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중 두번째 강연, 스위스 베른에서 강연이 열릴 예정입니다. 새벽3시30분에 기상하여 천일결사 기도를 마친 후 새벽5시30분에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하였습니다. 렌터카에 몸을 싣고 독일 아우토반 위를 힘차게 달렸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출발 2시간 후 오전 7시30분, 독일 슈튜트가르트에 들렀습니다. 처음에 세계 100회 강연 일정 중에 슈튜트가르트가 예정되어 있어서 이곳에 사시는 최선미 보살님이 현지에서 친구들을 모으고 강연 준비까지 열심히 해 놓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일정이 여의치 않아 슈튜트가르트 강연이 취소되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스님께서는 미안한 마음이 많으셨는지, 강연을 열려고 준비했던 최선미 보살님 댁을 방문해서 인사라도 하고 가자 하셔서 잠시 들르게 되었습니다. 마침 아침을 못 먹고 출발한 터라, 최보살님께서 손수 해주신 따뜻한 밥을 든든히 먹을 수 있었습니다. 내년에는 꼭 슈튜트가르트에서 강연이 열릴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슈튜트가르트에서 아침 식사를 대접해 주신 최선미 보살님과 따님.
아우토반을 2시간 정도 달리자 스위스 국경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전 11시 무렵, 취리히를 경유하다가 그래도 취리히가 유명한 도시인데 한 군데라도 둘러보자며 무작정 지도 위에 나타난 큰 돔 지붕 건물로 갔습니다. 자세히 보니 취리히 대학교의 공과대학 건물이었는데, 날씨가 화창해서 햇빛도 잠시 쐬고 화장실을 다녀온 후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취리히 대학교 캠퍼스에서 바라본 취리히 시내 전경
오후 1시 무렵에는 루체른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산들로 둘러싸인 호수가 참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중세 시대에 지었다고 하는 건물들도 각양각색의 다채로움을 보여주었습니다. 잠시 차에서 내려 루체른의 상징이라고 불리우는 교회당 다리를 둘러보았습니다. 점심을 먹으려 하였으나 강연이 있는 베른까지 오후5시까지 도착하려면 시간이 빠듯하여 빵을 몇조각 사서 차안에서 먹기로 하고 곧장 출발하였습니다.
▲루체른의 상징인 교회당 다리 앞에서
오후4시 무렵에는 코발트빛 호수가 너무나 아름다운 인터라켄을 지날 수 있었습니다. 햇빛을 받은 호수는 더욱 옅은 빛깔로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산비탈을 끼고 들어선 예쁜 집들이 그 모습 그대로 평화를 느끼게 했습니다. 인터라켄에서 협곡으로 더 깊이 올라가니 융프라우 설산이 보였습니다. 양편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바위들과 높은 산들은 절경을 이루었습니다. 저녁 강연을 위해 일찍 도착해야 하는 관계로 더 깊은 계곡까지는 들어가보지 못하고 차 안에서만 쓰윽 살펴보는 정도로 하고 돌아왔습니다.
▲설산의 절경으로 유명한 융프라우 앞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여의치 않아, 스님께서는 차 안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셨습니다. 차량에 전기밥솥을 가지고 다니며 밥을 직접 해먹기도 하면서 그렇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스위스 베른에는 오후5시30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동한 거리를 되돌아보니 무려 700km 가까이 되었습니다. 새벽 5시에 출발해 오후5시30분까지, 오늘 하루는 차량 안에서만 줄곧 시간을 보냅니다.
스위스에는 한국 교민들이 2,156명이 살고 있다고 외교부 통계자료는 밝히고 있습니다. 주로 국제 결혼과 입양을 통해 정착하게 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오늘 강연장에서는 어떤 분들이 오셔서 스님과 어떤 대화를 하게 될지 기대감을 안은 채, 강연이 열리는 프랑스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베른 강연이 열리는 프랑스 교회.
6시에는 베른 강연 봉사자들이 정성껏 준비해온 도시락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6시30분에 강연이 시작인데 벌써부터 많은 교민들이 자리를 잡고 스님의 강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베른에는 너무 늦게 도착해 유적지를 둘러본 여유 시간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강연이 열리는 프랑스 교회로부터 걸어서 5분 거리에 국회의사당(연방의회) 건물이 있어 거기로 가서 기념사진으로 한장 남기기로 했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사진 한장 찍고 다시 돌아오니 곧바로 강연이 시작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위스 베른에서 가장 상징적인 건물인 국회의사당(연방의회)
베른 강연에는 오늘 교민들 총 70여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찾아온 교민들은 주로 국제 결혼을 한 경우가 많은지, 스위스인 남편과 함께 온 부부가 세 쌍 정도 눈에 띄었습니다. 각자 배우자에게 스님의 법문을 최대한 통역해주려고 소근 소근 거리거나 노트에 단어를 적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총 6명이 질문했는데, 오늘은 스위스인 남편과 살아가고 있는 한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립니다.
“저는 64세이구요. 스위스인 남편과 국제 결혼을 했습니다. 한달 뒤에 남편이 퇴직을 하면 한국으로 같이 돌아갈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아야 할지요?”
“질문자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늙으면 누구나 회귀 본성이 있습니다. 음식도 젊을 때는 외국 음식도 괜찮은데 늙으면 한국 음식이 그리워지게 됩니다. 모든 인간은 회귀 본성이 있거든요. 그러므로 남편도 스위스에 있고 싶은 회귀 본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가면 남편이 많이 힘들어지게 되겠죠. 한국 가서 6개월이나 1년 정도 있는 건 괜찮은데, 남편의 나이가 더 들면 들수록 한국에서의 생활이 힘들어지게 됩니다. 질문자가 스위스에서의 생활이 힘들었듯이.
이성적인 것과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마음과는 일치하지가 않습니다. 질문자도 남편이 좋아서 외국인 스위스에 살았지만 심리의 근저에는 늘 어려움이 있었던 것처럼 남편도 한국에 오래 살면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내가 편하니까 남편도 아무 문제가 없을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중에 늙어서 서로 마음에 금이 갑니다. 독일에 이민 온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60살이 넘어서 상당히 많은 수가 이혼을 합니다. 그 이유는 젊을 때는 빵만 먹고도 외국생활이 가능하지만, 늙으면 회귀 본능이 있기 때문에 아내는 자꾸 한국 쪽으로 회귀하려고 하고 남편은 더 독일 쪽으로 회귀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 음식 중에서도 김치는 외국인들이 적응하기가 쉬운데, 된장은 외국인들이 적응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자꾸 된장찌개를 끓여 식탁 위에 올려두면 이런 것으로 작은 갈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젊을 때는 말로 의사 표현하는 것이 다 가능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말하기 이전에 마음으로 통해야 합니다. 한국 사람끼리는 언어를 적게 써도 대충 짐작하면서 살 수 있는데, 외국인과는 정서적 교감이 떨어집니다. 이런 저런 문제로 갈등이 생기게 되죠.
어쨌든 한국에 돌아가서 산다고 했을 때 상대에게는 타향살이가 되기 때문에 스위스에서 살 때보다 10배 정도는 더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방심하게 되면 전혀 예기치도 못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과는 미세한 것들로 마음에 금이 가서 헤어지게 됩니다.
그러니, 지금 스위스에 있는 집을 그대로 두고, 한국에 가서 1년 정도 살아보면 좋겠어요. 모든 것을 다 털고 가면 실패할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먼저 살아보시면서 점진적으로 정리해 가는 것이 안정성이 있습니다. 젊어서는 살림을 말아먹어도 다시 일으킬 수 있는데, 나이 들어서 엎어지면 노후가 굉장히 초라해집니다. 실험적으로 해보면서 점진적으로 이동해 보세요.”
스님의 답변이 끝나자 질문자가 다시 스님께 물었습니다.
“한국 가도 고아가 된 느낌이고, 스위스에 가도 고아가 된 느낌입니다. 국제 고아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그것은 질문자가 선택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까지 미국에서 다니고 중고등학교는 한국에서 다니고 대학은 미국으로 간 친구가 정체성에 대해 질문했어요. 한국에 있으니까 한국말이 딸려서 친구들과 못 어울리고. 미국에서는 영어가 딸려서 못 어울린다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자란 아이가 나보다 영어를 잘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한국에서 자란 아이가 나보다 한국어를 잘한다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요?
당연한 것을 받아드리면 이렇게 됩니다. 미국에서 자란 아이는 영어 밖에 할 줄 모르고, 한국에서 자란 아이는 한국어 밖에 못하는데, 나는 미국에서 자란 아이보다 한국말을 잘하고, 한국에서 자란 아이보다 영어를 잘한다, 이것이 자신의 아이덴티티입니다.
질문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사람 치고는 스위스에서도 살아봤고, 스위스 사람 치고는 한국말도 잘합니다. 이렇게 자기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져야지 남의 정체성에 자기를 견주어 가지면 질문자는 국제 고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군가가 질문자를 국제 고아로 만든 것이 아니고 자기가 스스로를 국제 고아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자기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만약 스님이라면 혼자 사는 사람으로 자기 정체성을 삼아야지 자꾸 결혼한 사람과 비교하면 안됩니다. 비교하면 스스로가 열등해집니다. 스님이 결혼한 사람을 부러워한다는 것은 자신의 승려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됩니다. 제가 결혼을 했으면 이렇게 115일 동안 강의를 하러 다닐 수 없겠죠. 혼자 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 굉장히 많은데, 이렇게 자기를 긍정적인 측면으로 봐야 합니다. 질문자는 국제 고아가 아닙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나는 무엇인가 이게 아닙니다. 나는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오늘 강연의 마지막 질문과 답변이었는데, 외국 땅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교민들에게는 더욱더 공감이 많이 되는 답변이었습니다. 질문하신 분도 “스님 덕분에 남편을 더 깊이 헤아리게 되는 것 같다” 며 기뻐하였습니다.
강연은 2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고, 강연 후에는 오늘 강연을 위해 수고한 봉사자들과 함께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들 스님이 직접 이렇게 찾아와서 강연해 주심을 너무나 감사해 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베른시 근교에 살고 있는 박향숙 보살님 댁에서 짐을 풀었습니다. 박향숙 보살님은 스위스인 남편과 결혼하여 벌써 30년째 스위스에서 살아오신 분입니다. 오랜 타국 생활에서 우울증이 깊어가던 중 스님의 법문을 듣고 우울증도 치료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스님 일행이 하룻밤 묶고 가게 된 것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스위스 베른에서 30년째 살아오고 계신 박향숙 보살님 부부
스님께서는 내일 저녁에 있을 밀라노 강연 준비상황과 베른에서 밀라노로 갈 때 어떤 도로를 이용할지 등을 체크하시고, 미국 강연 준비상황을 전화를 통해 점검 하신 후 오늘 일정을 마치셨습니다. 내일은 이탈리아로 넘어갑니다. 저녁 6시30분 밀라노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