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아리랑 / 구연상 / 채륜
책표지를 넘기니 저자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지으미에 대해" 라고 적혀있고, 계속해서 '걸어온 길'아래 쪽에
철학박사가 되다
서양철학을 배우다
우리말과 기분 그리고 문화를 연구하다.
슬기 맑힘(철학)의 이론을 세우다.
부동산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한 편의 소설을 쓰다.
순으로 적혀있다. 현재는 숙명여자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시고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총무이사시란다.
작가 설명 부분을 이렇게 자세하게 옮기는 것은 책의 내용을 조금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다. 책을 읽다 보면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간혹 나오는데 이 책책은 유별나다. 생경한 단어를 접하고 처음 몇 번은 사전을 조회했지만 스마트폰에도 친절하게 쉴 시간을 주기 위해 조회를 그만두었다.
4쪽의 지으미의 말에, "부동산이라는 말에 앞서 쓰였던 말은 하늘이 주는 복과 사람이 베푸는 덕을 함께 나누는 곳을 의미했던 복덕방이었다."로 시작하여 부동산이 출연하게 된 경위부터 1984년 4월 <부동산 중개업법>이 만들어진 것까지의 설명이 있다.
책 제목 부분에서 "부동산"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니 그럼 "아리랑"에 대한 설명도 있으리라 여기고 책을 읽다보니 중간 정도에 나온다. 저자가 철학박사임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그렇다고 마냥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읽을 만하다.
이야기는 대학 시간 강사 - 언젠가 시간강사가 삶을 비관하여 자살한 일들이 떠오른다 - 부부가 빌라 전세에서 아이 낳고 잘(?) 살다가 파도치는 부동산 경기 속에서 살아가는 내용을 다루면서 아주 평범한, 전원일기와도 같은, 도시의 서울의 평범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웃간의 갈등 등을 포함해서 교육이야기도 등장한다. 물론 주 흐름은 "집"이다.
작가는 집이란 어떤 것인지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는데, 백치 아다다의 작가, 계용묵의 [별을 헨다]라는 작품을 통해 "집"과 고향을 함께 생각하게 한다.
126, 고향은 집이기보다는 도덕이다. 도덕은 '우리가 남이가'하는 그 짧은 말에 들어 있는 내용에 다름이 아니다. 우리가 서로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남의 어려움을 모른 척하지 않고 자기 가족처럼 도와주려 하는 것, 가난한 사람들을 깔보거나 무시하지 않고 자기 부모 형제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도덕이다. 도덕, 그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 갈 수 있는 길을 몸소 걸어가는 일을 말한다.
작가는 "아리랑"을 어떻게 푸는가.
255, "못 살겠다고 노래 부르는 이유? 아마 그런 노래를 부름으로써 삶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노래가 거울이 되어 주니까..."
256, "아리랑 같은 노래는 과거의 고통을 탈색시켜 미래의 희망을 바라보게 만들지. 노래는 현실은 초월하는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해. 그로써 이냉을 긴 눈으로 보개 해 주지. 노래는 삶의 역사를 읊어주는 시와도 같아. 그러니까 노래 속에는 삶에 대한 깨달음이 응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지."
258, "옛날의 한이 운명적인 거라면, 내가 말하는 한은 인위적인 거라고 할 수 있어. 내가 정확한 구별을 해낼 수 없지만, 어쨌든 다른 것만은 사실이야!"
옛 아리랑은 운명, 이별의 아리랑이었다면, 현대판 아리랑은 추락의 아리랑, 돈의 아리랑이라 할 수 있다.
265, "아리랑도 시대정신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겠지!, 그렇기에 오늘날의 아리랑에는 체념 대신 악이 쌓이고, 승화 대신 복수심이 불타고, 삭임 대신 원망과 공격성만 무성해지고, 헌데 어우러짐 대신 자기 한탄과 무차별적 분노만이 어둡게 삶을 짓누르는 거 아니겠어? 사람에 대한 분노, 세상에 대한 분노,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분노, 미래에 대한 분노! 분노의 아리랑이지...."
전세값이 떨어질때는 세입자가 전세를 빼서 이사가려고 하고, 전세금이 오를때면 집주인이 세입자를 바꾸려고 하는데, 주인공 남자도 전세가 오르고 주인과 마찰이 생겨 집을 옮겨야 할 처지가 된다. 다행이 돈을 융통할 수 있게 된 남자는 자신만의 빌라를 소유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은 강북 산 밑 빌라의 가치가 오르는 속도는 소위 강남에 비하면 오른다고 말할 수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시절을 통과한다. 아이들의 교육문제와 엮여 강남으로 진출하게되고,,,,, 여차여차하여 아파트를 구매하게된다.
그런데
409, 우리는 새로 산 아파크 전세금 2억을 아내의 계획대로 빚을 갚는 데 모두 썼다. 그리고도 빌라 담보 대출금 3천만원은 못 갚은 채 그대로 남았다.
결국 살지도 못하는 아파트를 소유하고, 빌라에서 빚을 안고 삶을 살게 된다. 무엇이 바뀌었는가?
집이란 어떤 것일까?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답을 직접 던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주인공 가족의 삶의 족적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작가의 의견을 제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집이란 삶의 일부이다. 나는 그렇게 보았다.
아쉽지만, 우리의 삶이 자연과 호흡하는 삶에서 멀어지고 있듯이, 집도 점차 자연과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집이 가족의 안식이나 쉼의 거처인 기본적인 것에서, 삶의 목적이 됨으로서 집의 개념은 회손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소설의 내용이 나의 삶의 족적과도 너무 흡사하여 내 이야기를 읽듯이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2017년 3월 10일 평상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