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 일요일 낮 바람, 저녁 비. 밤 경복궁 구경을 하고자 하였으나
새벽부터 시원한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많이 흔들렸다. 오후 4시 넘어 나가서 저녁을 사서 먹고 경복궁의 야경을 구경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나간 김에 컴퓨터 프린트 잉크를 바꾸고자 하였으나, 들고 간 튜너는 족보에도 없는 것이고, 프린트 기계의 번호를 알아야 바꿀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당장 생각나지 않아서 허탕을 쳤다. 앞서 경산 아파트 근처에 있는 가게에서 샀던 것인데, 값이 싼 것이 비지떡이었다. 처음부터도 잉크 빛깔이 침침하더니 나중에 가서는 시커먼 비닐조각 같은 게 끼어 프린트 기계조차 돌아가지 않는다.
일요일이라 광화문 일대에서 그런 것을 전문으로 파는 가게는 이미 문을 닫았고, 문구류까지 파는 대형 서점을 세 군데나 갔으나 대답은 모두 똑 같았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궁전 구경은 포기하고 “청진동 해장국 (원조)”라는 집에 가서 쇠고기 내장과 선지가 든 푸짐한 국만 저녁으로 사서 먹고 돌아 왔다.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하여 보니 프린트 제조 회사를 말하고 그 회사에서 나온 기계의 종류를 좀 검색하여 보라고 하였으면, 사용하던 번호가 머리에 떠올랐을 것을… 말이 잘 안 들리어 집 사람을 보고서 “뭐라고 하는지?” 잘 듣고 옮기라고 하였더니, 그 사람은 컴맹인지라 처음에는 분명하게 뜻을 파악하여 전달하지 못 하는 것 같았다. 이러니 답답한 생각이 든다. 공연히 또 한 번 더 나가야 되니…
오늘도 주자의 편지를 계속하여 좀 훑어보았다. 받은 벼슬을 사직을 하겠다는 것과 금나라에 대한 화해를 반대하는 것이 주 내용을 이룬다. 그러나 당시의 관직명, 관직제도 같은 것이 내가 지금까지 주로 보아온 당나라나 그 이전 시대의 것과는 많이 달라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점도 많다. 예를 들면 현직을 사양할 때 “사관祀官”으로 바꾸어 주면 좋겠다는 말이 자주 나오고, 실제로 그런 벼슬을 하기도 하였다는데[남악 형산의 사관으로 3년 근무], 왜 송나라에서는 이런 벼슬자리가 많았는지? 《통감》을 쓴 사마광도 그 책을 쓰는 동안 중악中嶽인 숭산嵩山의 고위직 사관祀官으로 19년간이나 근무하였다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