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발행지 '로컬리티의 인문학' 53호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제주의 아름다움과 아픔을 함께 보듬은 강정국제평화영화제
조약골 (강정국제평화영화제 프로그래머)
제주해군기지에 맞서서 10년간 평화운동을 펼쳐온 강정마을에 있어서 2016년은 중요한 한 해였다. 해군기지 공사가 2월말 완공되었고, 사람들은 공사도 끝났는데 다 끝난 싸움 아니냐고 했다. 이제 강정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대로 물러날 것인가. 하지만 기지를 둘러싼 갈등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해군은 34억 원의 구상권 청구소송을 제기하여 강정마을 주민과 평화운동가들을 옥죄고 있었다. 해군기지를 시작으로 평화의 섬 제주에 더 많은 군사시설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대로 강정 생명평화운동을 멈출 수는 없었다.
부당한 해군기지 사업에 맞서 고향 제주도에 내려와 비폭력평화운동을 시작한 영화평론가 양윤모에게 구럼비 바위는 삶터였다. 그곳에서 먹고 자면서 기지 건설을 막기 위해 공사차량 밑으로 기어들어가고, 목숨을 건 단식을 네 차례나 감행하고, 여러 차례 구속되기도 하였던 그였다. 점점 준공일자가 다가오는데, 마침 강정마을에 찾아온 미국 평화군인회 인사들이 그에게 물었다, 무엇을 할 것이냐고. 양윤모는 이제 문화의 힘으로 제주해군기지를 포위해 꽁꽁 막아보겠다고 말했다.
값비싼 무기와 증오에 의존하는 군사기지가 아니라, 인권과 정의 그리고 공감에 바탕을 둔 문화축제가 제주도에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에 많은 시민들이 공감했다. 강정마을에서 영화제를 열자고 제안했을 때 나는 ‘이거다!’ 싶었다. 영화는 누구나 좋아하니까. 해군기지 반대투쟁이라면 뭔가 부담이 되지만 영화제를 연다고 하면 사람들이 다시 강정마을로 올 것이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해군기기 준공 이후, 빗진 마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하던 많은 시민들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 마을을 찾아왔노라고 고백했던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자 영화제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스태프가 꾸려졌다. 하지만 제주와 육지에 흩어진 채 변변한 사무실도 없이 온라인으로 몇 달간 소통하였고, 우리는 회의를 한 번 하려면 비행기 타고 먼길을 내려와야 했다.
돈이 한 푼도 없이 시작한 영화제가 준비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처음부터 많은 이들의 자원봉사로 함께 했고, 특히 강정마을 주민들과 제주도민들이 발 벗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지자체와 기업의 후원 없이 오로지 시민들의 성금과 각 시민단체 및 영화단체들의 도움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평화영화제를 해군기지가 할퀴어 놓은 제주도에서 개최하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또한 전 세계로 알려진 강정마을의 위상에 걸맞게 제주 지역 최초의 국제영화제로 치러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강정국제평화영화제는 소박하지만 큰 뜻을 품고 나아갈 수 있었다.
지난 10년간 제주 강정은 시대의 아픔을 오롯이 간직한 곳이었다. 두 눈을 부릅뜬 채 가장 위험하고도 가장 치열하게 하루하루 목숨을 걸고 생명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는 이들이 살아가는 현장이었다. 강정은 한국의 모든 열악한 곳을 상징했다. 그래서 우리는 돈과 총이 지배하는 이곳에서 꽃을 피워 희망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10년간의 사무친 원한도, 경찰들 앞에서 끓어오르던 분노도, 권력을 향한 끝없는 증오도 잠깐 내려놓고 함께 둘러 앉아 어두운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 반짝이는 빛의 향연에 온몸을 내맡기고 싶었다. 모여서 뜨거운 눈물과 환한 미소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모다들엉(모두 함께), 평화’라는 구호를 내걸고 10개국 34편의 작품을 준비했다. 프로그래머들이 모여 앉아 밤새 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고 글을 썼다. 2015년 겨울과 2016년 봄을 그렇게 보냈다.
국제 행사를 치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적은 인력은 항상 문제였고,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촉박한 시간도 우리 편이 아니었다. 강정국제평화영화제를 2016년 4월에 치르기로 한 것은 제주 4.3 사건도 있지만 4.16 세월호 참사도 있었기 때문이다. 4월은 무거웠지만 결코 비껴갈 수는 없었다. 해군기지 공사용 철근을 가득 싣고 4월의 어느 봄날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닿지 못한 이곳에서 우리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보통 사람들의 특별한 영화제를 준비했다. 한국사회 민낯부터 지구촌 아픔까지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영화축제를 만들어 나갔다.
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세월호 유가족 재욱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제주도는 저희에게 정말 특별한 장소 입니다. '강정국제평화영화제'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평화를 사랑했을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며 모든 일정을 제쳐두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모인 이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 평화롭고 안전한 삶을 위해 함께 나아가길 바랍니다. 저희 유가족도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가장 큰 우여곡절은 개막식 장소로 이야기가 되었던 서귀포예술의전당의 대관 불허였다. 서귀포시는 강정영화제가 ‘정치성을 띠고 있고 편향성 우려가 있어 공공시설인 예술의 전당 대관은 부적절한 것으로 결정했다’고 개막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일방적으로 통보해버렸다. 부랴부랴 서귀포성당으로 개막식 장소를 옮기고, 강정마을회관과 평화센터, 중덕삼거리 식당 등을 상영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소식은 제주사회에 커다란 분노를 일으켰다. 서귀포시는 영화제에서 상영할 영화에 대한 내용을 미리 요구했고, 사실상 사전 검열까지 마친 상태에서 대관을 불허하여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했다. 제주도의 문화예술인들이 들고 일어났다. 김경훈 시인은 ‘예술을 유린하는 비예술의 극치’라고 했고, 현택훈 시인은 강정국제평화영화제 상영 불허는 정치 편향이며, ‘평화 축제의 장에 권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총을 겨누고 있다’고 비판했다. 제주 언론들 역시 서귀포시가 지나치게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며 ‘강정’을 내건 영화제 하나 포용하지 못하는 행정의 경직성과 편협함이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킨다고 나무랐다.
긴장 속에 4월 23일 영화제 개막일이 되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 하루 종일 애가 탔는데, 놀랍게도 오후 6시가 다가오자 서귀포성당 대강당이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메워지고 있었다. 성당에 사람들이 차면 약 800명인데, 추가로 배치한 의자와 돗자리도 모자라 성가대석과 바닥까지 사람들이 포개고 앉아 영화제 개막을 축하해주었다. 1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든 영화제 개막식은 그야말로 예술과 평화를 주제로 자유로운 이들이 똘똘 뭉친 자리였다. 모두들 영화제 준비는 처음이었기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축제를 만들어낼 수 있었고, 여러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작은 기적이었다.
임순례 감독은 "숱한 영화제를 가봤지만 이런 영화제는 처음이다. 시민의 연대가 만들어낸 놀라운 축제"이며, “평화를 염원하는 퍼포먼스 등 영화제 개막식을 보며 가슴이 뭉클한 것은 처음”이라고도 했다. 이것은 군사주의에 10년간 시달려온 마을 전체가 그만큼 절박하게 평화를 염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팔레스타인의 한 마을의 땅이 이스라엘 군에 박탈된 이후 마을의 저항을 영화로 담아낸 작품 ‘다섯 대의 부서진 카메라’를 공동 연출한 기 다비디 감독은 “다른 국제영화제를 많이 다녀봤지만 이렇게 마을이 나서서 참여하고 만든 영화제는 처음이다”고 놀라움을 표현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 세우고 있는 분리장벽 때문에 땅이 강제로 박탈되는 것과 강정주민들의 땅이 해군기지로 인해 강제수용된 것에서 유사점을 느낀다고 했다. 영화제 한 켠에서는 해고노동자들이 노래를 불렀고, 평화포럼도 열렸다.
나흘 간 열린 제1회 강정국제평화영화제를 통해 강정마을에 조그만 평화의 나무를 한 그루 심은 셈이다. 이제 그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나 다른 나무들과 어울려 숲이 되어 모든 생명이 어울려 살아가는 평화의 큰 그릇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가꿔나가야 할 것이다. 제주섬 고통의 역사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는 아름다운 축제로 자라난다면 좋겠다. 영화제를 준비한 사람들은 폐막식 자리에서 제주도가 진정으로 평화로운 섬이 되도록, 그리하여 한반도가 세계평화의 중심이 되도록 영화로 발언하고, 문화로 소통하며, 예술로 행동하고자 결의하였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드리운 갈등과 폭력 그리고 전쟁의 그림자를 차츰 걷어내고 세계 시민들과 함께 손잡고 진정한 화합을 이루고 싶다는 것이 강정마을 주민들이 그토록 바라는 평화의 염원일 것이다. 어쩐지 영화를 통해서라면 가능할 것도 같다.
로컬53호최종1102.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