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 몸 단편선2
-서머싯 몸 지음/황소연 옮김/민음사 2023년판
세기말 제국주의의 달콤함이 곳곳에 배어있는 작품집
1
좋아하는 책을 음악과 함께 하루 종일 읽고, 간간히 이런저런 글을 쓰다가 마음이 동하면 집근처 봄꽃이 화려하게 피고 숲이 울창한 산을 오르며 시간을 보낸다면, 지금까지 생각한 것 중 가장 만족스런 삶이지 않을까 싶다.
<서머싯 몸 단편선2>와 그런 생각을 나눌까 한다. 아름다운 문학작품을 읽으며, 부드러운 선율의 클래식을 귓가로 들으며, 그러다 편안하고 달콤한 잠이 찾아오면 잠시 빠져들어 보기도 하는...
2
<춤꾼들>은 블랙코미디다. 20m 고공에서 깊이 1.5m 물탱크로 다이빙하기. 그것도 여자가. 강심장이 아니면 견디기 힘든 공포가 매일 두 차례씩 시연되는 호텔 다이빙을 위해 대기 중인 스텔라에 엄습한다. 어느 날, 공포가 주는 스트레스에 견디지 못한 스텔라가 남편 시드에게 그만두고 싶다며 하소연을 한다.
지난 날 노련한 춤으로 삶을 연명했던 시드는 무도장에서 스텔라를 만나고 가난이 연속되던 비참한 시절을 떠올리며 어렵게 만든 일자리를 잃고 싶지 않다. 하지만 시드는 아내를 사랑했고 사고로 그녀를 잃고 싶지 않아 그럼 그만두라고 이야기하며 근심을 덜어주려는데, 그런 남편의 마음을 읽은 스텔라가 다시 한 달만 더 일을 해보겠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자신의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삶의 굴레가 지닌 비참한 현실은 애틋한 남녀 간의 사랑조차 일상으로부터 소외시키고 왜곡시킨다. 그들은 지금 하는 이 일로 명성도, 미래를 보장받기도 원하지 않는다. 다만, 가난해서 하루하루 연명하기도 힘들었던 불행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뿐이다.
도시 하층 계급의 출구 없이 내몰리는 삶에 애절한 연민을 느끼게 한다.
<행복한 커플>은 사랑을 위해 거대한 유산을 가로채려는 살인에 가담한 두 연인의 이야기다. 둘은 재판까지 받았지만 배심원들의 판단 착오로 용케 형을 면한다. 둘은 연인사이가 아니라며 그 이유가 혼외정사를 가지지 않은 이유를 들었다는데...그러나 그들은 도피처에서 점심식사 초대를 받아 갔다가 우연히 그날 재판을 맡았던 작중 화자의 친구(당시 법관)에 의해 발각되는데, 그들 사이를 두고 연인이라며 혼외정사를 가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믿을 수 없다며 일축한다.
<비둘기의 노랫소리>, <사자의 가죽>, <정복되지 않는 사람들>, <탈출>, <심판대>, <척척박사>, <행복한 남자>, <낭만적인 아가씨>, <명예가 걸린 문제> 등을 읽어나간다. 단편소설의 제목들은 볼 때마다 흥미롭다. 시집을 펼쳤을 때 목차에 나오는 제목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끼며, 시는 단편소설의 축소판이고, 단편소설은 시의 확장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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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서머싯 몸’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작가 수업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작품에 나오는 배경과 지역이 대륙별, 국가별로 다르고 그것은 작품 곳곳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흥미와 재미를 더한다. 지금까지는 따뜻한 남프랑스와 뜨거운 스페인의 세비야가 자주 등장했다. 그것은 작가가 1928년 이후 프랑스 남부 카프페라에 정착해서 작품 활동을 주로 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연표를 보니 평생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희곡, 장편소설, 단편소설 등을 왕성하게 발표했는데 그가 창작 중단을 선언한 84세까지 무려 60년 동안 활동을 한 것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여행을 많이 한 것으로 드러나는데, 생전에 그가 여행한 곳으로 치면 남아메리카에서 일본, 중국을 거치며 말레이와 보르네오의 동남아, 스페인과 프랑스, 러시아, 시칠리아의 유럽 등 아프리카와 중동을 제외한 전 대륙에 걸쳐 있는데, 견문을 넓히면서 여행 후 자신의 작품에 모두 반영된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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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은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다양한 인간 군상들에 대한 깊고 예리한 통찰력을 작품들 속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해외여행을 통해서 경험한 지리적, 지역적 환경이 인간 삶에 끼치는 영향 등을 작품에 반영시키기도 했는데, 여느 작가에서 보기 힘든 개성이 강한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지중해의 뜨거운 기후의 나라인 스페인의 열정적인 민족성(<명예가 걸린 문제>), 2차 세계대전의 혼란 중 점령지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어느 독일군의 사랑과 프랑스인의 강인한 민족성(<정복되지 않는 사람들>), 대영제국 시절 식민지령 말레이 반도에서 태어난 혼혈인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새가슴>) 등의 일련의 작품들은 ‘서머싯 몸’이라는 탁월한 작가가 아니면 독자로서는 읽어볼 수 없는 개성이 강한 작품들이다.
대학시절 처음 그의 단편문학선을 접한 이후로 실로 오랜만에 그때의 분위기로 돌아가서 내내 읽은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살아가면서 지나간 오래 전의 활력이나 기분을 되찾기란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알기에 더욱 감명 깊었다.
(202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