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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인의 보고를 받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
누가복음 10장 21-24절 / 2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2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23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본문과 똑같은 내용을 마태는 마태복음 11장 25-30절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25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여기서 마태는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과 함께 그 아들의 소원대로 계기를 받는 자만이 아버지를 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아들을 통해 아버지를 아는 자에게 조상 때부터 그동안 짊어져 있었던 수고하고 무거운 멍에를 벗겨 내려놓게 하시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새로운 쉽고 가벼운 멍에를 멜 것임을 강조합니다. 율법의 계율주의적인 의무에서 벗어나 참 평안의 안식에 참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본문에서 누가는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읽는 자에게 알게 해주고자 하는 강조점이 다릅니다. 그것은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는데, 그러한 계시를 받음에 있는 제자들은 그들이 보는 것을 인하여 복이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으나 그들은 그 보지 못한 것을 보고 그 듣지 못한 것을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만이 아는 아버지를 아들이 아버지를 드러내려고 택한 자인, 그래서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들음에 있는 제자들이 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기쁨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쁨도 이 기쁨에 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우리의 귀로 예수 그리스도를 들어 그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이 가지신 뜻을 아는 기쁨에 있는 것 말입니다. 예수께서 기뻐하시는 기쁨도, 우리가 믿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기뻐하는 기쁨도 세상이 주는 기쁨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기쁨에 있는 것은 세상에서 얻는 기쁨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것을 본문을 통해서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구속 사역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자신이 그동안 전파해온 하나님의 나라가 제자들을 통해 전파되고 확산될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열두 명의 제자를 사도로 세우시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며 각 동네에로 보내신데(마 10장, 눅 9:1-27) 이어서 칠십 명(또는 칠십 이명)의 제자들을 뽑아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짝지어 보내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칠십 명의 제자들에게 열 두 제자와 똑같은 권세를 주셔서 보내셨습니다. 사실 전도 파송 받은 칠십 명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일은 순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치 어린 양이 이리 가운데로 보내어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전도 집회를 보면 집회를 가지면서 온갖 대우와 대접을 받고 관광을 즐기고 합니다만, 예수님이 보낸 칠십 명의 전도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목숨이 위협받으며, 여행을 위하여 어떤 준비도 없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그날그날 입으면서 하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면서 복음에 예비 되어 있는 사람을 만나면 하나님 나라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역에는 언제나 자기희생적 헌신과 핍박에 의한 고난이 뒤따르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 전파에는 사단의 세력이 쫓겨나며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 가는 권능이 있게 됩니다만, 그러나 제자들은 자신들이 전파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는 도시와 그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도시와 사람들에게서 제자들을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며 나와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심판 날에는 소돔 성이 그 도시보다 오히려 견디기 쉬울 것이라는 말씀으로 그들이 얼마나 악함 가운데 있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눅 10:1-12).
예수께로부터 분부와 권세를 받고 전도를 나간 칠십 명의 제자들이 과업을 마치고 기쁜 모습으로 예수님께로 돌아와 그 결과를 보고하였습니다. 칠십 명의 제자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고 하나님 나라의 권능을 나타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타락한 이래로 모든 인류는 사단의 지배를 받으면서 고통의 불행 속에서 살아왔는데 제자들은 복음 전파와 함께 주의 권능이 그들에게 나타나 사단의 세력을 쫓아내는 것을 보면서 굉장한 기쁨으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래 그 기쁨이 가득 찬 보고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보고를 듣고 그들에 의해 사단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몹시 기뻐하셨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원수의 세력을 꺾을 수 있는 권세, 곧 뱀과 전갈도 짓밟을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사단의 권세를 제어할 권세를 부여하신 것입니다. 이는 제자들을 사단의 권세를 제어할 권세 아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 권세는 베드로에게 주신 ‘교회적 권세’입니다. 어떤 죽음의 세력도 제자들을 어찌하지 못하는 것입니다(마16:18). 오히려 제자들은 적극적으로 사단의 세력과 대항하여 제압하는 권세를 지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더 기뻐해야 할 일은 사단의 권세를 제압하는 것을 보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0:17-20). 왜냐하면 그들의 주님이신 예수께서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그들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때(전도 결과 보고를 받고서) 예수님은 성령으로 기쁨이 충만하여 계시의 지혜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는 기도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과 능력을 스스로 지식이 있어서 스스로 슬기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감추고, 어린 아이처럼 주님을 의지하여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나타내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알고 그 나라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아버지 밖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또 아들과 아버지를 나타내 보이려고 아들이 택한 사람 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고 하여 하나님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없다는 것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과 능력을 알게 된 것이 자신들의 인간적 지식과 능력 여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신 은혜를 입은 결과이며, 주님이 그것을 소원하신데 따른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는 복을 받았습니다. 많은 선지자와 왕들이 제자들이 보는 것을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제자들이 듣고 있는 것을 듣고자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음을 생각하면 제자들은 그들보다 더 복된 자들이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보고 듣는 것은 그것이 허락된 자에게만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를 어린아이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어린아이를 들어 말씀하신 것은 이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선택받은 자들을 나타내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스스로 지혜 있다며 슬기로운 자임을 자처하는 자들 -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염두에 두고서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자의 지혜를 부수며, 슬기로운 자의 슬기를 숨김으로써 하나님의 지혜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드러내신다. 사 29:14. - 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 알게 주신다며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번 외에도 종종 어린아이들이 자신에게 나아오는 것을 막지 않도록 하시며 자신에게 나아오는 것이 허락되었음을 말씀하시는 것(참조. 마 18:1-5, 19:13-15)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오는 지혜와 슬기가 하나님께서 이들에게는 계시해주심에 따른 것이란 사실을 말해주었습니다. 그에 따라서 어린아이 같은 자, 곧 주님의 손에 붙들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보게 해주심이 있으니 참으로 복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복스러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감은 그동안 그들이 조상들이 해왔던 것을 그대로 따랐던 율법의 교육과 그 계명의 준수에 있어왔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일생을 율법의 그물망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왔으며, 따라서 이들의 생애에서 율법의 각 계명이 이들에게 온전한 것이 되어서 벗어나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일생을 멍에로 지고 살아옵니다만, 그렇게 해서 이들에게 깨달아 알게 해주고 있는 것은 죄에 대한 의식과 그 책임을 통감하는 각성이며, 죄책에 따른 죽음의 형벌에 처해지는 심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 멍에를 짊어지고 힘들어 하던 자들이 진리를 알게 하시는 하늘의 지혜를 힘입어 자신에게 나아와 자신을 따르는 제자의 무리에 들어올 때 그들의 어깨에 있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되고 있는 멍에를 벗겨주셨습니다. 조상 대대로 그렇게 율법을 지키는 삶을 살았어도 지혜와 슬기롭지를 못하였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신명기 6장 4-9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는 오직 한 분뿐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쳐라. 또 너희는 그것을 손에 매어 표로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아라.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서 붙여라."를 문자적으로 실행하면서 살아오던 사람들이었습니다만, 그들이 그렇게 앉았을 때에도 누웠을 때에도 집에 있을 때에도 여행할 때에도 보며, 손목에도 이마에도,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서 붙였던 ”주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는 오직 한 분뿐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혜와 슬기에 있지를 못하였습니다. 온 율법을 동원해서도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라고 하신 그들의 주님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단지 율법 아래에 있을 뿐이며, 율법의 종이 되어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온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운 자가 되려고 하고, 율법을 지키지 못한 것을 괴로워하며 회개하여 다시 지키고자 하고, 그래서 의로운 자가 되어 영생을 얻고자 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힘썼던, 그러나 결코 아무도 사람의 힘으로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었던, 그렇게 그동안 있어왔던 그 모든 것이 말이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와 슬기에 있어 그분을 의지함에 있는 믿음에 들어온 그때에 그들이 조상들이 해왔던 모든 행위를 그대로 짊어진 그 멍에가 그들의 어깨에서 벗겨지고 내려지고 하나님의 나라는 그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된 그 한순간에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있게 되었는지를 알려주십니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 밖에는 그 아들을 아는 자가 아무도 없고, 또 아들과 아버지를 나타내 보이려고 아들이 택한 자들 밖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보낸 아들을 통해서 자신을 아는 택하심에 있는 자들을 예수께 주신 권세에 의해서 예수께로 나아와 그 이름을 의지하는 따름에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는 모든 율법이 말해 온 분을 아는 지혜와 슬기에 있게 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아버지만이 아들을 아시고, 아들과 또 아들이 아버지를 드러내 보이려고 택한 사람들만이 아버지를 안다고 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 있다고 여기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 보이시는 것이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그를 통하여 그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며, 그들에게 허락된 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그들의 것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을 향하여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다. 그러니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에 있는 너희는 참으로 복이 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선지자와 왕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을 듣고자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다."
예수님이 70명의 제자들에게서 보고를 듣고 매우 기뻐했던 것은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통해서 있게 될 사단이 번개같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로서 있는 것으로서 예수님이 제자로 삼으신 자들이 그동안 첫 사람 아담의 타락 이후 사로잡혀 있었던 사단에게서 해방되어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된 것은 말입니다. 구약시대에서 많은 선지자와 왕이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이들이 듣지 못했던 것을 듣는 지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구약시대의 많은 선지자와 왕들과 견주어서 참으로 복 있는 자들임을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구약시대에서 선지자와 왕은 제사장과 함께 메시야적 직무의 사역을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 받음의 택함에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이중에서 선지자는 장차 하나님께서 보내실 메시야와 그분이 하실 구속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에언 계시를 전달 받아 맡은 자로서 그가 맡아 알고 있는 예언 계시를 하나님이 택정한 백성, 곧 이스라엘에게 전하여 이스라엘 또한 하나님의 예언 계시를 받은 자로서 그 예언이 성취될 때의 기다림 속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봄에 있게 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장차 있을 하나님의 일을 예언하는 것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알고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야와 그 메시야가 하실 일을 내다보고 있습니다만, 메시야 그분을 자신들의 눈으로 보고, 메시야가 전하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과 권능을 듣는 기쁨에 있지는 못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름부음을 받은 왕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맡겨진 통치권을 행사하여 장차 하나님의 의로 오실 메시야를 나타내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이 오직 하나님과 그분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올곧게 있도록 함으로써 하나님의 의가 이룰 샬롬[평화]의 세계를 드러내어 그 믿음에 있게 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왕 또한 그가 맡은 왕적인 권세를 행사하는 것을 통해서 여기에 약속되고 있는 장차 있을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알게 해 주는 예언 계시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하나님의 예언 계시를 알고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야와 그 메시야가 하실 일을 내다보고 있습니다만, 메시야 그분을 자신들의 눈으로 보고 그분이 전하시는 말씀을 기쁨에 있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구약시대에서 많은 선지자와 왕이 보고자 하였으나 그들은 메시야 예언에 의해서 그 기대를 갖고 기다려 왔으나 메시야를 그들의 눈으로 보고 예수님이 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과 능력을 보고 듣지는 못하였습니다. 제사장과 함께 선지자와 왕이 메시야적 직무의 사역을 활동하던 구약시대 당시에는 이들이 각각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맡은 직무를 통해서 예언하였던 계시에서 약속해 주시고 있는 메시야와 그분의 나라가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언 계시에서 약속된 메시야 도래의 때가 그들의 시대에서는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메시야 도래의 때가 이르기 전에 있는 이들은 단지 하나님이 주신 예언 계시를 통해서 선재하신 메시야[그리스도]를 알고 있으며 그분을 바라봄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선재하신 메시야를 알고 그분을 보는 복 있는 눈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온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야[그리스도]로 나타나신 것을 보는 기쁨의 복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메시야 도래의 때는 선지자 말라기를 통하여 예언된 온 세상을 심판하는 무서운 큰 날이 오기 전에 보내 주실 선지자 엘리야가 와 부모의 마음을 자식에게로 돌려주고 자녀들의 마음을 부모에게로 돌려주어서 부모와 자녀들이 화목하게 할 것이라는 선지자가 온 후에 있을 것이었습니다. 메시야가 오기 전에 있게 될 마지막 선지자가 와서 선지자 엘리야가 했던 일을 할 예언된 선지자야는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오시기 6개월 전에 하나님에 의해서 출생하게 될 세례 요한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말 4:5-6; 눅 1:11-17).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선지자 말라기에 의해 예언된 세례 요한을 통해서 메시야에 대한 증거를 들으며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의한 회개의 복음을 들었고, 선지자들과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이들이 결코 듣지 못했던 것을 들어 그 지혜에 있으므로 많은 선지자들과 왕들이 보고자 하였어도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기쁨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참으로 복 있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에 오실 것이 약속된 분으로서, 다윗의 씨(자손)가 유대 땅 베들레헴(삼하 7:2; 미 5:2; 눅 2:4, 11; 요 7:42)을 통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저희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실 자’인 예수의 이름(마 1:21)으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과 권능을 행하셔서 그 모습을 나타내실 때, 구약시대의 많은 선지자와 왕이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한 그리스도를 예수님에게서 보고 예수님이 주시는 말씀과 이적의 권능을 행하시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가 아무도 이런 말씀을 주실 수가 없고 이런 권능을 행하실 수가 없음에 사람들은 크게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마 7:28-29; 9:8),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복종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말이죠. 본문 21절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대로 이것을 자신이 보낸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게 하셔서 하시는데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있다고 여기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계시의 지혜를 나타내셔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있다고 여기는 자들의 지혜와 슬기를 산산이 부숴 뜨려 그들의 지혜와 슬기가 공허한 헛된 것에 있게 함으로써 그들을 하나님께 대하여서는 어리석은 자로 있게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정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에 의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를 받게 하여 그 의존에 있는 믿음에 있게 하십니다.
따라서 22절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바와 같이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 밖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아무도 없으며 또한 아들이 택한 자들에게만 아버지를 알게 해 주심에 의해서,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과 권능을 나타내실 때 사람들은 아무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흑암에 있는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빛으로 오신, 곧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는,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생명을 주는 빛을 비추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믿음에 있지를 못하였습니다(마 4:12-16; 요 1:9-11). 해서,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아들을 보지 못하였고 그분을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눈은 있으되 감겨져 있고 귀는 있으되 닫혀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밖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는 그 지혜를 아들과 아버지를 나타내 보이려고 아들이 택한 사람들에게는 아들이 아는 아버지를 알게 해 주십니다. 이들의 눈은 감겨져 있던 것에서 떠져 있었고, 이들의 귀는 닫혀져 있었던 것에서 열려져 있었습니다. 이들은 눈은 있으되 감겨져 있고 귀는 있으되 닫혀져 있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아무도 보지 못하였던 아들을 봄으로써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를 보고, 아무도 듣지 못하였던 아들을 말씀해주시는 것을 들음으로써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를 압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자신을 보고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한 자신을 들음으로써 아버지를 아는 그들은 참으로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기뻐하신 기쁨이 이렇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앎으로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각 동네에 모습을 나타나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가르치시고 이적을 행하시는 것을 사람들이 봅니다만, 그들이 보는 것은 사람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이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며,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이것 외의 것을 결코 보지 못합니다. 이것에서 보여주시는 예수님을 보지를 못합니다. 이것에서 말씀해 주시는 예수님을 듣지를 못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은 육에 있는 한에서 보고 듣는 것으로 육의 것 외에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보는 예수님에게서는 그들의 눈으로 보고 그들의 귀로 듣는 것 외에 그들의 눈으로는 결코 보지 못하고 그들의 귀로는 결코 듣지 못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으려면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으로 떠져 있어야 하고 그들의 귀로 듣지 못하는 것을 들을 수 있으려면 그것을 들을 수 있는 귀로 열려져 있어야 합니다. 이 눈과 귀는 육에 있는 한에서는 감겨져 있고 닫혀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눈으로 보는 예수님이 보아야 할 예수님을 다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귀로 듣는 예수님이 들어야 할 예수님을 다 듣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육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한에서 예수님과 그 하시는 일을 보고 있는 것이고 육의 귀로 들을 수 있는 한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자신들이 보고 듣는 것에서 파악되어지는 한에서 예수님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하늘로부터 온 지혜가 임한 자는,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자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였던 것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떠져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였던 것 예수님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져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에게서 예수님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몸을 입으신 예수님에게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리스도이심을 보고 듣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전파하시고 가르치시는 천국 복음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인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이 능력을 행하시는 이적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인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봅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가지신 뜻인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슬기에 있는 지혜로운 자이며 슬기로운 자입니다. 이것이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며, 예수께서는 이를 “육은 육이요 영은 영이니 네가 거듭나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지혜가 주어짐으로 위로부터 난 자에 있음으로서 그 이름은 하늘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기쁨이 이것이며,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였고 듣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보고 들음으로 그를 통해서 아버지를 알아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에 우리의 기쁨이 있으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가 거할 영원한 장막으로 제공되고 있어 그 안에 거하여 참 평안의 안식을 누림에 우리의 즐김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희락’이라는 성령의 은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