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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Lisboa) 동역(Orient)의 승강장-
**숙소(Amazonia Jamor Lisbon hotel)에서 역까지 20분 소요
-야자나무 숲과 같은 이미지의 승강장-
** 리스본에서 에부라 까지는 140 km,열차로 1시간 30분 소요된다.
-에부라 행 열차 도착-
** 09:00시 에부라 행 열차 출발.
-그래피티(Graffiti ; 낙서 그림)로 뒤덮힌 객차-
-객차의 실내-
에부라(Évora)
에부라는 리스본 동남쪽 110 Km 에 위치하고 있으며 스페인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알렌테주(Alentejo)지방의 중심
도시로 57,000명의 인구를 수용하고 있다. 로마시대부터 이 지방의 중심지로 번영해 왔으며 르네상스 시기에는
대학도 설치된 학문의 도시이기도 하다. 로마, 이슬람, 기독교 등 각각의 시대를 말해주는 건축물이
하나의 성벽 안에 뒤섞여 있어 마치 도시 전체가 미술관 같다. 1966년에는 역사지구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관광지로도 점점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에부라(Évora)시가지 요도-
**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는 로마 시대 성벽은 시가지를 둘러싼 외곽의 원형 일주 도로와 동일한 궤적이다.
-에부라 기차 역사(驛舍)-
** 자그마한 기차 역사지만 아름다운 아줄레주(Azulejo/채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국기 게양대 옆 벽면의 아줄레주는 이 포스트 마지막에 올려져 있다.
-1차대전 참전 충혼탑 및 기념비(The WW 1 Memorial & Monument)-
**1933년 6월 4일 준공된 탑신에는 다음과 같은 라틴어 비문이 있다.
"FILLIS PRO PATRIA CAESIS EVORA"
(=Sons of Évora who died for their fatherland)
"조국을 위해 죽은 에부라의 아들들"
※ 이들은 1차 세계대전 시에 아프리카와 프랑스에서 조국을 위해 숨졌다.
-에부라 성벽(Évora Wall)-
**알폰수 4 세(Alfonso IV)의 명으로 15세기에 축조된 이 중세의 성채(Medieval Ramparts)는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어 왔으며 1922년에는 국가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의 일부가 되어 있다.
-남쪽 성벽 안의 공원 풍경-
-에부라 시가지 모습-
-코르크(Cork)를 원자재로 사용하여 만든 각종 상품들-
** 에부라도 중요한 코르크의 산지이며 포도주 병마개 정도로 코르크를 대해본 사람들에게
인조가죽 정도의 직물로 변신한 코르크 제품을 대하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 성 프란치스코 성당(Igreja São Francisco)-
**최초로 프란치스코회 사람들이 갈리시아(Galicia=유럽 중동부지역)로부터 에부라에 들어 온 시기는 1224년이며
수도원의 일부로 고딕 양식의 교회가 지어진 것이 1376년으로 원래의 수도원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성 프란치스코 성당을 더욱 유명하게 한것은 성당 오른쪽 날개에 붙어 있는 유골 예배당(Capela dos Ossos)때문이다.
(삽입 요도 ⑮번)
-유골 예배당(Capela dos Ossos)-
**길이 60 m, 폭 11 m, 규모의 유골 예배당은 벽면과 기둥 전체가 인골과 두개골로 첩첩이 쌓여있고
시멘트로 붙여져 있다. 5000명의 유골이라지만 어느하나 소흘히 다루어진것은 없는듯 하다.
-유골 예배당 내부-
** 유골 예배당 건축 동기는 16세기,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이 교회의 내부 개혁을 추구하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동료들에게는 묵상을 권하기 위해서 유골 예배당을 지었다고 한다. 예배당의 입구 문틀
위에는 "Nos Ossos que aqui estamos pelos vossos esperamos"라는 문구가 있다.
(우리들의 유골은 여기에 있고 , 그대들의 유골을 기다린다.)"
-유골 예배당 내부-
**오른편에 보이는 작고 소박한 석관은 이 교회 설립자(Founder)의 것이다.
-2012년 4월자 블로그에 게재된 사진(google)-
**마치 처형 당한 듯이 걸려있는 미이라의 모습이 처참하게 보였던지,
망자의 예우 차원에서인지 다음 사진과 같이 전시 방법이 달라져 있다.
-2018년 10월 19일 촬영 사진-
**성인과 영아의 유해(미라)에 대해 전시의 효과 대신 최소한의 예우를 갖추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유골 성당(예배당)은 전 세계에 여러 곳에 있다. 예를 들면 로마의 카푸친(Capuchin)유골성당,
체코의 쿠트나 호라(Kutna Hora), 프라하, 폴란드, 할슈타트(獨) 등지가 있는데 유골의 장식
방법이나 전시 방법은 각기 다르지만 유골 성당이 생기게된 동기는 비슷한것 같다.
-유골 예배당 내부-
**도시나 마을 가운데에 조성된 교회 묘지는 수용의 한계가 있어서 중세에 창궐했던 페스트에 의한 대량의 사망자,
전쟁에 의한 사망자등으로 묘지의 포화 상태를 해결하기 위한 납골당의 역활을 유골 성당이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 프란치스코(São Francisco) 성당 전경-
**1480~1510년 어간에 세워진 이 성당은 고딕-마뉴엘린(Gothic-Manueline)양식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이다.
성당은 폴투갈의 대항해 시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교회의 돔(Dome), 십자가, 왕들의 엠블렘(emblems)에
그와 같은 증거가 보이는데 주앙2세(João II), 마뉴엘1세(Manuel I)는 폴투갈의 신항로 개척의 큰 후원자였다.
질 비센트(Gil Vicente;1465-1536)가 1536년 이곳에 묻혔다. 질 비센트는 "폴투갈 드라마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며 서정시인이라고도 불리웠으며 에부라 법원에 같은 이름의 숙련된 금 세공인의 이름이 나타나는데
동일인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Manueline ; 폴투갈 식의 고딕 스타일을 가리킨다.
-성당 내부-
-부속 예배당(Side Chapel)-
박물관(Museum)
2014~2015 년 과거 기숙사 지역 복원과정에서 19세기 이후 사용되지 않던 공간에 작은 박물관을
설치하고 수도원 자체의 유물과 에부라의 옛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의 컬렉션을 전시하였다.
유골 예배당 2층이 박물관 전시실이다.(프란치스코 성당 요도 참조)
-잠자는 아기를 내려다 보는 성모(Our Lady watching over the sleeping Child)-
** 16th/17th century, 목판에 유화. 출처 : 성 프란치스코 수도원
주 : 테마가 폴투갈에서 통상적이지 않은것으로 미루어 스페인 화실 작품으로 보인다.
-미사전서 낭독대(Missal stand)-
** 16세기 말-일본. 목재에 옻칠, 자개 상감, 금칠, 접이식 구조.
-향로(Thurible)-
** 16-17 세기, 은 주물, 용접, 단조, 새김 공법으로 제작
- 프란치스코 엔히크(Francisco Henriques)부속 예배당의 판넬화-
**①.성모 와 아기예수, ②. 막달레나에게 발현한 그리스도. ③. 성령 강림. ④. 자비의 성모 와 아기 예수,
성녀 율리타, 성 구에리토. ⑤. 예언자 다니엘 율간도 와 숙녀 수산나. ⑥. 성 코스메, 성 도마, 성 다미아노
-예수 부활(Resurrection)-
** 1609~1610. 목판에 유화. 출처 ; 에부라 소재 산타 클라라 수도원 회의실의
"예수의 일생" 을 그린 판넬화 잔존 7점 중의 한점.
-사도 성 요한(St. John the Evangelist)-
**18th century. 캔버스에 유화. ※ 사도 성 요한은 그의 상징인 독수리와 함께 서 있다(8시방향).책과 펜을
들고 완전 동적인 자세와 검고 긴 머리카락 등의 표현은 조안닌 시기(Joanine Period)의 전형적 기법이었다.
-성녀 클라라(Santa Clara) 와 성 클래어(St. Ckare)-
**산타 클라라 ; 17세게 경. 목재에 금색 칠. 다채색, 직물 입힘. **성 클레어 ; 목재에 금칠, 다채색, 직물 입힘.
-성체를 숭배하는 성 프란치스코 와 성녀 클라라-
**18 세기, 캔버스에 유화. 출처 ; 과거 에부라의 "궁핍의 클라라" 수도원 교회의 성구(聖具)보관실.
-성 프란치스코의 5상(五傷)- -성녀 클라라 -
**프란치스코 주앙(Francisco João-1580-1590. **프란치스코 주앙(Francisco João-1580-1590.
목판에 유화 목판에 유화
-세폭 그림(Triptych)-
** 골고다(Calvary), 성 프란치스코 와 성 안소니(Anthony), 17세기, 목판에 유화, 목각에 금박.
출처 ; 과거 칼바리오 수도원 교회 성구 보관실/ 십자가에 못 밖힌 예수 오른쪽으로 성 프란치스코가
성흔(聖痕)을 보이고 있으며 왼쪽은 안소니(Anthony) 성인이 책 위에 아기 예수를 받쳐 안고 있다.
-인도하시는 성모(Our Lady of Guidance)-
** 16 세기, 다채색 금박 목각, 에스토파두(Estofado) 기법.
※에스토파두(Estofado) 기법은 조각에 직물을 덧 입히는 공법이다.
-성모 무염 시태 ( 聖母無染始胎/Our Lady of the Conception)-
** 18세기, 캔버스에 유화, 출처 ; 산타 클라라 수도원
-성해(聖骸) 안치대(Custodia)-
** ③. 18세기, 은 주물, 용접, 새김 공법. ④. 1818-1836, 은 주물, 용접, 새김 과 도금
-세자 성 요한(St. John the Baptist)-
**17/18 세기, 캔버스에 유화, ※ 흥미로운 예의 하나인 세자 요한을 어린 아이로 그린 바로크 회화로
상징적인 식물에 둘러 싸여있고 어린 양에게 화관을 씌워 주고 있다. 십자가에 매달린 리본에는
"ECCE AGNVS DEI(Behold the Lamb of God/보라 ! 주님의 어린 양)"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머리 카락은 완전한 곱슬머리로 동 페드로 2세(D. Pedro II) 와 동 주앙 5세(D. João V)
통치 시기의 유행 이었다. 사도 성 요한을 그린 한 쌍(a set)의 작품 중 하나이다.
※"Behold the Lamb of God(보라 주님의 어린 양!)" 이 구절은 세상을 죄악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희생할 어린 양(그리스도)을 말하는 성경 구절의 한 부분이다.
-세자 성 요한(St. John the Baptist)-
** 18세기, 캔버스에 유화, ※어린 양과 같이 서 있는 요한 성인은
ECCE AGNVS DEI(Behold the Lamb of God)라는 문구가 적힌 띠를 들고 있다.
짧은 옷, 밝은 색, 곱슬 머리, 과장된 동작은 조안닌(Joanine)시대의 전형적 예이다.
출처 ; 에부라 산타 클라라 수도원 교회
-사도 성 요한(St. John the Evangelist)-
**17/18 세기, 캔버스에 유화, ※사도 요한의 상징인 독수리와 함께 파트모스 섬(Island of Patmos)에서
종말론(Apocalypse)을 쓰고 있는 그의 앞에는 천체에 둘러싸인 전형적인 모습의 성모가 발현하고 있다.
독수리는 부리로 잉크병을 물고서 사도 요한을 도와 주고 있다. 세자 요한 그림과 셋트 중의 한 점이다.
-수태고지(Annunciation)-
**1609-10, 목판에 유화, 출처 ; 산타 클라라 수도원 회의실의 "그리스도의 일생" 연작 중 현존하는 7점 중 한 점.
※ 일부 역사가 들에 의하면 화가 안토니오 데 무라(Antonio de Moura/1604-1645) 와 에부라에서 수년 간
화실을 운영 하던 화가 겸 금박공인 마뉴엘 훼르난데스(Manuel Fernandes/1579-1656)의 공동 작품이다.
-학자들 사이의 그리스도(Christ among the Doctors)-
** 1609-10, 목판에 유화, 출처 ; 산타 클라라 수도원의 "그리스도의 일생" 시리즈 중의 한 점.
-성 프란치스코의 성흔(聖痕/Stigmatisation)-
**17 세기, 캔버스에 유화, ※프란치스코회의 설립자인 프란치스코 성인의
성흔(聖痕)은 유럽의 회화에서 보편적인 테마의 하나였다. 십자가 밑에 무릎 꿇고
예수의 상처로부터 직접 5개의 상흔을 받고 있는 장면은 다른 그림의 예와는 다른 구도이다.
-발 씻겨 주기(Foot-Washing)-
** 17 세기, 목판에 유화, 출처 : 미상의 수도원으로 부터. ※이 장면은 성경의 구절을 묘사한 것으로
최후의 만찬 중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장면(요한 복음 13장 5절)으로
베드로는 황송한 나머지 잠시 사양하는 모습이다.
-그리스도의 탄생(The Nativity)-
**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는 3개의 전시 시설이 있는데 유골 예배당, 회화 와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 그리고
그리스도의 탄생을 묘사한 소품에 속하는 공예품 전시실이 있다. 이 사진은 그리스도 탄생 공예품 중의 한 점이다.
- 성 프란치스코 성당 파노라마 테라스(Panorama Terrace)에서 내려다 본 에부라 시가지(11시 방향) # 1 -
- 성 프란치스코 성당 파노라마 테라스(Panorama Terrace)에서 내려다 본 에부라 시가지(2시 방향) # 2 -
** 2시 방향에 에부라 대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고대 건축물의 유적-
-은혜의 교회(Igreja da Graça)-
**은혜의 교회 또는 은혜의 성모 수도원인 이 교회는 매우 중요한 르네상스 양식의 종교 기념물이다. 성 프란치스코 성당
맞은편으로 한 블럭 떨어진 곳에 1511년 설립되었다. 건물은 순수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물 정면 지붕 양 끝에 걸터앉은
인물 상이 보이는데 "은혜의 소년들(Boys of Grace)"로 불리워 왔다. 현재는 고위 군사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은혜의 교회(Igreja da Graça) 정면 줌 인(Zoom In)-
-성 프란치스코 성당 파노라마 테라스(Panorama Terrace)에서 건너다 보이는 은혜의 교회(Igreja da Graça)의 종탑-
-에부라 기차 역사(驛舍) 외벽에 있는 아줄레쥬-
** 이 아줄레쥬의 그림은 위의 사진처럼 정확하게 그린 은혜의 교회(Igreja da Graça)이다.
다만 화가가 그림을 그릴 당시에는 종탑에 종이 달려있지 않았다.
-노천 카페 뒤로 성 안톤 교회(Igreja de Santo Antão)가 보이는 지랄두 광장-
** 지랄두 광장(Praça do Giraldo)은 이 도시의 중심이다. 지랄두(Giraldo)란 이름은 "두려움을 모르는 지랄두
(Giraldo Sem Favor=Fearless Giraldo Geraldes)"에서 유래하였다. 전사며 평민 영웅인 그는 레콩키스타
(국토회복)시기인 1167년 무어인(Moors)들로부터 에부라를 수복하였으며 폴투갈의 초대 왕 알폰수 엔리케
(Alfonso Henriques)는 그를 에부라의 총독(에부라 요새 사령관) 과 알렌테주 (Alentejo)지역 국경 방어
사령관에 임명하였다. 에부라의 문장에는 검을 들고 말을 탄 지랄두 지랄데스 (Giraldo geraldes)가
그려져 있다. 그림 하단에는 무어인의 머리와 성채에 살면서 공격을 받은 그의 딸의 머리가
그려져 있다. 삽입 그림 뒤로 보이는 가로등 전주 위에는 삽입 그림과 같은
에부라의 문장이 올려져 있다.
-성 안톤 교회 쪽에서 바라본 지랄두 광장(Praça do Giraldo)-
**1571/1573 건설된 지랄두 광장(Praça do Giraldo)은 폴투갈 왕실이 에부라를 점령 후 조각들과 개선문을 포함한
건물들을 파괴하도록 명령하였는데 광장이 넓게 보이고 광장 한쪽에 있는 성 안톤(Santo Antão)교회의 전망을
방해하지 않고 오늘날 까지 광장에 남아 있는 분수대를 건설하기 위해서 였다(윗 사진에 보이는 분수대).
바로크 스타일의 대리석 분수대의 꼭대기에는 왕관이 있는데 항간의 이야기에 의하면 스페인의
필립 3세(Philip III)가 1619년, 분수는 왕관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삽입 그림은 에부라의 시 문장이다.
-성 안톤 교회(Igreja de Santo Antão)-
**1557~1563년 어간에 추기경 헨리왕자에 의하여 세워졌으며 건축가 마누엘 피레스(Manuel Pires)가 설계하였다.
이 성당은 원래 있던 템플 기사단의 소규모 성 안서니 예배당(Ermida de Santo Antoninho)대신 세워진 것이다.
간소한 정면은 양측에 종탑이 올려져 있고 매너리스트 (Mannerist)식의 출입구는 3개가 있다.
실내장식은 후기 르네상스 스타일이다.
-고대의 성벽-
-로마 신전(Templo Romano) 개념도-
**에부라의 로마 신전은 AD 1세기 전반에 이 도시의 종교, 정치, 행정, 사법 과 상업의 중심지로
에부라 리베랄리타스 율리아 포럼(Ebora Liberalitas Iulia's Forum)을 포함하여 도시 재생계획의
일환으로 세워졌다. 오랜 기간 동안 다이아나(Diana)여신에게 헌정된 것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오늘날에는 황제 숭배를 위하여 헌정한 것으로 믿어진다.
-남아있는 화강암 기단과 코린트 양식의 돌기둥-
** 왼편으로 대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다른 각도에서 보는 로마 신전-
**신전 기단 너머로 보이는 흰색 건물은 아래 사진의 로이우스(Lóios) 교회이다.
- 로이우스 교회(Igreja dos Lóios)-
**로만 템플을 마주하고 있는 소박한 이 교회는 1485년 이 지방의 관리가 자기 집안의 가족 묘로 사용하기 위해
건축한 것이라고 한다. 교회 오른편 건물 벽에는 에보라 수도원 숙소(Pousada convento dos Evora)라는
글귀가 보인다. 교회 입구는 나즈막하게 보이는데 밑으로 계단을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에부라 대성당(Cathedral de Évora)-
** 교구 성당 또는 에부라 대성당은 폴투갈에서 가장 큰 중세의 대성당으로 간주된다. 1283년 부터 1308년 어간에
세워진 이 성당은 전환기의 고딕 양식에 디테일에는 르네상스식이 가미되어 있다. 성모 마리아께 봉헌되어
산타 마리아 대성당(Santa Maria Cathedral)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디아나 로마 신전에 인접해 있다.
-에부라 대성당(Cathedral de Évora)전경-
** 주변 여건상 웅대한 건물 전체를 여행자가 촬영하기는 불가능하다. 이 사진은 Google 동영상(드론?)을 캡쳐한 것이다.
-대성당 정면 과 입구-
**입구가 있는 서쪽 파사드(Façade;정면)는 양쪽에 우람한 타워 위에
고딕식의 첨탑이 올려져 있다. .
-정면 (파사드/Façade) 양쪽 타워 위의 첨탑-
- 십자가 † 의 가로 대와 세로 기둥이 만나는 점에 세워진 첨탑-
** 성당의 전체적인 윤곽은 대부분 십가가의 형태이다.
-12 사도 상으로 장식된 파사드(Façade)-
-대성당 내부-
-에부라 대학교(Universidade de Évora)-
**현재의 에부라 대학교는 여러개의 건물이 도시 내에 분산되어 있다. 성령 칼레지(Colegio do Espirito Santo)가
대학에서 가장 오래된 주 건물이다. 폴투갈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에부라 대학은 방문객이 가장 많은 곳 중에 하나이다.
이 학교는 1559년 11월 1일 동 엔리케(Dom Henrique)추기경이 설립하였으며 교황 바오로 4세(Pope Paulo IV)에 의해
성령 대학으로 승인을 받았고 2세기 동안 운영되었다. 예수회에 의하여 운영되던 대학이 1759년 폐쇄 되었는데 이유는
총리인 폼발(Pombal) 후작이 1755년 대지진 후 재난 복구 작업을 하는 중에도 종말론을 주장하며 도시를 탈출하라는
예수회 사제들로 인해 재난 복구 인원이 도시를 탈출하자 예수회를 축출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1779년 영구 폐쇄
되었다가 그로부터 200년 후인 1973년에 에부라 대학교(Universitario de Évora)가 재개 되었다.
-2층 회랑에서 보이는 내원(內園)-
-대학 강의실-
-대학 내부-
-에부라 뒷골목-
-마누엘 1세가 바스코 다가마 대장의 인도 원정을 승인하고 있다(1497).-
**맨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아줄레쥬들은 에부라 기차 역사(驛舍) 외벽을 장식한 것들이다.
-전원 사람들의 의식-
** 질 비센트(Gil Vicente)의 그림을 채색 타일에 옮긴것으로 보인다.
-1637년 민중 봉기-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