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룩한 괴뢰(傀儡)입니다
최광희 목사
최근 북한이 느닷없이 대한민국을 괴뢰(傀儡)라고 표현했습니다. 지난달 30일에 치러진 제19회 항저우아시안게임 여자 축구 8강전 남북 간 경기 결과를 전하면서 북한 조선중앙TV는 자막에 북한을 ‘조선’으로 대한민국을 ‘괴뢰’로 표기했습니다(10월 2일 SBS 뉴스). 그동안 북한이 우리나라를 부를 때 주로 ‘남조선’이라고 했는데 금번에 갑자기 ‘괴뢰’라는 명칭을 쓴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아마 우리를 자극하거나 남남갈등을 부추기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는 말로 뉴스는 마무리했습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가 북한을 ‘북한 괴뢰’, 줄여서 ‘북괴’라고 불렀습니다. 당연히 북한군대는 괴뢰군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북한도 우리를 향해 괴뢰 정부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남북한이 서로를 향해 괴뢰라고 한 것이지요. 그러다가 남북한 고위급접촉을 할 때는 북한이 우리나라의 국호를 ‘대한민국’이라고 사용한 적도 있습니다.
평소에는 남조선이라고 부르다가 뭔가 비위를 맞추어야겠다 싶으면 대한민국이라고 부르고 또 기분이 상했거나 우리를 자극하고 싶을 때는 다시 괴뢰라고 부르는 북한은 혹시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가 급격히 나빠지기를 반복하는 조울증(躁鬱症, manic depression)에 걸린 나라일까요?
오래전 북한을 괴뢰라고 불렀을 때부터 이 말이 좋지 않은 뜻이라고 느끼고는 있었는데 이 단어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요? 괴뢰(傀儡)는 같은 의미의 글자 두 개로 이루어진 단어인데 괴(傀)도 꼭두각시 혹은 허수아비를 뜻하며 뢰(儡)도 역시 꼭두각시 혹은 허수아비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괴뢰의 뜻은 당연히 꼭두각시라는 뜻입니다. 북괴, 괴뢰군, 괴뢰도당 등의 어감은 뭔가 흉측하고 사악한 느낌이 그 단어의 본뜻을 알고 보니 좀 허탈한 느낌이 듭니다.
여기서 ‘꼭두’라는 단어는 한자 말 곽독(郭禿)에서 나온 말인데 곽독이란 기괴한 가면이나 탈을 씌운 인형을 뜻합니다. 이 곽독(郭禿)이 ‘곡독’, ‘곡도’를 거쳐 ‘꼭두’로 받음이 변했습니다. ‘꼭두’에 ‘각시’가 덧붙여져서 만들어진 꼭두각시는 ‘색시 인형’을 뜻하지만, 오늘날에는 인형극에 사용되는 모든 인형을 지칭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꼭두각시의 특징은 스스로는 움직이지 못하고 조종하는 사람에 의해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북한이 서로를 향해 괴뢰 정부라고 부른 것은 스스로는 움직이지 못하고 다른 나라의 조종을 받는 정부라고 조롱하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선진국 대열에 우뚝 선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핵무기까지 만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도 누구의 조종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남북한 정부와는 상관없이 세상에는 괴뢰(꼭두각시)처럼 줏대 없이 사는 개인들이 상당히 있습니다. 요즘 ‘자기 주도적 학습’이라는 개념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타의로 공부하는 괴뢰 학생이 많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직장인이라면 자기 역할을 파악한 후에 주도적, 능동적으로 일해야 하는데 관리자의 눈치를 보며 마지못해 일한다면 괴뢰 직장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세상은 그런 괴뢰(꼭두각시)가 아니라 주도적으로 자기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로 인해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괴뢰가 되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그가 시키는 대로 일하기로 계약했다면 내 맘대로 일해서는 곤란합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이 내 뜻이 아닌 다른 사람의 요구에 따르기로 계약하고 살아갑니다. 만일 남이 시키는 대로 일하는 것이 꼭두각시 같아서 싫다면 그 계약을 종료한 후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 합니다.
또한, 영적인 면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괴뢰입니다. 죄인을 용서하고 원수도 사랑하라는 명령 앞에서 우리는 일종의 괴뢰가 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 사랑으로 접근할 때는 마치 임산부가 태아를 위해 몸가짐을 조심하듯이 언행을 삼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거룩한 일에 헌신하고 순종하는 것은 기계처럼 움직이는 꼭두각시는 아닙니다. 하지만 내 뜻을 내려놓고 성령님께 복종하는 면에서 우리는 거룩한 괴뢰입니다. 우리 성도는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보이지 않는 사랑의 줄에 매여 내 의지가 아닌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우리는 거룩한 괴뢰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