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기르는 마라케시에서 사막으로 이동하는 여행자들이 다 들러가는 유명 관광지인 토드라 협곡의 관문 도시...라 할 수 있지만, 대도시도 아니고 관광도시라 하기엔 인프라가 너무 부족해서... 그렇다. 토드라도 (에이트벤하두처럼)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두어 시간 멈춰서 구경하고 지나가는 관광지이지 체류형 관광지가 아니다. 그러니 틴기르는 관광도시가 아니고 그냥 근처에 있는 베르베르족의 도시라고 하는 게 사실에 가깝다.
에이트벤하두 숙소를 예약한 후에 연말을 보낼 숙소를 찾느라 며칠 동안 열심히 검색하다가 갑자기 저렴하고 평점 좋은 숙소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냅다 3 박을 예약했는데, 출발하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숙소 위치가 틴기르 시내가 아니고 토드라 방향으로 6 킬로 정도 떨어진 시골 마을이다. 근처에는 식당도 슈퍼도 검색이 안 된다... 망했나? 그런데 그 위치 덕분에 숙소에서 토드라 협곡까지, 그리고 숙소에서 틴기르 시내까지 트레킹을 즐길 수 있었으니 결과는 해피엔딩.
12월 31일
에이트벤하두에서 틴기르로 이동하려면 일단 와르자자트까지 나가야 한다. 숙소 주인이 불러준 택시를 타고 (200 파운드) 와르자자트 CTM 터미널에 도착하니 버스 시간이 넉넉하게 많이 남았다. 터미널에 배낭을 맡기고 (하나에 5 디르함.) 주변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큰 광장이 있네?. 낮이라 한산하지만 밤에는 시끌벅적이 예상되는 크고 말쑥한 도심 광장, 한켠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사먹고 골목 구경 좀 하다가 값싸고 맛있는 대추야자도 한 봉지 사고...
틴기르에 도착하니 이미 어두운 밤인데 (16:00 출발 19:15 도착, 차비 50 디르함), 버스를 내리자마자 어디 가냐고 묻는 청년이 있다. 삐끼? 정보가 부족할 때는 말걸어주는 삐끼도 반갑다. 숙소가 있는 동네 (이스마린) 이름을 댔더니, 거긴 멀어서 택시비가 너무 비싸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답이 돌아온다. 소통 부족. 이스마린은 6 킬로가 넘는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택시를 타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우물거리고 있으니 따라오라며 앞장을 서는데 지도에서 봐 두었던 그랑택시 정류장 쪽으로 간다. 택시 타는 데는 우리도 알거든. 따라가는 듯 안 따라가는 듯, 시장을 지나갈 때는 과일도 한 봉지 사고 하면서 삐끼를 따돌리려 했는데, 꿋꿋이 기다리더니 그랑택시 정류장으로 가는 우리를 막아서며 반대쪽을 가리킨다. 공터에 미니버스 두어 대가 서 있는 모습이다. 마침 손님을 몇 태우고 도착한 미니버스 기사에게 우리 목적지를 얘기하더니 청년은 버스에 우리 배낭까지 실어주었다. 버스비를 물어보니 일인당 5 디르함이란다, 그러니까 비싼 택시 타지 말고 이거 (콜렉티보라는, 승객 차면 출발하는 미니버스) 타라고 데려온 거구나. 괜히 바가지 택시로 유인하는 줄로 오해하고 경계했잖아. 팁을 달라고 해서 급히 주머니를 뒤져서 잔돈을 꺼내 건넸는데 겨우 2 디르함, 받은 삐끼도 어이없어 하고 나도 미안해서 옆지기 동전 지갑을 뒤져 5 디르함을 더 줬다.
숙소 이름은 카스바 오마리, 1949년에 지었다는 카스바를 개조한 숙소인데 외관도 그럴 듯하고 옥상 뷰나 발코니 뷰가 꽤나 훌륭하다. 조식 포함해서 3박에 606 디르함을 주었으니 이 시기에 매우 매우 저렴한 숙소다. (심지어 더 작은 방도 있다). 위치 때문에 걱정했었지만, 길 건너에 미니슈퍼가 하나 있었고, 토드라까지 트레킹이나 시내까지 걸어다닌 길이 너무 좋았으므로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최고의 위치였던 셈이다. 주인 할아버지 하산도 매우 친절한 사람이었다. 다만, 오래된 진흙집이라 벽과 천장과 문짝 등 시설이 너무 허술했고 아주 쬐끄만 가스 히터 외에는 난방 시설이 없어서 잠잘 때 조금 추웠다는 점이 아쉬웠다.
음식도 한다기에 저녁을 주문했는데 (메뉴선택 못하고 오늘 음식은 코프테 타진이란다. 2 인분 150 디르함) 맛은 별로...
2026년 1월 1일
새해 첫날인데 달력이 달라서 그런가 연말 연시 분위기가 전혀 없다. 오늘 일정은 토드라 협곡 관광. 표기에 따라서 토드라, 토드가, 토드하 세 가지 이름이 혼용되고 있는다데 (베르베르어와 아랍어의 차이, 프랑스어 표기와 스페인어 표기의 차이, 그런 게 있다는데...) 토드라란 발음이 많이 들리는 듯하다.
아침을 먹으면서 숙소주인 하산에게 트레킹에 관해 물어보니 대뜸 자기가 안내하겠단다. 좋지요, 비용은 얼마에요? 돈은 안 받지, 내집에 온 손님 안내해 주는 건데? (그런가? 근데 숙박비나 밥값은 받잖아?) 아무튼 고마워요 같이 갑시다. 그런데 밥을 먹고 나서 같이 출발하기는 했는데 (갑자기 무슨 급한 일이 생겼는지) 문 밖에 나가자마자 우리끼리 갈 수 있겠냐고 묻더니, 10 분 정도 길을 안내하며 걸어가다가 이 길 따라 저 방향으로 쭉 가면 된다고 알려주고는 숙소로 돌아갔다.
시골길 트레킹이야 뭐, 우리가 전문이지. 산도 구경하고, 나무도 구경하고, 카스바도 구경하고, 밭일 하러 나온 사람들에게서 간식도 얻어 먹으며 즐겁게 들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중간에 우연히 만난 (혹은 우연을 가장한 접근?) 현지인이 이건 석류 나무, 이건 아몬드 나무, 이건 대추야자 나무, 이건 파란 염료 만드는 풀, 해가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는데,
카스바들이 모여 있는 곳에 이르러 건물 한두 군데를 소개더니 양탄자 공장이란 곳으로 데려간다. 아하, 삐끼로군. 이왕에 끌려왔으니 구경이나 할까? 그런데 오늘은 휴일이라 공장이 쉰단다. 그래서 양탄자 만드는 모습은 보여줄 수 없으니 완제품이나 구경하라고, 그리고 옆 방에는 예쁜 그릇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냥 물건 팔겠다는 거잖아? 양탄자는 비싸서 안 되겠고 그릇이나 작은 걸로 하나 사줄까 해서 가격을 물어봤더니 예상 가격의 다섯 배를 부른다. 완전 바가지 심뽀로군. 손을 내젓고 돌아나왔다. 삐끼 아저씨가 철수하면서 팁 달라고 손을 벌리기에 잔돈 털어 9 디르함을 주고, 다시 우리끼리 트레킹을 이어갔다.
네 시간의 트레킹 끝에 도착한 토드라 협곡은 기대했던 대로 아니 기대 이상의 장관이었다. 협곡 양옆으로 수직으로 솟은 바위 병풍, 말로도 사진으로도 전달하기 어려운 장엄한 모습과 압도하는 분위기다.
그 어머어마한 바위벽을 기어오르는 사람들도 있다. 암벽등반 하기에 좋은 곳이기도 하겠네.
협곡 입구로 나와 점심을 먹고 나서 돌아갈 택시를 (혹시 콜렉티보?) 찾아 봤으나,
그랑택시 정류장도 없고, 형광 조끼 입은 사람도 보이지 않아 동네 사설(?) 택시를 흥정해서 돌아왔다.
1월 2일
유명 관광지는 어제 다녀왔고,
오늘은 틴기르 시내 구경이나 해 볼까? 시내까지 어떻게 갈까 하산에게 물어보니 트레킹을 권한다. 그럼 걸어갔다가 올 때는 콜렉티보를 타고 올까? (트드라 방향보다는 못했지만, 이쪽도 경치 좋은 트래킹 코스다. 올 때도 결어서 왔다.)
특별히 랜드마크라고 할 만한 것도 보이지 않는 평범하고 작은 도시다. 시장과 공원을 왔다갔다 하다가 간판도 없는 숯불구이 집에서 '반반 구이' (양고기 반, 닭고기 반)를 먹고 (100 파운드)
시장에서 과일 몇 가지 사고,
걸어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