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제를 지나 벌교까지 걸어 본 적이 언제였더라
12월 25일에 아이 둘을 데리고 걸었으니 아마 광주로 이사기 전인 1999년 이전일거다.
두 아이가 초등 4, 2학년이고 내 나이 마흔 되기 전이니
면 마침 걸을만했겠다 하지만 지금 혼자 걸어보려니 조금 걱정도 된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타지 않고도 바보의 차를 타고 같이 저녁먹고 돌아오면
그도 달라진 모양이겠다.
배낭에 낫과 호미를 넣고, 캔하나와 과자도 넣는다.
작년 여름쯤 갈아 둔 부분에는 이미 풀포기가 굵어졌다.
채소를 가꿀 손바닥만한 땅을 그어놓고 쇠스랑으로 잠깐 파니 땀이 난다.
금방 그만두고 아랫밭으로 내려가 빨간 매화를 찍고 호치로 오른다.
비끼골을 지나 다리를 건너는데 산 속의 개는 짖지 않고 날 외면한다.
멀리 성안 쪽에서는 개짖는 소리가 들린다.
선아 작은 어머니가 밭바닥에 퍽적 앉아 콩뿌리를 캐내 수북히 쌓고 있다.
조용히 지나려다가 모자와 마스크를 벗고 예당떡 아들이라고 인사를 한다.
괸돌바구 건너 밭에는 묘목인지 씨앗인지를 씸는 일꾼들이 많다.
매재에서 내려가다 구비를 넘겨다 본다.
묘지를 지나 잠깐 나무사이를 헤치면 임도로 바로 내려가겠다.
은림마을로 가는 철길을 내려다보다 이번에 윗길로 잡는다.
매재에서는 넘어가느느 길이 사라졌으니 틀림없이 벌교 마동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차가 다닐만한 임도가 긴 오르막에 세번 휘돌아간다.
조성벌판 뒤로 주월산 줄기가 흐릿하고 그 뒤로 오봉산이나 제암산은 아에 보이지 않는다.
한번은 가로 질러 지그재그를 올라 고개를 넘으니 아마 장군봉에서 송장산으로 넘어가는 고흥기맥 고개 같다.
몇 개의 리본이 거친 숲길의 나무에 걸려있다.
왼쪽 산허리를 감고 있는 임도를 따라 오른쪽 두방산 아래의 과수원을 보며 걷는다.
아랫쪽은 밭을 넓히는지 중장비가 일하고 있다.
아이들 데리고 걸을 땐 철길따라 벌교역 앞까지 갔는데 내가 걷는 길은 철길에서 멀다.
하긴 철로 양켠으로 초록 철망을 세워 들어갈 수가 없다.
장군봉 산록을 돌아 오르내리길 한참 걸려 마동 마을이 내려다보이는데
그 앞에 검은 기와의 사당이 나타난다.
담밖에서 보니 충헌사 현판이 보이는데 내문의 처마는 부서져내리고 있다.
아랫쪽으로 돌아가니 검은 비석이 서 잇고 곁에 사각의 비들도 보인다.
청주양씨 시조 기의 사당이다. 봉래 양사언의 시도 써 있다.
첫 현판은 못 읽겠다.
헌충사에 올라 문을 여니 여느 사당과 다르게 열린다.
닫힌 위패가 가리지만 초상을 찍고 나오며 경모재도 본다.
석축사이 넓적한 바위에 앉아 술은 참고 따뤄 온 우유에 과자를 먹으며 쉰다.
과수밭을 돌아 내려오다 양씨의 장승을 보고 마을에서 신순우의 공적비도 본다.
마동은 친환경에 국화마을이라고 이름이 여럿이다.
친환경 인증을 받았다고 큰 안내판도 보인다.
하마마을 입구에 소나무와 정자 사이에 고인돌이 보인다.
북두칠성의 성혈도 보인다는데 내 눈엔 제대로 안 보인다.
바람이 쌀랑하다. 다리도 아프다.
택배차가 씽 지난다.
그러고 보니 조용한 동네를 드나드는 건 고물줍는 엿자아수도 아니요
식료에서 생필품 싣고 오는 만물트럭도 아니다.
이제 택배 트럭과 유모차 끌고 길 가에 두고 택시를 기다리는 노인 뿐이다.
고속도로 교각이 크고 농수로 교각은 그 앞의 아이처럼 작다.
건너 찐빵집이 있는 2번 국도의 사거리가 보이는데 난 개천길로 들어선다.
칠동천이 구부러질 때마다 발이 더 아파온다.
물가의 수초 사이에 있던 물오리들이 고갤 처박고 있다가 기척을 느끼고
저쪽으로 헤엄쳐 가고, 하얀 새는 날아 가 버린다.
난 폰으로 그들을 찍어보며 조롱당하는 느낌이다.
고흥가는 도로의 다리 아래, 2번 국도를 거치니 물이 고인 선근다리가 보인다.
양씨 구휼비를 읽어보고 선근다리를 건너 장좌리 당산에 오른다.
코로나 이후 대보름 당산제를 제대로 지냈는지 수리하고 사람 다닌 흔적이 보인다.
게이트볼이 나타나는 다리를 건너 시장을 돌아 바보의 일터로 간다.
아직 6시가 되지 않아 시장을 한바퀴 더 돈다.
절반 이상 문이 닫혀 있다.
역전회관을 지나 벌교천 둑을 천천히 걸어 교육장에 가니 불이 켜지고
직원과 열심히 일하는 바보가ㅏ 보인다.
6시가 넘어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전화하니 5분이면 된다고 사무실로 올라오란다.
난 다리를 건너다녀오고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2층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못된 성질의 난 일하라 하고 버스타겠다고 터미널 쪽으로 걷는다.
검은 옷을 입은 한떼의 사내들이 상고로 들어간다.
버스가 언제 있을지도 모르는데 천천히 걷는다.
불이 꺼지고 곧 바보의 전화가 온다.
메시지 보라 하고 그냥 간다.
바보의 차가 바쁘게 터미널 쪽으로 간다.
전화가 다시 와 위치를 묻자 천변으로 오라한다.
말없이 차에 오르자 우주휴게소로 가 저녁을 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