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7,10-14; 8,10ㄷ; 루카 1,26-38
+ 찬미 예수님
오늘 성모님 주위가 아름다운 꽃으로 꾸며졌습니다. 예쁘죠? 헌화회에서 어제 오후 내내 작업하셨는데요,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상임위원회와 봉사자 여러분들께서 여러분 앉아 계신 의자를 비롯해서 여러 시설들을 준비하느라 오늘 오후 내내 땡볕에서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또한 시설분과와 봉사자들이 성모님 주위의 장미를 정리해 주셨고요, 레지오 단원들과 제대회, 성가대, 복사들, 우리 청년과 중고등부 성가대 등 많은 단체들이 오늘 성모의 밤을 준비하느라 애써 주셨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많은 분께서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해주신 덕에 우리가 오늘 성모의 밤을 봉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수 있기까지 우리에게 예수님을 전해 주신 수 많은 분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큰 공헌과 희생을 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사도들과 함께 성령을 맞으시고 교회의 어머니가 되신 성모님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성모님께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한 뒤,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이 말씀이, 구세사에서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처음으로 드러나시는 장면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이때부터 일생 삼위일체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셨습니다.
성부와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내 뜻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자와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령과 함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내 힘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부 하느님께 우리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추구하는 것이 성부와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자께서는 일생을 하느님 아버지를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가셨고, 마침내 당신 형제들인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하느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산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도구가 아니시고 오히려 우리가 성령의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나의 힘을 내려놓고 성령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신 분이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은 “보십시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시며 성부 앞에서 당신의 뜻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아드님을 만나러 왔다가 “누가 내 어머니며 형제냐”라는 말씀을 듣고 발길을 돌리시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을 당신 품에 안으시면서 성모님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신 순간부터, 성령의 감도로 마니피캇을 부르시면서도, 사도들과 함께 성령강림을 맞으실 때도, 성모님은 당신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힘에 의지하여 사는 법을 보여 주셨습니다.
잠깐 제 얘기를 드려보겠습니다. 저는 유아세례를 받고 첫영성체도 했지만, 잦은 이사와 아버지의 반대로 주일학교에 제대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뜻한 바 있어 냉담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에 2년간의 냉담을 풀고 다시 성당에 돌아왔는데요, 처음 나간 날 고등부 학생회 회합 시간에 ‘레지오’라는 단어를 들었습니다.
저녁 미사가 끝나고 집 방향이 같은 여학생과 함께 길을 가던 중, 어색하고 서먹한 분위기를 깨 보려고 ‘레지오’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 친구가 한참 설명을 하는 사이에 마침내 집에 도착했습니다.
다음 주에 성당에 갔을 때, 그 친구가 소년 레지오 단장님께 말했습니다. “유정이가 레지오에 관심이 있나봐요.”
그 다음이 어떻게 되었을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단장님은 다음 주일 아침 7시까지 나오라고 하셨고, 안 나가면 욕먹을 것 같아 나갔더니 그다음 주도 나오라고 하길래 ‘몇 주만 다녀보고 말아야겠다’ 생각했는데, 몇 주가 지나자 선서를 시켰습니다.
그렇게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되고 나서 저는 순전히 보고를 많이 할 목적으로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한 시간이 넘게 걸리던 등하교 길에서, 헤드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도 묵주기도를 바치다 보니 일주일에 100단 정도를 드렸는데, 대부분 분심 중에, 다른 일을 하며 드리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잘못인지도 모른 채 말입니다.
그 무렵부터 사제 성소에 대한 꿈이 자라기는 하였지만,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신부가 되나’하고 생각을 접었고, 일단 대학교에 들어간 후 다시 고민해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신학교에서는 저녁 식사 후에 걸으면서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는데요, 어느 날 기도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럴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내가 어쩌다가 신학교에 와 있지?’ 때마침 성모상 옆을 지나고 있었는데 제 걸음이 멈추어졌습니다.
“저분이 빌어주셨구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제가 분심 중에, 생각 없이 바쳤던 수많은 기도를 성모님께서 남김없이 아버지께 전해 주셨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신학과 1학년 때부터 아버지가 세례받게 해 달라는 지향으로 묵주기도를 드렸습니다. 군대 갈 때까지 2년을 드렸는데, 아버지는 세례받으실 아무런 의향이 없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같은 지향으로 묵주기도를 드렸는데, 7년 만에 아버지께서 ‘예비자 교리를 받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세례를 받으신 후 주일만 겨우 지키셨는데, 어느 날 고모가 무척 편찮으시다는 전화를 받고 수심이 가득하시기에 제가 묵주기도를 권해 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 묵주기도를 시작하시고 54일이 되는 날, 고모한테 전화가 와서 ‘오빠 저 다 나았어요’ 하시더랍니다.
저는 지금 부흥회 간증을 하는 것이 아니고요, 성모님과 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어쩌면 고모가 나으신 것과 아버지의 기도는 우연의 일치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그것을 기도와 연관 지으셨다는 점이 제게는 기적이고 은총입니다. 또한, 제가 기도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세례받으신 게 아니라, 아버지가 세례받으실 때까지 제가 기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성모송의 기도는 현재와 미래를 위한 것이며, 성모님은 지금 당장뿐만이 아니라 먼 훗날이라도 우리를 위해 빌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아주 효과적인 예금인데요, 원금을 지금 받고, 적금도 죽을 때에 받는 일석이조의 기도입니다.
신학생 때 교수 신부님 한 분이 강론 중에 해 주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투병 중이시던 한 자매님의 병문안을 가신 신부님은, 자매님이 가장 좋아하시던 성가를 함께 부르며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가톨릭 성가 239장인 ‘거룩한 어머니’입니다.
“자애로운 마리아여, 천상 어머니
이 정성 다하여서 기도하옵니다
어둠 속의 등불 되어 나의 앞길을 살펴 주소서.
아~ 마리아여.
인자하신 마리아여, 이 세상 은총
이 마음 다하여서 기도하옵니다.
황야 위의 별빛 되어 나의 이 몸을 인도하소서.
아~ 마리아여.”
며칠 뒤에 신부님은, 자매님이 선종하셨다는 소식을 들으셨답니다. 자매님은 당신의 마지막 순간에, 곁에 있던 가족들에게 239장을 불러달라고 청하였고, 그 성가를 들으며 하느님 품으로 떠나셨다 합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우리는 묵주기도를 열심히 해 보았지만, 하느님께서 잘 들어주시지 않는다며 낙담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드린 기도의 유효기간이 다 끝난 것일까요. 성모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시고, 우리 죽을 때에도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십니다.
묵주기도를 바친 모든 분들의 임종 때에, 그리고 우리가 지향으로 기억하는 모든 분들의 임종 때에 성모님은 기도해 주십니다. 이제와 우리 죽을 때 두 번만이 아니라, 이제부터 우리 죽을 때까지 계속 우리를 위해 빌어주십니다.
우리 또한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내 뜻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힘에 의지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구하고, 이웃을 위해서, 성령께 의지하여 살아가도록 성모님께서는 빌어주고 계십니다.
“자비로운 마리아여 우리 어머니
이 믿음 다하여서 기도하옵니다.
깊은 밤의 빛이 되어 나의 이 맘을 밝혀 주소서.
아~ 마리아여.”
https://youtu.be/ukjdCWj7ysw?si=zj7i0tNDLKFneYbS
가톨릭성가 239장 "거룩한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