
이 책은 특히 <사랑방 나들이>라는 제목으로 ‘족보 읽는 상식’이라든가 ‘명심보감’ 주요 대목 등 가정에서 필요한 생활교육과 인성 교육 자료도 군데군데 배열하여 많은 공부가 됩니다.
아무튼 정구복 교수님의 훌륭한 저서《우리 어머님》을 새롭게 재조명해 주신 지교헌 수필가님의 독후감 옥고도 책을 잘 읽지 않는 세태에 큰 가르침이 되리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10.28. 윤승원
※ 대전문인총연합회[대전문총 / 한국문학시대]카페 댓글 소개 :
첫댓글 좋은 글을 보면 참을 수가 없습니다. 가족과 지인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대전문인총연합회(대전문총) 카페 ㅡ 김영훈 전 회장님(소설가, 문학평론가) 댓글 소개
윤승원 감사의 댓글 덧붙임 :
저의 책을 문인협회카페에까지 올려주신 장천 윤승원 선생의 고마움을 갚을 길이 없습니다. 더구나 윤선생에게 책을 드리지도 않았는데 누님으로부터 받았다고 하니 더욱 죄송한 생각이 듭
니다. 문인협회 여러분이 댓글을 달아주신 성의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윤선생님은 역사와 문학의 가교를 설치하셨습니다. 앞으로 문학가들로부터 많은 글쓰기를 배우려고 노력하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녀에게 효행을 가르치는 데는 첫째, 가정에서 어른이 모범을 보이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효과도 있고,
그 다음으로는 이렇게 효를 실천하는 어르신의 귀한 책자를 읽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전에는 <효문화 축제>를 열기도 하고, 전국 유일의 '뿌리공원'도 있어 효와 관련한 행사도 많이 열립니다.
정구복 교수님의 저서 <우리 어머님>은 한 편의 생생한 <효실천 다큐 드라마>입니다.
많은 독자들에게 알리는 일도 중요하고 문인들의 재조명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여러 곳에 소개했습니다.
따뜻한 댓글로 보듬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대전수필문학회' 카페에 소개한 지교헌 수필가님 독후감과 그에 대한 저의 감상문에 강표성 수필가(대전여성문학회장, 전 대전수필문학회장)께서 따뜻한 댓글을 올려 주셨기에 소개합니다.[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보임]
정구복 교수의 <<우리 어머님>>을 읽고 느낀 바 있어 감히 독후감을 썼습니다만
원작의 만분의 일도 소개하지 못한 듯하여 송구하고 부끄러울 따름이거늘
윤승원선생께서 나의 독후감을 칭찬해주시니 참으로 민망할 따름입니다.
글이란 아름다운 글귀를 초월하여 더욱 아름답고 감동적인 차원에서
쓰여지는 것이며 독자의 가슴을 울려주는 언어의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전수필문학회와 대전문인총연합회의 아름다운 댓글에 감사하오며
그 문학적 향기가 온 나라에 차고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지교헌
서평은 제2의 창작물입니다. 지교헌 박사님의 독후감은 근래 보기 드문 서평입니다. 한 권의 책에 대해 핵심 주제를 꼼꼼히 찾아내어 독자에게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저자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면서 오늘 날 독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화두를 던져 주는 유익한 서평입니다. 독후감 쓰기를 공부하는 학도들에겐 서평의 본보기로 삼아도 좋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