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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연해각군어민(沿海各郡漁民)과 전라감영의 「청원서(請願書)」>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편에는 대한제국기 「1907년 7월 연해각군어민(沿海各郡漁民) 청원서(請願書)」와 「1904년 1월 10일 청원서(請願書), 전라감영 민원 4건」 등, 총2건의 「청원서(請願書)」를 소개하겠다. 당시 대한제국기 일본의 침탈로 인한 우리나라 연해민(바닷가 백성)들의 고충은 생존권 박탈과 인권 유린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처참했다.
먼저 ①「1907년 7월 연해각군어민(沿海各郡漁民) 청원서(請願書)」에선, 경남 연안 진남(鎭南, 통영) 어민들이 일본인의 침탈을 폭로하길, “거제와 웅천의 진상 어장 13곳을 의친왕부에서 일본인 가치(香稚)에게 허가해 주었는데, 이 일본인이 욕심을 부려 민간 어장까지 자기 것이라 주장하며 세금을 뜯어갔다.”며 경리원(經理院)에 청원서를 올렸다. 그러나 경리원에선 거제와 웅천의 어장 문제는 (황실 재산인 경리원이 아니라) 의친왕부 등 다른 기관 소관이므로 경리원에서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답변을 하였다.
다음 ②「1904년 1월 10일 청원서(請願書), 전라감영 민원 4건」은 전라도 지역의 민원에 대한 보고를 전라감영에서 내린 결정(뎨김)을 모아놓은 문서다. 첫 번째로, 거제인 박여진의 민원은 전라도에서 산 쌀을 무뢰배들이 동학교도를 사칭해 방해한다고 청원해 왔다. 이에 폐단을 부리는 자들을 엄히 단속하고, 신청한 쌀을 즉시 운반하게 하라"고 판결해 왔다. 두 번째는 도살장(庖肆) 세금 문제이고 세 번째는 임대료(賭租) 미납 사건이며 네 번째는 각 마을과 문중에 배당한 문배전(門排錢) 징수에 관한 민원이었다. 이 자료를 통해, 당시 거제도에선 전남 보성군과 낙안군에서 부족한 쌀을 구입해 왔음을 알 수 있다.
○ 다음은 대한제국 시절 기울어가는 국운 속에서, 바다를 건너온 일본 어민들의 우리나라 어권의 침탈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특히 일본 어민들이 근대적인 어구와 무력을 앞세워 진해 웅천 거제 가덕도 통영 앞바다의 어장과 자원의 경제적 수탈이 진행되자, 조선의 어민들이 청원서(請願書)를 경리원(經理院)이나 의친왕부 등에 올렸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일본인들은 정당한 대가 없이 어장을 점거하고 조선 어민들을 내쫓거나, 각종 수산물(미역, 조개 등)을 일본인들이 독점적으로 채취(도채)하거나, 닭이나 달걀 등 식량을 헐값에 강제로 사가거나, 마을의 숲(園林)을 마음대로 베어갔다. 게다가 일본인들의 요구를 조금이라도 거절하면 몽둥이로 때리거나 칼을 뽑아 위협(打杖拔劍)하는 일이 흔하였고, 또한 부녀자 겁탈과 같은 흉악한 범죄로 인해 신체적·정서적 고통과 유교적 풍속을 유린했다. 게다가 관청이 있는 부산까지 신고하려 가기도 전에 가산이 탕진되거나 보복을 당했다. 설사 조선 관청에서 금지령을 내려도 일본인들은 안하무인이었다. 이에 연안 주민들은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는 처지로 전락했다.
결론적으로 대한제국기 연해민들은 일본의 무력적·경제적 침탈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삶의 터전인 바다를 빼앗기고 인격마저 짓밟히는 '식민화 전 단계의 처참한 시련'을 겪고 있었다.
1) 「1907년 7월 연해각군어민(沿海各郡漁民) 청원서(請願書)」
이 문서는 광무 11년(1907년) 7월, 한말 일제의 경제적 침탈이 가속화되던 시기, 경상남도 연안 어민들이 대한제국 황실 재산을 관리하던 경리원(經理院)에 제출한 청원서와 그에 대한 경리원경의 지령(답변)입니다. 당시 일본의 어업 침탈과 가혹한 세금 징수로 고통받던 어민들의 구체적인 사례와 저항을 잘 보여주는 자료다.
어민들이 국가 기관에 적극적으로 소송과 청원을 제기하며 자신들의 사유 재산권(民私條)을 지키려 노력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다. 당시 일본인 업자의 어권 침탈과 관리들의 부당한 세금 징수에 맞선 어민들의 절박한 상황이 담겨 있다.
(1) 어민들의 청원 내용
*부당한 세금 징수 : 관리들이 연안 각 군의 어장과 미역 바위(藿巖) 등에 파견되어, 관유지와 민유지를 가리지 않고 법 밖의 세금(과외지세)을 멋대로 거두어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조사위원 파견 요청한다. 공정하고 일을 잘 아는 사람을 조사위원으로 보내, 각 군을 직접 돌며 관물과 사물을 명확히 구분해 주십시오. 그래야 세금도 제대로 내고 어민들도 살 수 있다. 이에 일본인의 침탈을 폭로한다. 거제와 웅천의 진상 어장 13곳을 의친왕부에서 일본인 가치(香稚)에게 허가해 주었는데, 이 일본인이 욕심을 부려 민간 어장까지 자기 것이라 주장하며 세금을 뜯어갔다. 작년 가을에는 이 문제로 마산항 이사청에서 재판까지 벌어져 일본인이 패소하기도 했다. 고로 일본인이 차지한 '진상 어장'과 어민들의 '민간 어장'은 엄연히 다르니, 경계를 확실히 나누어 예전처럼 세금을 내고 생업에 종사하게 달라고 청원했다.
(2) 경리원에서 답변한 지령 내용
*사유지 인정 : 문서(문권)가 있어 개인 간에 사고판 것이 확인된 어장은 이미 조사를 마쳐 세금을 면제(탈급)해 주었다. 나머지 관유 어장은 이미 파견된 관리들이 규정에 따라 세금을 걷고 있으므로, 새로 조사위원을 보낼 필요는 없다. 그런데 거제와 웅천의 어장 문제는 (황실 재산인 경리원이 아니라) 의친왕부 등 다른 기관 소관이므로 경리원에서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답변하였다.
더하여 이 「1907년 7월 연해각군어민(沿海各郡漁民) 청원서(請願書)」는 발신자가 진남(鎭南)의 김영견(金榮見), 황성숙(黃成淑) 등(等)이고 수신자는 경리원경(經理院卿)이며, 출전은 『각사등록(各司謄錄)』과 『경상남북도각군 소장(慶尙南北道各郡訴狀)』이다.
**「1907년 7월 연해각군어민(沿海各郡漁民) 청원서(請願書)」**
경상남도 연안 각 군 어민 등의 청원서. 광무 11년(1907년) 7월 일.
대체로 연안 각 군의 어장(漁基)과 미역 바위(藿巖)는 관유지와 민유지가 섞여 있는데, 관리(派員, 파견온 인원)들이 함부로 침범하여 규정 외의 세금을 거두니 백성들의 원통함과 억울함이 큽니다. 이에 지난 봄부터 여러 차례 궁내부와 본 경리원에 청원하여 몇 차례나 판결을 받았습니다. 전후 사정은 엎드려 생각건대 이미 깊이 살피고 계실 것입니다. 백성의 물건을 억지로 빼앗아 관청에 귀속시키는 것도 법의 뜻이 아니요, 나라의 물건을 몰래 숨겨 사사로이 소유하는 것 또한 형률에 저촉되는 일입니다. 올해에는 특별히 공정하고 일을 잘 아는 사람을 조사위원으로 선발하여, 각 군에 직접 가서 하나하나 밝게 조사하여 바로잡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세금 납부를 완수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백성의 원망을 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엎드려 듣건대, 거제와 웅천 두 군에 있는 진상 어장(進上漁基) 13곳을 의친왕부에서 지난 가을에 일본인 가치(香稚, 가치 가스다로)와 계약하여 허가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해당 일본인이 끝없는 욕심으로 두 군 전체의 어장이 자기 것이라 칭탁하며, 진상 어장 외에 본 경리원 소속인 백성들의 사유 어장(民私條)까지 억제하고 간섭하며 세금을 뜯어갔습니다. 이로 인해 지난 가을 파견된 관리와 함께 마산항 이사청에서 재판까지 벌어졌고, 결국 일본인이 패소(落科)하였습니다. 이처럼 진상 어장과 민간 사유 어장은 경계가 엄격히 다르니, 이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여 조사위원에게 전임시켜 주십시오. 그리하여 관례대로 세금을 내고 백성들이 생업에 안심하고 종사할 수 있게 해주시길 엎드려 바랍니다. 광무 11년 7월 일. 진남 거주 김영견, 창원 거주 황성숙 등. 경리원경 각하 앞
[경리원의 답변] 지령(指令), 각 군의 어장 중에서 문서(문권)가 있어 개인 간에 사고판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미 조사를 마쳐 세금을 면제(탈급)해 주었다. 그 외의 관유 어장은 이미 파견된 관리들이 규정에 따라 세금을 거두고 있으므로, 다시 조사위원을 보낼 필요는 없다. 또한, 거제와 웅천 두 군의 어장 문제는 본 경리원이 관할하는 사항이 아니다. 광무 11년 7월 10일.
[光武十一年七月 日. 請願書. 慶尙南道沿海各郡漁民等. 大抵沿海各郡漁基海毛藿巖官有地民有地에 派員渾侵科外之稅야 民多冤抑故로 昨春以來로 屢呈于宮內府及本院와 幾次質判이오니 前後事狀을 伏想洞燭이올견과 民物之抑奪付公者도 非法意也요 公物之隱慝歸私者도 亦關刑律也라 今年는 別擇公正解事人와 兼帶調査委員시와 躬行各郡에 昭明一一査正야 一以完正供며 一以伸民怨之地시오며, 伏聞巨濟·熊川兩郡所在進上漁基十三條을 自義親王府로 昨秋定約, 許給日人香稚云, 而同日人이 以無厭之慾으로 藉稱兩郡全部所載이다 進上漁條外에 本院所屬民私條漁基을 抑制干涉야 討稅漁民이라가, 與昨秋派員으로 至於馬港理事廳裁判之境야 日人竟至落科이오니 進上條與民私條가 定界各異오니 此則分界歸正야 全任于調査派員시와 依例稅納고 使民安業之地을 伏望. 光武十一年七月 日. 鎭南居金榮見 昌原居黃成淑等. 經理院卿閣下. 鎭南金榮見, 各郡漁基稅全任調査派員, 依例稅納事.
指令, 各郡漁基中 有文券私相賣買者 業已査實頉給고 其他官條 已送派員야 使之依規收納인즉 不必更派調査委員이요 至於巨濟熊川兩郡漁基 非本院所管事. 光武十一年七月十日]
2) 다음 「1904년 1월 10일 청원서(請願書), 전라감영 민원 4건」은 1904년(갑진년) 1월 10일 당시, 전라도 지역에서 올라온 여러 민원과 보고에 대해 관청(전라감영 등)에서 내린 결정(뎨김)들을 모아놓은 문서다. 특히 ‘거제 사람 박여진의 민원’ 기록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본격적으로 폭발하기 직전, 동학의 이름을 사칭해 쌀 유통을 막는 혼란스러운 상황과 당시의 세금 및 채무 갈등을 잘 보여준다. 전체적으로는 동학농민운동 직전 전라도 지역의 혼란스러운 치안 상황과 세금 및 채무 독촉 등 당시의 사회 경제적 단면을 보여주는 사료다.
(1) 거제인 박여진의 민원 : 보성과 순천의 낙안 등지에서 산 쌀을 운송하려는데, 무뢰배들이 동학교도(敎徒)를 자칭하며 방해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관청은 "방곡(防穀, 곡식의 이송 금지)을 핑계로 폐단을 부리는 자들을 엄히 단속하고, 신청한 쌀을 즉시 운반하게 하라"고 판결했다. [1894년 초 동학 세력의 영향력과 그를 사칭한 행위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2) 도살장(庖肆) 세금 문제 : 서울의 포사 파원 현기영이 각 고을에서 걷지 못한 도축세(庖稅)를 독촉해달라고 요청하자, 속히 거두어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
(3) 임대료(賭租) 미납 사건 : 이 참의 집 대변인 진광언이 나주 안기풍에게 받지 못한 임대료를 받아달라는 요청에 대해, 해당자를 잡아 가두고 엄히 독촉하여 조속히 받아내라고 지시했다.
(4) 문배전(門排錢) 징수 : 진도 종친들에게 받아야 할 돈 1,000냥에 대해 이미 압송 중이니 직접 받아내라는 판결이다.
또 이 「1904년 1월 10일 청원서(請願書) 4건」은 발신자가 거제의 박여진(朴汝辰)과 서울의 현기영, 진광언, 평장동 김영학이고 수신자는 전라감영(全羅監營)이며, 출전은 『각사등록(各司謄錄)』과 『각군 장제(各郡狀題)』이다.
**「1904년 1월 10일 청원서(請願書), 전라감영 민원 4건」**
(1) 거제 사람 박여진의 민원과 판결
[내용] 갑진년(1904년) 정월 10일, 경상도 거제에 사는 박여진이 보고(狀)를 올리기를, "보성과 낙안 등지에서 약간의 쌀을 사서 옮기려 하였는데, 무뢰배들이 교도(동학교도)를 자칭하며 여러 가지로 방해하고 장난질을 칩니다"라고 하였다.
[판결] 판결하기를, "이런 일에 대해서는 이미 훈령을 내려 타일렀는데, 모든 운송을 막는 것은 서로 돕고 교역하는 취지에 어긋난다. 하물며 (동학)교도가 이 일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방곡(곡물 유출 방지)을 핑계 삼아 폐단을 부리는 자들을 엄히 단속하여 금지하고, 민원인이 요청한 곡물은 즉시 실어 가게 하라." (대상 지역: 보성, 낙안)
(2) 서울 도축장 관계자 현기영의 민원과 판결
[내용] 서울에 사는 포사(도축장) 파원 현기영이 보고하기를, "각 군에서 아직 거두지 못한 도축세(포세)를 훈령을 내려 독촉해서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판결] 판결하기를, "미납된 조항에 대해 훈령을 내려 독촉하고, 신속하게 마무리하도록 하라." (해당 부서: 해당 과)
(3) 이 참의 집 대변인 진광언의 민원과 판결
[내용] 한양에 사는 이 참의 댁 대변인 진광언이 보고하기를, "나주에 사는 안기풍에게 받지 못한 임대료(도조)를 받아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판결] 판결하기를, "이전의 판결대로 그를 잡아 가두고 엄히 독촉하여, 며칠 안으로 임대료를 받아내어 주어라." (해당 부서: 본관)
(4) 평장동 취사당 유사 김영학 등의 민원과 판결
[내용] 평장동 취사당의 유사(관리자) 김영학 등이 단자(단편 보고서)를 올리기를, "진도의 종친인 두현과 상현 등에게 받아야 할 문패전(가문 운영 비용 등) 1,000냥을 받아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판결] 판결하기를, "이미 (범인을) 잡아 압송하였으니, 자연히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甲辰正月十日.(1)慶尙道巨濟朴汝辰狀, 以寶城樂安等地, 如干貿米, 方欲輸運, 則無賴輩稱以敎徒, 多般沮戲事. 題, 以此等事, 才有訓飭, 而一切防禁, 實非交濟之意, 況敎徒, 何關於是乎? 稱以防穀而作弊者 嚴飭禁斷 狀民所請之穀 卽使輸去向事. 寶城, 樂安.
(2)京居庖肆派員玄祁永狀, 以各郡未收庖稅錢, 發訓督捧事. 題, 未收條 發訓督捧 以爲從速區竟向事. 該課.
(3)京李參議家代言人晉光彦狀, 以羅州安奇豊處, 賭租價推給事. 題, 依前題 捉囚嚴督 不日推給向事. 本官.
(4)平章洞聚斯當有司金永鶴等單, 以珍島宗人斗鉉尙鉉等處, 門排錢一千兩推給事. 題, 旣爲押上 自可推捧向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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