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기기 보급이 늘면서 거추장스러운 선 없이 기기를 손쉽게 충전해 쓸 수 있는 무선 충전 기술도 상용화 단계로 들어섰다.
생각해보면 무선 충전은 꿈만 같은 기술이다. 전선이 없어도 기기가 작동할 수 있는 기본 기술이기 때문이다. 집안이나 책상을 어지럽히는 선, 그 중에서도 전선을 없애는 것이 예전이면 가당키나 했을까.
무선인터넷이나 무선키보드처럼 무선 통신을 이용한 기술은 주변에 흔하지만, 이 기기들은 모두 자체 배터리로 전원을 마련한다. 그 배터리까지 무선으로 충전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에는 이미 이 무선 충전 기술이 도입됐다.
스마트폰의 무선 충전 기술이 본격적으로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다. LG전자는 ‘옵티머스G’를 내놓으면서 무선 충전 기술을 소개했다. 삼성전자도 ‘갤럭시S3’를 기점으로 자기 유도 코일을 품은 별도 케이스를 통해 무선 충전을 선택 기능으로 넣었다.
현재 무선 충전 기술은 크게 ‘자기 공진 방식’과 ‘자기 유도 방식’ 둘로 나뉜다. 기본적인 원리는 전력을 코일에 흘려서 전기를 전송하는 데서 시작한다. 둥그렇게 말아 놓은 코일에 강한 전류를 흘리면 자성이 생긴다. 이렇게 생긴 자성은 다른 코일을 가까이 대면 그쪽으로 전달되고, 이를 거꾸로 풀면 전류가 되는 원리다. 코일을 어떻게 만들고 자성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가 두 무선 충전 기술의 차이점이다.
멀리 떨어져도 충전, 자기 공명 방식
자기 공진 혹은 자기 공명으로 부르는 기술은 직접적으로 충전 매트와 접촉하지 않아도 전력을 전송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자기 공명 방식은 기본적으로 코일을 통해서 전류가 전자기로 바뀌는 것까지는 자기 유도 방식과 비슷하지만, 이를 공진 주파수에 실어 멀리 보내는 점이 다르다. ‘멀리’라고 해봐야 사실은 1~2m 정도이지만, 적어도 기기가 직접 접촉하지 않고 주변에만 있으면 충전이 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편리하다. 예를 들어 사무실의 책상에 앉으면 모든 휴대기기가 동시에 충전이 된다거나, 침대에 누워서 게임을 해도 배터리가 안 떨어지는 그림을 떠올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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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기 공명 방식은 공진 현상을 이용해서 수m 까지 무선으로 전력을 보낼 수 있다.
2 자기 공명 기술 이용한 제품. 떨어진 거리에 무선으로 전력을 보내는 것을 시연한 장면. <출처: WiTricity> |
하지만 상용화가 쉽지 않다. 전류가 전자기로 바뀌고 이를 다시 공진하는 과정에서 전력 손실이 큰 편이기 때문이다. 전력 손실은 에너지 낭비라는 측면도 있긴 하지만, 스마트폰을 충전할 때 쓰는 전기량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업계의 관심은 에너지 효율성 문제보다는 충전 효율이 썩 좋지 않다는 점을 더 문제삼는다.
공진되는 에너지가 인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말 그대로 강한 에너지를 가진 전자파가 공진돼 나오는 것인데 그 안에 있을 때 우리 몸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적어도 전선을 꽂지 않고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 충전하거나 배터리 소모량을 줄여서 더 오래 쓸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선 여전히 매력적인 방식이다.
자기 공명 방식은 A4WP(Alliance for Wireless Power)협회가 이끌고 있다. 이 협회엔 삼성전자를 비롯해 퀄컴, SK텔레콤 등이 참여해 기술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2012년부터 상용화될 것이라는 소문들이 나온 데 비해 아직 실제 제품으로 출시되지는 않았다. 이 기술을 주도하는 삼성전자는 무선 충전에 대해 자기 공진 방식을 고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인지 직접 충전패드에 접촉해야 하는 Qi 방식의 자기 유도 방식은 구현해 놓고서도 그리 열심히 알리지 않았다.
현실성 높은 자기 유도 방식
삼성전자는 ‘갤럭시S6’를 발표하면서 무선 충전 기술을 직접 소개했다. 충전 패드 디자인도 공개됐다. 배터리를 교체할 수 없게 만든 대신 충전을 쉽게 만들겠다는 심산이었이다. 하지만 갤럭시S6는 자기 공진 방식이 아니라 자기 유도 방식으로 전류를 흘려 보낸다.
자기 유도 방식은 근거리 충전 기술이다. 자기 공명 방식처럼 전류를 코일에 감아 강한 자력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똑같은 주파수로 만든 코일을 바로 포개면 자력이 그대로 유도된다. 이를 풀어 전기로 변환하는 것이 자기 유도 방식이다.
자기 유도 방식의 무선 충전 패드를 분해한 모습. 코일이 일정한 모양으로 차곡차곡 들어 있다. <출처 (cc)pburka at Frickr.com>
이 방식은 아직 스마트폰에는 낯설지만 전동칫솔에는 꽤 오래 전부터 쓰였다. 늘 물에 노출돼 있는 칫솔에 충전 커넥터를 달면 방수 처리를 하더라도 단자가 부식되기 쉽다. 이럴 때 기기에 물이 스며들 수 없도록 일체형으로 만들고 자기유도 방식으로 전력을 보내는 방식이 적합하다.
그렇지만 자기유도 방식은 스마트폰과 충전 패드는 아주 가까이 붙어 있어야 한다. 코일과 코일 사이는 거의 정확히 맞붙어야 유도가 잘 된다. 전기를 손실 없이 전달할 수 있는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이다. 그래서 충전은 간편하지만 충전하면서 게임을 하거나 기기를 쓰는 것은 상대적으로 불편하다.
보통 스마트폰과 충전패드는 1cm 이내로 붙어야 정상적으로 충전된다. 대체로 금속 재질이 아니라면 얇은 케이스 하나 정도는 충전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케이스를 씌웠을 때 충전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USB 어댑터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어댑터를 통해서 공급되는 전력이 강해야 유도 코일을 통해서 전달되는 전력도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진다. 어댑터의 전류가 1.5A 이상 출력되는 것이 좋다. 마이크로USB 케이블도 짧고 두툼할수록 충전에 유리하다.
하지만 자기 유도 방식은 구현 방식이 쉽고, 전자파로 주변에 끼치는 영향도 거의 없다. 일찌감치 협회도 생겼다. 국제무선충전표준협회(WPC, wireless power consortium)는 ‘Qi(치)’라는 표준 기술도 만들어냈다. 이 방식은 LG전자 ‘옵티머스G’를 비롯해 ‘넥서스4’, ‘넥서스5’ 등 그 이후에 나온 LG전자 제품에 적용됐다. 삼성전자도 갤럭시S4에서 뒷면 커버를 바꾸면 Qi 방식으로 무선 충전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4 무선 충전 키트. 별도의 충전 패드와 케이스로 판매된다.
국제무선충전표준협회는 LG가 주도하고 노키아, 에너자이저 등도 기술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Qi는 딱히 주인이라고 할 만한 회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협회에 가입한 회사들은 WPC의 표준 기술을 누구나 쓸 수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스마트폰이 Qi 방식의 충전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충전패드도 저렴하고 구하기 쉽다. 이 때문에 빠르게 무선충전 기술의 표준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Qi 방식이 초기에는 충전 효율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에 효율을 높이는 방식들이 고민됐다. 배터리 전문 회사 듀라셀의 파워매트가 만든 ‘PMA’라는 규격이 대표적이다. 유선 대비 90% 이상의 충전 효율을 내는 것이 PMA의 목표다. 실제 PMA는 충전 효율이 좋고, 충전부분을 자석으로 처리해 정확한 위치에 충전패드를 붙일 수 있는 기술도 갖고 있다.
전반적으로 기술만 놓고 보면 PMA가 자기유도 방식으로는 조금 앞서 나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PMA는 파워매트라는 특정 회사가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이 기술을 스마트폰에 적극적으로 쓰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었다. PMA와 Qi 방식은 서로 충전 방식이 호환되지도 않는다. PMA는 각 스마트폰에 충전을 할 수 있는 별도 케이스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보급해 왔다.
하지만 최근 PMA는 자기공명 방식의 표준 기술을 갖고 있는 A4WP와 합병해 자기유도, 자기공명 기술의 양쪽 기술을 다 가지면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자기공명 방식에 집중했던 삼성전자는 갤럭시S6를 출시하면서 Qi 외에도 PMA 방식의 무선 충전을 모두 쓸 수 있게 했다.
충전 환경 확대가 대중화 열쇠
이케아는 가구의 개념으로 무선 충전 시스템에 접근하기로 했다.
무선 충전 기술은 조금 느리지만 확실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특히 생활 가구에 끼칠 영향이 크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6의 무선 충전 기능을 발표하면서 동시에 이케아의 무선 충전 테이블을 소개했다. 이케아 역시 가구에 무선 충전 시스템을 채워 나갈 계획을 밝혔다. 내비게이션을 스마트폰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은데 자동차의 스마트폰 거치대에 무선충전 패드를 덧붙인 제품도 눈에 띈다.
멀리 떨어진 곳까지 충전할 수 있는 자기 공진 방식이 현실화되면 가장 좋겠지만, 아직 기술이 안정되고 상용 단계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자기 공진 방식과 자기 유도 방식은 서로 양극화되는 기술이라기보다 발전 단계에 있는 기술에 가깝다.
지금으로서는 이용자들이 자기 유도 방식에 친근해질 필요가 있다. 당장은 어디서나 쉽게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소비자들이 무선 충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야 할 뿐더러, 선을 꽂는 충전을 대신해 스마트폰을 올려놓으면 된다는 행위 자체도 익숙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 노력은 이미 시작됐다. 이미 미국에서는 스타벅스, 커피빈, 맥도날드가 매장 테이블에 무선 충전 매트를 심어뒀고, 국제무선충전표준협회나 PMA, 이케아를 비롯한 여러 가구 기업이 충전 시설을 가까이에 둘 수 있게 하고 있다. 스마트폰들도 속속 무선 충전 기능을 기본으로 넣고 있다. 곧 스마트폰에서 USB 단자가 모습을 감출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