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힘이다! 부끄러움은 선물이다!
자신만만한 알파걸, 알파맘의 거친 성공담이 넘쳐 흐르는 한국의 여성 리더십 담론에 새로운 전망이 제시되고 있다. 22~23일 열린 세계여성포럼에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잘 나가는 여성'들이 털어놓은 두려움과 부끄러움은 세상을 향해 나가고 싶은 많은 여성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만했다.
"나는 책을 쓸 때 출판되지 못할까봐 부끄러웠다. 하지만 내가 부끄러워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것을 모두 드러냈을 때, 12년 만에 첫 책을 낼 수 있었다."
데뷔작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으로 주목 받고 있는 재미작가 이민진. 그는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부끄러워했던 것이 바로 우리 여성들"이라며 부끄러움을 두려워 말자고 눈물을 글썽였다.
CNN 최초의 한국인 앵커였고 오프라 윈프리쇼를 거쳐 지금은 아시아 여성의 관심사에 초점 맞춘 '메이리 쇼'를 진행하고 있는 방송인 메이 리. 그도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말했다. "두려움 자체가 나에게는 동기부여였다. 실패하더라도 거기서 얻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노 드라마 '그리하여, 화살은 날아갔다'로 뉴욕의 실험 무대에서 주목 받고 있는 채에스터씨는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일은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왜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스스로 불러오는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 당연한 일이다"고 했다.
숱한 자기 계발서와 리더십 서적은 성공이 불굴의 '강인함'과 '용기'의 산물이라고 상찬해왔다. 두려움과 부끄러움은 절대 드러내서는 안될 내면의 그늘이자 약점이다. 바로 그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두려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말라는 말에서 여성 리더십의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이번 세계여성포럼에서 두려움과 부끄러움의 경험을 솔직하게 드러낸 것은 공교롭게도 모두 한국 출신으로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이었다. 여성이자 아시아인으로 이중 삼중의 소수 범주에 속했을 이들이 얼마나 많은 두려움과 부끄러움의 장벽을 넘어왔을까. 자기 목소리, 여성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10년, 20년 넘게 스스로와 맞서온 이들의 '현장형 여성주의'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인정하고 넘어서는 것이 바로 용기와 강인함이라고 증언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있어서 성공은 '남성 넘어서기'가 아니다.
"남성을 따라 하는 것으로써 성공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성공이 아니다. 여성성을 유지하고, 그 능력을 바탕으로 해야 성공이다."(메이 리)
"여자가, 잘난 척이야!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같은 여자들이다. 여자들이 잘난 척하도록 서로 부추겨주자. 남성에 반대하거나 가부장주의를 욕하지 말고, 다른 여성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민진)
그러고 보면, 일찌감치 부끄러움의 힘에 주목했던 것도 여성 작가 박완서였다. 단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 그는 부끄러움을 '마비가 풀릴 때 찾아오는 고통 같은 것'이라며 "나는 내 부끄러움의 통증을 감수했고, 자랑을 느꼈다"고 했다. 부끄러움은 고통이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넘어설 때 힘이 된다. 그것이 비단 여성에게뿐이랴. 부끄럽고 두려운 일이 끊이지 않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