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고사(南固寺)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고덕산(高德山)에 있는 사찰. 고구려에서 백제로 귀화한 보덕(普德)의 제자 명덕(明德)이 668년(신라 문무왕 8)에 창건. 창건 당시에는 남고연국사(南高燕國寺)라고 불렀는데, 연국이란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의 말로 산성에 있는 사찰 이름에 많이 나타난다. 이 절 역시 사적 제294호로 지정된 남고산성(南高山城)에 자리하고 있다. 《문헌비고》에 따르면, 남고산성은 901년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쌓았으며 견훤산성·고덕산성이라고도 한다. 견훤은 전주의 동서남북을 제압하기 위하여 산성을 쌓고 동서남북에 각각 사찰을 지었다고 한다.
한벽당(寒碧堂)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최담(崔霮)이 태종 4년(1404)에 별장으로 지은 건물이다. 승암산 기슭 절벽을 깍아 세운 이 누각은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최담이 태종 4년(1404)에 별장으로 지은 건물이다. 누각 아래로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데, 바위에 부딪쳐 흰 옥처럼 흩어지는 물이 시리도록 차다하여 〈한벽당〉이란 이름을 붙였다. 호남의 명승 한벽당에는 시인 묵객들이 쉴새 없이 찾아와 시를 읊고 풍류를 즐겼으며, 길 가던 나그네도 이곳에서 쉬어가곤 했다.
덕진(德津)은 '큰 나루'라는 뜻으로, 동국여지승람에서는 현재의 덕진공원 호수를 '덕진지'(德津池)라고 쓰고 있다. 이 지역은 예부터 만경강으로 통하는 조운(漕運)의 구실을 한 중요 물길의 시발점이었다.
전주 시장
전주자혜의원은 1909년 8월 21일 대한제국 칙령 제75호「자혜의원관제(慈惠醫院官制)」에 의하여, 1909년 12월에 청주자혜의원과 함께 조선에 건립된 근대식 의료시설이자 최초의 자혜의원이다. 이후 1925년 4월 1일「조선도립의원관제(朝鮮道立醫院官制)」및「도립의원규정(道立醫院規程)」이 시행되면서 전라북도에서 운영하는 전라북도립전주의원으로 관제가 개편되었다. 해방 후에는 전북대학교 부속병원으로 개편되었으며, 1987년에 현재 위치(전주시 덕진구 금암동)로 신축이전하였다.
전북지역에 근대적인 금융기관이 설립된 것은 1895년 전주에 관영 '정부창고'(어음 할인업)영업소가 개설되면서의 일이다.
그러나 정식으로 은행이 발족 된 것은 1906년 7월4일 전북농공은행이 처음이다. 자본금 10만원(圓)으로 출발한 전북농공은행은 상공업 자본대부를 주목적으로 하는 한편 우편환 교환과 예금 및 어음할인 영업도 했다. 은행장은 박윤상(朴允尙)이었고, 지배인엔 일본인 시오다(田與助)였다.
풍패지관 (豊沛之館)(전주객사)
풍패란 본래 건국자의 본향을 일컫는 것으로, 중국 한나라를 건국했던 유방의 본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주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본향이었으며, 그러기에 전주를 풍패지향이라 했고, 전주객사를 풍패지관이라 했다.
"전주부사"에 의하면 일본은 객사 마당에 벚꽃을 심고 1921년 이후 전라북도물산진열소(산업장려관)로 사용하는 한편 연회장으로 여러차례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였던 지난 1914년 다가산 정상에 전주신사가 완공됐으며, 이후 다가교는 신사를 왕래하는 일본인들의 참배 통로였다. 이로인해 다가교는 신사를 참배하기 위해 건너는 다리라는 의미의 '대궁교(大宮橋)'로 불렸다. 이후 홍수에 의해 몇 차례 유실되자 일제는 1937년 8월께 20m가량 상류로 옮겨 현재의 다가교 위치에 교량을 신설했다. 당시 다가교는 주민들이 강제로 전주신사에 참배를 하던 통로로 치욕의 다리였으며, 그 뒤 44년이 지난 1981년 2월에 확장공사를 시작해 그 해 9월에 완공된 역사를 갖고 있다.
전주 지청
첫댓글 덕분에 좋은 자료사진 구경 잘 합니다.
당시의 헐벗은 산림이 눈에 띕니다.
감사합니다. ^^
헉 전주 자료 올리신 걸 구글 검색을 통해 발견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