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그대로 중추가절仲秋佳節 가을의 들머리에 들어섰다.금년 여름 내내 무더위로 이 나라 온 백성들이 힘들었던 삶의 기억도 어느덧 뒤로한 체,시원한 바람결을 우리에게 안겨준 자연의 절기 앞에 엎드려 큰절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다.
여름의 더위가 심해 힘들었던 만큼 가을맞이는 더욱 반갑고 평온과 정상으로의 회복 바로 그것이리라!
어쩌면 너무 기다리고 기다렸던 9월 삼토三土인 오늘 우리 열두회사랑등산회 산행하는 날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뭐 비가 내린다고 우리 회會가 산행을 작파作破하거나 연기하지는 않지만 산행에는 다소 불편하고 추가로 챙겨야할 게 더해지므로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어서 염려는 되었다.
우리는 오늘이 추석 명절 연휴 뒤이기도 해 비교적 가볍게 산행하려고 단촐한 산행지인 강남구 일원동 소재 대모산 불국사에서 서초구 구룡산 구간의 서울둘레길을 걷기로 하고, 전철 3호선 일원역에서 10시에 모이기로 했다.다행이 집을 나서는 시각에는 비는 그치고 북쪽 하늘에 비구름이 흩어지고 더 높이 떠있는 하얀 구름이 모습을 내밀고 있기도 했다.기상 예보대로라면 강수율 30~50%라 했으니 비옷과 우산을 챙기기는 했으니 비가 내리나 안내리나 신경을 쓸 일은 아니고 '하느님 맘대로 하소서'의 심정이었다.10시가 가까워 오고 몇몇 동기에게 연락도 해봤다.좀 늦겠다는 한 두 동기들을 기다려 일원역을 나서는 시각은 10시 15분이었다.모두 열명이 참여했다.
(김희중,박상기와 그 부인,박순호,심인,이윤태,이정윤,이종주,정병대 등산대장 부인(김 여사),양재록 등)
짙었던 구름이 쪼개지듯 심한 요동을 치고 먼데 하늘이 푸른 색을 이따금 드러내기도 하고 있었다.
아마 '비는 안오실 거 같다'고 동기들은 저마다 한마디 씩 이구동성이다.
일원역에서 불국사 사찰까지는 걸어 20분 정도 걸린다.여기서부터 산행이 시작되니 일원동 여러 아파트 단지를 끼고 도로를 건너야 한다.
일원역 구내 쉼터에서 늦겠다는 동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바깥 날씨가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 먼저 와 밖에서 기다리는 동기들이 있지나 않을까 확인 후 돌아 와 찍은 사진이다.다행히 비는 오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는 동기도 없었다.(10시12분)
아파트 단지를 지나 차가 다니지 않은 지름길을 따라 불국사를 향해 걷고 있는 모습이다.이른 새벽 내린 비로 초목이 물에 젖어 싱그럽고 동기들 얼굴에는 벅찬 기운이 배어나오고 있는 듯 보인다.
불국사 절에 닿았다.들머리에 사찰의 유래를 적어 기록해 놓은 홍보 간판이다.대모산大母山은 293m로 모양이 늙은 할미 같이 생겼다 해 할미산으로 불러오다가 남쪽 헌인릉에 조선조 3대 태종이 헌릉에 묻힌 후 그 아들 세종이 "저 산이 무슨 산인고?" "예 저 산이 할미산이라 하옵니다."하니 세종이 사람은 죽어서 다 땅 속에 묻혀 땅으로 돌아가는데,땅으로 돌아감은 바로 할머니 품,어머니 품에 안기는 거나 같고 할머니 품도 따스하기는 하지만 어머니 품이 더 친밀하고 가까운 정감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에 생각이 닿아 "어이 그럼 할미산 보다는 어머니산 아니 '위대한 어머니산'그러니까 대모산大母山이라 하지"해서 대모산으로 고쳐불러오고 있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다 한다.한편 대모산과 구룡산이 높이와 크기가 비슷해 멀리서 보면 여인의 젖가슴을 닮았다 해서 대모산이라는 얘기도 달리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한다.
한편 대모산 남쪽 현 국정원 옆에는 헌릉獻陵과 인릉仁陵이 있는데,두 능을 합쳐 헌인릉獻仁陵이라 칭해오고 있다.헌릉은 조선조 3대 태종과 왕비 원경왕후가 묻혀있는 능이고,인릉은 조선조 23대 순조와 왕비 순원왕후가 합장되어 있는 능이다.서울의 남쪽 근교에 있는 곳이어서 문화유산 답사 차원에서라도 언제 한 번 우리 모임에서 산책 삼아 다녀왔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한편 대모산 불국사 유래에 대해:고려 말 공민왕 2년(1353년) 진정국사가 창건한 절로서 애초 약사절(약사사) 불러왔다고 한다.
농부가 밭을 갈다 땅 속에서 돌부처가 나와 마을 뒷산에 약사부처님으로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약사란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부처로 손에 약함인 지물을 들고 있는 게 특징이다.그 후 조선조 26대 고종이 대모산 남쪽 헌인릉에 물이 나온다는 말이 있어 약사사 주지에게 방비책을 문의하니 대모산 동쪽 수맥을 차단하면 된다고 해 그렇게 하고나니 신기하게도 물이 나오지 않게 되어,이를 고맙게 여긴 나머지 고종이 "불국정토"를 이루라는 뜻에서 불국사라 이름을 지어주었다 한다.
애초 1990년대 초기만하더라도 일원동 일대가 개발되기 전 불국사 진입로는 비라도 내린 날에는 비포장길 진흙탕이어서 신발이 엉망이 되어버린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지금 왕사로 다져진 이 길을 걸으며 많이도 달라졌다는 생각으로 감회가 깊을 뿐이다.
또한 이 불국사 지점은 지난해 5월 16일 토요산행 시 수서역에서 이곳까지 산행한 후 일원동 대청역 부근 대진공원에서 열린 재경총문회 개최 춘계체육대회에 참여해 여흥을 즐긴 바도 있다.
불국사를 지나 서울둘레길을 따라 구룡산 쪽을 향하고 있는 동기들 모습,나무토막 계단길을 올라갔다 다시 내려가는 전형적인 산행이 이어지고 있는 생생한 모습을 담아 실었다.이른 새벽 내린 비가 오히려 산행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이런 나무계단길은 나무가 물기를 흠뻑 머금고있어 등산화가 미끄러질 위험도 다분히 있기도 하다.
서울둘레길 구룡산 구간에 들어서서 얼마를 왔을까.시비한 지 20여년이 지난 표지석이 보인다.
<장석호,장명수,박정환 "三鳥人長悼慰靈碑" 젊음의 꿈과 보람을 그리며 창공에 나래를 펼치다가 가버린 넋을 우리는 긴 슬픔으로써 이 비를 세워 위령하노라 1993.6.6 나래회원 일동>
지난 90년대 초까지만해도 이웃 대모산과 구룡산 정상 헬기장에서는 행글라이더hang-glider들이 공중에서 주위를 돌며 젊음과 패기를 활짝 펼치는 비행연습장이었다.그런 모습이 이따금 먼 곳에서도 눈에 띄어 부러워하기도 했다.그러다 주위 환경이 바뀌어-일원동 개발,대모산 남쪽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신축 이전-행글라이딩 모습은 어느새 사라져 볼 수 없게 되었는데,언젠가 서울둘레길이 개설되고 구룡산 구간을 지내다 보니 위 위령비가 눈이 띄지 않은가!
오가며 놓칠 수도 있는 검은 색 위령비를 보며 연령 21~22세 한창 젊은 나이에 비명에 간 젊은이의 위령은 물론 세월의 무상無常함을 새삼스레 느끼어 본다.
구룡산 자락 개암약수터다.오늘 산행의 중간 지점 쯤 되기도 하고.....
여기서 우리 일행은 한참을 쉬었다.아니 "쉬었다"는 표현보다 "놀았다"는 표현을 써 먹어야 더 어울릴랑가!(12시 15분)
'바리바리' 싸온 배낭 속의 간식이 풀려나온 순간이다.과자,과일,음료수,막걸리,커피 등등 음식 백화점을 방불케하는 각종 간식이 간이식탁에 널려지고,동기들의 허드렛소리는 구룡산 자락에 널리 퍼진다.그간의 못다한 얘기며,오늘 아침 비가 내려 나올까말까 했다는 얘기,이런 날 집에서 딩굴었으면 얼매나 억울해 했을까,'총각'처지인 심인 동기에 대한 혼례 찬반 양론,우리 나이가 얼맨가(?) 오늘 점심에 삼만원 짜리 이상 비싼 음식을 먹으면 어떨까,우리 살면 얼매나 산다고 좋은 것도 좀 먹고 보세 등등 여성들만 수다를 떤 줄 알았던 내 상식과 지론?은 바뀌어야할 처지가 된 것 같았다.그러다가,그러다가......들리는 말씀,심인 동기가 "오늘 점심 내가 살께"한다.한턱 쓰는 건 좋은데 우리 열두회사랑등산회의 '불문헌법'에 위반이 되는 것인디요......
오늘 산행 코스는 큰 어려움은 없더라도 오르내리고 하는 곳이 더러 있고,나무-데크로된 계단이 여러 곳 있어 힘겨워할 수도 있는 길이다.다시 얼마를 걷다 맑게 개인 하늘의 햇볕을 가려주는 나무그늘 아래 서서 쉬며 뒤따라 오고있을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자!! 이 쯤해서 구룡산을 지나고 있으니 구룡산九龍山 유래를 알아보려 한다.구룡산은 해발 306m로 북쪽의 절반을 강남구와 서초구가 각기 관리하고 있는 산이다.물론 남쪽은 서초구 내곡동으로 서초구에서 일괄 관리하고 있다.특히 강남구의 관내에는 산山라고는 대모산과 구룡산 밖에 없어 시민의 산책로로서 두 산을 보물처럼 관리하고 있는 듯도 보인다.
이러한 구룡산이 어떻게 "구룡산"으로 이름 지어졌는가.
구룡산은 옛날 용龍 열 마리가 승천하는데 임신한 여인이 그 모습을 보고 놀라 소리를 질러 기겁을 하니 그 중 한마리가 승천하지 못하고 떨어져 죽어 양재천良才川되었다는 얘기가 전설로 내려와 산 이름으로 불려져 오고 있다 하며,구룡산에는 실제 아홉 개의 계곡이 있다고도 한다.
한편 세종대왕 능이 경기도 여주로 이장되기 이전에는 이 구룡산 자락 내곡동 현 국정원 터에 영릉英陵으로 관리되다가 예종1년(1469년)에 천장遷葬되었다고 한다.
구룡산은 주봉을 국수봉이라 하는데 조선조 이전부터 국수봉이라는 봉화대가 설치되어 봉수꾼들이 기거했다고도 한다.이런 내력으로 구룡산의 제1 주봉을 300m가 조금 넘은 국수봉이라 하고있다 한다.가까이 자주 오가는 서울 근교 산에도 알아보면 알아볼 수록 재미있는 유래와 생생한 역사歷史가 살아 숨쉬고 있음을 볼 때,지난 젊은 시절 딴데 신경쓰며 허트로 살아온 게 후회막급後悔莫及일 뿐이다.
이곳은 구룡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서울둘레길로 들어서는 갈림길 쉬는 곳이다.염곡사거리에서 이곳까지 20~30분 정도 소요되는 곳이기도 하다.
맨 위 사진은 오늘 산행에 참여하신 동기들(왼쪽부터 박상기,정병대 동기)부인이시다.정병대 현 등산대장은 개별 선약이 있어 나오지 못해 남편 대신 나오신 셈이다.그 아래 심인 동기와 오랜만에 시간을 내 참여한 이윤태 동기와의 '해후특별기념'사진이다.오늘 갈림길 쉼터에서 편하고 자연스러운 단체사진을 찍어 올렸다.다들 표정이 흐믓해 사진을 찍은 나도 기분이 좋았다.
점심밥 집이다.전에 몇 번 왔던 집인데 간판이 바뀌고 주인도 다른 이로 보였다.(오후 1시 50분)
메뉴는 생오리구이로 정하고 우선 밑반찬에 마른 목을 축이느라 막걸리를 마시며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다.오늘이 연휴가 끝난 토요일로 점심 때를 지난 시각이라 홀은 넓어 오직 우리 일행 목소리 뿐인듯 싶었다.아까 산행 중 쉼터에서 약속대로 심인 동기가 점심보시點心布施를 했다.우리 등산모임 기금도 아직 넉넉한 편이기는 하지만 이런 경우 동기들의 충정과 성의를 선의로 받아드려 우리 모임의 '불문헌법不文憲法' 규정을 본의 아니게 가끔 위반하고 있다.기금에 쌓인 자금이 누구 것이겠는가.우리 열두회사랑등산회 회원 제위의 공동자산이요,공동기금 아니겠는가.
다 함께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맛있게 잘 먹었네." 라는 인사말을 전했다.
" 심 박사!,다시 한 번 더 고맙네"집행부를 대리해 인사했습니다.
열두회사랑등산회원 여러분,오늘도 무지무지 즐겁고 고마운 산행이었습니다.악천후가 예상되는 기상예보에도 아랑곳 않고 참여하시어 유종의 미를 거두워 주신 회원님들께 특별한 인사를 드립니다.내내 건강하시고 다음 산행을 기대해 봅니다.안녕!!!
첫댓글 오늘산행계획이있다하니 정신나갔구만 비가많이온다는데 하며걱정을해준벗들의걱정을뒤로하고 뻐스로 녹번역3호선지하철로
1시간일언역에내리니 비도그치고날씨가밝아진다 너무도밁은공기에시원하니 가을이라좋다3시간여산행끝에생오리야채볶음
별미네 늦게온죄로 점심사야겠다한말이 적중 그래점심사야지흔쾌히대답하더니잘대접받고보니감사하고총무님의구구절절해설고맙네 건강한모습으로다음을약속하며
늘상!! 하는애기요, 학교앞에 사는놈이 지각을 한다고 카폐지기가 댓글을 이제사 쬐송쬐송 많이쬐송헙니다.
산악대장 정병대씨가 등산참여를 못 한다기에 울 마님(김남순)에게 산에 갈란가?" 했더니 여자 혼자는 싫어,그러면 춘선씨 부르소
아니나 다를가 아침일찍 전화 벨소리난다,비가와서 안가겠다는 전활거다 했는데 다행히도 타협이 잘되어 겠다고 하는 눈치다.
사실은 집에서 나올때쯤 하늘이 걷혀 가는 젼형적인 가을 비엿나 봅니다.촉촉한 해갈비가 내려줘서 산행하는데는 먼지도 안 나고 습도 도 적당히
하늘은 구름한점 없이 청명하고 산속 공기 맑아서 쉄쉬기가 부드러웠죠.
天高馬肥라고 심박사 덕분에 넘 잘먹어 나도 살 찌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