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강인춘 |
사서(史書)의 기록으로는 “연보하는 힘이 점점 자라며 어떠한 곳에서는 11노를 드리며 부인들이 쌀로(성미) 연보하며 어떤 곳에서는 소를 사서 장래에 조사비를 충용코저 경영함”(제1회 총회회의록 43쪽, 경기충청노회보고서)이라는 사필(史筆)의 묵적(墨翟)이 있다.
부인들은 매끼마다 밥을 짓기 전에 먼저 식구 수대로 쌀을 한 수저씩 떠서 준비된 단지나 천으로 된 성미주머니에 모았다가 주일이면 교회에 바치는 정성어린 신앙으로 발전하였다. 이는 오늘날에도 거의 모든 교회가 여전도회 주관으로 실시되며, 모아진 쌀은 목회자의 식생활 보조를 주축으로 빈한한 교인들의 구제에 쓰였으며 주일학교의 어린이 생일잔치나 추수감사절 등 교회행사에 사용되기도 한다.
이 제도는 재정 형편이 넉넉지 못한 교회에서 목회자의 생활보조의 한 방편으로 이용되었고 경제권이 없는 부인들이 교회 재정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그만큼 부인들의 신앙훈련에도 좋은 결과를 나타내었다(기독교백과).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 성미 제도가 헌금의 하나로서 가지고 있는 본래의 뜻을 상실한 채 형식적인 제도로 전락하거나 그나마 도시 교회에서는 이를 폐지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기독신문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