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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나라 사랑 / 이정익 목사
8. 15 광복절을 맞이했습니다. 올해로 벌써 59돌을 맞이했습니다. 마침 금년 8,15는 주일날 맞게 되었습니다. 이 기회에 나라사랑하는 마음들이 고취되었으면 합니다. 60여 년 전 나라를 잃고 방황 댈 때 우리선조들은 참 고민이 많고 갈등과 속상함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때는 한편 마음이 막연했을 것입니다. 상대 일본은 너무 강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 마음은 슬펐을 것입니다. 어쩌다 나라를 빼앗기고 우리가 이렇게 사는가 하고 후세에 면목이 없어 난감한 마음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해야 합니다. 나라 없는 백성은 이렇게 할말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시대를 책임 있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가 뭐래도 그 시대를 책임감 있게 살고 그 시대를 염려하며 살아가는 계층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서 나라를 사랑하는 성숙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형편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런 때 우리 그리스도인은 중심을 잃지 말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 시대를 중심 있게 살아갔던 느헤미야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느헤미야는 아주 혼돈스러운 시대를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눈물을 흘렸던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는 BC444년경 예수탄생 400여 년 전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때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합니다. 인재들은 모두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때 느헤미야도 잡혀갔습니다. 바벨론이 다시 바사에게 망합니다. 예루살렘은 바사제국이 지배하던 127도 중 한도로 편입되어 지배를 당합니다. 주변의 이방인들로 하여금 괴롭힘과 능욕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찬란했던 예루살렘 도성은 폐허가 되고 성전은 훼파되고 하나님 백성은 초라하게 낮아진 채 환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때 성경을 보면 느헤미야가 등장합니다.
백성의 한사람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민족의 앞날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결국 이 느헤미야를 통해서 무너진 고국의 성벽을 재건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여기 느헤미야에게서 몇 가지 정신과 책임 있는 신앙자세를 보게 됩니다. 그 느헤미야의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나타났으면 합니다.
“성실성”
느헤미야는 바사왕국에서 포로로 생활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성실했습니다. 그래서 포로 신분이었는데도 아닥사스다 왕의 음식 수종자로 간택을 받습니다. 그가 그런 중책을 맡은 것은 그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가 하는 점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태도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나 인정받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가끔 교회가 불신 당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참 마음이 슬퍼집니다. 그리고 신앙인들이 사람들 입에 매도되고 비난받을 때 마다 마음이 슬퍼집니다. 세상에서 칭찬받고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칭찬받고 산다면 더할 나위없는 일이지만 보통은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비난을 받고 살아갑니다.
사람이 어떻게 살면 비난을 받고 삽니까.
요셉, 다니엘, 모르드개, 아브라함, 이삭이 모두 남의 나라에서 살았으면서도 그 나라 왕 곁에 앉아서 일하고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느헤미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예가 왕의 음식을 책임 맡은 자로 선택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 인정받았다는 말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입으로만 나라사랑한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책임 있는 삶이 뒷받침 된 채 그 시대를 살아야 인정받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시대를 성실한 사람으로 살아갔던 대표자였습니다.
“고국 염려”
그렇게 남의 나라에서 포로로 살아가는 사람이 자기 나라와 민족을 한시인들 잊고 살았겠습니까. 어느 날 예루살렘에 살던 친동생 하나니가 찾아왔습니다. 동생이 온 이유는 지금 예루살렘 형편이 급박하게 돌아가니까 페르시아 왕궁에서 고위직에 있는 형에게 알려 무슨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물었습니다.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2)”, 대답하기를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란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하는지라”(3).
지금 예루살렘 살고 있는 남은 자들은 능욕을 당하고 성전은 불타서 훼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느헤미야는 순간 슬퍼합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였다”(4)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고국 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금식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을 때 “아 나는 그때 포로로 잡혀온 것이 다행이었구나.”하고 생각한 것이 아니고 슬퍼하며 “내 동포는 그동안 고난을 당하고 살았는데 나는 그동안 너무 편안하게 살았구나.”하는 자책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눈물을 흘리며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나라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가슴으로 하는 것입니다.
남북대치가 한창이던 70년대 초 미국에 이민 간 어느 장로가 주일날 대표기도하면서 그렇게 기도했다고 니다.
“전쟁의 위험과 지옥 같은 서울을 떠나 천국 같은 미국으로 이민 오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장로 입에서 이런 기도가 나왔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모두 이 차원을 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비판받고 사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내 백성이 지금 능욕을 당하고 내 나라, 내 동포가 지금 능욕당하고 성전이 불타고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는 소식을 듣자 슬퍼하며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나라사랑하는 마음이고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어야 하고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공동체의식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정신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펼치는 생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나라가 어렵고 위기에 처하고 힘들 때는 염려하여야 하고 눈물 흘려 기도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느헤미야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을 선조로 두고 나라 지도자로 두면 그 정신이 대대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애국자를 두고 나라사랑하는 지도자를 둔 나라의 백성들은 그 정신이 후손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이어집니다.
여러분, 중동전이 벌어졌을 때 있었다는 이야기 아시지 않습니까.
중동전이 발발했을 때 미국에 와 공부하던 이스라엘학생과 아랍학생이 함께 공부했는데 한 교수가 두 학생을 불러 “오늘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는데 아느냐“ 하니 모두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이 교수님이 “너희들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으니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격려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두 학생이 모두 결석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숙사에 문의해 보니 “이스라엘 학생은 어제 귀국하여야 한다고 귀국 수속을 했고 아랍학생은 고국에서 징집영장이 올까 걱정하면서 기숙사를 옮겨야 한다고 나갔다“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느헤미야 같은 나라사랑하는 마음들이 성경을 통해서 후손들에게 그대로 전해진 영향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역사를 배우고 영향을 받은 그 후손들이 이런 정신을 이어갔을는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나라 사랑하는 사람이 적습니다.
모두 자기중심, 자기 이익 챙기는데 분주합니다.
엊그제 있었던 모 정유회사 노동자파업 사태를 보면서 참 철이 없어도 분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정유회사 노동자들은 연봉 7천만 원을 받고 입원하면 특급병실을 사용하고 풀장 딸린 사원 아파트에 사는 노동자들입니다.
세상 천지에 이런 노동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 회사 노동자들은 미국 본사 칼텍스 근로자들 임금의 꼭 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우가 부족하다고 자기 회사 회장 목을 치는 동영상을 올려놓고 파업을 하고 있으니 이게 나라를 사랑하고 자기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입니까?.
그뿐 아니고 신입사원을 뽑지 못하게 하고 자기들 월급만 올려달라고 하니 이게 극단의 이기주의 아니고 뭡니까?
또 한국 바스프 여수공장에서는 10% 임금인상과 매출액의 5%를 성과급으로 달라고 파업을 했습니다. 그러면 연봉이 1억 2천만 원입니다. 지금 이 땅의 노동자들이 세상 물정 모르고 이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지금 대다수 근로자들은 회사가 문을 닫게 되지 않을까 걱정되어 피서 철 휴가도 제대로 가지 못하는 실정인 것을 그들이 알기나 하는지 모릅니다.
이 나라는 위아래로 생각하는 것들이 모두 이 정도 수준입니다.
참 우리나라 가 지금 위태위태합니다. 참 걱정됩니다. 걱정이 경제만 걱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상도 이념도 걱정입니다.
빨치산 출신 간첩 비전향수 3명이 모진 고문을 끝까지 극복하면서도 전향하지 않고 사상을 고집했다고 해서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민주화 인사라고 부르자고 합니다.
그리고 의문사위에서 간첩혐의로 복역한 사람이 군 장성들을 조사하게 했습니다. 해군이 경계선을 넘어오는 적에게 경고했다고 옷을 벗기고 윽박질렀습니다. 문제가 된 북방한계선이 무너지면 곧장 영종도 국제공항이 적의 손에 넘어갑니다. 또 백령도로 가는 뱃길도 적의 수중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북방한계선은 사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북한의 군함이 그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보면 분명 북한 군함인데 그 군함도 2년 전 서해교전 때 우리 고속정에 포격을 가했던 그 군함이 지금 중국어선이 내려가고 있다고 기만교신을 하며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청와대에 보고하기를 기만교신을 하고 있다는 말은 누락하고 경고포격으로 물리쳤다고 보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왜 북한 군함으로부터 교신이 있었는데 보고 안하고 포격을 가했느냐, 왜 남북화해에 찬물을 끼얹느냐고 자기 나라 해군을 윽박질렀습니다. 기만교신을 왜 누락했는가 하면 만일의 경우에는 포격을 해야 하는데 기만교신이 왔다고 보고하면 당장 포격을 중단하라고 할 텐데 그러면 2년 전 서해교전 때와 마찬가지로 앉아서 당할 것이 분명해서 보고를 누락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해군이 지금 한눈으로는 북한 눈치보고 또 한눈으로는 청와대 눈치 보아야 하는 처량한 해군으로 변했습니다. 나라를 이렇게 운영해도 되는 것입니까.
지금 북한에서는 남한이 무장해제 하고 있는 사이에도 남한에 대한 공작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에서는 간부급들이 동요조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정일이 은밀하게 당 중앙위에 내려 보낸 교시내용을 중국에 팔아먹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입수한 문건에 의하면 이런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2003. 2. 21일자 김정일이 당 중앙위에 내린 교시내용입니다.
“남조선으로 도피해간 탈북자들이 잘 살고 있다는 말은 적들의 심리작전이니 우리는 탈북자들 속에 우리 공작원을 침투시켜 효과를 거두게 해야 한다.” 2004. 1. 30일자 교시입니다.
“남조선 청년 학생조직을 통한 공작사업에 힘을 넣어 빈틈없이 대책을 세우라.” 3. 2일자 교시입니다.
“남조선에 간 탈북자들과 대북방송을 통해 북조선을 헐뜯는 배은방덕한 사람들을 응징하되 조심할 것은 우리가 직접 나서지 말고 삼자를 동원하라.” 지금 북한은 탈북자들 속에 공작원을 끼워 보내고 있는데 지금 그 수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남한에서는 저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제 자식들에게만 매를 때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니 이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노동자들은 저모양이고 나라 책임자들 사상은 저렇게 느슨한데 누구하나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느헤미야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내 동포가 굶고 능욕당하고 아픔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슬퍼하며 금식하고 기도합니다. 나는 이 마음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사랑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하는 것이고 눈물로 하는 것입니다.
“왕께 호소”
결국 느헤미야는 금식하며 눈물로 매일 슬퍼하며 다니니까 하루는 왕이 물었습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2:2)하고 말합니다.
그때 느헤미야가 왕께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고국이 황폐화 되고 성이 불탔다고 하니 내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아오리까.”(3)하고 대답합니다.
그랬더니 왕이 대답하기를(4) “그러면 내가 무엇을 도와주랴”하고 물어옵니다.
나는 왕의 마음을 이렇게 부드럽게 만드신 것도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가장 받아야 할 복은 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일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형통이라고 말합니다.
왕이 말합니다. “그러면 내가 무엇을 도와주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한낱 포로 신세인 느헤미야가 그 당대에 가장 큰 강국인 바사 왕으로부터 이런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느헤미야가 왕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왕에게 아뢰되 왕께서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께로부터 은혜를 입었으면 나를 고국으로 보내셔서 무너진 성을 건축하고 돌아오게 하소서”(5).
이것이 노예 신분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느헤미야에게 그 말을 들을 때 아닥사스다 왕은 가슴이 뭉클 했을 것입니다.
비록 노예 신분이나 자기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는 그를 볼 때 내 나라에는 저런 백성, 저런 신하가 없는데 저 망한 나라에는 저런 백성이 있구나 하고 감탄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런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내 나라는 좋든 나쁘든 내 나라입니다. 내 나라가 싫다고 욕하면 결국 자신을 욕하는 것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나라는 참 재미있는 나라이고 미스터리의 나라입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IMF 경제위기를 맞고도 3년 안에 그 위기를 벗어난 나라. 월드컵에서 1승도 올리지 못하던 나라가 갑자기 4강까지 해치운 나라. 매일 아침 7시 40분에 등교해서 밤 11까지 수십 년간 공부하며 인내하는 청소년들을 가진 나라.
아무리 큰 재앙을 만나도 1년이면 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또 당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얼마나 재미있는 나라입니까?
그래서 저는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이제는 아무리 속상해도 나라를 흉보지 않고 오히려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도 욕하지 않고 그 걸음걸이도 이제는 좋게 보아주려고 합니다. 경험이 부족한 사람에게 큰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 느헤미야 같은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할 수 있으면 우리도 이 느헤미야가 가지고 있던 민족을 향한 그 뜨거웠던 가슴을 가지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나는 이것이 진정으로 나라사랑하는 모습이고 마음이고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느헤미야는 왕의 허락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가 지치고 허기진 백성을 격려하고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고 다시 아닥사스다 왕에게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이 책임감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합니다.
역사를 보면 나라와 민족의 앞날이 어려울 때는 언제나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섰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