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2일 주일예배 설교문 / 눅 7:1-35 / 제자도의 실제 세 가지.
할렐루야!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합니다.
모든 생명은 출산, 성장, 성숙(열매)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영혼의 구원과 회복의 은혜를 주시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새 생명의 갓 태어난 아이에서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죽게 될 것입니다. 나이는 50인데 몸은 1살짜리인 사람이 있습니까? 나이에 걸맞도록 정상적인 성장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개인이 주님과 교통함을 얻는 제자의 반열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제자는 성숙한 인격이요, 예수님을 닮은 자리에 이르도록 전진하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6장에서 제자도의 특성을 발견하였습니다.
첫째, 예수 제자의 도덕성:한마디로 ‘주는 사람’. 자꾸 주십시오. 우리의 믿음은 성장하지 않을 수 없고, 복을 얻되 풍성히 얻게 될 것입니다.
둘째, 예수 제자의 정체성
①남의 죄는 덮어주고 용서하나, 자신의 죄는 철저히 회개 기도하는 사람.
②옛 생명이 처리되어 새 생명, 부활 생명으로 생명의 변환을 이루는 자.
③말씀에 기초를 놓고, 믿음의 집을 지어가는 자. 할렐루야!
이제 누가복음 7장으로 넘어가서 세 가지 사건을 통하여 승리하는 제자도의 실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1. 백부장 → 예수님의 권위와 말씀의 능력을 인정하라.
백부장이란 백인대장이라는 뜻으로 로마군인 100명을 지휘하는 로마인 장교를 말합니다. 로마인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입니다. 우리도 다 유대인들에게는 이방인일뿐입니다. 이 이방인인 백부장에게는 사랑하는 종이 있었는데 중한 병이 들어 결국 죽을 위기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부장은 백방으로 치료의 방법을 알아보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마침 예수님이 자기 마을을 지나가신다니 예수님께 부탁해보기로 작정하였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유대인의 장로들을 통하여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려고 했다가, 나중에는 자기 친구들을 보내어서 바쁘신 예수님에게 오시라고 하는 것도 실례인 것 같으니, 한 말씀만 해달라고 부탁했던 것입니다. 백부장은 이방인입니다. 유대인들이 알기로는 치료의 기적을 경험하려면 예수님의 옷을 잡던지, 아니면 안수기도를 받던지, 아니면 집회에 참석해야 되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이 이방인은 예수님이 말씀 한마디만 하시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줄로 믿은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이 9절과 같이 말씀하시자, 종이 이마 낫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①백부장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했습니다(6절). ‘주여!’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삼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권위를 확실히 인정한다면 이것이 바로 믿음이요,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②백부장은 예수님의 말씀이 치료하는 권세가 있는 능력의 말씀임을 인정했습니다(7절).
말씀만 하시면 좀 싱거운 것 같습니다. 종교적인 어떤 신박한 프로그램이 있어야 잘되는 것 같고, 사람들이 많이 동원된다면 병을 고치든 안 고치든 큰 은혜를 받은 것처럼 생각 들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말씀만으로는 안 된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하고,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야 한다.”고 마음에 미혹당하지 말고(이는 비정상적인 신앙인) 백부장처럼 말씀에 치료의 능력 있음을 확실히 믿으십시오.
ex1)중독 치료하러 온 사람들... 병원에서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어찌 비전문가인 제가 해결할 수 있겠느냐? 그런데 말씀으로 하면 반드시 치료의 결과를 얻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권위가 있음을 확실히 믿으십시오. 그리고 말씀 안에서 실제화됨을 믿고 말씀에 아멘 아멘, 말씀을 먹으면서 반응하십시오. 반드시 말씀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2. 나인성 과부 → 울기만 하다.
오늘 두 번째 사건은 나인성 과부의 독자 아들이 죽어서 장례를 치를 때 일어났습니다. 과부는 남편을 먼저 잃은 자요 이제 독자인 아들 하나에게 생의 마지막 소망을 둔 자인데 자식까지 죽게 되니 아무런 살 소망이 없는 자입니다. 나인성 과부가 얼마나 울었겠습니까? 남편 잃고, 아들 잃고... 동네 사람들도 다들 슬퍼서 눈물을 흘리며 과부를 걱정해 주고 있었답니다. 이때 주님께서 오셔서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 방법은 13-14절.
①‘울지 말라’고 말씀하심. ②관에 손을 대심.
①과 ②는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서 나오는 동정의 말과 행동입니다.
③죽은 아들에게 명령하심.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③은 그리스도의 신성 안에서 죽은 청년에게 명령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나인성 과부가 뭐 잘한 것이 있을까요? 교회를 지었습니까? 철야기도를 했습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주님은 이 여인의 눈물을 닦아 주셨습니다. 따라 합시다. “자비로우신 주님.” 주님의 자비가 내려와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이라고 하고 불교는 자비라고 합니다. 전혀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심청이가 공양미 3백석을 바치지 않아도, 인당수에 빠지지 않아도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면 자비로우신 주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예수님의 제자일지라도 확실한 믿음이 없을 때, 믿음이 생기지 않을 때 그저 엎드려 울기만 하십시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렇게 자신을 낮추고 주 예수님의 자비를 기대할 때 우리는 말씀하시고, 손으로 직접 잡아주시는 자비로우신 주 예수님을 실제 속에 경험하는 승리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3.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 가장 큰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한 자입니다. 평생 고난을 받으며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전도한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이제 헤롯에 의해서 마케루스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이 제자들을 보냅니다. 제가 이렇게 살고 있는데 왜 안 도와줍니까? 이방인인 백부장의 종도 고쳐주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살리셨는데 저는 왜? 왜 나만?
이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23절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아! 이것이 네 사명이다. 너는 곧 순교하게 될 것이다. 세례 요한은 당시에는 비참하게 순교했지만 성경에 기록된 인간으로서는 가장 큰 영광 가운데 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28절 말씀 함께 읽읍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때로는 주님이 아무것도 안 해주시는 것과 같은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때는 가장 큰 영광을 위해서 준비해 놓으신 시간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나를 위해서 최고의 시간과 일을 준비해 놓으셨구나! 믿고 끝까지 인내하십시오. 인내의 방법은?
누가복음 22:51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데살로니가전서 5: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야고보서 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①이것까지 참으라 ②오래 참으라 ③길이 참으라 할렐루야! 주님이 아무것도 안 해주시는 것 같을 때 이것까지, 오래, 길이 참으십시오. 반드시 가장 큰 영광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실제적으로 승리하는 방법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첫째, 말씀에 ‘아멘.’ 기초를 두고 믿음의 집을 지어갑시다. 결코 흔들리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복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둘째,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을 때, 손을 댈수록 더 어려워질 때 그저 주님 앞에 엎드려 울어버립시다. 주님 도와주세요.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자비로우신 주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셋째, 수고하고 충성을 다했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을 때, 주님이 도와주지 않는 것처럼 느낄 때는 끝까지 인내합시다. 전무후무한 축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당신은 어떤 종류의 제자입니까? 말씀의 실제를 믿고, 믿음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믿음이 없어 하나님 앞에 눈물만 흘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극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인내하고 있습니까? 모두 다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이나 눈물, 인내가 주님 앞에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도의 실제는 예수 제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되시는 우리 예수님이 항상 함께 계시기에 살아서 역사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반드시 승리케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동문교회 강순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