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여름휴가/전 성훈
여름휴가라는 말이 조금 어색하다. 뭔가 설레는 마음으로 떠나는 게 휴가인데 광복절 연휴에 어디로 떠나지 말고 ‘집콕’하라는 정부의 지침이 마음을 살짝 짓누른다. 코로나로 인한 사정이나 여건은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르다. 이제까지 시행한 정부 당국의 방역 관리대책을 보면 올바른 해답을 찾지 못하고 허둥지둥 쩔쩔매며 이런저런 핑계만 찾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각자 처지에 따라 이 고통스런 시기를 잘 견디어 나가는 게 현실적인 방안인 것 같다. 한 달 전 아이들이 펜션 두 채를 예약하여 가족 모두가 모처럼 바람을 쏘이러 집을 나선다. 가까운 곳으로 가기로 하여 멋진 갯벌이 있는 강화도 동막 해변 펜션에서 2박3일간 머무는 일정이다.
길이 그다지 막히지 않아 2시간 정도 달려 12시경에 강화도 ‘강된장’이라는 맛집에 도착하니 자동차가 가득하다. 운 좋게 빈 곳이 눈에 띄어 주차를 한다. 음식점 입장 대기 시간 30분 정도 지나 자리를 잡고 된장찌개와 우렁강된장 그리고 부추빈대떡을 주문한다. 소문난 맛집이 실망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다행히 이 집은 그런대로 괜찮다. 강된장을 적게 넣었는지 어린 시절 먹었던 추억속의 시골 된장 냄새가 덜 난다. 점심을 먹고 나서 천천히 자동차를 움직여 동막해수욕장에 도착해 도로 빈자리에 주차를 하니 주차료가 5천원이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열악한 주차시설에 비해 돈 버는 재주는 있는 듯하다. 동막해변은 추억이 깃든 해변이다. 2014년 5월말 2박3일간 강화도 해안길을 나 홀로 걸을 때 벌거벗은 갯벌을 바라보며 제방을 걸었던 잊을 수 없는 곳이다. 백사장에서 가족이나 연인들이 늦여름을 즐기는 모습을 한 동안 느긋하게 바라본다. 펜션에 들어갈 시간이 되어 백사장을 빠져나와 마트에서 소주와 맥주와 과자를 사고 나서 펜션으로 향한다. 해수욕장에서 자동차로 약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가까운 펜션, 1층은 우리부부가 아들네 가족은 바로 위 2층이다.
저녁에 펜션 앞마당에 숯불을 피우고 삼겹살, 소고기, 양송이, 소시지, 양파, 마늘을 굽는다. 소주 한 병에 맥주 한 캔을 섞어 마시고 술이 적당히 오른 뒤에 갯벌 뚝방에 오르니 그 넓은 갯벌은 어디로 가고 온통 흙탕물 같은 바닷물이 일렁거린다. 바람에 따라 바닷물이 덩실덩실 춤춘다. 수평선 너머 끝에는 등대인지 마을인지 구별할 수 없는 불빛이 반짝인다. 하늘에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월칠석을 축하하려는 듯이 초생달이 살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1년에 한 번 만난다는 견우와 직녀, 한 달에 한 번 만나자고 했더니 전달이 잘못되어 1년에 한 번 만난다는 어느 북쪽 나라의 설화처럼, 너와 나, 우리가 만난 것은 일생에 한 번뿐이니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우리의 삶을 노래할 수 있으면 좋겠다. 더위를 씻어주려는 듯이 시원한 바람이 분다.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불빛은 인천 국제공항을 떠나거나 찾아오는 비행기의 모습이다. 동막해변 밤바다 풍경은 여느 항구의 밤바다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휘황찬란한 불빛이 없는 어슴푸레한 달빛이 비추는 조용한 밤바다의 모습에 마음이 평안해진다. 모기인지 벌레인지 종아리를 무는 바람에 밤바다와 안녕을 고하고 숙소로 들어가야 할 때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반바지 차림으로 숙소 밖으로 나가자 바람이 제법 불어 쌀쌀하다. 제방에 올라서니 어느 틈에 썰물이 되어 그 많던 바닷물이 모두 사라지고 갯벌 속살이 부끄러워 ‘나 몰라요’하는 듯이 드러나 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없어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잠시 제방을 서성이니 밤새도록 갯벌을 지킨 검은 염소 한 마리가 반가운 듯이 쳐다본다. 누군가 풀이 많은 뚝방에 목줄을 길게 묶어 염소를 키우는 것 같다. 어제 점심과 저녁을 과식하여 한 밤중에 뱃속이 불편한 탓에 아침을 건너뛴다. 계곡에 물이 있다고 알려진 황헌동천을 찾았더니 폐쇄되어 동막해수욕장으로 방향을 바꾼다. 백사장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적다. 손녀와 손자는 모래 장난을 하거나, 갯벌에 들어가서 즐겁게 논다. 한 낮에 되자 뜨거운 햇볕이 백사장에 쏟아진다. 만조에서 서서히 빠져간 바닷물이 정오를 지나서는 끝없이 멀어지고 수평선만 보인다. 간간히 바람이 솔솔 불어 시원하다. 수평선에는 듬성듬성 섬이 떠있고 하늘은 맑다. 갯벌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즐겁게 놀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 모습을 넋을 잃고 쳐다본다.
오후에 젊은이들이 말하는 뷰(VIEW)가 좋은 커피숍을 찾아가니 손님이 많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광활한 갯벌을 바라볼 수 있는 테라스에 앉으니 마음도 넓어진다. 저 멀리 외로운 비행기가 어딘가로 날아간다. 한가하고 나른한 오후를 보내며 여름과 이별할 때가 서서히 다가옴을 느낀다. 숙소로 돌아와 책을 보다가 늦여름의 낮잠을 즐기고 일어나니 저녁이 가까워진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제방에 올라서니 노을이 지는 갯벌에는 서서히 밀물이 밀려든다. 아무 소리도 없이 움직이지 않는 듯이 흐르는 바닷물, 갯벌의 골이 진 부분을 길라잡이로 하여 물길을 내어 샤워기에서 졸졸 흐르는 물처럼 방조제를 향하여 검은 혓바닥을 날름거린다.
해가 지려는 동막해변의 제방 위에서 떨어지는 낙조를 기다린다. 사그라지는 불꽃은 마지막 향연을 위하여 온 몸을 불사른 최후의 촛불처럼 눈이 부시도록 붉고 아름다운 색조를 띠고 드넓은 갯벌을 덮는다. 바람이 불어오는 동막해변에서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보니 마음이 평안하다. 인간의 삶 또한 마무리를 잘해야 살아온 한 평생이 그 값어치를 할 것 같다. 쓸데없이 엉뚱한 마음을 먹지 말고 자연의 이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면서 늙어가는 멋진 노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제 다시 찾아 올리는 없겠지만 동막 해변에서 바라본 저녁노을과 드넓은 갯벌에 넘실대는 바닷물은 잊을 수 없는 한 폭의 풍경화가 되리라. 3대가 함께하는 여행에는 나를 앞내세우지 말고 자식들과 손주들이 원하고 하고 싶은 일에 묵묵히 따라나서면 된다. 짬짬이 조용히 비용을 지불하면 더욱 더 빛이 나게 마련이다. (2021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