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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3대 표제(롬1:14-17)
오늘은 마틴루터가 종교개혁한지 500주년을 기념하는 종교개혁주일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정오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 정문에 당시 카톨릭 교회의 타락상을 준엄하게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고, 그 종교개혁의 열매로 오늘의 기독교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전 세계 기독교회들은 10월 31일을 ‘종교개혁일’로 정하고,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개혁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루터 이전에도 카톨릭 교회의 타락상을 비판해 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개혁을 위한 여러가지 노력들도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개혁은 루터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그 이유를 여러 가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선 카톨릭 교회의 타락상이 도가 지나쳐서 더 이상 감내하기 힘든 상황까지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루터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도처에서 불일듯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카톨릭의 부패는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종교가 세상의 권력위에 있었습니다. 왕을 마음대로 바꿀수 있을 정도로 힘이 있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모든 부분에서 교회영향력은 세상의 힘을 능가했습니다. 일반시민들은 살기가 너무 어렸웠는데 교회는 점점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썼겠습니까? 향락과 사치와 방종에 돈을 물쓰듯이 썼습니다. 교회의 관심은 영혼을 구원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되고 어떻게 하면 성공하고 잘먹고 잘 사느냐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교회가 부패했겠습니까?
이 때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게된 직접적인 동기는 있었습니다. 저 유명한 면죄부사건입니다. 카톨릭교회의 교황 레오10세가 베드로대성당을 건축계획을 세우고 당시 엄청난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그 모금 방법으로 고안해낸 것이 바로 면죄부였습니다. 이 면죄부란? 죄지은 사람이 죄사함을 받으려면 돈을 내고 면죄부를 사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이 면죄부만 사면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들도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믿고 현혹되어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이 면죄부를 사게 되었고 죽은 조상의 구원을 위하여 거액을 내고 종이 쪽지에 불과한 면죄부를 사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악행을 목도한 루터는 당시 천주교의 잘못된 관행 95가지를 적어서 저 독일의 비텐베르크의 성당 벽에 붙이고 부패하고 타락한 교회의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 때 루터가 내세운 "종교개혁의 3대 표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확실한 구원관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입니다. 당시에는 성경을 아무나 읽을 수 없었습니다. 교황이 허락한 성직자들 외에는 성경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백성들은 성경을 가질 수도 없었고 더더구나 읽을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라틴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성경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종교개혁가들이 성경을 백성들의 손에 들려주고 싶어했습니다. 영국의 존 위클립프는 1382년에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였습니다.
마틴루터도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전국민에게 성경을 보급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이 일로 교황청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존위클리프나 마틴루터는 이단으로 정죄하고 사제들을 보내서 성경책을 소지한 사람은 누구든 다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을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넣기로 하고 암송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66권의 성경을 암송해서 전국에 다니며 성경을 입으로 전했습니다. 그들을 일명 ‘롤라드’라고 불렀습니다.
롤라드는 바로 성경책이 된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성경책이 된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영혼의 양식으로 먹어서 그 말씀이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가 되어서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말하는 성경책이 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떻습니까? 성경책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연구해서 말씀이 생각이 되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야 합니다. 종교개혁 이전에 로마카톨릭은 말씀을 감추어 놓았습니다.
말씀을 읽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들의 마음대로 가르칠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신부들이 전하는 것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해석할 권리는 교회에만 주어져 있었고, 최종적 성경해석 권한은 교황에게 있었습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성경 무오설을 믿지만, 카톨릭에서는 교황 무오설을 믿습니다. 교황이 신앙이나 도덕에 대하여 무슨 결정을 할 때에는 실수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신조입니다.
결국은 교황의 생각이 그들의 신앙과 행위의 표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루터도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고, 독일 사람들의 손에 성경책을 들려 주어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읽게 했습니다. 잠자는 교회를 깨웠습니다. 교회가 비로서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게 된 것입니다. 카톨릭의 정체가 낫낫히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신자의 신앙과 행실의 표준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우리 신앙의 표준, 우리 삶의 기초를 어디에 둡니까? 오직 성경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을 덮어두고 자신이 믿음의 원리와 진리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니 자신의 유익을 따라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행동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가 묵상하는 사무엘상에 나오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왕되심을 외면하고 세상에 힘있는 왕을 구하였습니다. 세상의 방법대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지금까지 저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모든 대적으로부터 지켜주시고 승리케 해주신 하나님이 저들과 함께 계신데도 저들은 하나님을 거절하고 세상의 왕을 구했습니다. 사무엘이 아무리 이야기 해도 안됩니다.
결국 왕을 세웁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삼상12:25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이것이 사무엘의 마지막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속에 말씀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까? 무엇을 결정하고 선택할 때 기준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생각입니까? 세상의 가치관입니까? 무엇입니까?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택의 기준이 아니하면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냥 겉만 그리스도인의 옷을 입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과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이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연합회 부흥강사였던 장종택목사님의 이야기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가 4대째 예수를 믿고 목사가 되었어도 그의 딸 온유가 병들어서 중환자실에서 죽어갈 때 이 절박한 현실속에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 원망했다고, 아니 하나님이 어디계시느냐고 막 원망하고 탄식할 때 하나님께서 “네가 평소에 그렇게 믿습니다라고 외쳤던 그 말이 무슨 의미이냐”고 되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때 깨달은 것은 믿음은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암송하였지만 그 성경의 내용은 자신의 삶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는 것을 절박한 환경속에서 비로서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참 모습이 보였습니다. 빗좋은 개살구처럼 겉은 그럴사한데 실제 믿음의 삶, 믿음의 능력은 하나도 없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그렇게 통회자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교회에서 배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며, 하나님은 언제나 은혜가 풍성하시고 좋으신 분이라고 배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하나님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가 배운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때까지 자신이 배운 하나님을 생각한 것입니다.
암기한 하나님. 그래서 믿음은 암기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삶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았습니다. 그래서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그때 음성이 하나 들렸습니다. “너 이래도 나를 신뢰하느냐?” 그 소리가 그의 가슴을 쾅 쳤습니다. 우리 집안은 4대째 예수를 믿은 집안입니다. 늘 들었던 말이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합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음성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너 이래도 나를 신뢰하느냐”라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죽어가는 딸 온유의 처참한 모습을 보면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너무 쉽게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이 이렇게 두렵고 무거운 단어인데 함부로 내뱉은 순간 부끄러워 답하기를 주저했다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들려온 음성은 “네가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하나님께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찬송하며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 ‘아멘’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환경이 어려우면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예배당에서 하나님께 고백한 말을 공수표를 던지듯이 던지고 마음대로 살면서도 입으로는 주예수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절대가치로 두고 살겠다고 고백하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절대가치 돈과 성공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가 깨달은 것은 성경을 아무리 외운다고 신앙이 좋은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죽음조차 맡기는 믿음이 진짜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런 믿음이 내속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믿을수 있습니까? 그 믿음도 내게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께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해야 깨달음이 오고 그 깨달음이 인격이 되고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자기들이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신념과 결심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앞에 다 도망가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앞에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십시오. 내 믿음은 이론이 아닌가? 현실속에서는 아무런 믿음도 없이 살면서도 이렇게 오늘처럼 주일예배를 드리면 믿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성경을 덮어놓고 믿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펴서 알아도 이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데 그저 성경을 읽지도 않고 성경을 통해 주님을 만나려고 하지도 않고, 그냥 자기 생각과 경험과 느낌대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이 저와 여러분을 볼 때 어떻게 보겠습니까? 종교개혁사를 다시 생각해 보십시다.
당시 교황청에서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로마 가톨릭 사제이자 비텐베르크 대학교 신학교수였던 마르틴 루터가 교황청이 면죄부로 구원을 거래하는 로마교회의 타락에 분노하여, 95개 조항이 담긴 반박문을 작성하여 주교에게 보내게 되었고, 대학교회의 정문에 붙임으로서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문서가 공개된 지 2주 만에 전 독일에 영성회복을 위한 신앙의 불길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개혁의 불길이 순식간에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교황청은 이러한 개혁이 퍼져나가자 제일 먼저 타격을 받게 된 것이 면죄부 사업이었습니다. 더 이상 면죄부를 팔 수 없었습니다. 교황청이 처음으로 면죄부를 판 것은 1096년 십자군 전쟁을 일으킬 때였습니다. 사람들을 전쟁에 나가게 하기 위해서 면죄부를 발행한 것입니다. 면죄부를 산 사람은 죽어도 지옥으로 가지 않고, 연옥에도 머물지 않으면서 곧장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믿고 면죄부를 사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교황청이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하게 됐는데,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했습니다. 이 성당은 한꺼번에 8천명이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최근까지 세계에서 제일 큰 성당이었습니다. 짓는 데만 120년(1506~1626년)이 걸렸고, 라파엘이나 미켈란젤로 같은 당대의 최고 건축가들이 설계하고 감독했습니다. 이 막대한 건축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교황청은 다시 면죄부를 판 것입니다. 그 면죄부를 더 많이 팔기 위해서 교황청은 전문 판매원 신부를 두고 그 일을 추진했습니다.
그런 사람 가운데 테첼이라는 신부가 있었는데, 그 신부가 면죄부를 팔기 위해 백성들에게 하는 설교를 루터가 듣습니다. "당신의 돈이 헌금통에 딸랑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순간, 영혼은 연옥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연옥은 성경에도 없는, 카톨릭 교회가 만들어 낸 천국과 지옥의 사이에 있는 중간 지대입니다. 아주 악한 죄인은 죽으면 지옥으로 가지만, 보통 죄인은 지옥으로 가지 않고, 연옥으로 보내져서 거기서 고행을 한 다음, 자격이 되면 천국으로 보내진다는 것입니다. 그 연옥생활은 몇 천 년이 될지 모르는데, 면죄부를 사는 순간 연옥에 있는 영혼은 그냥 천국으로 뛰어 오른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가톨릭 사제로서 교황청의 사업들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면죄부 파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루터는 이 면죄부 판매는 기독교 복음의 변질이며, 교황청의 기만이라고 공격하며 95개조 조항에 이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이 95개조 조항을 통해서 루터가 주장하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는 바로 구원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구원은 면죄부를 산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오직 은혜로(Sola Gratia)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어떤 공로나, 돈이나 면죄부로 그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고, 구원을 얻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루터의 입장은 에베소서 2:8-9절에 확고한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엡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구원은 사람이 어떻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 관한 한 인간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행을 하고 죄를 안지으려고 몸부림쳐도 죄가운데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롬 3:20-22) 고백했던 것처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의를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요,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물을 복음전파로 전할 뿐입니다. 여러분,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구원이란 죄와 사망의 굴레로부터 구출함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자유를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려움과 질병가운데서 구출되어 살아났다면 이것이 구원입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본질적이고 큰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우리 인간은 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죄의 종으로 끌려 다니며 원치 않는 죄를 짓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죄의 노예였으며,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소유한 것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우리가 잘나고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지 다른 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어떤 행위로도 구원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일방적인 선물로 주시는, 그 십자가의 은혜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직 바랄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잠시도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은혜(Grace)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리스’라고 합니다. 그 뜻은 받는 자의 가치나 공적에 관계없이, 거저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은 대개 큰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가치가 있는 것들은 돈주고 살 수 없습니다. 너무나 귀하기 때문에 그냥 공짜로 거저 얻는 것입니다.
보세요! 생명과 직결된 공기는 거저 얻습니다. 공기가 없다면 사람은 5분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처럼 소중한 공기는 값으로 계산을 할 수 없는데, 너무나 귀하니까 하나님이 공짜로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물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것도 공짜입니다. 햇빛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것도 공짜입니다. 생명과 직결된 정말 소중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그냥 공짜로 주시는 것입니다. 자녀들, 부모님, 형제자매 너무 소중하여 하나님이 그냥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공짜로 얻는 가장 큰 은혜는 바로 구원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오직 믿음으로 (Sola Fide)입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마틴 루터는 당시 수도원에서 도를 닦던 수도사였습니다. 당시 교회의 교훈대로 아무리 선행을 힘써 보아도 마음 깊은 곳의 참된 평화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 후 그는 대학의 교수 자격을 얻은 후 성경을 강의하게 되어, 로마서를 깊이 연구하던 중에, 롬1:17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하는 말씀을 통하여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비로소 확신과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속화된 인간에게 헛된 노력과 공로를 구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우리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아멘!! 우리가 많은 경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도 믿고 돈도 믿고, 하나님도 믿고 다른 사람들도 믿고, 우리는 항상 인생을 살면서 어쩌면 양다리를 걸치며 인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참된 믿음이란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또 그 무엇도 나의 신앙의 대상이 될 수가 없고, 오직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만이 내가 참으로 신뢰하고 의지할 분임을 확신하는 데 있습니다. 옛 사람들이 깨우쳐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한번 따라서 해보시겠습니다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지만 신뢰할 대상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사랑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신뢰할 대상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다 부족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정말 믿을 수 있는 신뢰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진리를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 우리가 붙들고 있는 거짓된 믿음의 근거를 흔들어 놓으실 때가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이 나를 배신합니다. 기대했던 돈과 주식이 나를 배신합니다. 믿었던 회사가 나를 배신합니다.
지금까지 나를 보호한다고 믿었던 그것들이 흔들리기 시작할 때가 있습니다. 오래전에 세계경제의 상징이었던 “세계 무역 센터”도 무너지고 말았습니까? 그렇게 안전을 믿었던 후쿠시마 원전도 깨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오늘 믿고 있었던, 우리를 보호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흔들리고 요동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여러 가지 고난과 어려움의 폭풍우를 경험하지만 오직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만 신뢰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세 가지 종교개혁의 핵심이 되는 원리를 들었습니다. 오직 성경으로 (Sola Scriptura), 오직 은혜로 (Sola Gratia), 오직 믿음으로 (Sola Fide)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종교개혁 주일을 맞아, 우리는 종교개혁 정신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고, 오직 은혜로 살아야하고, 오직 믿음으로 날마다 구원을 체험해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중세 교회가 세상의 권력을 소유할 때, 교회는 세상과 타협하고, 성직자들은 세속화되었으며, 성도들은 어두움 속에서 갈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도 역시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당시보다 더 심하게 세속화 되었고, 교회 지도자들은 세상적인 성공원리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성경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고, 말씀의 홍수 속에 살면서도, 영적인 어두움과 죄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성도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개혁해야 합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오늘 교회는 끊임없는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내 심령의 변화없이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새롭게 변화될 수 없습니다. 개혁하지 않는 개인이나 교회는 부패합니다. 개혁은 나의 마음의 변화에서 출발합니다. 네가 아니라 나입니다.
이 개혁은 내 힘으로 될 수 없습니다. 개혁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 내게 임할 때, 심령의 변화와 함께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어나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위해 일평생을 바치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세상은 비로소 참 구원이 가져오는 행복을 알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자기를 이겨서 하나님의 구원을 날마다 체험하고 증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